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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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 해가 가고 있다. 올해를 보내는 마지막달인 12월의 첫 주말, 뜻깊고 즐거운 연구소 송년회에 참석했다. 겉으로 표현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올 한해를, 올 한해가 가는
것을 아쉬워할 거란 생각을 들었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즐겼다. 음악에 취하고 술 한잔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고 사람에 취했다. 우리는 그렇게 2013년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송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출발할 때 자가용을 가지고 올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나는 돌아가는 길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각자 자기들만의 이유로 늦은 시간임에도 집으로 귀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태우고 움직이는 지하철은 꽤나 복잡했다. 약간의
짐을 들었기도 했지만, 5시간 가까이 개구쟁이 아들아이를 신경 쓰며 동시에 송년회의 모습들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느라 제대로 앉지도 쉬지도 못했더니, 두 다리가 뻐근했다. ‘나
힘들오…’라고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아이와 아내는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던만큼 피곤함 또한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이그….. 그냥 차 가져올걸. 주차공간 걱정에,
주차비 몇 푼이 아까워서 고민하다 결국 그냥 오다니……
심플하게 결정할 걸….’
심신이
피곤했던 모양인지, 순간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까 (순간 들었던 날 것 그대로의 표현, 정제되지 않은 표현은 ‘구질구질’이었지만, 그렇게 단정하면 내 인생이 조금은 더 비참해 보일 것 같아서, 그리고
나보다 형편이 모자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없는 듯 하여, 그런 표현은 쓰지 않기로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텐데,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왜 이렇게 질문들이
따지고 들어오는지 ‘이걸하면, 괜찮을까, 돈은 들지 않을까. 나중에 어떻게 되지 않을까…….’ 등등. 그 순간 우리의 인생이, 일상이
너무 복잡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내 머릿
속으로 들어왔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이 복잡해지고, 욕망과 가치관이 복잡해진다.’ – 윤석철 ‘삶의 정도’ 中 에서.
과거에는
삶이 지금 보다는 심플했다. 먹고 사는 문제, 살고 죽는
문제에만 신경 쓰면 됐다. 행복이니 권리니 이런 가치들은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에게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여전히 바뀌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는 사람들 평균적으로 줄어들었고, 세상이
넓어지고 여러 가지 경험들이 쌓인 지금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만만치 않은 사람들 또한 ‘행복, 편리, 인권’등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편리해지고, 빨라진 세상이지만 그와 동시에 복잡해졌다. 원하든 원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살고 있다.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고, 그들이
환경을 그렇게 만들었다. 학생들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과목들과 너무
많은 분량을 소화해내고 있다. 직장인들은 너무 많은 일들 – 본업부터, 자기 계발 명목으로 하는 제2, 제3외국어, MBA 에 석.박사인
플러스알파과정의 학위취득, 경영진의 감시감독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여러가지 평가와 결과, 업무실행의 증빙들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 등등 – 을 하고 있다.
'기업도 조직이 복잡해지면서 경영 이념과 목표가 혼란에 빠지고, 의사결정의
기준도 모호해진다’ – 윤석철 ‘삶의 정도’ 中 에서
과거
소비자들은 매장에 가서 돈을 주고 물건을 샀다. 움직이는 수고가 있었지만 했지만 간단한 편이었다. 요즘 소비자들은 구입 전까지 상당히 많은 일들을 ‘직접’ 한다. 소셜커머스에서 가격정보를 비교하고 상품평을 보며 자신의 요구조건에
물건이 부합하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돈을 아끼는데는 성공하지만 시간을 아끼는데는 실패하는 면 없지
않다. 영화관이나 은행에서 표예매를 하고 이체를 하던 어제와 달리, 주말이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영화평점과 상영시간을 조회하고 예매를 하고 월급날이되면 은행에서 요청하던 출금 이체업무들을 고객들이 직접해야 한다. 거기에 공인인증서가 만료되면 이를 인증하고재발급하는 절차는 얼마나 번거로운지...... 이게 오늘의 모습이다. 손안에서 또는 앉은 자리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지금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은 꽤나 복잡해지고 있다.
‘ ‘문자의 역사를 보면, 6천 자가 넘는
쐐기문자와 상형문자들의 복잡한 체계가 20 내지 30개의
글자로 간결화하면서 문명개화의 가속도가 시작되었다.’ - 윤석철 ‘삶의
정도’ 中 에서
한국
경영학계의 구루로 통하는 윤석철교수는 자신의 저서 ‘삶의 정도(2011)’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복잡함(complexity)’을 떠나 ‘간결함(simplicity)’을 추구하라’
과연
복잡함에서 벗어나 간결함을 추구할 수 있을까? 모든 이들이 이런 저런 일들을 다 해내는데나 혼자 간결하면, 왠지 경쟁이나 흐름에서 밀려나는 것은 아닐까? 윤교수의 말처럼 하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 없지 않다.
하지만,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도 간결함을 추구하여 성공한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2013년 세계 혁신기업 가치 1위(보스턴 컨설팅 그룹)와 브랜드가치 1위(포브스)를 모두 차지한 '애플'과 인문과 변화를 접목하여 한국 변화경영분야를 개척한 경영 컨설턴트 ‘구본형’선생님이 그 예이다.
완벽주의와
혁신으로 유명한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는 간결함에 주목했다.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그의 디자인철학은 ‘간결함’이었다. 애플이 재기하는데 성공하게한 아이팟의 디자인에서 있어 스티브잡스는 불필요한 버튼을 전부 없애기를 주문했다. 디자인팀을 비롯한 대부분의 반대와 회의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간 아이팟은 결국 애플의
성공적인 복귀에 앞장섰다. 그리고 그 간결한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애플의 성공키워드이자 상징이 되고 있다.
[사진1] 애플 아이팟과 아이폰 으로 대표되는 간결한 디자인>
간결함의
또 다른 대명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변화경영 컨설턴트 였던 ‘구본형’ 아닐까.
역사를
전공하고 IBM에서 경영혁신팀을 이끌었던 고 구본형선생은 불혹의 나이에 인생의 지향점을 ‘글쓰기’와 ‘변화’란 이 두가지 키워드에 맞췄다. 그 날 이후, 그는 매일 아침 2시간씩 글을 썼다. 직장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인생에 ‘변화’라는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관련 책들을 읽고 생각하고 쓰고 또 읽었다. 추구하는 바가 그처럼 간결해진 다음부터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일사천리, 살 맛나는 인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 권의 책을 내고 조직과 결별하고 1인기업가로 자리한 그는 ‘변화’ ‘글쓰기’란 가치에
하나를 덧붙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했다. 변화에
목마른 이들 짧게는 2박3일, 길게는 1년씩 가르치며 그들의 인생에 ‘변화’를 심어주었다. 그들의
인생 또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가 원하는 다양한 가치에 쫓기고 이를 쫓기 보다는 자신의 핵심
가치에 집중한 이후부터 그는 자유로울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다. ‘간결함’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얼마
전 회사 후배가 메신저로 보여준 영화포스터 들이 있다. 자신은 이런 풍의 미니멀리즘이 좋다며 보여준
포스터들인데, 나는 이 포스터들을 보고 간결함(또는 간소함)이 메시지 전달에 얼마나 탁월한지 효과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진3]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영화포스터들
2013년의
끝자락, ‘현실 속의 나’는 여전히 복잡한 요구들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본업과 각종 평가들, 이를 증거할 수 있는
자료들 작성요구 등등, 하루하루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다. 동시에 아빠로서, 남편으로, 아들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 말이야 하기 쉽지만,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하는
인생에서 간결함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의 나’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간결함을 추구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글과 책이 바로 내 생의 간결함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책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넓고 깊게 보려했던 나의 관심은 글쓰기로 이어졌고,
변경연을 통해, 올 한해 책과 글을 통해 어섯눈으로 나마 조금씩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과거 성공과 돈을 위해 신경 써야 하는 모든 다양한 가치들 –
외국어, 학위, 직장생활, 자기계발, 인맥 등 – 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니 삶이 더 간결해진 느낌이다.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가고 있다. 복잡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 우리들의 삶을 복잡하고 정신없게 이끌어갈 거인지, 간결하고 깔끔하게 가져갈 것인지는 결국 우리 자신이 결정하고 행해야 할, 우리의 몫이다. 2013년이 가기 전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일상 속의 복잡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어느 노교수의 조언을 받아들여보는 건 어떨까. 생의 간결함을 추구하자.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탁월해질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이 전하는 메시지도 확실해질 수 있다.
날이 스산하다. 복잡하든 간결하든, 이렇든 저렇든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과 고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꽤나 아쉬운 일이다. 화살처럼 흘러가는 인생, 간결함을 추구하면 조금 더 길어질까?! 더 깊어질까? 스산한 겨울날, 문득 드는 생각이다.
p.s. 말은
이렇게 해도 나의 글은 여전히 간결하지 못하다. 역시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 ㅡ_ㅡ;;;
사진출처
http://www.worth1000.com/contests/25589/minimalist-movie-posters
Etc through www.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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