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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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언제 결혼을 결심하셨어요?"
"결혼은 해야겠는데, 이 사람이 맞는지 확신이 안들어요."
주변의 노처녀들이 묻곤 한다. 그녀들에게 너무도 중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가끔 결혼과 남친에 대한 조언을 할 일이 생긴다. 결혼해서도 나름 잘 살고 있는 선배로 보인 결과라 생각하면 자화자찬일 터이고 어느새 결혼한 지 십년이 넘어간, 나이가 많은 여자선배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해 외로워하는 그녀들에게 내가 물어보는 것은 주로 한 가지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
어떤 이는 정말 수도 없는 조건을 주워 담는다. 우리가 흔히 듣고 보는 ‘리스트’이다. 키, 외모, 부모형제, 직업, 성격... 나는 다 듣지도 않고 한마디로 다시 묻는다.
“너무 많지 않아? 딱 세 가지만 말해봐”
한번은 원하는 배우자에 대한 50가지 목록을 놓고 기도했더니 정말 딱 맞는 사람을 보내주셨다는 사람을 만나적도 있기는 하다. 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그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이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평범한 대답도 있다. 또는 그냥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대답도 있었다. 내 대답은 동일하다.
“배우자에게 원하는 딱 세 가지만 정해. 그러면 놀랍게도 그에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나. 보증할게.”
또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거의 비슷한 충고이다.
“네가 결혼할 배우자한테 정말 원하는 세 가지를 먼저 적어봐. 그리고 그 사람의 장점 세 가지를 적어봐. 몇 가지가 겹쳐?”
구체적인 증거를 대기는 어렵지만 꽤 많은 인연들을 엮어주기도 했던 상당히 신뢰성 높은 방법이다.
물론 첫 번째 사례는 바로 나였고 또 나의 언니였다.
내가 대학생 때, 언니는 돌연 같은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이야 생각이 많이 달라지셨지만 큰 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던 엄마는 절대 안 된다며 언니와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언니를 가장 속상하게 했던 엄마의 반대는 큰 딸이 시집을 잘 가야 동생들도 잘된다는 말이었다. 평소 온화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편이었으나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의외로 강단이 있었던 언니는 결혼에 대해서는 아주 완강했고, 한편 힘든 세상을 살아오신 엄마도 절대 지지 않으셨다. 난 두 사람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생각에 더 동의했다. 나의 기준이 없이 세상의 잣대를 따르던 그 때, 초등학교 선생님인 형부는 왠지 시시해 보였던 것이다.
엄마와 언니의 냉전이 지속되던 어느 날 밤, 언니와 나란히 누운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왜 형부와 결혼하고 싶냐고, 또 결혼 후에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언니는 자신이 꿈꾸는 내일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사회적 성공도, 출세도 다 싫고, 가족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과 시간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아마 우리 자매는 철들고 최고로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웃으며 어린 시절 싸웠던 기억부터 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 속에서 나는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언니가 그리는 가정의 모습, 그리고 만들고 싶은 가족의 모습도 아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막연하게 그리던 배우자와 결혼이 언니에게는 다른 의미와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그날부터 나는 언니 편이 되었다.
시간이 좀 필요했지만 자매의 설득에 결국 엄마는 결혼을 승낙하셨다. 지금도 언니는 스스로 이야기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주위를 작은 행복으로 채우며 열심히 살고 있다.
언니의 파란만장했던 결혼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아주 짧은 세월을 보내고 곧 결혼과 배우자에 대해 아주 심도 있는 고민을 시작했는데 차츰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이 ‘최소한’ 갖추어야 하는 자격요건의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내가 시작한 질문은 ‘어떤 배우자를 원하는가?’였는데, 내가 점차 알게 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성실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꾸준하지만 융통성이 있으며 자신의 신념이 있지만 동시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내가 배우자에게 바라던 이런 모습은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부족함을 십분 반영한 나의 바람이었다.
지적이면서도 편협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원하는, 약간은 허영심도 섞였던 기대는, 평생 배우고 알아가는 기쁨을 함께 누리며 서로의 성장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돈이 많을 필요도 없고 기댈 곳이 없어도 좋지만 돈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 그러나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음을 알지만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더 많음을 아는 사람을 원한 내 조건은 그렇게 살고 싶다는 내 바람과 내 생각의 표현일 뿐이었다.
또한 이런 나의 생각과 기대들은 어느 날 뜬금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과 환경 속에서 내 안의 품었던 세월과 나 자신의 기질이 섞이며 오랫동안 자라난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난 결혼을 생각하면서 나를 알아갔고 또 내가 꿈꾸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 생각과 기대가 정리되면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눈과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이, 새로 만나는 많은 남자들 중에서 갑자기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이 생겼고,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난 내 안경을 닦고서야 내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던, 때로는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던 변덕스럽던 마음이 하나로 모이고, 단 한 명의 사람만을 보게 된 것이다.
가끔 둘 중 누가 먼저 좋아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왠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사실은 내가 그를 먼저 알아보고 열심히 꽃향기를 날려 보낸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하긴 내 주변에는 만난 지 하루 만에 결혼을 결정해서 아주 잘살고 있는 용감한 처자도 있다. 이들은 직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고 또 타인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탁월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이니 다만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니 이렇게 이것저것 따지고 살펴보는 방법은 나처럼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방법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난 아직도 내가 남편을 고른 세 가지 이유를 기억하고 있다.
가끔 그가 턱없이 나를 분노케 하는 경우, 또는 그를 둘러싼 구구절절한 상황들이 나를 기막히게 하는 경우 가만히 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시 떠올려 본다.
참으로 다행인 것이 그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나를 미치게 할 때도 난 그것이 내가 그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임을 떠올린다. 그래서 다시 예쁜 아내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결국 언니의 말처럼 3가지 압축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대를 찾기전에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 참 공감을 합니다. 아마도 내가 누구인지를 몰라서 사람들이 이상형이 뭐야하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언니가 제옆에서 조근조근 말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사해요 ㅎㅎ
이렇게 언니의 글도 시작되는 군요.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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