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해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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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보면, 잘 쓰는 사람이든 못 쓰는 사람이든 나름대로의 많은 걸림돌과 맞닥뜨리게 된다.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나의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좋은 글과 나쁜 글의 차이는 무엇일까? 등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표현력에 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궁금증들이 나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한다.
내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글을 매끄럽게 쓸 수 있을까?’인데,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니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글은 어떻게 현재의 문장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또는 글의 구성 원리는 무엇일까? 이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참고서적을 찾아보아도 내가 원하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 의문의 본질적인 답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글이 만들어진 당시로 되돌아보는 것이지만, 불가능한 일이기에 다른 방도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엉뚱하게도 다른 방도에 대한 실마리를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 책에서 얻었다.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도 중요함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다른 언어와 비교를 해보는 것입니다. 비교를 통해 큰 특징을 알아내는 것이다. 물론 차이에 주목하다보면 일부가 전체가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차이만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큰 특징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한글과 영어가 다른 큰 특징은 ‘조사’의 존재이다. ‘조사’는 영어에는 없는 품사이기 때문이다. 이 ‘조사’로 인해 낱말의 위치가 바뀌더라도 그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영어는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문장을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이나
‘사랑합니다 당신을 나는.’ 라고 하더라도
전하는 사람의 뜻을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와 달리,
‘I love you’
‘love you I’
‘you love I’
단어의 위치를 바꾼 세 가지 영어문장은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런 관점으로 관찰을 해보면, 이 차이 속에는 중요한 인식이 담겨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존재론’과 ‘관계론’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존재론이란 개별적 존재를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로 인식하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원리를 갖는다. 반면에 관계론은 존재의 의미를 개별적 정체성보다는 관계속에서 규정한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문화권인 우리는 어떤 조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반면, 존재를 중시하는 서양문화권인 영어는 단어의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지고 뜻이 달라진다.
‘나는 간다’와 ‘내가 간다’라는 두 문장은 조사 ‘는’과 ‘가’만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 뜻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는 ‘간다’에 초점을 맞추었고, 후자는 ‘내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를 영어 문장으로 표현하면, 모두 ‘I go'가 된다. 두 단어의 비중이 똑같아진다. 객체간의 평등을 의미한다고 확대 해석도 해봄 직하다. 반면에 우리의 글은 어떤 조사를 쓰느냐에 따라 비중이 달라진다. 객체간의 힘의 관계가 조사에 의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즉, 조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문장을 완성하면 글이 매끄러워진다고 할 수 있겠다. 조사는 글을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인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가 원활하면 업무가 수월해지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처럼 언어 속에서도 그 나라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그런데 그동안 글에 대한 깊은 관심이 부족했다는 점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역시 무엇이든 관심이 생겨야 속이 보이고, 자주 보아야 애정이 생기는가보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임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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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하면 글을 매끄럽게 쓸 수 있을까?’인데,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니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글은 어떻게 현재의 문장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또는 글의 구성 원리는 무엇일까? 이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참고서적을 찾아보아도 내가 원하는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 의문의 본질적인 답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글이 만들어진 당시로 되돌아보는 것이지만, 불가능한 일이기에 다른 방도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엉뚱하게도 다른 방도에 대한 실마리를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 책에서 얻었다.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도 중요함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다른 언어와 비교를 해보는 것입니다. 비교를 통해 큰 특징을 알아내는 것이다. 물론 차이에 주목하다보면 일부가 전체가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지만, 차이만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큰 특징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한글과 영어가 다른 큰 특징은 ‘조사’의 존재이다. ‘조사’는 영어에는 없는 품사이기 때문이다. 이 ‘조사’로 인해 낱말의 위치가 바뀌더라도 그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영어는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문장을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이나
‘사랑합니다 당신을 나는.’ 라고 하더라도
전하는 사람의 뜻을 듣는 사람이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와 달리,
‘I love you’
‘love you I’
‘you love I’
단어의 위치를 바꾼 세 가지 영어문장은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있다고 한다. 그런 관점으로 관찰을 해보면, 이 차이 속에는 중요한 인식이 담겨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존재론’과 ‘관계론’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존재론이란 개별적 존재를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로 인식하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원리를 갖는다. 반면에 관계론은 존재의 의미를 개별적 정체성보다는 관계속에서 규정한다.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문화권인 우리는 어떤 조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는 반면, 존재를 중시하는 서양문화권인 영어는 단어의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지고 뜻이 달라진다.
‘나는 간다’와 ‘내가 간다’라는 두 문장은 조사 ‘는’과 ‘가’만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그 뜻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는 ‘간다’에 초점을 맞추었고, 후자는 ‘내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이를 영어 문장으로 표현하면, 모두 ‘I go'가 된다. 두 단어의 비중이 똑같아진다. 객체간의 평등을 의미한다고 확대 해석도 해봄 직하다. 반면에 우리의 글은 어떤 조사를 쓰느냐에 따라 비중이 달라진다. 객체간의 힘의 관계가 조사에 의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즉, 조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문장을 완성하면 글이 매끄러워진다고 할 수 있겠다. 조사는 글을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인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가 원활하면 업무가 수월해지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처럼 언어 속에서도 그 나라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 그런데 그동안 글에 대한 깊은 관심이 부족했다는 점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역시 무엇이든 관심이 생겨야 속이 보이고, 자주 보아야 애정이 생기는가보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임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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