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호정
  • 조회 수 2344
  • 댓글 수 6
  • 추천 수 0
2007년 11월 12일 02시 48분 등록
이번 주말도 어김없이 연구원 과제에 올 인이다. 아직도 많이 남은 페이지 수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가족이 산에 가자고 한다. 자연 속 소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그러고 보니 올해 산에 간 적이 아마 없지 싶다.) 아쉽다. 단풍 끝물이라 이번 주가 지나면 이 풍경은 내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겠지. 나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샛노란 은행나무 잎을 위안으로 삼으며, 책에만 파묻혀 지낸다는 가족들의 핀잔을 뒤로한 채, 혼자 노트북을 들쳐 메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번 주에는 연구원 과제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였다. 사실 몇 달에 걸쳐 간간이 생각되던 것이 이번에 터진 것이다. 도마 위에 올려놓기 민감한 줄 알지만 다른 소재는 도대체 떠올려지지가 않는다.

이쯤 되니 처음에 연구원 응시할 때의 기대와 이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응시했던 이유는 간단히 말해, 좁게는 사고력과 표현력을 기르고자 함이었고, 또 보잘것 없는 식견에 깊이와 넓이를 더하기 위함이었다. 크게는 나 다운 길을 찾는 여정이고 모색이고자 하였다. 변화의 가능성을 잡아보고자 함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주제 여러 내용의 책과 저자를 만났다. 어떤 책은 훌륭한 내용이고 구성이다 감탄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어떤 책은 메시지는 좋지만 전달 방식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였다. 어떤 책은 읽을 때는 어려워 고생이었지만 강한 여운을 주기도 하였다. 책과 독자는 얼마간의 궁합이 있을 것이다.

가장 난감할 때는, 내용 자체에 관심이 안 가 머리에 안 들어올 때이다. 여기에 번역이 시원치 않다거나 문장이 꼬여 있는 등의 장애까지 겹치면, 책 잡고 앉아 있는 것이 힘들다. ‘별로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그건 왜 하는 건데?’ 동생이 지나가며 던지는 말에 순간 답할 말을 잃는다. 이걸 왜 읽고 써야만 하는 걸까.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북리뷰와 칼럼을 쓴다. 북리뷰와 칼럼을 쓰려면 책을 잘 읽어야 한다. 평일에 책을 읽을 시간은 퇴근 후 두어 시간, 물론 아무 일이 없을 때이다. 야근이나 회식이 있는 날이면 퇴근 후 시간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장시간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 뿐. 이런 상황에 사적인 시간을 내려면 무척 부담스럽다.

짜투리 시간을 잘 쓰면 된다 할 지 모르지만 사실 책읽기에서는 비생산적이다. 시간의 합이 같더라도 30분씩 시간을 네 번 내는 것보다 2시간을 한 번에 확보하는 것이 훨씬 능률이 오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사치에 가까워 금방 접고 만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여 이것을 따질 수가 없다. 장시간 시간 확보하려다 아무 것도 못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시간이 없나? 그렇다면 프리랜서가 아닌 직장인은 다 못하게? 이렇게 반문할 분들이 있을 줄 안다. 사실 시간의 양만 합쳐 놓고 보면 시간은 낼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문제도 있고, 이 시간들을 바쁘게 투자하다 보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계속 쫓김이 일상이 되고 만다. 회사 일이 아닌 일로 24시간 쫓기고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한 주가 쉴 새 없이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치고 스트레스가 쌓여 에라 모르겠다, 접고 놀기도 한다. 시간이 그만큼 없어진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요는, 다시 말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유가 없다는 것, 일단 북리뷰나 칼럼에 안 좋은 영향이 가기 쉬웠다. 흥미가 없거나 도중이 지쳐버리기라도 하면, 다른 스트레스 거리가 있으면, ‘잘 해야지’보다 ‘얼른 쓰고 끝내야 겠다’는 마음이 지배적이 되는 것이다. 시간의 압박 속에서 책을 읽다보니 그만큼 음미할 여유가 없어진다. 쫓기다 보면 어느 새 불성실한 글로 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걸 알고도 고치려 들지 않는다.

여유가 없다는 것, 나도 모르게 전보다 인간 관계가 소원해진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뜸해지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 새 ‘미스테리 여인’이 되어버렸다. 뭘 하고 사는지 모르겠단다. 매일 보는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족 모임은 빠지기 일쑤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대폭 줄어든다. 오히려 나는 가족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요새 오로지 책만 안다는 왜곡된 상을 풀어야 하는 숙제마저 생겼다.

여유 없음에 대해 말이 길어졌다. 이는 연구원 시작하기 전부터 최대의 난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차라리 하루가 48시간이어서 하루는 일과 그 부수적 일에 전념하고 하루는 연구원 생활과 약간의 사적인 활동에 썼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참 여러 번 하였다. 아니면 일을 덜어버리던가.

나는 변명을 하고자 하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어설픈 이유로 이럴 수 밖에 없었노라 억지 합리화하며 징징댈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이유 불문 잘못 되었으니 반성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반성 역시 사절이다. 나는 무조건적 내 탓만 하다 스스로를 필요 이상으로 상해한 적이 참 여러 번이다. 어떤 직장인이 ‘조금 애쓰면 되는데 그게 어려운가?’ 하면 그것에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사정이다. 나는 나의 현실과 나의 사실을 말하려 했다.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시도의 일면이다.

더럭 겁이 난다. 연구원 생활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상만 심어놓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다른 연구원에게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이 부분의 글을 내려놓을 의향도 있다. 하지만 각자 뜻한 바가 가슴 사무치게 있을 것이고, 이런 어려움을 넘을 각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學而不思則罔

나는 이 구절을 보고 뜻을 파악한 순간 잠시 눈이 고정되었다. 가슴을 치는 느낌이었다. 신영복은 현실적 조건이 없는 보편적 이론은 어둡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special 없는 general 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보편적 지식에만 묻히지 말라는 문구이다. 실천하라는 메시지 역시 담겨 있다.

다른 해석도 있다. 무엇을 배웠으면 꼭 다시 생각하라는 것이다. 신영복은 둘 다 관념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라 對의 의미가 약하다 하여 이 해석을 치워버렸지만, 나는 이 해석도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알게 되었으면 비판을 가하던 재구성을 하던 감상을 하던 자기 나름의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해석이 어찌 되었던, 나는 이 두 가지 다 안 되고 있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곱씹어보든 special 로 실천을 하던 우선은 알고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새는 이런 學조차 제대로 안되곤 한다. 헉헉대며 겨우 하거나 놓아버리고 말면 더 이상 말 할 거리도 없는 것이다.

당시 學이 제대로 되었다고 해도 思가 없다면, 다시 말해 경험적 사고가 없으면, 내 것으로 체득되지 않으면, 보편적 지식으로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태 읽었던 책이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나의 생활에 녹아들어 있는가. 나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 글쎄올시다.

學而時習之 不亦悅呼阿

이 문구의 핵심은 ‘習’에 있다. <강의>에는 ‘부리가 하얀白(어린)새가 날개짓羽 하다’로 풀이되고 있으나, 나는 이 글자의 白은 실은 自에서 연유하였다고 배웠다. 스스로 몸소 날개짓하다. 나는 이 풀이가 더 와 닿는다. 새는 태어나면서부터 날지는 못한다. 자기 날개로 나는 그 때 온전히 체득하는 것이다. 내 몸의 세포가 아는 것이다. 아무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구이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이 구절은 전에도 눈여겨 보았으나, 이번에도 역시 눈에 들어온다. 知는 아는 것, 진리의 존재를 아는 것. 분석적인 것이다. 好는 좋아하는 것. 여기서부터 주관이 들어간다. 樂은 즐긴다는 것. 터득하고 자기 것을 삼아 생활화하는 경지이다. <강의>에서는 ‘전체와 부분이 혼연한 일체를 이룬 어떤 장을 의미’라고 하였지만, 확대 해석된 감이 없지 않다. 역시 知조차 되지 않으면 好나 樂을 기대할 수 없다. 知와 好가 되었다 하더라도 樂의 경지에 올라가야 가치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學而不思則罔 의 思와 상통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는다.'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강의>에서는 세태가 어지러운 와중에 ‘대중 노선의 지지’로 뜻이 옮겨 갔으나, 나는 역시 나의 당면 어려움과 연결된다. 나는 대쪽 같은 고지식함을 지양하고 현실에 적응하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물론 지혜롭게.

관심 없는 과제가 왔다. 흥미가 없으니 슬렁슬렁 때우고 넘어간다? 그렇다면 하는 의미가 없다.

여유가 없다. 여유가 없다는 것을 핑계 삼아 대충 하고 자기 위안을 한다. 마찬가지. 그렇게 하려면 왜 하는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한 페이지마다 정성을 들여 읽고 밤을 새서라도 성실히 마친다. 관심이 없다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흥미가 안 일어도 가져보도록 해라 ....... ?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어떻게 자신을 다그쳐서라도 하고야 만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기 전에는 꼭 해야 한다. 조금도 나태해져서는 안 된다........?

....... 자신에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억지로 이어가는 것일 뿐 즐기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고통이 될 지 모른다. 연구원 기간만 마치고 안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비권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답은 없다. 어떻게 하느냐는 책 분야에 따라, 그 주의 시간 상황에 따라, 그 때의 정황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단, 성실함은 견지한다.

無逸

安逸함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노르웨이 어부는 정어리 저장탱크에 메기를 넣어놓는데, 천적인 메기와 같이 있는 정어리는 그 불편함으로 인해 더 생생하다는 예시가 그럴듯하다. 편안하면 나태해지기 쉽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상황 불문하고 자신을 최고善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편안함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적당한 어려움은 긴장을 주고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연구원 과제가 쉽고 편하지만은 않은 것은 이런 뜻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관심사만을 편식하지 않게 하는 것도, 여러 분야를 두루 닿게 하는 것 말고도 이런 맥락이 숨어 있는 것일까.

反求諸己

화살이 과녁을 못 맞춘다(不中). 궁술에서 과정과 자세의 正眞 여부가 中, 不中을 결정한다. 이 문구의 뜻은 不中일 경우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다.

不中한 글을 쓰게 되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저 마음이 없고 태도가 불량하기 때문인가. ‘내 탓이오’ 는 현실 직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내부 외부의 모든 현실.

그러나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다면, 해결은 요원하다.

이 문구는 겸손하라는 메시지도 내재되어 있다.

凡事做則會, 不做則安能會耶?
凡事要做則做, 若一味因循, 大誤終身.

'무릇 일은 하면 할 수 있다. 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무릇 일은 하고자 하면 바로 한다. 고집스럽게 시간을 지체하면 평생을 그르친다.'

淸대 錢泳이란 사람이 발간한 일종의 문집인 <履園叢話>의 한 구절이다. 출처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구절은 <강의>에 없지만, 담아두었던 구절 중 되새기고 싶은 것이라 올린다.

역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문구이다. 거기에 시간을 끌다가 때를 놓치지 말 것을 경고하는 의미도 더했다.

學而不思則罔
學而時習之 不亦悅呼阿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無逸
反求諸己

知와 學이 되었는가. 알았으면 시행이다. 思를 거치고 樂으로 갈 수 있게.
IP *.120.66.152

프로필 이미지
종윤
2007.11.12 01:48:37 *.109.108.215
그래. 좀 힘들다. 그치? 지치기도 하고 말이야.

그냥 그렇게 넋두리를 했으면 끝이지, 그 뒤로 줄줄이 이어지는 깨달음의 글은 또 무어냐? 참으로 민선이답다. 근데 그래서 좋다. 나도 이번주 칼럼은 넋두리로 채울까 했는데, 네 글의 말미가 너무 힘차서 나는 고민을 좀 더해야겠다.

11월이 넘으면 우리는 바위를 정상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그 바위에 앉아 저 멀리 바라보며 '야호'를 외치게 될까? 이만저만 궁금한 것이 아니지만 결국은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그냥 믿고 가보자. 힘내라, 아니 우리 힘내자.
프로필 이미지
소현
2007.11.12 02:04:59 *.73.2.112
호정아.. 나 좀 만나줘~~ ㅠㅠ
프로필 이미지
호정
2007.11.12 02:05:02 *.120.66.152
오라버니, 밤 늦게 분투하십니다. 화이팅~
어서 자고 낼 아침 출근하셔야죠.
프로필 이미지
호정
2007.11.12 02:06:49 *.120.66.152
앗.. 소현언니는 어느 새.. 근데 무슨 일..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7.11.12 05:37:05 *.128.229.81
마음의 의심이 생각으로 이어지고, 생각이 읽은 글귀와 어울리게 되었다. 즐거움이 없다할 수 없다. 좋다.

노동에서 벗어나라. 돈 생기는 일이 아니니 이미 노동은 아니다. 너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운동이다. 정신적 근육을 키우도록 해라. 배를 넣고 갑바를 만들어라.
프로필 이미지
호정
2007.11.13 12:54:29 *.244.218.10
네.. 배를 넣고 갑바를 만든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52 -->[re][33-2] 내 삶 가운데 그대들의 의미 [7] 써니 2007.11.16 2716
451 [칼럼32]나의 논어 읽기 素田최영훈 2007.11.16 3182
450 (32) 고전에서 배우는 직업 선택 [1] 박승오 2007.11.14 2891
449 [32] 책 속에서 파편 모으기 한정화 2007.11.12 2565
448 [칼럼 32] 2008년을 위한 막바지 훈련 [7] 海瀞 오윤 2007.11.12 2783
447 연구원 졸업을 위한 책 구상 [1] 현운 이희석 2007.11.12 2796
446 삶의 보석 [3] 素賢소현 2007.11.12 2636
445 [칼럼029] 나는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고 있는가? [11] 香山 신종윤 2007.11.21 2866
444 [32] 모름다움 넘어 아름다움 향해 [4] 써니 2007.11.12 3250
» 小考, 古典으로부터. [6] 호정 2007.11.12 2344
442 사랑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것 [5] 우제 2007.11.11 2462
441 [칼럼 32] 글의 윤활유 [3] 여해 송창용 2007.11.09 3243
440 [31]100번째 편지 한정화 2007.11.08 2595
439 [칼럼31]경계(境界)에서의 자유 素田최영훈 2007.11.08 2831
438 [글쓰기칼럼]장면으로 뛰어들다. 호정 2007.11.06 2391
437 [칼럼 31] 글쓰기...타인에 대한 애정 海瀞 오윤 2007.11.06 2969
436 [31] 신화를 꿈꾸다 [2] 써니 2007.11.06 2532
435 [칼럼 31] 고통 없이 변화하는 한가지 방법 [1] 여해 송창용 2007.11.06 2664
434 (31) 그대는 아직 그대의 길을 찾지 못했다. [6] 박승오 2007.11.05 3265
433 (31) 태초의 눈 [3] 時田 김도윤 2007.11.07 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