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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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말하다.
<파우스트>은 젊은 시절, 나의 어두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메피스토가 유혹하는 장면은 자석처럼 나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15년 전, 나는 건설회사에 취직을 했고, 곧바로 현장에 파견되었다. 시공 현장은 낯선 곳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경험한 곳이기도 했다. 나는 그 곳에 근무하면서 자주 유흥주점을 드나들었다. 주점은 접대를 위한 하나의 일터와도 같았다. 낮에는 현장 작업자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고 밤에는 갑의 관리자들과 향락의 밤을 보냈다. 빛과 그림자의 대극에서 나는 철저히 충동적이고 탐닉적인 인간이 되어 갔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자신을 맡기고 쾌락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처럼 여름으로 접어드는 어느 날, 김 마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기사, 오늘 서울에서 이쁜 아가씨 왔으니깐 저녁에 들러"
"안 그래도 저녁 회식이 있어서, 갈려던 참이야".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현장에서 자금을 담당했던 나는 그 주점에 단골 고객이었다. 그리고
접대가 있는 날이면, 미리 가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곤 했다. 그날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깐 주점에 들렀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녀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었다. 창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잠깐 눈살을 찌푸리고는 이내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곳의 빛과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시골까지 흘러온 그녀의 사연이 궁금했다. 오늘 저녁에 누가 현장 소장 옆에 앉아야 하는지, 시간과 금액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현장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저녁이 되고, 현장관리자들과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데리고 주점에
도착했을 때, 김 마담은 문 앞까지 나와서 우리들을 맞이했다. 모두들
저녁식사에서 마셨던 알코올이 아직 덜 깨었는지 비틀거렸다. 오직 자신들의 욕정을 어떻게 배설할지에 대한
생각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김 마담은 손님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고 나는 그녀가 있는 방으로 갔다. 낮에 보았던 그녀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 그녀의 얼굴과 눈빛은 눈이 부실 정도로 이뻐
보였다. "오늘 첫날이니깐, 잘해라" 무관심하게 말하고는 방문을 닫았다.
나는 현장 소장 옆에 앉았고, 무대를 오고 가고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여자들은 짙은 향수와 화장으로 가면을 하고, 남자들은
알코올의 힘을 빌어 얼굴색을 바꾸었다. 이렇게 모두들 가면을 쓴 채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었다. 테이블로 맨 먼저 올라간 것은 그녀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순간
사람들 손에 떠받쳐져서는 공중에 몸이 뜬 채로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나의 어색한 춤 동작들은 그녀
손에 이끌려 새롭게 태어났다. 그러한 그녀의 손이 내 몸이 닿을 때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테이블 위로 누런 지폐들이 하나씩 올라왔다. 점점 내 영혼은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몇 일이 지나고 다시 그 주점에 들렀다. 이번에도 서울에서 내려
온 손님을 모시고 갔다. 그녀의 얼굴은 얼마 전에 보았던 모습보다 야위고 창백했다. 나를 보는 표정은 밝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의 눈동자 깊숙이
아른거렸다. 김 마담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지난번처럼 그녀를 맨 안쪽에 앉게 하고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건배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현장 소장이 큰 소리를 쳤다. "술 안 마실거면, 뭐하러 들어와! 당장 나가!"
그녀를 향한 큰 소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주점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병원에 갔다 왔어"
"어디가 아픈데 그래, 지금은 괜찮아?"
"아니, 지금도 아파, 오늘
산부인과에서 수술하고 왔어"
"너 미친 거 아냐? 그럼 쉬어야 할 것 아냐"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 집 없어, 이 곳이 집이야......"
너무 황당하고, 마음이 아파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저 멍하니 그녀 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한 순간의 실수로 이
세계로 발을 들여 놓았다고 했다. 그녀는 처음 접대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는 악마를 밀치고 속옷만
입고 맨발로 뛰어 나온 기억을 회상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이 생활을
젖어 든 것이다. 그녀의 사연을 들으면서 조금씩 이 생활에 환멸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마 뒤, 그녀는 그 곳을 떠났다.
얼마 뒤에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녀는 네모난 액정유리에
단어들을 꽉 채워서 보냈다. 나도 가끔씩 그녀처럼 답장을 보내곤 했다.
3개월 동안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아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혼자 있던 나에게 그녀의
문자 메세지는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더운 여름 날이었다. 폐수처리장 위에서 나는 미생물과 폐수가
처음 만나는 반응조 위에서 둥둥 떠오른 물체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태양은 콘크리트 위를 뜨겁게 내리
쬐고 있었다. 둥근 창이 있는 모자를 써도 바닥에는 올라오는 열기는 막지 못했다. 푹푹 찌는 열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깊은
반응조 위에 떠오른 물체들이 보였다. 똥과 뒤엉켜 있었지만 알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욕정을 온전히 받아낸 콘돔이었다. 나는 잠시 어제
그녀에게 온 문자를 떠올렸다.
"보고 싶다, 이번 주에 만날까?"
처음으로 짧게 온 메시지였다. 아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잠시 동안 그녀 얼굴을 떠올렸다. 연민인지 욕정의 대상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뜰채로 축 늘어진 콘돔을 건져 올렸다. 욕정을
채우기 전까지 화려하던 모습이 초라한 형태로 빨간 다리이 위에 철퍼덕 하고 떨어졌다. 온갖 욕망과 욕정들이
결국 똥과 함께 버려진 모습이다. 배설된 생명들은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똥이 되어 버렸다. 검은 폐수 위로 또 다른 물체가 보였다. 하얀 패드에 날개가 달려있다. 그리고 붉은 색이 비쳤다. 건져내기 위해 뜰채를 깊숙이 넣으려고
허리를 구부리는 순간, 내 몸에서 어떤 물체가 출렁이는 폐수 속으로 떨어졌다. 지난 주에 새로 구입한 핸드폰이 가슴 주머니에 있다는 사실이 스치고 지나갔다.
"빌어먹을", 갑자기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먹었던 수박들이 몸 속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토하고
나서야 현기증이 가라 앉았다. 똥은 저장해 놓은 모든 사람들을 함께 삼켜버렸다. 나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다. 누군가 전화를 받을 것만 같았다. 똥 속에 헤엄치며 살고 있는 미생물이라도 말이다. 익숙한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음성 메시지로 넘어갔다. 나는 말했다.
"이제 너와 헤어지련다, 너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쾌락을 쫓게 만든 것은 그 누구도 아니었다. 내 안에 메피스토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뒤로 그녀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아니 연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파우스트가 만난
그레트헨 모습일까? 헬레나의 모습일까? 아니면 메피스토가
될 수 있었을까? <파우스트>의 '천상의 서곡'에서 주님이 메피스토에게 파우스트의 타락을 허락하면서
말했다.
그의 영혼을 근원에서 끌어내어
만일 그것을 만일 붙잡을 수 있다면,
어디 너의 길로 유혹하여 이끌어보려무나.
하지만 언젠가는 부끄러운 얼굴로 나타나 이렇게 고백하게 되리라.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다. (3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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