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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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당시에 15킬로그램 밖에 나가지 않을 만큼 작고 가늘었다. 아토피가 있는 피부는 항상 아이를 아프게 했다.
아이가 좋아하던 것은 책읽기였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초입 부분이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자리였다. 그 계단의 두 번째에서 세 번째 계단 그 곳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밝은 계단의 그 부분에는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그 창으로는 집 뒤에 있는 낮은 동산이 보이곤 했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소리내어 책을 읽기를 좋아했다. 누군가가 듣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따옴표 안의 글씨를 읽다가 보면 아이는 마치 자신이 책안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 느낌은 아이가 매우 좋아하던 것이었다. 집에 손님이 오는 경우가 있어도 아이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 행위는 아이에게 즐거운 일이었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만한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다. 당시 아이가 즐겨 읽던 책은 대부분이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책이었지만 만화 삼국지도 있었고 안나 파블로바의 이야기도 있었다.
아이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글을 빨리 읽기 시작했고 셈이 빨랐다. 작지만 달리기도 제법 잘했다. 간호사, 선생님, 화가. 항상 변하긴 했지만 아이에겐 꿈이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꾸던 작은 꿈들이 깨어졌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준비해 두었었는데 그 것이 깨어졌다. 아이는 3년 간 해오던 국악부를 나와야 했다. 제 손으로 파트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국악 중악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꿈을 깨야 했다. 아이는 방송부를 나와야 했다. 아침 명상의 시간을 진행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5학년 이던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진행하는 것만을 지켜본 채 다른 아이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졸업식에 읽고 싶어 했던 송사의 꿈도 건너갔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이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는 더 이상 소리내어 책을 읽지 않았다.
지난 3월. 헤세의 데미안을 소리 내어 읽었다.
도대체 몇 년 만인걸까? 지금이 서른 살이니 아마 못해도 15년은 지났겠지. 정말 오랜만이다.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은. 어렸을 적에는 이걸 꽤나 좋아했었는데. 그만둔건 언제쯤이었더라? 무언가 비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였던가? 이야, 정말 오랜만이구나.
새벽시간이었고,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내 목소리는 예전만큼 거침없지 못했다. 낭랑하지는 못했다.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많이 잠겨 있었고 저쪽 방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목소리가 점점 작아 지곤했다. 그냥 읽으면 잠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해본 일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바보같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점차 익숙한 느낌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달려가고 있었다. 책장 역시 날아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의 겨울 방학에 나는 전학을 갔다. 그럼으로 인해서 내가 나름대로 노력해서 얻은 것들을 많이 잃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확실한 꿈은 없었지만 많은 것을 꿈꾸며 즐겁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무대에서 춤을 추는데 음악이 끊기고 조명이 꺼진 기분이었다. 나를 비추던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곳을 비추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나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렸고 당연히 부모를 따라서 이사를 가야만 했다. 나는 그 상태로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 밀어 본다. 아이가 손을 잡는다. 아이를 꼭 안아 준다.
혼자서 이런 곳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그래, 네 잘못은 아닌데. 좀 더 일찍 찾아와서 너를 안아줬어야 했는데. 어려서 서툴렀을 뿐이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을 뿐인데 여기서 꽁꽁 숨어있어야 했구나. 이제 괜찮아. 나는 이제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 이제 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지 않아도 돼.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인 채로 여기서 울고 있지 않아도 돼.
전학을 오고 나서 나는 쉬이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알던 세상 밖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사원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모든 것이 거의 비슷비슷했는데 여긴 모든 것이 달랐다. 불량식품도 오락실도, 학교가는 골목길도 낯선 풍경들이 천지였다. 더군다나 나는 나를 꾸며주던 꾸밈말을 모두 내려 놓은 채로 서 있어야 했다. 그 꾸밈말들은 나였다. 나는 마치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찾아야 했다. 새로운 꾸밈말을 찾아서 나에게 붙여야 했다. 나는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화려한 모습도 좋았다. 멋진 남자친구도 좋았다. 무언가를 나의 옆에 가져다 놓아야 했다.
꾸밈말들이 나였다. 그것이 떠난 나는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들이 떠난 나는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였다. 별것 아닌 존재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내가 가진 것들이 마치 나인양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들이 떠나고 나자 나는 참 볼품없는 존재처럼 느껴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데. 그 꾸밈말들은 항상 변할 수 있는데. 나는 그 가변적인 것들에 나를 이입시켜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변했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순간에 나는 항상 힘들어 했다. 마치 바퀴의 테를 잡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오르락 내리락 했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꾸밈말들을 벗는다. 내가 욕심껏 붙여 놓은 그래서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 꾸밈말들을 한꺼풀 한꺼풀 벗어나간다. 나는 이제 그 꾸밈말들이 나를 꾸며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아이야, 걱정하지마. 다시 네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너는 이제 어여쁘게 자라나도 된단다. 나는 아마 다시 소리 내어 책을 읽을 수 있을 거야.
아이의 성장을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