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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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개들과의 행복한 동행
어느 햇살 좋은 아침 나는 이불에 누워 한 권의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을 보면서 이렇게 킬킬 웃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웃음은 단지 재미있어서 킬킬 웃는 그런 것이 아니라 행복한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잔잔한 웃음이었다. 그 책은 경영서적도 철학책도 아니었고,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동물에 대한 글과 사진으로 엮어진 아주 예쁜 책이었다. 그렇게 재미있고도 행복하게 책을 읽는 내 옆에는 방울이와 오리오가 같이 있었다. 책 속의 동물과 오버랩 되면서 그들이 더욱 더 살갑게 느껴졌다.
오리오는 털이 별로 없어서 추위를 많이 타는데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부쩍 친한 척을 하는데, 내 옆구리에 마치 이를 꼭 맞춘 태극문양처럼 착 붙어서 지낸다. 겨울이면 특히 이렇게 우리는 완벽한 한 쌍이 된다. 또 겨울이 되면 일부러 털을 잘 깎아주지 않는 방울이는 완전 야생 흑곰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오리오가 옆구리에 붙어있어 따뜻하고 또 발 밑에 누워있는 방울이 털에 발을 슬슬 비비면서 배 밑에 발을 집어 넣으면 발도 안시려서 이렇게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 어떤 것도 하나 안 부럽게 느껴진다. 개털이 이렇게 좋은데 왜 우리나라 속담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때 개털에 비유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행복감 가득 주는 개털이 아무 쓸 작에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렇게 마음의 안정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 나에게는 개털이다. 어느 멋진 남자의 가슴에 난 털도, 윤기 나게 흐르는 어느 여자의 긴 머리카락도 이보다 부드러울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은 오전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처럼 나의 기분을 업 시켜주며 미소 짓게 한다.
책을 읽고 있는데 나의 손을 오리오가 코로 마구 밀어내며 놀아 달라고 보챈다. 방울이는 어느새 방문을 박박 긁어대며 나에게 산책을 가자고 조르기 시작한다. 둘이 힘을 합쳐 누워있는 나를 일으키는 방법이다. “애들아 오늘만큼은 나를 위한 날이야 조그만 더……”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아랑 곳 없다. 강아지 때 찹쌀떡처럼 말랑했던 그들의 발바닥은 매일 산책으로 딱딱하고 거친 발이 된 지 오래다. 무슨 소리냐는듯이 그 거친 발바닥에 내 얼굴을 긁히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이미 싫지 않은 푸념이 된다. 그들을 보면 ‘함께’란 단어가 자주 떠오른다. 정말 친밀감 있는 단어이고, 여러 말들중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면서 혼자의 시간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만큼 행복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따로 가끔은 같이 살아가는 ‘따로 또 같이’란 말 역시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
산책을 나갔다. 이불에서 뒹구는 행복과는 또 다른 만족감이 느껴진다. 우리 강아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산책하는 모습도 성격에 따라 제 각각이다. 까칠한 오리오는 내가 따라 오던지 말던지 제 갈길만 간다. 눈 깜짝하면 없어져버려 가슴을 쓸어 내리게 만든다. 반면 정 많은 방울이는 어느 지점까지 가면 반드시 뒤를 돌아 본다. 그리고 까만 콩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혀를 내밀고 활짝 웃는다. 나는 그들과 오랜 시간을 같이하여 그들의 웃음도 울음도 금방 알아 본다. 기분이 좋아 만족할 때 그들의 입은 어금니가 보이도록 올라간다. 그리고 혀를 빼물고 헥헥~ 소리를 내며 활짝 웃는다. 그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의 마음은 크게 불어놓은 풍선처럼 빵빵 해진다. 그리고 내가 장거리 여행을 위해 큰 가방을 싸서 나갈 때면 오리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닦아주면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진다. 그래서 멀리 떠나는 길에 앞서 나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인간처럼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느끼며 삶을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만이 웃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인간만이 우월한 존재라는 인간 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저런 생각이 나의 발걸음을 늦추어 놓았다. 방울이는 나의 행동을 놓치지 않는다. 거리가 멀어지면 다시 내 자리까지 뛰어와 어릴 적 하던 다방구 놀이에서 술래가 보기 전에 탁 치고 뛰어 도망가듯 나를 치고 또 뛰어간다. 그렇게 어서 오라며 나의 분산된 생각을 하나로 잡아준다. 집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 아무리 불러도 들은 척 안 하는 오리오를 찾아 나선다. 방울이에게 명탐정 홈즈의 역할을 주어 준다. “오리오 찾아와!” 하면 방울이는 코를 땅에 박고 킁킁 오리오의 냄새를 찾아 나선다. 그때의 모습은 정말 명견의 모습이다. 그런데 거기까지가 한계다. 조금 가다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를 잊어 버리는 낙천적인 방울이는 새들을 잡아 보겠다고 새를 쫓아 뛰어간다.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던 오리오는 꼭 내가 ‘으이구, 다시 산책을 하나 봐라’ 할 정도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스으윽 어디선가 나타난다. 오리오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꼭 아주 냄새가 지독한 곳, 예를 들면, 쓰레기 묻어 썩은 곳이나 차의 오일이 새서 땅에 흐른 곳에다 몸을 비비곤 한다. 어느 날엔가는 자동차 아래에서 흰 몸둥이에 오일을 잔뜩 묻혀 젖소가 되어 돌아왔다. 생선 썩은 곳에 몸을 비비고 돌아온 날에는 영락없는 노숙자 꼬락서니이다. 그런 날에는 데리고 들어가 목욕 시키는 일도 엄두가 안날 정도인데, 일단 비닐에 둘둘 말아 데리고 들어가 목욕을 시킨다. 이런 나의 모습에 종종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개 하나 키우는 것이 아이 하나 키우는 몫을 한다면서 ‘아이구, 난 못해’ 하는 사람은 십중 팔구 개를 키워 보지 않은 사람이다. 아니면 본인의 의사에 관계 없이 사랑이 부족한 상태에서 갑자기 키우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일 것이다. 개를 키우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은 비교할 수 없고 서로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컬럼을 써 볼 생각이다). 왜냐하면 아이를 키울 때 제일 힘든 것은 사람으로서 인성과 지성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이와 관련된 책임감인데 개를 키울 때에는 이런 정도까지 고민하지는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개들은 기본적인 간단한 훈련만 시켜주고 나면 먹고 씻기고 예방접종만 잘 해 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해 주는 것은 나와 함께 살고 숨쉬는 네발 친구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에게 선사해 준 행복한 웃음과 그들과의 행복한 동행에 대한 나의 감사를 나타내는 작은 수고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얼굴을 핥아주는 강아지만큼 훌륭한 정신치료사는 없다"-번 윌리엄스'의 문구를 읽으면서 언니 생각이 당연히 들었어요.
http://book.interpark.com/blog/gomawar/1740849
여기에 '개'를 소재로 한 책들을 소개해 놓았네요. 혹시 아직 보기전이라면 참고해보세요.
특히 <지금 당신은 개보다 행복한가요?>라는 책제목에서 울림이 오더라구요.
방울이와 오리오와 함께 하는 언니의 소소한 일상에서 인생의 행복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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