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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0일 05시 59분 등록

아버지는 음식 중에 해산물을 가장 좋아하신다. 특히 술을 곁들인 바다회는 하루 세끼를 드셔도 질려하지 않으신다. 지금은 암투병중이라 날 것은 잡수지 못하시기에 가끔 해물탕으로 바다회를 대신한다. 물론 해물탕도 매운 음식이기 때문에 잡수시면 위에 부담이 되어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건강할 때 워낙 즐겨 드시던 음식이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이제 사시면 얼마나 사실까하는 생각에 마지못해 묵인하고 있다.

자주 다니던 해물탕집의 맛이 예전과 같지 않아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살고 있는 동네가 시골이라 해물탕을 하는 식당도 드물어 찾기는 쉬웠지만 그만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니던 식당을 제외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거나 처음 들어보는 낯선 식당이어서 맛이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일단 한 군데를 정해서 전화를 걸고 예약을 하였다. 밑져봐야 한 끼 식사라는 생각에 한번 먹어보기로 한 것이다.

예약한 식당에 도착하여 보니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노부부 두 분이 새로 개업한 곳이었다. 새로 개업한 집이어서 그런지 깨끗한 인테리어에 정감이 가는 접대로 첫 이미지는 좋았다. 우리 가족은 맛도 중요하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의 식당을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전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한 선택치고는 잘한 것이었다. 꽃게, 문어, 새우 등의 해산물이 들어간 해물탕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인 할머니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서울에서 식당을 하다가 시골로 내려살게 되었는데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다시 식당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일을 살아야 하는 운명인 모양이다. 게다가 하던 일을 버리고 새로운 일을 하기는 더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자신을 위한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하기 싫은 하던 일을 다시 손에 잡지 않으려면 말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첫 수저로 국물을 맛보았을 때 그 맛은 선택을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직업병인지 아니면 타고난 기질 탓인지 몰라도 낭비되는 것을 싫어한다. 한 번을 선택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하고, 노력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매사 신중하고, 물건을 고르더라도 이것저것 따지게 된다.

국물 맛도 좋을 뿐 아니라 양도 푸짐하여 가족 모두 만족하며 맛있게 먹었다. 둘째 아들 태규는 전에 다니던 식당은 콩나물 밖에 없었다고 투덜거리며 이제부터는 이 집을 다니자고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었다. 그만큼 아이들의 첫 인상이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도 좋아하셨다. 게다가 해물탕 국물에 볶은 밥맛은 일품이었다. 너무나 맛있어서 아내까지 과식하여 한동안 고생한 기억이 난다.

감정은 학습의 열쇠이다. 감정이 강할수록 경험도 명확하게 습득된다. 특히 첫 경험은 음식뿐만 아니라 사랑, 직업, 정치 등 삶의 곳곳에서 우리가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옛 기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들은 첫 사랑, 첫 키스, 첫 아기 등 첫 번째 경험과 연관된 경험들이다. 그만큼 첫 번째 각인된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는 감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자들의 홍보도 각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하였다. 이제 마케팅의 방향이 품질을 넘어 감성으로 퍼져가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마케팅 전략도 단골손님에서 첫 고객으로 중심 이동하여야 한다. 고객 만족의 기준을 재구매로 정의할 때, 첫 고객이 다시 방문하도록 이끌어낼수 있다면 그 식당은 성공할 것이다. 대부분 식당은 단골손님 위주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일반 물건에 비해 음식은 유효기간이 매우 짧고, 대체할 수 있는 대체제가 많기 때문에 웬만한 음식 맛으로는 승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첫 고객에게 강한 감성을 자극하는 각인이 필요하다. 또한 각인은 성인보다는 어린 아이들에게 강하게 나타나므로 어린 아이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관계에서 첫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이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면 결과도 좋아야겠지만 우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이는 나에게도 처음 하는 일이지만 남에게도 처음 접해보는 일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특히 첫 번째 일이라면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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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2007.12.20 08:37:23 *.92.16.25
아침에 해물탕처럼 시원하고 깔끔한 글을 읽으니 기분이 후련하네. 해물탕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네. 그 옆에 있는 '처음처럼' 한병도 보이고.ㅋㅋ
처음을 대할 때 정성스러움이 필요하겠지. 다만 약간 나랑 생각이 다른 것은 나는 첫 느낌도 중요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걸쭉하게 우러나오는 그 맛이 더 좋아. 첫 느낌이 안맞는 경우도 많고.
아버님의 쾌차를 빕니다. 형, 아버님께 맛난 것 많이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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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12.20 12:51:27 *.209.46.71
저는 아주 작은 초기단서로 사람을 판단하는 못된 버릇이 있지요. 첫 판단을 뒤집으려면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정보가 필요하더라구요. 내 경향을 알게 된 이후로는, 작은 단서를 흘려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지요.

ㅎㅎ 늘 둘째 아들 얘기만 하는 것 같군요. 첫째도 느끼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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