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 조회 수 2567
- 댓글 수 11
- 추천 수 0
세상에 당당했던 여직원
2006년 제5회 강의날 대회를 진행할 때의 일이었다. 문화제 행사로 우리가 기획한 것은 덕진공원에서 ‘전주비빔밥’ 행사와 문화공연이었다. 전주에서 치루어지는 행사여서, 우리는 전주의 멋과 맛을 최대한 체험하게 하겠다는 발상으로 ‘한벽청연에서 덕진채련까지’라는 부제를 달고, 행사장소도 전주 8경의 배경이 되는 전주천과 덕진공원을 선택했다. 덧붙여 ‘전주비빔밥’ 이벤트로 맛도 함께 나누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진행이었다. 새로 온 시의 과장님이 진행자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무슨 여직원이 사회를 봐? 신국장이 보던가 아니면 김택천 총장님이 어때?”
처음에는 그냥 한 번 하시는 말씀이라 여기고, 가볍게 들었다.
이틀 뒤 토요일 한참 행사준비로 현장에 나가 있는데, 담당인 백영재 계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들어와서 보고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보고? 이틀 전에 했고,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고, 지금은 현장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그래도 과장이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사무실에 나왔으니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되물었다.
“현장도 같이 둘러 보실 겸, 과장님이 오시면 안 될까? 모시고 오지 그래?”화
들짝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알았다는 대답을 전하고, 사무실에서 몇 가지를 챙겨 현대해상 쪽으로 건너갔다. 토요일 오후여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고, 과장님은 애쓴다며 반겨 맞아주었다.
간단히 진행상황을 듣더니, 대뜸 ‘사회자를 바꿨느냐’고 물었다.
“사회자요? 왜요?”
“아이.. 사람이.. 내가 말했잖아. 어떻게 여직원한테 사회를 맡겨? 자네도 한번 생각해봐. 시장님 모시고 하는 행사인데.”
기가 막혔다. 결국 이 이야기 때문에 오라 한 것이구나. 설마했더니...
강소영 팀장은 차 끓여내는 여직원이 아니라고... 전북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냈고, 대외적으로 마이크 잡고 사회를 본 경험도 많아서, 확신컨대 나보다 잘해낼 거라고 또박또박 말씀드렸다.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계속 같은 말씀을 되풀이를 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말귀가 어둡냐는 표정이셨다. 그렇지만 나는 사회자를 바꿔야겠다는 이유를 듣지 못했다. 오직 여직원이라는 이유 말고는. 눈치 빠른 백계장이 화제를 바꿨다. 나머지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막 일어설 때였다. 또 그 이야기였다.
“어이 신국장, 내 이야기 그냥 흘려듣지 말고, 잘 한번 생각해봐”
울컥하고 속에서 뭐가 치솟았지만, 그냥 ‘꾹’ 한 번 눌러 삼켰다. 웃었다.
“과장님, 그냥 제 판단에 맡겨 주시죠. 요즘 젊은 친구들 말도 잘하고, 똑똑 소리들 나요. 제가 책임질께요. 후회 안하실거예요. 제가 생활해봐서 잘 알아요. 안 그래요? 백계장님?”
백계장은 눈을 피했다. 이미 불편해져 있는 과장님의 표정에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뒤로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백계장이 따라 나왔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미리 딱 잘라 먼저 말했다.
“사회자, 변경 안할 겁니다. 백계장도 강소영 팀장이 어떤지 잘 알지요? 과장님께는 백계장님이 찬찬히 말씀해주세요. 저 올라갑니다.”
행사 당일이 되었다. 한벽당 아래 전주천에서 ‘전주천 껴안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 이른 4시인데, 과장님이 오셔서 의자배치를 다시 하라고 그런다는 것이었다. 약간 짜증이 났지만, 현장 상황을 보지 않은 입장에서 뭐라 판단하기가 그랬다. 현장 책임자인 강소영 팀장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라고 했다.
덕진공원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티를 내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과장님 말대로 시장님 모시고 하는 행사인데, 혹시 실수라도 한다면. 그 뒤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더구나 그렇게 대규모 야외행사를 직접 해본 경험이 처음이어서 긴장도 되는데, 비빔밥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행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덕진공원의 단골 노숙자들에 대한 통제도 영 부담스러웠다. 날씨마저도 오락가락 멀리 전북대학교 쪽 하늘에서는 벌써부터 번개가 한 번씩 비치기 시작했다.
시장님 도착 시간에 맞춰 행사가 좀 늦게 시작했다. 이런 저런 우스개 소리도 좀 하고, 당부의 말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시작을 했다. 일단 출발은 무리가 없었다. 일본에서 모신 야마미찌 쇼조상과 김익수 준비위원장님 그리고 시장님을 무대로 모시고서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딱딱한 인사말을 대신했다.
무대에서 좀 떨어진 자리에서 전체 진행과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그랬다.
“거참 말도 참 잘하네.. 시장님을 아주 쥐었다 놨다 하네.. 저 조그만 체구로.. 허허..”
돌아보니, 김종을 덕진구청장이었다. 관내 행사라고 시장님을 수행하고 오셨던 모양이었다. 내 눈은 바로 옆, 환경과장님의 표정에 가서 꽂혔다. 내 눈길을 피했지만, 불편한 모양이시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시더니, 저만치 자리를 뜨고 만다. 아직 행사가 끝난 상황이 아니어서, 뭐라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지만 나는 강소영 팀장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선배의 믿음에 최선의 노력으로 답해 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의 고집과 판단이 낡은 생각 하나를 이기는 순간이었다. 비록 작은 승리였고, 그 찰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 되지 않을지라도 나는 결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세상에 당당한 여직원. 그녀는 아름다웠다.

이야기를 마치고, 어짜피 나선 길이고, 책읽기 좋은 분위기여서 10시반까지 책을 보고 있었는데.
카페메니저(이 친구도 이은주임)가 슬쩍 와 앉으며,
"오늘같은 날 손님도 없는데, 좀 일찍 문 닫고 가면 정말 좋겠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한 테이블에 두 남자만이 남아.. 여유있는 수다를 즐기고 있더라.
마감이 11시였지만, 얼추 분위기상 양해를 구해도 될 거 같고, 그 시간에 더 손님도 없을 듯한데
그렇다고, 메니저 입장에서 손님더러 일찍 일어나달라고 할 수도 없을테고... 더구나 후임자도 있는데.
잠시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일어났어. 그 테이블로 갔지.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까페가 끝나고 나면, 데이트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요...
말씀들이 더 길어지실까요? 마감이 11시 인건 저도 아는데, 제가 좀 거시기해서요..."
그랬더니, 두 젊은 남자들이 처음엔 뻥하더니, 금방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듯이...하하하하고 웃더라.
"네- 잘 알겠습니다. 저희도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는데...ㅎㅎ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러면서 바로 계산대로 가서 계산하고, 나갔지. 내가 나가는 두 사람에게 절을 꾸벅하며 고맙다고 했고,
나까지 세 사람은 짧은 순간이지만 참 기분좋은 공감을 하면서, 헤어졌지..ㅎㅎ
그러고선, 부랴부랴 카페 문을 닫고서는 5분만에 전원퇴근을 했지..ㅎㅎ 25분 먼저.
막 문을 닫고 나오면서, 메니저인 (아까 그 이은주) 후배가 묻는거야.
"형! 근데 아까 그 사람들한테 뭐라고 했어?"
"응.. 우리 애인사인데.. 데이트하려고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깐.. 금방 알아차리드라..."
"캬악...."
한옥마을 달밤에 왠 아녀자의 비명소리냐 싶었지만, 셋은 또 그렇게 기분좋은 퇴근을 했지..
서비스업이라는게 그렇게 하기 쉽지 않지? ㅎㅎㅎ
(아, 이 사실은 비밀이다. 전주 바닥은 좁아...)

글을 읽다보니 예전 생각이 나더군요.
전 학교에서 도서관 담당이었는데 사서교사를 임시직으로 채용해야했어요. 제가 채용공고를 올리고 이력서를 받았는데 마땅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거주지도 학교에서 지원자중에 가장 가깝고 MBC 자료실인가에서 3-4년 근무를 하다가 사서 임용고시를 보려고 그만둔 상태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부장님도 이력을 보고는 가장 좋다고 이 사람으로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관리자에게 보고를 하러 다녀온 부장님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알아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관리자분이 마음에 안든다는 것이었죠. 도대체 마음에 안들 이유가 없는데 부장님도 괜찮다고 하셨지 않냐고 물었더니. 관리자분이 그 지원자는 MBC라는 언론사에 다녔던 경력이 있어서 마음에 안 드신다는 거였어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새어들어갈 수 있다며 언론에 좋은 기사꺼리를 제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어요. 어이가 없었죠. 그 지원자가 기자였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더 저를 황당해 했던 것 관리자분의 그런 말에 부장님께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을 하시는 것이었어요. 전 뭐 그때 신입이라 속으로 정말 상식이 안통하는 군...자리가 사람들의 뇌구조를 저리 만들었나 등등 혼잣말을 하고 다른 사람으로 알아봤어요. 얼마나 그 지원자에게 미안하던지요.
강팀장을 믿어주고 끝까지 밀고나간 오빠의 뚝심에 승리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