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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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뚝이 TV 사용설명서
이번 여름에도 끝내 배불뚝이 TV를 버리지 못했다.
새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자, 이사짐 아저씨를 포함한 숱한 사람들이 텔레비전 좀 새로 사라, 간섭 아닌 참견을 했다. 도대체 어울리지 않는다는, 구색이 안 맞는다는 말이다. 요즘 이런 불룩하니 뚱뚱한 TV를 보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그들의 말은 어느정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새로 이사를 하면서는 말이다.
이사를 좀 일찍 한 탓에 온갖 이사짐 차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다리차가 윙하고 올라가는 것을 신기해하는 아이들과 함께 이사구경을 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된다. 우리 동네 전자제품 대리점들은 아마 대박이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커다란 대형 TV와 노트북, 냉장고가 그려져 있는 무진동 탑차들이 아파트 단지안을 누빈다.
사실은 우리도 이사를 하며 텔레비전을 놓고 꽤 고민했다. 이참에 다시 없애버릴까? 아님 안방에 대충 들여놓을까? 어자피 대출도 받는데 이 기회에 멋진 평면 TV를 새로 장만할까?
아직 멀쩡한 TV를 바꾼다는 일말의 죄책감 탓인지, 아이들의 온갖 장난에도 튼튼한 TV에 얽힌 여러 사연들이 기억이 났는지, 결국은 돈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우리는 그냥 배불뚝이 TV를 들고 이사를 왔다.
그 TV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 받침대를 새로 사야했고 적당한 물건을 찾기 위해 한참을 애써야 했다. 결국 거실 탁자를 받침대로 대용해서 텔레비전을 놓고 나니, 이번에 벽걸이형 TV 단자가 떡하니 눈앞에 보기 싫다.
아무튼 우리집 구식TV는 이런 주변 분위기에 아량곳하지 않고 떡하니 거실 한쪽에 자리를 차지했다. 결혼 5년 만에 구입한 배불뚝이TV와의 동거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결혼할 때 무슨 큰 결심으로 TV를 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워낙 돈이 없어서 ‘꼭 필요한 것만 우선 사자’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살림 장만을 의논하던 그때, 누군가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했다. 결혼해서 한 달간 TV를 보지 않으면 일 년치 유대가 쌓이고 일 년간 보지 않으면 십 년치 유대가 쌓인다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음직한 이야기였다. 둘 다 흔쾌히 텔레비전 구입을 미루기로 합의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천천히 사자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었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신혼살림을 시작하자, 길고긴 저녁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심심해서 어떻게 지냈을까 싶지만 그땐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심심할 틈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회사가 멀기도 하여 매일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 귀가하는 신랑과 역시 9시나 돼서 집에 돌아오는 나나 텔레비전을 켤 시간도 기운도 없었다. 대신 우리는 자연스럽게 작은 식탁 앞에 앉게 되었다. 라디오나 CD를 나지막히 틀어놓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앉는다. 특별한 주제도 없이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주로 내가 이야기를 하고 신랑이 듣는 편이었지만, 종종 하루 종일 회의를 하거나 행사를 치르고 온 날, 피곤한 내 입은 다물어졌고 드문드문 신랑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달 두달, 일년 이년, 시간이 흐르면서 난 신랑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의 일을 그의 눈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조각조각 파편 같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침묵을 느끼며 나는 그의 낮 시간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의 생각과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6년이 넘는 오랜 세월동안 ‘그’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고 게다가 2년 넘게 연애를 했지만 그 긴 세월동안 내가 알았던 것은 과연 얼마만큼의, 무엇이었을까?
아마 처음에는 그가 보통의 주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들과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는 그가 좋아하는 이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을 보았다. 나 또한 그에게 좋은 모습, 예쁜 모습,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무던히도 노력했던 시간이었으니까. 가끔 다툴 때조차 나는 그에게 멋진 여자이고 싶었으니까.
그 시간과 과정을 거쳐 우리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결혼에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나는 TV를 사이에 두지 않고 오롯이 함께 한 5년의 저녁 시간 덕분에 한꺼풀 안에 있는 그의 또다른 부분, 때로는 그도 알아채지 못했을 다른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 결과 결혼을 결정한 때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또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은 말이다.
거실에서 TV를 몰아내는 것이 유행이 된지 꽤 되었다. 거실에서 TV를 없애고 책이 꽉 찬 책장을 놓고 책상도 놓고 가족의 서재로 꾸미는 것이다. 이 유행의 가장 큰 목적은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물론 부모도 TV를 보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보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나 부모에게 좋은 변화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가족이 모이는 거실은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자칫하면 아이들 공부시킨다는 미명하에 그렇지 않아도 적은 가족들 간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가족에게는 책이 가득한 책장 앞에서 각자 필요한 공부를 하기보다는 서로 몸을 기대고, 다리를 겹치고 앉아 함께 TV를 보는 공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오락프로그램 하나를 같이 보면서 함께 웃고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 재미있는 걸 어찌 싫어할 수 있으랴 ㅎㅎㅎ
내가 TV를 활용하는 방법은 '지난 프로그램 보기'야.
정규방영시간에는 거의 보기 힘들고 대부분 밤시간 좀 피곤해서 쉬고 싶을 때 보고싶었던 프로를 찾아보곤 해.
좋은 프로그램 소개가 나오면 기록해 놓았다가 활용하지.
지금 수첩에 적혀 있는 프로그램도 하나 있네.
지난 주 월요일 방영했다는 세계의 교육현장 스웨덴 편이야. '스웨덴의 프렌디, 아빠를 말하다'
내 주제에도 어울리고 잼있을 것 같기도 하구, 꼭 보려구^^
물론 이런 교양 프로만 보는 건 절대 아니구 ^^
무르팍 도사 같은 것도 피곤할 때 보면 얼마나 잼있는데, 주로 등장인물을 보고 고르지.
박경철, 한비야, 안철수, 윤도현, 금난새 등등 얼마전까지 본 인물편이지.
요즘 인터넷 TV 진짜 좋아졌잖아. 현명하게 활용해 보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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