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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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이 구린 사내들 이야기, 미꾸라아-쥐.
밑이 구린 사내
찬바람이 이는 걸 보니, 가을이다. 그렇지 않아도 구들장이 썰렁해서 가을밤 지내기가 눅눅치 않은데, 어찌 요즘 들어 아궁이 지피는 솜씨가 영 시원찮다. 허긴 20년을 살았으면 시들해질 때도 됐지. 더군다나 줄줄이 얘 다섯 낳아놓고, 처진 젖가슴에 아랫배도 늘어진 년 품는 맛이 얼마나 있을까도 싶다. 여름 내내 뙤약볕에 나가 풀매고, 농약치고, 장마 비라도 오는 날이면 새벽같이 고랑도 쳐내느라 써빠지게 고생혔는디, 추석 돌아오기 전에 어찌 몸보신이라도 시켜얄 팜인디.. 없는 살림에 비싼 보약짓기는 빠듯허고, 어멈씨 눈치도 보이고..
오후 나절 학교 갔다 돌아온 아들래미를 시켜 양푼 하나들려 내보낸 길이 논두렁이었다. 한 두 시간도 채 안되어 반 남짓 채운 것이 신통하다. 지 애비를 닮았는지 공부는 시원찮으면서도 미꾸라지 잡는 재주는 제법이다. 굵은 소금을 뿌려두고 두어 시간 지내면 풀도 죽고, 뻘 비린내도 안 난다. 박박 문댄 다음에 푸성귀 좀 씻어 넣고 푹 고면... 이만한 보양식이 따로 없다. 아무리 시골 살림이라지만, 사내들 힘쓰는데 미꾸라지만한 것이 또 없다. 그것도 찬 바람나는 가을이 딱 제격이다. 땀 뻘뻘 흘려가며 한 그릇 먹여두면, 덩달아 배가 부르고 맘도 한결 가볍다.
그렇게 실컷 먹여 두었더니.. 글쎄 이 서방눔 하는 꼬락서니는 또 뭐람. 뒷동네 과부한테 맘이 팔렸나, 새로 왔다는 읍내 젊은 것한테 홀렸나. 숫째 어먼디다 힘을 빼고, 용을 쓰고 다니구선 정작 지 마누라는 여전히 찬밥댕이다. 어쩌다 손이라도 잡아끌면 마지못해 성의없는 헛방질 몇 번 하고선 돌아누워 코를 골기 일쑤다. 고생한다는 정겨운 말 인심 쓸 줄도 모르고, 자식새끼 놔두고 짐 싸들고 나가버리지도 못하고, 정말이지 미운 정으로 산다. 그저 사내란 밥 먹고 집 나서면 내 것이 아니라던 친정엄니 생각에, 괜한 한숨 끝에 눈물이 젖는다. 소리죽여 이불을 끌어당기느라 살짝 들썩이는데, 어느 틈에 방귀를 꾸었는지, 냄새가 고약하다.
둠벙 속 소란
아무리 풀숲에 가린 둠벙이라지만 여름나절이면 미지근해지는 것이 슬슬 때가 된 듯하다. 갑자기 소란이 일더니, 온통 방죽 물이 흙탕물이다. 또 동네 개구쟁이 녀석들 천렵질인가. 아니다. 시집도 안간 처녀 배가 잔뜩 불렀으니 더없는 구경거리다. 동네 총각들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난리법석이다. 그 바람에 흙먼지가 일었는지 온통 뿌옇다.
“어라.. 그런데 이년 하는 폼이...” 아랫배만 불렀지, 여전히 잘룩한 몸맵시는 숨길 수가 없다. 피부도 매끈하고, 얼굴도 반반한 것이 동네 총각들 야단법석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남들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살 꼬리치듯 움직이는 폼이.. 그냥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벌써부터 녹아나는 성질 급한 놈들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주먹코’니 ‘마늘코’니 한다지만, 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다. 일단 수염이 길어야 대접을 받는다. 그것도 아래 턱 수염이 미간길이보다 세배는 되어야 지대로다. 간혹 길이도 짜리몽땅한 것들이 들이밀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턱 수염길이로는 따라갈 수가 없다. 길고 짧은 것 대보지 않고도 안다. 다 양기가 입으로 오른 명 짧은 것들 구라일 뿐이다.
치고 받고 몸싸움이 시작된 것이 본격적인 때가 된 듯하다. 어쨌든 올라타는 한 놈은 있게 마련일테고, 그것이 내가 아니란 법도 없다. 운이 좋았다. 밀치고 닥치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계집의 몸을 감았으니, 지금부터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일만 남았다. 숨겨두었던 필살기를 쓸 때다. 도대체 사람들은 겨드랑이 밑에 갈고리를 어디에 쓰는 지를 궁금해 했지만, 계집들은 모르는 수컷들만의 필살기가 있게 마련이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계집의 몸에 상채기가 났다. 고통스러운 듯이 몸을 비틀었지만, 지금은 그 사정 봐 줄 때가 아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숨이 꼴가닥 넘어갈 것 같다. 이미 더워진 날씨에 미지근한 둠벙 속이라 더 끈적거린다. 사력을 다해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나올 것도 같은데... 계집의 몸놀림도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점점 더 허리에 힘이 들고, 감아쥔 다리가 꽉 조여진다. 이미 겨드랑이를 꽉 박아 두었으니, 웬만한 계집의 요동에도 끄덕없다.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풀릴 일이 없다. 주변의 소란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 마지막 순간이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히더니, 하나로 얽힌 두 개의 몸뚱아리가 부르르 떨린다. 아찔했다. 갑자기 무너지듯이 꼬았던 다리도, 감았던 팔도 스르르 풀리고 만다. 눈앞이 뿌옇다. 풀숲에 가린 조그만 둠벙 속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직 뜨겁다. 한 번 더 소란이 일까?
사내들의 발길질
좁은 방안에 동네 사내들이란 사내들이 다 모여들었다. 제법 선수들이다. 그저 작은 구멍에 발길질해서 공을 집어넣는 일일 뿐인데, 저렇게 열광하는 것을 보면 참 사내들이란 단순하다. 사내들 모이면 하는 짓이라니.. 그 이야기뿐이다. 간혹 욕짓꺼리도 들리고, 연신 품어대는 담배 연기때문인지 좁은 방안은 이미 뿌옇다. 아직 턱밑에 수염도 나지 않은 나는 이미 멀찌감치 밀려나 있을 뿐이고, 간혹 잔심부름이나 할 일이다. 사내들 정신은 온통 저 조그만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창 하나에 쏠려있다. 한 번씩 구멍을 향해 슛을 날리면 온 몸에 힘을 주고선 소리를 질러댄다. 자칫 구멍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성질을 내기도 하고, 대신 헛발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좀처럼 골문은 열리지 않는다. 하기야 골문이 너무 쉬어도 맛이 안 나는 법이다.
아예 처음부터 감독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고, 제가 선수로 뛰지 못한 것에 여전히 분통 터뜨리는 치들도 있다. 골은 반드시 남의 구멍에 넣어야 한다. 아주 가끔씩 제 구멍에 골을 넣는 일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머저리, 등신, 팔푼이 등 세상의 모든 비난을 다 들어야만 한다. 이른바 자살골이다. 얼마나 죽을 맛들이었으면. 슛도 요령이 있다. 긴 슛과 짧은 슛을 잘 섞어가면서 수비수의 정신을 빼놓은 다음 기습적으로 찔러 들어가야 한다. 알고도 당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내들 그것처럼 바나나킥으로 휘감겨 들어오는 것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렇게 상대보다 더 골을 먹으면 이겼다고, 잘했다고 세상이 온통 난리법석들이다. 상도 받고, 제법 두둑한 연봉이 따른다. 골 잘 넣는 선수에게 여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순리다.
나이를 먹으나 안 먹으나, 있으나 없으나 사내들 즐겨하는 놀이라는 것이.. 구슬로 구멍넣기다. 손가락으로 튕겨서 넣기도 하고, 발로 차서 넣기도 하고, 막대기로 쳐서 넣기도 한다. 아주 옛날에는 말타고도 했다지 아마?
등판에 11번을 단 ‘범근’이란 사내가 단연 관심사다. 그렇지만 평소답지 않게 오늘은 영 힘을 쓰지 못한다. 몇 차례 슛을 날리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헛발질에 헛심만 팽긴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방귀도 자주 뀌다보면.. 똥도 싸는 법이여”
밑이 구려 미꾸리
주말이다. 아내를 따라 장을 보러 나섰지만, 별로 신나는 일은 아니다. 수산물 코너를 지날 때였다. 눈을 잡아 끈 것은 수족관 속에 미꾸리들이다. 재미삼아 툭 건드렸더니 난리가 났다. 바닥에 죽은 듯 포개져 있던 것들이 용솟음을 치며, 연신 수면으로 오르락 내리락 팔자대로 움직인다. 물 밖으로 빼꼼하고 입을 내밀고서는, 다시 자맥질하면서 어느 한 놈 빠지지 않고 방귀질을 해댄다. 저렇게 방귀질을 하니 밑이 구릴 수 밖에...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미꾸리다. 밑이 구린 이. 믿거나 말거나.
‘미꾸리’하고는 조금 다르게 더러 몸통이 길고, 각이 진 놈들이 있다. 바로 ‘미꾸라지’다. 시장통에서 만나는 할매들 말로는 ‘동글이’, ‘납작이’라지만, 제법 배운 이들 이야기로는 ‘미꾸리’, ‘미꾸라지’란다. 둘 다 세 쌍의 수염을 달고 있지만, 덩치가 큰 미꾸라지의 턱수염이 훨씬 길다. 대략 미간 간격의 서너배 정도가 된다. 미꾸라아쥐다. 큰 것 밝히는 사내들 모양으로 Large 사이즈다. 그렇지만 맛을 내는 데는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요리하기 나름이다. 어찌했든 추어탕을 즐겨먹는 것도 사내들이고, 큰 것 좋아하는 것도 사내들인 까닭인지 우리에겐 ‘미꾸라지’라는 이름이 익숙할 뿐이다.
예전에는 논두렁이고, 둠벙이고 흔해터진 것이 미꾸라지였다. 농약 탓인지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댄 탓인지 지금은 중국산 미꾸라지들이 더 흔하다. 수질오염에도 강하고, 모기의 천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무엇보다 없는 사람들 보양식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미꾸라지였다.
물고기이면서도 아가미가 발달하지 못해, 입으로 들여 마신 공기는 막창자에 있는 피부를 통해 필요한 산소를 흡수하고, 날숨은 가까운 항문을 통해 몸 밖으로 낸다. 덕분에 겨울철 물도 없는 진흙 속에서도 지낼 수 있고, 숨쉬기 힘든 냄새나는 둠벙 뻘 속도 차지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잦은 방귀질을 한다고 여겨진 것도 그런 팔자 덕이다.
춘향이 보러 남원에 갈 일이면, 꼭 미꾸라지 갈아 만든 추어탕 한 그릇 먹어 봐야 제대로 그 깊은 맛을 안다. 비록 이몽룡 팔자는 못되더라도 끝내 헛물만 켜고 말았던 변학도 보다야 나은 신세가 아니겠나. 혹시 사먹는 추어탕도 아니고, 굳이 마누라가 끓여주는 추어탕이라면 그저 열심히 먹고 다른 데 한눈 팔일도 아니다. 속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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