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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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도 볼 수 없는 무지(無知) 오미경 2013.07.08
대학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한국사 전공부에서 탁본하러 간다고 했다. 자원학생들을 모집했는데, 나는 탁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호기심도 있었고, 영암 월출산 근처 절이라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한국사 교수님 한분과 같은 과 학생들 약 여섯명정도였다. 8월 말이라 약간은 더웠지만,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산길은 수월하고도 바람이 불어와 답답한 가슴을 씻어내려 주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서로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었으며, 땀방울에서 빛이 나는 것이 신비했다. 시골 버스정류장은 그야말로 완전 시골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허름했다.
기억이 희미하다. 어떻게 탁본을 했는지. 먹물통을 가져다 벼루에 붓고, 화선지를 펴고, 물을 떠오고, 깨끗한 수건으로 비석을 닦아야 했고, 가까운 절에 가서 사다리를 빌려오고...
비석이 높았다. 교수님이 나에게 지시를 했다.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비석을 한 번 깨끗이 닦았다. 그런 다음 비석에 새겨져 있는 글자에 먹물을 하나하나 들였다. 그리고 난 후 화선지를 대고 솜으로 된 조그만 것(여자들이 조선시대 볼에다 분을 바르는 것처럼)을 가만가만히 두드리라고 했다. 사다리에 올라가 하는 것이 힘들었으니, 아래 양쪽에서 남학생들이 사다리를 붙잡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두드렸다. 팔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고개도 계속 올려다보고 하니 뻐근했다. 시키는 대로 하니 정신이 없었다. 교대하자고 해도 가벼운 네가 올라가야지, 이 나이든 선배가 올라가면 사다리 부러진다고 농담하면서, 힘든 일은 나를 시켰던 것 같다. 하기야 내가 3학년이고, 다른 학생들은 4학년과 대학원생이었다.
거의 세시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한 장만 한게 아니고 서너장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탁본이 완성된 것은 한쪽에서는 말리고 있고, 교수님은 비문에 새겨진 글이 화선지에 탁본된 걸 보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막걸리 잔과 김치를 앞에 놓고 술잔을 돌려가며, 오늘 수고했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교수님께서도 탁본을 말만 들었지, 수업의 한 과정으로 체험을 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록을 비석에 새겨야 하는 이유를 그 당시에는 몰랐다.
삼국유사를 공부하면서 알았다. 비문에 새겨진 기록인 한 위대한 인물 일연의 비문이 불전의 마루 밑에 동강이 나서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록을 보관하지 못하고 그냥 비문의 파편으로 버려져 있었다는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무지(無知)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같은 죄를 진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알고서 죄를 지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모르고서 죄를 지었다. 그러면 둘 중 누가 더 죄가 무겁냐고 했을 때,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모르고서 죄를 진 사람의 형량이 더 무겁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알고서 행하는 잘못은 고칠 가능성이 있지만, 모르고서 행하는 잘못은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해서 할 수 있다고 했다.
모르고서 저지르는 행동, 무지가 죄악이다. 無知 와 無智의 차이. 알지 못하면 지혜로울 수 없다.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지혜로울 수 없다. 우리 삶은 기본기다. 기본이 단단하고 잘 갖춰진다면 응용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본이 되지 않은 삶은 모래위에 성쌓기라는 것을.
같은 현상을 보고도 생각이 다르고, 그 생각의 판단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행동이 달라지니 운명 또한 달라진다. 일상의 삶속에서 기본이 쌓이지 않아 무지로 인해 눈을 뜨고서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는 있지 않은지. 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나의 무지가 저 빗물에 씻겨가기를...
그러나 부정적 외부요인이 아니라 긍정적 외부요인을 위해 가훈, 급훈, 좌우명, 사명서, 비전 등을 글과 그림으로 새깁니다. 비석을 세울 정도이면 내용을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주고픈 이야기였을 겁니다. 시간을 너머 선대와의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는 공동체는 지혜로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선대의 소망과 기도빨을 비문과 기록을 보며 자라날테니까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