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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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묘한 재주 하나가 있다.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만나야 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리 만나기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결국엔 만나고, 입사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곳이라면 용케 들어가는 재주가 그것이다.
밥맛없게 왠 잘난척이냐,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이건 사실이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투입해야하는 시간과 노력은 천자만별로 다르지만, 어찌됐든 원하는 것은 꽤많이 실현시키는 편에 속한다.
그 비결은?
바로 뻔뻔함 덕분이다.
난 참 뻔뻔하다.
친한 동료 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제일 뻔뻔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한다.
사실, 나는 창피한게 별로 없다.
한번은 길가는 외국인 아줌마가 무거운 짐 들고 끙끙거리길래 May I help you?(참고로, 나는 영어 실력 꽝이다)라고 접근한 뒤 길도 가르쳐주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 물론 50% 넘게 서로 못알아 먹었다. 그래도 아랑곳 않는다. 알고보니 그 미국 아줌마는 이화여대에서 초청한 스미소니언 재단 소속의 세계적인 과학자였다. 워싱턴에 놀러 올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덜렁거리기 선수인 나는 물론 그 명함을 잃어버렸지만 97년 겨울 한국을 방문한 그 과학자를 이화여대를 통해서 다시 알아볼까 생각중이다.
나는 중국어가 좋다. 이유 없이 그냥 좋다. 고등학교 때 쪼금. 대학다닐때 조끔 해본 중국어 공부를 다시해볼까,라고 생각하던 중 지하철에서 중국말 하는 사람 둘을 봤다. 중국말 하는 여자는 상당히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에, 아마도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밀입국한 조선족이 아닐까,라고 상상했다. 음 그렇다면 나의 가정교사가 됨으로써 그녀도 좋고, 나도 좋고라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니스중꾸어런마?"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하니 너가 나의 가정교사가 되면 어떻겠니? 콩글리쉬, 엉터리 중국어 섞어가며 겨우 얘기하는데 그 중국인이 갑자기 한국말로 이야기 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명함한장을 꺼내주며 연락을 하라고 한다. 헉. 포스코에서 일하네. 다음날 그 중국인과 나는 코엑스에 있는 마르쉐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윽. 그녀는 중국천재들만이 들어간다는 청화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국비장학생으로 네델란드에 가서 공부하고 국제변호사자격증을 획득한 재원이었다. 차이나 포스코에 재직중에, 포스코에 스카웃된 인물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중국사람과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인간이 바로 나다.
한 1년 전부터 동호회에 다니며 '오페라 감상'을 시작했다. 클래식, 오페라, 발레 감상등은 이전 내 인생과는 상당히 먼 이야기였지만,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던 분야라서 괜찮은 동호회를 물색한 뒤 다니고 있다. 다닌지 한 석달 쯤 됐을무렵 50대 여성분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난 주로 나보다 나이가 한 20살쯤 위인 사람들하고 친하다) 회사일이 조금 빨리 끝나 그 분께 전화했더니, 타워팰리스 00동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놀러오라고 했다. 난 아무런 거리낌 없에 들어섰다. 어리버리하다가, 무선기 들고 왔다갔다하는 왠 덩치좋은 남정네에게 2층에 있는 까페에 갈려면 어찌해야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거주민이 아니면, 초청한 사람의 이름과 호수를 안 뒤 전화승인이 난 이후에만 올라갈수 있다고 한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딨어요. 지금 방금 2층으로 올라 오라는 연락받고 여기에 왔는데 이렇게 기분나쁘게 하시면 안되죠!" (사실, 난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기했다. 왜냐하면 바로 전날밤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통해 CID 개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본 내용이 내 눈앞에 펼쳐지자 재밌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그 남정네 오히려 몹시 당황하더니 보안뱃지로 문을 열어주었다. 난 번쩍거리는 녹색 대리석이 쫙 깔린 곳을 통해 약속장소로 갔다.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냐며 깜짝 놀란다. 불을 내뿜는 용이 출입문을 가로 막았지만 용감하게 물리치고 온 이야기를 했다. 아직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 아무도 그 용을 물리친 인간은 없었다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더 미안해하길래 '소유의 종말'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우연히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재밌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안심시켰다. 그 날밤 생전모르는 분이 맛있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사줘서 먹고, 그 분 집에서 놀기까지 한 뒤 집에 돌아왔다. 그 분 남편은 날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시기까지 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란 인간은 참으로 신기하구나. 폐쇄적이라고 소문난 아찔한 부잣집 거실에 앉아서 서너시간전까지 서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함께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부르며 놀고 있다니. 그 부부와는 지금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서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더 황당한 에피소드도 많이 있지만, 너무 오랫만에 글을쓰니 엄청 진도가 안나가는 통에 더 이상은 못쓰겠다. 독자의 반응이 괜찮으면 '나의 목표회사 입사기'도 올리겠다.
IP *.235.1.135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만나야 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리 만나기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결국엔 만나고, 입사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곳이라면 용케 들어가는 재주가 그것이다.
밥맛없게 왠 잘난척이냐,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이건 사실이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투입해야하는 시간과 노력은 천자만별로 다르지만, 어찌됐든 원하는 것은 꽤많이 실현시키는 편에 속한다.
그 비결은?
바로 뻔뻔함 덕분이다.
난 참 뻔뻔하다.
친한 동료 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제일 뻔뻔한 사람이 바로 나라고 한다.
사실, 나는 창피한게 별로 없다.
한번은 길가는 외국인 아줌마가 무거운 짐 들고 끙끙거리길래 May I help you?(참고로, 나는 영어 실력 꽝이다)라고 접근한 뒤 길도 가르쳐주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 물론 50% 넘게 서로 못알아 먹었다. 그래도 아랑곳 않는다. 알고보니 그 미국 아줌마는 이화여대에서 초청한 스미소니언 재단 소속의 세계적인 과학자였다. 워싱턴에 놀러 올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덜렁거리기 선수인 나는 물론 그 명함을 잃어버렸지만 97년 겨울 한국을 방문한 그 과학자를 이화여대를 통해서 다시 알아볼까 생각중이다.
나는 중국어가 좋다. 이유 없이 그냥 좋다. 고등학교 때 쪼금. 대학다닐때 조끔 해본 중국어 공부를 다시해볼까,라고 생각하던 중 지하철에서 중국말 하는 사람 둘을 봤다. 중국말 하는 여자는 상당히 촌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에, 아마도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밀입국한 조선족이 아닐까,라고 상상했다. 음 그렇다면 나의 가정교사가 됨으로써 그녀도 좋고, 나도 좋고라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니스중꾸어런마?" 나는 중국어를 배워야하니 너가 나의 가정교사가 되면 어떻겠니? 콩글리쉬, 엉터리 중국어 섞어가며 겨우 얘기하는데 그 중국인이 갑자기 한국말로 이야기 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명함한장을 꺼내주며 연락을 하라고 한다. 헉. 포스코에서 일하네. 다음날 그 중국인과 나는 코엑스에 있는 마르쉐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윽. 그녀는 중국천재들만이 들어간다는 청화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국비장학생으로 네델란드에 가서 공부하고 국제변호사자격증을 획득한 재원이었다. 차이나 포스코에 재직중에, 포스코에 스카웃된 인물이었다. 지하철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중국사람과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인간이 바로 나다.
한 1년 전부터 동호회에 다니며 '오페라 감상'을 시작했다. 클래식, 오페라, 발레 감상등은 이전 내 인생과는 상당히 먼 이야기였지만,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던 분야라서 괜찮은 동호회를 물색한 뒤 다니고 있다. 다닌지 한 석달 쯤 됐을무렵 50대 여성분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난 주로 나보다 나이가 한 20살쯤 위인 사람들하고 친하다) 회사일이 조금 빨리 끝나 그 분께 전화했더니, 타워팰리스 00동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놀러오라고 했다. 난 아무런 거리낌 없에 들어섰다. 어리버리하다가, 무선기 들고 왔다갔다하는 왠 덩치좋은 남정네에게 2층에 있는 까페에 갈려면 어찌해야하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거주민이 아니면, 초청한 사람의 이름과 호수를 안 뒤 전화승인이 난 이후에만 올라갈수 있다고 한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딨어요. 지금 방금 2층으로 올라 오라는 연락받고 여기에 왔는데 이렇게 기분나쁘게 하시면 안되죠!" (사실, 난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기했다. 왜냐하면 바로 전날밤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통해 CID 개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 본 내용이 내 눈앞에 펼쳐지자 재밌기까지 했다) 그랬더니 그 남정네 오히려 몹시 당황하더니 보안뱃지로 문을 열어주었다. 난 번쩍거리는 녹색 대리석이 쫙 깔린 곳을 통해 약속장소로 갔다.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냐며 깜짝 놀란다. 불을 내뿜는 용이 출입문을 가로 막았지만 용감하게 물리치고 온 이야기를 했다. 아직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 아무도 그 용을 물리친 인간은 없었다며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더 미안해하길래 '소유의 종말'을 통해 이 모든 상황을 우연히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재밌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며 안심시켰다. 그 날밤 생전모르는 분이 맛있는 스테이크와 와인을 사줘서 먹고, 그 분 집에서 놀기까지 한 뒤 집에 돌아왔다. 그 분 남편은 날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시기까지 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란 인간은 참으로 신기하구나. 폐쇄적이라고 소문난 아찔한 부잣집 거실에 앉아서 서너시간전까지 서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과 함께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부르며 놀고 있다니. 그 부부와는 지금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서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더 황당한 에피소드도 많이 있지만, 너무 오랫만에 글을쓰니 엄청 진도가 안나가는 통에 더 이상은 못쓰겠다. 독자의 반응이 괜찮으면 '나의 목표회사 입사기'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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