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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6일 11시 17분 등록


대학졸업은 IMF 한파의 개전으로 시작되었다.
매스컴을 통해 도산하는 기업들과 거리를 방황하는 실직자들의 모습을 생경하게 볼 수 있었다. 대학졸업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취업을 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으며, 가공할만한 취업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난 운좋게 미국계 제약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존슨 앤 존슨 계열사인 제약회사에 입사했다. 얀센은 업계 최고의 연봉을 제시하는 회사였다. 제약회사의 사관학교라고 불렸던 회사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얀센의 모든 신입사원들은 관리부서가 아닌 실제 영업현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해 보여야 했다. 그 성과들을 근거로 마케팅과 관리부서의 인사가 정해졌던 것이었다. 굉장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하게 젊었을 때 경험하는 세일즈는 평생의 자산(資産)이 된다는 문구를 기억하고 있었다.

입사 후 3주 동안 진행되었던 신입사원 연수교육은 무척 힘들었다.
난 특히 단시간 내에 암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연수교육은 대부분 생소한 의학용어를 기계처럼 암기할 것을 요구했다. 태생적 기억메모리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매일 의학용어와 상품지식에 대한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아무튼 저조한 성적으로 신입사원 교육을 마쳤던 것으로 기억한다.(물론 교육 성적이 공개된 것은 아니다. 미리 짐작했을 때 말이다)

그래도 시계는 돌아갔다.
교육 종료 후 자대 배치를 받았다.
첫 발령지는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영업사무실로 배치를 받았다.

재미있지 않은가?
내 유년시절 추억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 바로 ‘연희동’이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회귀한 ‘연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령난 사무실은 개인병원(의원)을 담당하는 영업소였다.

발령 받은 영업소의 수장(守長)은 무척 특이한 사람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직급은 ‘대리’를 달고 있었다. 즉, 회사에서 그리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격은 좋게 말해서 불(火)같은 성격이었으며, 상명하복을 신념으로 삼고 있는 자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발령받은 곳은 영업소장에게 마지막 무덤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는 마지막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탁월한 성과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못하면, 내일은 없는 사람이었다. 영업소장과의 첫만남은 서슬퍼른 눈빛과 짓이겨진 표정으로 시작되었다. 그에게 우리들은 하룻강아지와 같은 초급 신병일 뿐이었다.

출근 첫 날부터 영업소장의 폭압(?)은 개시되었다.
합리적인 조언과 따뜻한 질책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영업에 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응징이 가해졌다. 사무실을 복귀하기 위해 사무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에서 신입직원들의 곡(!)소리가 들려왔다. 거래처 장부가 날라다니는 것은 예사였고, 한 옥타브 높은 고성은 사무실의 공기를 차갑게 했다. 영업소장의 전횡에 신입사원으로 이루어진 우리들은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도 예외가 아닌지라, 영업소장의 칼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존슨 앤 존슨이라는 존경받는 기업문화에 대해 회의할 시간도 없이, 그는 우리를 몰아쳤다.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동기들 간의 뒷담화를 안주 삼은 술자리 밖에 없었다. 미로 속에 빠진 생쥐처럼 우리들은 영업현장을 누볐다. 성과를 창출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들을 만나야 했다. 관리자의 폭압에 의해서든, 신념에 의해서든 말이다.

한국얀센은 존슨 앤 존슨이라는 세계적인 기업의 계열사다. 또한 한국에서는 제약회사의 사관학교라 불릴 만큼 조건과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고객에 대한 접근과 관리에 대한 기본적인 프로세스 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 실제 교육은 영업현장에 있는 선배들한테 아름아름 주워 듣는 것이 전부였다. 주먹구구식 영업교육이 이뤄졌던 것이다. 아쉬운 점이다.

연말이 되었을 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내가 속해 있는 영업소가 전체 1등을 한 것이다. 폭압적인 통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전리품을 한아름 챙긴 붉은 소장의 철혈통치는 그렇게 꽃을 피웠다. 붉은 영업 소장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유래가 없는 특진이라는 전리품이 그에게 주어졌다. 유례없는 과장 특진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사회초년병 시절의 이야기를 그려보았다.
한 명의 관리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포장하지 않고, 한 편의 수채화처럼 되돌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관리자를 통해 강한 영업마인드를 배운 것은 분명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진공 상태에 있었기에, 더욱더 단단한 영업문화와 노하우를 스스로 체화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얀 백지 위에 그리는 스케치가 더욱더 창조적 발상과 학습이 가능했으리라는 추측도 해본다.

10년이 지난 지금, 문득 그 관리자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지금도 그가 불꽃 같은 눈빛으로 이야기하던 ‘명언’을 잊을 수 없다.

“꽃은 향기로 말하고, 영업사원은 성과로 말한다.”

지금 내 삶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성과’가 진정 무엇인지 자신에게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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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8.26 11:39:42 *.36.210.31
지난 한 주는 왜 건너뛰었나요? 그것도 마저 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성과는 당신이 인정하지 않은 곳에서조차 새록새록 당신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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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26 11:55:58 *.244.220.254
건너뛴 것이 아니라, 금주부터 칼럼 올리는 것이 가능하도록 빨간 조교님께서 지침을 하달해 주셨습니다. ^^*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을텐데, 댓글을 달아주시는 거침없는 애정과 열정에 환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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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08.26 16:19:24 *.46.72.234
그랬구나.
그 그림이 그려진다.
지금 너에 모습에서도 그 시절 기억이 어렴풋 보이는 것은
그만큼 치열했었기 때문이겠지.......
칼럼이 현장감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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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차/칸/양
2008.08.26 17:35:02 *.122.143.151
흐흐..
무/위/중/환 인줄만 알았더니,
'유위'도 할 줄 아네? ㅋ

치열한 삶 속에서 지금의 자리를 차지한 거암은
이미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사람이야.
차곡차곡 쌓여진 눈이 돌처럼 단단해지듯,
거암도 부드러움 속에 굳건함을 가진 사람임을 난 느껴.
그런 거암을 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해.

평소와 다르게 넘 띄웠나? ㅋ
그 이유는 그냥 차/칸/양이 아니라
돌아온 차/칸/양 이기 때문이야.
신질도에서 마음 수양하고 돌아왔걸랑. ㅋ.
함 보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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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8.27 10:36:19 *.244.220.254
현웅성~
치열한 삶이라기보다는 치열하게 쪼였죠~ ㅎㅎㅎ
그당시 동토의 왕국도 견뎌냈는데, 요즘 왜 이리 마음이 약해지는지~

돌아온 차칸성~
여행 자주 가셔야겠는데요......정말 착해져서 귀환하셨는데요.....ㅎㅎ
아무튼 신질도라는 단어를 보고 많이 웃었습니다. 언어의 마술사 같아요~ 약간 고급스런 맛은 떨어지지만.....ㅋㅋ

함 봐야죠~ 양 곱창 어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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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환
2008.08.31 12:17:09 *.34.17.28
갈수록 재미있어지는 거암이형의 영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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