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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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아마도 2005년 늦봄으로 기억한다. 프랑스에서 두 명의 손님이 왔다. 흔치 않은 외국인들의 방문을 준비하면서 그들이 한국에 그리고 평생 이름이나 한 번 들어봤을까 싶은 전주에까지 오게 된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들이 프랑스에서 멀리 이곳까지 오게 된 약간의 사연이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세계적인 안목과 지속가능한 철학을 가진 젊은이들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거버넌스’에 대한 세계의 사례들을 배워오게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였고, 그들은 거기에 응모해서 지원을 받게 된 것이었다. 여행기간도 최대 1년까지 가능했고, 연수비용은 지원 한도액이 있었지만, 자신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자부담도 가능했고, 프로그램 기획과 내용 그리고 진행에 대해서는 자율적인 판단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국협의회를 통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례들을 소개받았고, 그 중에서 몇 군데를 골라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먼 길 떠나온 배낭여행자의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들의 수첩에는 ‘전주천’의 사례가 적혀 있었고, 이런 저런 세부적인 질문들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30대 초반의 여성과 20대 중반의 남성은 각각 환경공학과 사회학을 공부하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연인 사이였고, 나이도 여자가 8살이나 많았지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서로 공부하는 과목은 달랐지만, 프랑스와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에 끌려 이 먼길까지 동반자로 함께 길을 나서게 된 것이었다. 같은 꿈을 찾아 먼 낯선 곳을 찾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뜻하지 않은 외국 손님들의 방문에 긴장을 한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문화원과 전주시의 도움을 받아 혹시 모를 불어통역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북대학교 4학년이고, 불어 말하기 대회에서 수상을 한 그녀는 막상 ‘똘레랑스’나 ‘거버넌스’ 그리고 ‘전 지구적 차원의 의제’들에 대해서는 용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영어를 하지 못했다. 간혹 직접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오히려 그녀의 존재가 미안해지기도 했다.
비록 내 짧은 영어였지만, 그들에게서는 ‘미국식 경쟁주의 모델이 아닌 유럽식 사회복지모델의 훨씬 인간적이다’라는 확신이 있었고, 프랑스가 자랑하는 관용-똘레랑스-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주관을 분명히 말했지만 나의 의견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하게 경청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 나의 답변과 질문은 꼭 메모를 해두었다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곤 했다. 인터뷰는 그들이 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프랑스 또는 유럽식 의제 모델에 대해 새로 알게 되었고, 특히 별도의 민간 사무국이 없이 ‘거버넌스’가 행정내부의 각 위원회 등을 통해 체제화 되고, 일상화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두 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고, 자료들을 같이 보았다. 그리고서는 전주천을 따라 함께 걸었다. 소요된 사업비와 걸린 시간들,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다시 했다. 이미 브리핑을 했던 내용인데, 다시 묻든 이유를 물었더니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또 그렇게 많은 액수의 비용이 투자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런 한국의 변화, 발전 속도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도 나처럼 멀미를 느꼈던 것일까? 아마 나보다 더 심한 멀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18세기부터 수많은 계몽철학자들이 나오고, 개인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사회적 실험들을 거치면서 때로는 ‘프랑스혁명’이나 ‘파리 꼬뮨’같은 극단적인 상처들을 감수하면서도 삼백년이 걸렸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삼십년 동안 이 모든 것들을 따라잡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그 안에 머물 때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 머물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때였지만 다시 6년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익숙해지고 있다.
프랑스는 욕심이 많았다. 20세기 유럽의 역사는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가 주도했다. 유럽사회에서 역사문화적인 주도권을 가지려고 했고, 그것도 부족해서 아프리카로 세계로 눈길을 돌려 식민지 개척에 피를 흘리는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비록 최근 반세기 사이에 프랑스의 위상이 쇠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다시 멀리 백년을 두고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젊은 리더들을 키워가고, 그들에게 필요한 ‘글로벌 마인드’ 그리고 다양한 인류의 삶을 조화롭게 끌어안고 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우리 한국사회도 그런 글로벌 인재를 키워가고 있는지, 수많은 조기 유학과 광기어린 영어열풍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 그런 인재들이 키워지고 있는지. 또 그들이 다시 돌아와 뿌리 내릴 수 있는 한국적 토양의 변화는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
가까이 몇몇의 지인들이 프랑스에 있다. 그들을 통해 듣는 한 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최근 분위기, 사르코지 정부 들어서면서 점점 보수화되어가면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본다. 지난 해였던가. 프랑스에 폭동이 있었다. 그냥 일상적인 파업정도가 아니었다. 세계가 주목했고, 프랑스는 스스로의 자부심인 ‘똘레랑스’를 포기할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알제리를 비롯해 아프리카와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 살림이 좋았던 시절 그들은 프랑스의 성장공신들이었다. 기피의 대상이었지만 꼭 필요한 3D 업종의 일꾼들이 되어 주었고, 그들의 숨겨진 땀방울 위에 프랑스는 국제적인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형편이 달라졌다.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 정체에 가까운 성장곡선, 이민 2세대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고용불안. 이 현실적인 가난 앞에 프랑스는 흔들리고 있다. 그들은 우파인 사르코지를 선택했고, 그는 민족주의의 부활까지는 아니지만, 이민 2세대들에게, 없는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관대할 수만은 없다고 말한다. 청춘을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조국을 떠나 있어야 했던 홍세화가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똘레랑스’, 21세기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하는 ‘관용’,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조차 우리의 희망은 위태로워져 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보고서가 책으로 나왔다. 비록 전주를 다녀간 두 친구들의 보고서는 아니었지만 그 프로젝트에서 최고의 여행으로 꼽힌 책이 있다. 내 인생을 바꾼 책.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이 2006년 3월, 마고 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미 승환이와 양재에게는 선물을 한 책이다. 아니 전주의제21의 가까이 있는 분들께 삼 십 여권 사서 돌린 책이기도 하다. 저자인 실뱅과 마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성장했고, 마튜는 이 기행을 계기로 아예 자신의 직업과 삶도 바꾸게 되었으며, 지금도 스스로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이 되어가고 있다. 비슷한 책이 한 권 더 있다. “에코토이, 지구를 인터뷰하다”라는 책이다. 이 책 역시도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자리, 눈길이 가장 자주 닿는 자리에 꽂아 두었다. 아직 손때 덜 탄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자 하는 누군가를.
나는 아직 프랑스에 머물러보지 못했다. 그저 몇 차례 지나쳐가 본 경험만 있을 뿐이다. 파리의 에펠탑, 파리를 동서로 흐른다는 세느강, 고흐와 피카소가 만났던 몽마르뜨 언덕의 까페들, 서머싯 몸이 고갱의 삶을 다시 그린 그 곳들, 다빈치코드의 배경이 되었던 루브르 박물관, 낡은 기차역의 변신 오르세 미술관, 로뎅 미술관에 들러 까미유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주고도 싶지만 아직 미뤄두고 있을 뿐이다. 그 곳에서 모나리자의 눈썹을 찾고, 밀로의 비너스를 탐하고, 모가지 없는 승리의 여신 니케도 만나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는 몇몇 수도원에도 들러보고, 허름한 하숙집을 얻어 아를의 따뜻한 햇볕아래 두어 달 그림도 그리다 오고 싶다. 누가 알겠는가. 육담 좋은 하숙집 아주머니의 고운 딸과 염문이라도 생길지.

난, 펜싱때문에 프랑스에 갈 기회가 많았지.
그리고 남 다른 인연을 가지고 있지,
프랑스 사람에 의해 추천되어졌고,
프랑스 사람에 의해 훈련되어졌고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유럽의 정신을 배웠지
내가 본 루브르의 니케의 여신의 미소도,
생모어의 100이 넘은 펜싱클럽도
라데빵스의 '영지적인 지혜'의 신개선문도
그들의 역사와 정신을 담고 있지,
우리는 기적을 이루었지만
기적을 이룬 정신과 가치는 ... 행방불명됐지...
그래서,
한국안에서 한국이 아닌곳이 되지...
강남역 주변을 가든, 신사동을 가든, 압구정을 가든 그렇지
내가 바라는 것은 전통의 낡은 양식이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는 정통의 정신이라네,
풍류를 알고 예의를 알고 그리고 자존을 알던 민족정신,
이젠 정말 그 문화 유전자마져도 없어졌을까?
방법은 빌리되 정신은 버리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정말 없을까?
프랑스 코치가 그랬거든,
"킴! 그건 한국식 펜싱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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