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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1일 08시 58분 등록

세상에는 예쁜 여자도 많고 아름다운 여자도 많다. 그녀가 그랬다. 예쁘면서 아름답기까지 한 여자. 부드럽고 조용한 여자. 밝은 여자였다. 세상의 어려움 모르고 자랐으나 지혜로운 여자의 느낌도 있었다. 딸로도 아내로도 사랑 받고 사는 여자의 향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녀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그녀를 끌어당겼는지 깊어가는 가을이 아쉬웠을까. 놀이동산의 야경을 구경시켜주겠다며 6살 딸을 태우고 가던 길이었다고 했다. 생후 3개월 아들과 아이의 아버지를 남겨놓고 그녀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노인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다. 교통사고로 구부정해진 어깨가 조금 안스러워 보이지만 큰아들의 재혼을 앞둔 시점에 검버섯을 시술한 얼굴은 말끔하다. 딸 이름의 펀드를 해지하고 현금으로 돈을 찾는다. 사망한 사람의 예금은 상속인에게 돌아가게 되어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도 모른척한다. 번거로운 절차를 밟고 싶지 않은 노인의 마음을 알고 있었고 돈의 주인도 사실은 노인이다. 딸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이라는걸 나는 안다. 그녀의 남편이 문제를 삼으면 복잡해 지겠지만 노인과 나는 암묵적 동의를 한다.

 

"살아서 다시 봅시다."

"."

"죽으면 절대 볼 수 없어요."

"당신도 저 세상을 믿지 않는 부류야?"

"...저는 다른 세상의 존재를 믿지 않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성당에 가면 자꾸 저 세상이 있다고 말을 해"

 

성공한 기업가로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S상대를 졸업하고 세 번의 이직을 하며 글로벌기업의 회장으로 70이 넘은 나이에 은퇴를 했다. 오십이 넘어가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매년 명사(名士)미술전을 개최하고 카메라를 메고 스케치여행을 다니는 사람.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만하다. 부족하지 않은 만큼 돈을 벌었고 자녀들 또한 사회인으로 자리를 잘 잡고 있다.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행복한 노후의 표본이라고 할 만한 삶이다. 스스로도 자부하던 삶이 잘 못 산 삶으로 변해버린 느낌이 되어버린 인생.

 

"한 십 년 쯤 지나면 슬프지 않을 거야. 그때는 내가 죽었을 테니까."

죽음을 죽음이 위로한다. 멸하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던 신들이 생각난다. 자식의 아픔을 감내 해야 하는 아비. 그의 통곡에는 죽지 못하는 신의 운명이 있다. 인간은 죽음이 슬픈데 신은 죽지 않음이 아프다. 죽은 사람이 슬플까. 남겨진 사람이 아픈 걸까. 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 물어볼 수 없고 감각할 수 있는 살아있는 자가 슬픈 것이 맞겠다.

 

"저 세상에서 꼭 만날 수 있다는 보장만 있으면 내가 오늘이라도 죽을 텐데...그런 보장이 없어."

 

"........."

 

다시 단테가 궁금해졌다. 신의 노래를 쓴 그가 궁금해진 것은 국립극장에서 단테의 신곡을 공연한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읽다가 집어 던지고 싶었던 책의 기억. 신곡(神曲)이다. 어떤 해석을 했을까? 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때에 쓰여진 작품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나와 다른 이들의 해석이 궁금해졌다. 궁금증으로 가슴이 뛰지는 않지만 모른 척 하기에는 왠지 좀 땡기는 그런 작품이었다. 예매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도 선뜻 표를 구매하지 못한 이유이다. 땡기지 않는 작품을 감상 하는 일. 지난해의 독서가 나를 국립극장으로 끌어당긴다. 마지막 공연 전날 가까스로 한 장의 티켓을 구매했다. 원작에는 천국, 연옥, 지옥이 같은 분량이지만 공연은 130분 80분이 지옥이다. 지옥에 대한 해석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역시 나에게 신곡은 어려워...' 집어 던지고 싶었던 책이나 국가 프로젝트로 재 해석했다는 명품 공연을 본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내게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어렵다기 보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하다. 나에게 신곡은 단순하다. 종교가 없는 나는 내세를 생각하지 않는다. 관념적으로 내 안에 심어진 지옥과 천국을 생각한다. 그 사이에 연옥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아직 최종 목적지가 결정되는 않은 인간들이 머무르는 곳. 그들에게는 다시 한번의 기회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결정 짓는 중요한 행위 중에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사자(死者)를 위하여 기도를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천국으로 갈 수도 있다고 한다.

 

딸을 잃은 아비. 부모 앞에 간 자식을 둔 노인이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이 제일 큰 불효인데 이것들은 쌍으로 불효를 저질렀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말한다.

 

"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건 알고 계시죠…."

 

뼈에 가죽만이 덮힌 그의 손을 잡았다. 뼈와 살이 따뜻하다. 웃으면서 말하는 늙은 남자의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다. 우리의 손등으로 눈물이 떨어질 기세다.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한다. 보장각서라도 한 장 써드려 할 것 같다. 이건 불법인데..

 

'천국 따위는 없어요. 연옥도 없고 지옥도 없답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살아있습니다. 당신이 기억하는 한 아이들은 죽지 않아요'

 

"지옥의 문도 천국의 문도 우리 앞에 열려있습니다.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모습으로 오는가? 사랑의 이름으로 옵니다." 내 나름대로 해석한 신곡을 그분에게 들려드려야겠습니다. 다음에요.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말입니다.

IP *.175.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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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19:26:41 *.153.23.18

신곡 저도 신경질 내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초파일 즈음에.

그 공연을 보고 신곡을 읽으면 느낌이 다를 것도 같아요.

 

저 아는 분 20대 아들을 잃었어요. 지금 77세이신데 그때 장례를 마치고 아들 자취방에서 실어온 책 상자들을 아직도 가지고 계세요. 내가 죽으면 내 옷들하고 같이 태워질 물건들이다 하면서요.   

 

잘 읽었습니다. 행님.

프로필 이미지
2013.11.26 01:09:14 *.108.80.181

사실 상대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위로는 감흥이 없습니다 (제 경우에는)

위로도, 사랑도 관심인 것 같어요. 상대를 꾸준히 관찰하다보면, 상대가 힘들때가 그냥 보이더라구요. 

그럴때 해주는 가슴깊은 이야기가 최고의 위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위로 받고 싶은 날이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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