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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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스의 귀향
여행작가 박정은의 책 <셀프 트레블 파리>과 프랑스에서 박사를 한 정수복의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오늘 배송받았다. 정수복의 다른 책 <파리를 생각한다. 도시 걷기의 인문학><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을 <셀프 트레블 이스탄불>과 <파리는 나를 좋아해>와 같이 더 주문할 거다. 프랑스는 지구별에서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나라다. 느닷없는 데다 깊은 그리움의 연유는 무엇일까? 몇 년 전에 사람의 전생을 볼 줄 안다고 주장하는 영성가를 만난 적이 있다. 비음이 많이 섞인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졌다. 그녀의 모성적인 아우라는 ‘우쭈쭈’ ‘토닥토닥’의 기운을 풍긴다. 그 위로가 나는 좋았다. 그녀는 나에게 이름이 M으로 시작되는 수녀로 7생 전에 파리 근처에 살았었다고 말했다. 어떤 생은 남자 스님으로 살았단다. 몸이 약해 일찍 죽었다던가. 콧방귀를 뀌면서 흘려 보낸 척하고서 스리슬쩍 마음창고에 쟁였다. 오늘처럼 설명할 수 없는 신비를 대할 때 원용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손금처럼 선명히 알 수는 없다. 물길이 지하로 숨어들고 어둠상자들이 다중 중첩된 회로를 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가 모르더라도 그럴만한 필연적인 조건이 맞아떨어져 일어난 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건 운명에 대한 승복이며 아모르 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는 자의 주술 또는 체념이리라.
프랑스를 내가 스스로 기획해서 떠나는 혼자 여행의 최상급 목적지로 생각한다. 나는 올해 결혼을 했고,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 결혼을 했으니 합법적인 가족제도의 보호를 받으며 아이를 임신해서 기르고 싶어졌다. 간절히 그 권리를 누리고 싶다. 내 안에는 언제나 이런 욕망이 있었다. 이건 배란기 즈음에 남자의 턱선에 눈이 가고, 수정되지 못한 난자를 폐기용 쓰레기로 배출하고, 자궁을 피로 청소하는 생리 직전 욕구불만을 유발한다. 슬픔과 분노 또는 좌절의 정서상태다. 인간이 아니라 짐승인 내가 움직이는 것. 그런데 찬 바람 불면서 나는 뜻밖의 여행욕구에 휩싸였다. 인류를 유목민과 정착민 두 부류로 나눈다면 나는 진성 정착민이라고 생각해왔다. 정착민은 자기 명의의 집과 몇 십 년 쓸 가구를 사고, 시렁에다 제 밥그릇을 올려놓고 집밥을 만들며 사는 게 정체성을 사는 거라는 게 내 지론다. 근데 이 상큼한 여행바람이 싫지 않다. 여행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우면서 어려운 외래어다. 아직 아이를 잉태하지 않거나 태어나지 않았을 때 떠나지 못하면 한동안 혼자여행을 작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제주 올레길을 완주하거나 일부러 혼자서만 아끼는 곳으로 남겨둔 곳을 서둘러 보아야겠다. 시한부 인생 선고, 신데렐라의 12시 타종 소리, 데드라인처럼 유난을 떨고 극적이고 싶다.
매일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자기 책을 내어야 작가일테지. 글쓰기 모임의 사부님은 이미 우리는작가라고 가정하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나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선’ ‘출간’ 같은 만질 수 있는 실증적인 증거가 없는데 작가는 개뿔. 그리고 글쓰기 선생님의 부재는 비빌언덕, 바람벽을 잃고 머리에 뼈에 숭숭 찬바람 드는 포인트에 선 것처럼 으슬거리게 한다. 욕을 하는 나의 옆에 또 다른 목소리가 말한다. 그래도 매일 쓰고, 일어나 첫번째로 쓰긴 쓰지 않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다. 매일 쓰는 건 일기류의 글들이다. 태어나길 새벽형 또는 농촌형 인간인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쓸 시간도 새벽에 제법 난다. 그러나 일기 말고 다른 글, 그러니까 내가 글쓰기 선생님과 써보기로 합의한 책을 한 꼭지씩 쓰려고 하면 속이 답답하고 아랫배가 간질간질하다. 나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이가 겨우 제 집 벽장에 숨듯 도망간다. 저기요, 저기 말이에요. 근데 말이예요. 300쪽짜리 책을 쓰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하루하루 2~3쪽을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까 그녀다. 귀가 솔깃하다. 나는 1시간에 A4 4 페이지를 타이핑하고, A5 3페이지를 손으로 쓸 수 있는 작업용량을 가졌다. 그러니까 매일 1시간 정도 쓰면 3페이지를 쓸 수 있다. 그걸 해보자고 아까 그녀가 젤소미나 같은 얼굴로 말한다.
며칠 전부터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내 책의 한 꼭지에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한 사람이 나를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는 내가 아니라도 괜찮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옮기는 사람이 누구라도 좋은 것 같다. 우연히 그 사람이 올 길에 내가 새벽부터 나와 있었던 거다. 길은 안개에 가려 희부윰하다. 내가 주파수를 잘 맞출 수 있는 송신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기 수신되고 채널러처럼 받아 적게 되리라. 내가 아니라면 또 다른 사람이 태어나고자 하는 이 사람 이야기의 타전 소리를 받아 기록하게 되리라.
‘주먹 쥐고 일어서’, ‘두 가슴’ 식으로 이름을 짓는 인디언처럼 나는 그 사람을 ‘아도니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내가 그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면 그 이름으로 불러주리라. 나는 이름을 발견하러 간 적이 있었다. 모닝페이지에서 내 이야기를 듣는 양반의 이름을 찾기 위해서 성당의 가족사진을 모두 들여다 보며 300개의 이름 중에서 찾아냈다. 다 자란 성인의 모습으로 인천공항 국제선에서 내려 걸어나올 아도니스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는 25살에서 30살 즈음이다. 20살이면 자아찾기를 시작할 나이지만 저 정도 나이가 되어야 뭔가 실행할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그는 잘 자란 동양계 프랑스인이다. 한국에서 생후 1달이 못되어 입양되었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은 그에게 한국 이름을 주지 못했다. 그는 내가 이십대 중반이었을 때 만난 열다섯살 은형이가 뱃 속에서 기르던 여자아이거나 그 아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밑줄을 치면서 프랑스 여행기를 읽어대기 시작하자 그는 좀 더 강하게 나에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여행기는 일종의 무전 장비이며 호그와트로 가는 문 같은 거다.
은형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스물다섯살인 나는 7개월간 성폭력상담을 하는 NGO의 쉼터 야간간사였다. 거긴 폭력이 일어난 근원지, 집에서 뛰쳐나왔지만 아직 가야할 곳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의 간이역이었다. 나는 그 때 방을 제공해주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한 달에 활동비 30만원을 받고 방 하나를 제공받기로 하고 실무자들이 퇴근한 후 저녁에 거기 가서 함께 잤다. 집이 없는 건 나를 비롯한 거기 머문 이들의 공통점이었다. 나는 해질녘 노란 빛을 좋아했다. 휑한 창문에다가 커튼 대신 노란빛이 도는 창호지를 사다가 발랐다. 근데 노란 창으로 걸러지는 햇빛은 멀미가 났다. 햇빛이 저절로 만드는 노란빛만이 산뜻하다. 그 방은 나에게 노란 방으로 기억된다. 두 개의 커다란 들창이 있었다. 집의 중앙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화장실이 2인 집이었다. 나는 주별로 일정 돈을 받아서 장을 보고,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가서 옷을 샀다.
은형이는 친아빠의 성폭력으로 인해 임신을 했고 너무 늦게 발견해서 합법적인 낙태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다. 임신 말기 낙태는 여자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위험한 시도다. 미혼모시설에서 아이를 낳고 돌아오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우리는 2달을 함께 보냈다. 배는 자꾸 불러오고, 몸을 타인과 자신에게 가릴 수 있도록 검은색 텀벙한 잠바를 입은 소녀는 내내 말이 없었다. 함묵증에 걸린 사람처럼 손만 움직일 뿐이다. 하루 종일 정사각형으로 재단된 종이로 거북이를 접었다. 은형이는 그 거북이들을 접어서 나중에는 실로 하나하나 꿰었다. 돌아온 은형이는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가만히 있으면 아이 울음 소리가 귀에 계속 들린다고 했다. 은형이는 헤어지면서 나에게 단 한 장 뿐이었던 아이의 사진을 선물로 주었다. 혀로 입술을 밀어내며 젖을 빠는 입모양을 가지는 시기의 신생아 얼굴이다. 아이 엄마인 그 소녀는 다른 사진을 가지고 있을까? 모른다. 많은 사진을 찍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오랫동안 앨범에 넣어둔 사진을 꺼냈다. 산부인과에서 주는 신생아의 옷을 입은 작은 아이다. 얼굴은 누굴 닮았을까? 이제 나는 은형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을 처음 볼 때 아이가 매우 이쁘지만 은형이를 닮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던 기억만 남았다. 그럼? 이 대목에서 늘 나는 멈칫하고 거북해졌다. 자명한 대답이 어색하다. 아이는 아이 아버지를 닮았겠지. 나는 성폭력 가해자를 미워하는 습관이 있어서 아이와 은형이를 분리해서 사고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은형이는 학종이로 접은 거북이도 나에게 주었다. 출산 전에 만든 것들이다. 거북이는 종이학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공정이 까다롭다. 나는 한번도 종이로 접으려 들지 않는다. 성질 버릴까봐서다. 은형이는 나뿐만 아니라 같이 지내던 다른 소녀들에게도 제가 접어서 꿴 거북이를 선물했다. 그리고 돌아갔다.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잉태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자의 책임감을 느껴왔다. 언제고 그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와 자기 뿌리를 찾으려 할 때, 사진을 들고 나와서 가족을 찾는 이의 프로그램 안 TV로 보면서 갈등하는 상상을 했다. 야매 신자로 기도 비슷한 걸 드릴 때 그 아이가 좋은 부모 만나서 사랑받으며 살길 가끔 기원했다. 성폭력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더라도 출산과정 자체가 세탁되어 다른 나라로 입양을 보내면 건강하게 잘 자랄 건가? 그런 걱정이 기원과 함께 들곤 했다. 이런 사연 때문에 이 프랑스 사람은 안개 속에서 내게로 걸어오려는가?
너는 어쨎든 이 아이의 엄마다. 그리고 너를 떠나서 다른 나라로 입양을 가서 다른 부모에게 자라더라도 이 아이는 행복하게 잘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너한테 일어난 일로 힘들겠지만 남은 동안 만이라도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내가 한 말이다. 택도 없는 주문이었다. 20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신념이었는 지도 모른다. 은형이가 아이 사진과 거북이를 내게 주고간 건 그 말 때문일까? 그녀는 내게가 아니라, 모든 걸 그 곳에 두고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기억해 주길 바랬던 것 같기도 하다. 사진과 거북이를 태워버리지 않고 사람에게 버린 걸 보면. 나는 열다섯 은형이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자루처럼 무거운 몸으로 죽은 나무처럼 다만 종이거북이를 접던 소녀, 아이와 부속물를 빼내고 돌아와 나에게 사진을 주던 소녀. 너희 엄마는 너를 가졌을 때 김치와 고등어를 좋아했다, 그 모진 시간 동안에도 겨우 열다섯살 밖에 안된 소녀가 자기 뱃속의 태아인 너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거북이를 접었다고 말을 해 주고 싶다. 두 아이가 모두 잘 사는 어른 여자가 되었기를 바란다.
아도니스는 사진 속 아이의 사연을 가진 사람이다. 아도니스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화 속에서 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딸의 이름은 뮈라이고 그 딸이 낳은 아이가 아도니스이기 때문이다. 아도니스는 남자였다. 로마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뮈라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는 수금을 든 오르페우스다. 연주하는 남자 오르페우스는 뱀에 물려 죽은 꽃다운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지옥에 다녀왔던 음악가였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깨뜨리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뒤를 따르던 아내는 영영 죽은 이들의 세계로 돌아가 버렸다. 아내를 두 번 잃어버리고 세상 사는 재미를 다 잃어버린 오르페우스는 다만 노래함으로 위로할 뿐이었다. 봄마다 킁킁거리며 꽃시장에서 향기로 만나게 되는 봄꽃 히아신스 전설, 상아로 깍아 만든 처자를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어 ‘기대의 힘’을 말하는 피그말리온에 이어 ‘뮈라’를 노래한다. 뮈라는 키뉘라스의 딸이다. 키뉘라스는 피그말리온과 상아처녀 갈라테이아 사이에 난 딸 파로스의 아들이었다.
뮈라는 혼인할 나이의 처녀였다. 도처에서 뮈라의 손을 잡으려고 구혼자들이 몰려들었지만 뮈라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구혼자들 사이에 없었다. 뮈라는 푸념한다. “신들이시여, 이것이 그렇게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까? 이 땅에는 이런 사랑을 나누고도 멸종하지 않는 짐승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암소는 그 아비의 사랑을 용납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수말에게는 그 딸을 아내로 삼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숫양은 제 씨로 지어진 암양을 거느리고, 새도 제 아비였던 새의 알을 낳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금수도 이런 자유를 허락받는데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것이 어찌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으며, 인간만은 이러저러한 것을 근심하여 갖가지 금제를 만들어놓고 자연이 허락한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그대로 뒤집으면 친족성폭력 가해자들의 말이렷다.
이 마음에 절망하여 목을 매는 뮈라를 젖먹여 키운 유모가 목격한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우세하다치면 궁궐의 유모들이야 말로 엄마다. 유모는 백발이 된 자신의 머리카락과 말라붙은 젖가슴을 보여주며 강보에 싸여 있을 때부터 공주를 길러온 은공을 보아서라도 까닭을 말해달라고 조른다. 뮈라는 말한다. 뮈라를 살려야 한다는 욕망에 휩싸인 유모는 혼인한 여자들이 모두 케레스 신전으로 가는 아흐레의 축제 기간에 뮈라의 어머니가 집을 비우자, 뮈라를 ‘전하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며 주인의 방에 들여보낸다. 키뉘라스가 처녀의 정체가 궁금하여 촛불을 밝히자 사실을알게된 키뉘라스는 분에 못이겨 딸을 향해 칼을 겨눈다. 뮈라는 아버지의 왕국 방방곡곡을 방황하다가 결국 예멘 땅으로 도망간다. 이 때는 이미 출산이 임박한 시점이었다. 뮈라는 신들에게 기도한다. “저는 무거운 벌을 받아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살면 사는 대로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죄를 지었고, 죽으면 죽은 대로 저 세상 사람들의 분노를 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쫒으시되 이 세상에서도 쫒으시고 저 세상에도 들지 않게 하소서. 바로오니 저를 다른 것으로 바꾸시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몸이게 하소서” 신들이 기도를 들어주어 뮈라는 나무가 되어갔다. 몸의 모양이 바뀌면서 뮈라의 마음도 나무를 닮아갔지만 눈물을 흘리는 것만은 여전했다. 이 나무가 몰약나무다.
해산의 때가 되어 진통이 와도 뮈라는 이를 나타낼 수가 없었다. 연민의 정이 많은 해산의 여신 루키나 여신이 몸소 나뭇가지 아래로 와서 나무에다 손을 대고 해산의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나무 둥치가 찢어지면서 나무가 껍질 사이로 산 것을 내놓았다. 요정들이 달려와 태어난 사내아이를 제 어머니의 눈물로 씻었다. 이 아이가 아도니스다. 아도니스는 자라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애인이 되었다. 아프로디테는 큐피도의 화살에 찔려서 아도니스에게 반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망치는 짐승을 보면 용기를 내어 쫒아도 좋다. 그러나 자연이 너와 대적할 무기를 준 짐승은 도발하지 말아라. 무슨 일이 생기면 명예에 대한 네 욕심값을 나는 근심으로 치뤄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건만 멧돼지를 쫒다가 죽고 만다.
뮈라신화에서는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의 부인인 어머니가 축제를 위해 집을 비웠을 때 유모의 도움을 받아서 아버지의 침상에 들었다. 자신과 섹스한 여자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딸인 여자를 죽이려 달려들었고 뮈라는 추방되었다. 그러나 나는 신화를 읽다가 ‘택도 없는 소리 집어치워!’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솟구쳐올라 천정을 뚫다 못해 성층권까지 발사될 지경으로 화가 났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유혹했다는 고전적인 스토리가 아닌가? 미성년자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 경우 책임은 그 여자아이가 아니라 어른에게 물어야 한다. 황당하고 짜증스럽다. 나는 신화를 아버지가 딸을 섹스의 상대로 삼았는데 피해자를 이중으로 처벌하는 시선 ‘피해자가 유혹했다’는 식으로 왜곡되었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게 온당하다고 판단한다. 이런 식으로 씌어진 이유를 재기발랄하지만 경박스런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시대가 폭력적이었던 데서 찾을 것이다. 그들은 로마 원형경기장에 산 사람을 풀어놓고 짐승이 쫒도록 해놓고 그 죽음의 사냥을 보고 즐겼다. 검투사들이 죽고 죽이는 걸 게임으로 생각했다. 많은 파티에서 먹기 위해 구토 전용 깃털을 꽂고 다녔다.
나는 ‘아도니스’의 귀향을 준비하리라. 입양시킨 아이를 찾으러 유럽으로 떠난 미혼모의 이야기를다룬 영화 <영도다리>를 보고, 프랑스에 입양된 이가 한국에 오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자신에 대해 기술한 책을 읽을 거다. 여러 통계를 읽을 거다. 또 정말 오비디우스의 로마시대가 폭력적이어서 저런 관점의 이야기가 나온 건지를 역사책에서 확인할거다. 신화에 대한 반박에는 실증적인 자료와 수치와 그래프가 필요하다. 제일 하고 싶은 건 혼자여행이다. 프랑스로? 아, 이 부분에서 자신 없어진다. 일단 프랑스 여행기를 더 읽기로 한다. 그래서 만약 그가 원한다면 먼 길을 걸어온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내가 잠잠해 지길 바란다. 불을 피우고, 따뜻한 차 한잔 준비하리라. 나는 내 어머니가 밭둑에서 농사지은 늙은 호박으로 호박죽을 끓여주고 싶지만 그는 한국 입맛이 아닐테니 커피 한 잔 내려 줄란다. 이참에 나도 입 쩍쩍 텁텁한 믹스커피를 원두커피로 바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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