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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9일 12시 17분 등록

제자弟子, 자로子路

 

어느 날 자로가 방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공자가 잠시 듣고 제자 염유에게 말했다.

“저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게나. 거친 기운이 절로 흘러 넘치는 듯하지 않은가? 군자의 소리는 온유함으로 평범하여 생육의 기운을 기르지 않으면 아니 되느니라. ······ 지금 유(자로이름)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있자니 실로 살벌하여 南音이 아닌 北聲으로 들리는구나. 타는 사람의 게으르고 거친 심성을 이렇게 분명하게 비추어 보여 주는 것도 드물것이다.”

그 말을 들은 자로는 방에 틀어박혀 먹지도 않고 조용히 사색했다.

이윽고 며칠 후, 자로는 생각이 정리되었다 싶어 거문고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아주 두려운 심정으로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새어나오는 거문고 소리를 들은 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의 책망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자로는 기뻐하며 웃었다.

그러나 자로는 몰랐다.

스승이 그것을 책망하지 않음은 여위어 가면서까지 괴로워하는 자로의 외곬성을 가엾게 생각한 것이었음을.

 

천하 주유시 초楚나라의 소왕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려고 할 때, 진나라와 채나라의 대부들이 서로 짜고 은밀하게 공자의 일행을 길에서 에워쌌다.

식량보급이 막혀 일행이 불에 익힌 식사를 먹어 본 지 이레나 되어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병자가 속출했다.

오로지 공자만이 평소처럼 시가詩歌를 읊었다.

자로가 물었다.

“군자도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스승의 평소 말씀에 의하면 군자는 곤궁할 때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자는 대답했다.

“참으로 곤궁하다는 것은 인의도덕의 도에 곤궁한 것을 말함이 아닌가? 지금 나는 인의도덕의 도를 마음에 품고 난세의 재난을 만난 것이니 어찌 곤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먹을 것이 모자라 몸이 여위는 것을 곤궁이라고 한다면 물론 군자도 곤궁하지. 그러나 소인이 곤궁하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네.

이러한 나의 참 뜻도 모르고 나를 따르고 있었단 말인가?”

 

진나라의 영공이 신하의 아내와 통정하고 그녀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 나아가 이를 모두에게 자랑해 보이자, 설야泄冶라는 신하가 간언했다가 죽임을 당한 일을 놓고 여러 문답이 있던 중 설야의 죽음을 仁이라 칭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하여 공자는 인은 커녕 한 소동에 불과하다고 하자, 자로는 이렇게 물었다.

“인·불인은 둘째 치고, 어쨌던 자신의 위험을 무름쓰고 일국의 문란함을 바르게 하고자 한 것에는 지智·부지不智를 넘어선 훌륭함이 있다고 할 수 없는지요? 결과야 어떻든 생명을 헛되이 한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지요?”

“유, 그대는 小義속에 있는 훌륭함만을 보고 그 이상의 것은 보지 못하는가? 옛 사대부는 나라에 질서가 있으면 충성을 다해 도왔으나, 나라에 도가 없으면 물러나 피했다네. 자네는 아직 이러한 출처진퇴出處進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군. 시경에 백성에게 부정한 생각이 횡행하면 스스로 법령을 지키기 어렵게 된다고 하고 있다네. 생각건대 설야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듯하구나.”

그러나 자로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몸을 죽임으로써 인을 이룬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가 명철보신明哲保身을 최상의 지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공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라에 질서가 있을 때에도 곧기가 대쪽 같더니 나라에 질서가 없을 때에도 역시 곧기가 대쪽 같으니, 저 아이도 위나라의 史魚같은 부류의 인물이로군.”

 

자로는 노나라 사람으로 중유仲由라고 하며, 훗날 공자의 긴 방랑 생활에서 자로만큼 기꺼이 따라준 이도 없었다.

그것은 공자의 제자로서 관리의 길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요, 더군다나 스승의 곁에 있음으로써 자신의 재덕을 닦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죽는 날까지 변함없이, 극단적으로 구하는 것도 없이 그저 순수한 경애의 정만이 이 남자를 스승 곁에 머물게 한 것이다.

 

어느 날 밤 공자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봉황은 날아들지 않고, 황하에서는 도문圖文 또한 나오지 않는구나. 나의 道를 펴 볼 길이 없으니, 이제 때가 다 된 모양이다.”

자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공자가 탄식한 것은 천하창생을 위한 것이었지만, 자로가 흘린 눈물은 오직 공자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후로 자로는 결심을 했다.

탁한 세상의 모든 침해로부터 이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 정신적으로 인도와 보호를 받는 대신에 세속적인 수고와 오욕을 모두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학문이나 재능은 후학의 모든 이보다 뒤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외람되지만 이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자로가 위나라에서 정변이 일어나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가 소금 절임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공자는 집안의 모든 젓갈류를 내다 버리고, 이후 일절 식탁에 젓갈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로는 그렇게 공문의 제자로서 부끄럼 없이 살다 갔다.

IP *.15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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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9 14:25:59 *.219.168.90

젓갈이... ;;^^

 

 

지금 우리에겐 젓갈이 필요하다. 제대로 간을 맞추어 그 오묘하고 깊은 맛을 내기란 과연....... ???

 

그러나, 믿는다!

 

전국방방곡곡에서 또한 해외의 벗들에게서 따로 또 같이 한 위대한 생애와 진실을 기리는 힘들이 있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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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08:54:46 *.131.89.43

감사합니다. 자로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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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09:58:25 *.252.144.139

저는 항상 선배님이 왜 자로일까 궁금했어요.

사기열전을 읽으며 공자의 제자 자로가 바로 선배님의 모습이었을거라고도 생각했지요.

그러면서 그럼 나는 공자의 제자 중 누구일까 생각해보았지요.

저 또한 학문이 높고 재능이 뛰어 나지는 못하지만 공자를 지척에서 지켜주고 싶어했던 자로와 비슷한 제자일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함께 힘을 합쳐 사부님을 잘 지켜 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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