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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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후 백일 즈음
벚꽃 날릴 때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어요. 하루 세 번 기도하고, 신에게 올릴 꽃을 따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신들의 섬 발리에서 눈여겨 보아둔 킹벤자민을 들였고요. 열대우림의 인도네이시아섬에서는 당산나무 같지만 여기선 환기와 자리바꿈에 지랄맞게 까탈스러운 나무. 지금 우기 한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비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창턱의 화분을 들였다 내놨다가 합니다. 그제 물을 준 자마이카 화분 흙이 마르지 않아 화들짝 했어요. 새벽에 큰 화분을 낑낑거리며 들어 바람길로 옮겨 놓고 선풍기를 들어다 ‘나무’에게 돌리고 있으니 ‘사람’이 서운해 했어요. 한 장만 입은 모습으로 나와서 ‘나도 더운데요’ 말에 ‘쟤한테는 생명이 달린 문제예요.’ 나는 미안한 기색없이 대답했어요. 아이들이 태어나 백일 정도가 되면 백설기를 돌리는 건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의 축하려니 생각해왔어요. 아이들은 태어나서 밤낮이 바뀌어 있고, 안정이 되기 까지 백일에서 4개월쯤 걸린다 했지요. 나의 결혼도 백일짜리 신생아 같습니다.
사는 집은 거의 정비가 되었어요. 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스피커를 사다가 두면서 집은 거의 95% 되었다고 인증을 했어요. 집 앞에 꽃집과 카페를 겸한 아지트카페를 하나 발견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때면 나가서 책을 한 권 읽으며 차를 한 잔 마시고 들어오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말이 난 김에 말인데요. ‘혼자 있는 시간’ ‘내 방’이 확보가 안되니까 답답해요. 나는 중학생 때부터 혼자 방을 써왔어요. 그런데 지금 있는 방은 침실도 2인용이고, 노는방도 2인용입니다. 내 물건들과 남의 물건이 뒤섞여 있고 혼자 있을 시간이 없어요. 내가 원해서 이렇게 하는 건데도 어떨 때는 괜찮고 어떨 때는 짜증스러워요. 전반적으로는 좀 순해졌다고 해얄까 약해졌다고 해얄까. 뭐 좀 많이 변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요. 나는 궁시렁거립니다. 이 여자는 지금 정상이 아니야. 호르몬 이상 상태의 유효기간 안에 있으며, 배꼽도 이뻐보이는 콩깍지가 남아 있는 상태이며, 신혼 특수로 인한 인지와 지각 왜곡이 있는 상태군. 그 아래에는 두려움이 있지. 휘발될 때 되더라도 현재를 즐기시오.
어제 꾼 꿈입니다. 꿈 이야기로 시작해도 뭐라고 하지 않으실 듯 해요. 어떨 때 나는 꿈이 현실보다 더 현실을 적절하게 상징하고 해석하는 듯 느껴져요. 소설이 허구이면서 더 진실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처럼요. 편지를 써야지 생각한 것도 이 꿈때문입니다. 어제 아침에 꾼 것이예요. 이 비슷한 느낌의 꿈들을 밤잠, 낮잠, 전철에서의 쪽잠 동안 계속 꾸었는데 기억하지를 못했어요. 꿈기억이 현저히 떨어져 있어요.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게 익숙치 않아서만은 아닌 듯 해요. 꿈작업 선생님인 제레미 테일러씨는 아내와 함께 꿈을 나누거든요. 결혼을 했다는 것이, 침실에 혼자가 아니라는 게 이유가 될 수 없어요. 꿈을 보내는 나, 꿈을 읽는 나, 꿈을 읽지 않기로 하는 나가 공존해요. 내 마음에 꿈을 기억하지 않기로 추동하는 뭔가가 있어요. 이런 ‘비상식적인’ 관심들을 새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해요. 나는 지각변동 중입니다. 비 온 뒤 죽순처럼 헤라여신이 쑥쑥 자라나 피어나고 있어요. 헤라여신이 꿈에서 힌트를 읽는 헤카테여신을 누르고 있어요. 나는 헤라가 강력해지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속수무책이라는 표현에 실린 저의 무력감을 읽어주세요. 낯설고 흐릿하고 모호하고 점성이 높은 시간을 통과하는 듯 해요.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독특한 액성이예요. 이런 카오스는 모든 종류의 혼란과 마찬가지로 가능성이 많은 상태이긴 할테지요.
2013년 7월 9일 꿈제목 : 새 사랑과 헌 사랑 사이에서 토막살해 당해 정원에 쌓이다.
나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남자의 형체, 그 남자 무리는 색깔과 실루엣이 흐릿하다. 그 남자는 ‘우리도 사랑일까?’ 영화의 남편 같은 느낌이다. 그는 퉁퉁하고, 늙어서 아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샤워할 때마다 찬물 한 바가지씩을 말없이 일부러 붓곤 했다. 그런데 닭요리책을 쓰고 있어 매 끼니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닭을 주었다. 그는 가족과 친구를 모두 초대해서 파티를 하고, 집에서 좋아하는 여자와 매 끼니 닭요리를 같이 먹는 일상이 편안한데 그녀는 그렇지를 못했다. 결혼에 대한 절묘한 비유일지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녀는 결국 왼손 약지의 결혼반지 대신 설레임을 주던 이웃집의 남자 손을 쥐고 떠났다.
나는 그와 그의 가족과 식사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니라 그들 가족이 주인공인 공식행사다. 그런데 나는 그 동아리에 끼지 못하고 그들의 잔치에서 외롭다. 잘 가꿔진 정원을 가진 한식당이다. 손질 잘 된 소나무와 배롱나무, 목단과 홍매화가 있고, 연못과 물고기와 아침에 쓸어둔 비질 무늬가 남은 마당과 꽃들이, 거기로 환하게 비쳐드는 햇빛이 아름답다. 기역자의 한옥 안에 대청마루가 있고 테이블들이 있었다. 반대쪽은 역시 정원인데 통유리가 되어 있어 식사를 하면서 고아한 정취를 즐길 수 있었다. 정한 갈매나무를 가졌던 시인을 기다리던 여인이 운영하던 곳이다.
그 식당 초입에서 검정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를 만났다. 그도 역시 그의 가족과 함께 왔다. 그는 키가 크고 군살이 없고 수려하다. 그에게서 후광이 비친다. 내 몸과 마음과 귀와 눈이 전적으로 그를 향한다. 나는 그라는 꼬챙이에 주둥이부터 꼬리뼈까지 꿰어져 이글거리는 불에 올려지는 막 잡은 생선 같다. 첫눈에 반해서 연애를 시작하는 스타일인 나는 그게 뭔지 단박에 알아먹는다. 그는 성인이면서 막내 ‘아기’ 역할을 평생 할 작정인 포니테일 여동생, 아들과 남매라 해도 믿을 만한, ‘모성’보다는 ‘여성’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센 데다 화려한 플라워 무늬의 옷과 굵은 컬, 강한 화장을 했고, 아들과 강력하게 밴딩된 젊은 엄마, 존재감이 미미한 대머리에 무채색 옷을 입은 왜소한 아버지, 그리고 홀로그램처럼 존재감이 흐릿한 조부모와 함께 왔다. “너는 나랑 결혼하자” 그가 나에게 통고한다. 나는 공수가 터지지 않은 애기무당처럼 몸 속에는 신명이 가득한데 입은 없는 상태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 그는 그걸 ‘네’로 알아듣는다. 그들 가족은 식당의 왼쪽 정면에 자리를 잡는다. 시큰둥하게 그의 어머니가 나를 ‘아가야’라고 부른다. 그건 바람쟁이 남편을 둔 본처가 마구잡이로 바뀌는 세컨드나 술집여자를 하대하는 태도다. 그때 이전 남자와 그의 가족이 역시 나를 ‘아가야’라고 부른다. 그 두 가족은 같은 식당으로 들어갔고, 이전 남자의 가족은 기역자의 오른쪽 끝, 새 남자의 가족은 정면 왼쪽에 자리잡았다. 나는 누구에게 대답을 해얄 지, 어느 테이블로 가얄 지 모르겠다.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새 남자가 상황을 파악하고 일어선다. 그의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린다. 방금 만났고, 내 마음이 흔들렸고, 그가 나에게 결혼하자 말했을 때 내가 잠잠히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권리가 생긴 것처럼 그는 광폭하게 화를 내며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나를 토막 내어 죽여버렸다. 순식간이다. 무섭다. 더 큰 감정은 어리둥절함이다. 왼쪽 남자의 가족, 그의 어머니, 여동생, 아버지, 조부모는 잠시 이쪽을 보더니 식욕에 전혀 영향을 안 받는 듯 코스대로 요리를 먹는다. 원래 남자네 가족 역시 그러하다. 그들은 나에 대해 공통의견을 가진 듯 했다.
나는 토막토막 끊어진 채 붉은 피를 묻힌 살과 뼈 무더기로 뜰에 쌓여있다. 그 상태에서 어리둥절함과 생각이 지속된다.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나를 토막내 살해할 권리를 주었는가?
내가 결혼제도에 들어옴으로써 결혼제도를 기준으로 결혼보다 상위개념인 ‘사랑’을 판단하고, 이분법적으로 다루고 있나, 그래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랑을 난자하고 있나 싶기도 하구요.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밖으로부터 끼쳐온 것에 의해 나 자체가 거대한 변화 중인 것도 같구요. 한동안 이 꿈이 내게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즐거이 풀 것 같습니다.
어쨎든 고기 가는 거대한 분쇄기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있어요. 조셉 캠벨의 책 <신화의 힘>에는 이쿼로이즈 인디언 처녀의 이야기가 나오죠. 어머니가 정해준 혼처를 거부한 여자는 전혀 보호받을 수 없는 낯선 땅으로 들어가요. 그녀는 뱀이 변한 남자와 밤을 보내요. 일곱 개의 심장이 든 심장바구니를 찾아내어 도망치다 늪에 빠진 여자가 물 밖의 노인의 손을 잡고 건져 올려지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영웅의 모험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결혼에 대해 말했지요.
나는 출근길에 그 부분을 찾아 읽었어요. 조셉 캠벨 할아버지는 “여자가 물 속에 있었다는 것은 결혼을 통하여 여자가 합리적, 의식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의 강박 충동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예요. 결국 개성이, 의지로 통제가 가능한 영역에서 초개성적인 충동의 영역으로 함몰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것은 개인에 따라 통제가 가능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요.” 나는 이런 게 내 몸과 정서와 생각, 행동에서 일어나는 걸 일상에서 관찰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예가 몇 개 생각이 나네요.
출근 전철은 막 한강을 건너고 있어요. 상류에서 내린 비로 어제 오늘 물빛이 탁해요. 나는 다른 짓을 그만두고 이 시간만큼은 속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매일 한 번씩은 불러주나 봅니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강물에게 보내는 노래이기도 하고, 강물 같은 나에게 불러주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아우라지든 양수리든 물길이 만나 더 큰 물이 되었습니다. 내 어릴 적 꿈 속에 반복해서 찾아오던 바다거북 말입니다. 그 거북을 따라 나섰으면 나도 바다로 갔을까요? 아니면 나도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사람인 걸까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할까요? 잘 흘러가고 싶어요.
옴마,,, 콩두언니,,,
저는요. 글을 딱 펼치면 글이 얼마나 기나 아래로 쭉쭉 내려서 훑어본 다음에 글을 읽는 습관이 있어요.
근데 언니글 쭉쭉 내리는데 가장 먼저 본 단어가 토막살해.......
제목은 결혼식 후 백일즈음이라는데....... 궁금궁금하면서 읽었어요. ^^
새사랑과 헌사랑 사이에서 토막살해, 결혼하지 않은 저도 쵸큼은 이해 될 것 같기도 해요. ;;;;;
다음번엔 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결혼 이야기도 한토막 부탁드릴께용~
아참, 아이들의 백일을 기념하는데는 생물학적 이유도 있답니다.
보통 임신 10개월 후에 아기가 탄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정확히는 마지막 생리일로부터 280일, 수정일로부터 265일 후에 탄생한답니다.
그러니, 태어나서 100일은 실제 그 아이가 수정된 날인거지요. ^^;
100일 기념은 그 아이가 이 세상에 온지 1년이 되는걸 축하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
저는, 이상하게도 중학교 때 배운 이 성교육 내용이 절대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가끔 칭구들에게 이야기 해 주는데,,, 모두들 우와~ 하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라구요.
쵸큼 유식해보이나 봐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