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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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초능력’이 있다고!
다섯 살이 되어 말문이 트인 작은 아이가 말했다.
ㅡ 언니는 똑똑한데 나는 왜 안 똑똑할까?
다섯 살 아이에게 아홉 살 언니는 한없이 멋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한없이 작게 만드는 존재였다. 작은 아이는 똑똑한 큰 아이에 가려 점점 더 작아지는 듯 했다. 의기소침해진 작은 아이와 단둘이 도서관을 향했다.
ㅡ 수린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골라와. 엄마가 다 읽어줄게.
아이는 <나는 둘째입니다>, <왜 내 것만 작아요?>, <내 초능력이 사라진 날> 세 권을 골라온다. 한 권 한 권 함께 읽으면서 작은 아이의 마음이 전해 오는 듯 했다. 말이 느려 표현은 못했지만 둘째라 서러웠던 점이 분명 있는 것 같았다. 똑똑한 언니로부터 또 똑똑한 언니에게 매번 감탄하는 엄마로부터 작은 아이는 소외감을 느껴왔던 것이다.
ㅡ 엄마, 언니는 초능력이 있는데, 나는 왜 초능력이 없을까?
ㅡ 누구에게나 초능력은 있어. 수린이는 어떤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어?
ㅡ 뭐든 쓱싹쓱싹 그리는 손!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아이가 직접 고른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샀다. 글자보다는 그림에, 말보다는 표정에, 성취보다는 관계에 민감한 작은 아이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 궁금했다.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난 깨달았어요.
내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란 걸요.
그래서 난 내 초능력을 펼치기 위해
쉬지 않고 연습했어요.
물론, 처음에는
여러 번 실패했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드디어 성공했어요!
ㅡ 미카엘 에스코피에 <내 초능력이 사라진 날> ㅡ
작은 아이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깨달은 것 같았다. 자신이 평범한 아이가 아니란 사실을. 그리고 ‘뭐든 쓱싹쓱싹 그리는 초능력’을 펼치기 위해 매일매일 그리기를 연습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조금씩 언니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기만의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마틸다’가 되고 싶어!
우리집 두 아이는 마틸다에 열광한다. 열 살 큰 아이와 여섯 살 작은 아이가 사랑해 마지않는 마틸다! <마틸다>를 한글로 읽고, 원서를 사서 영어 원문으로도 읽고, 영화 ‘마틸다’를 서른
번도 넘게 본 것 같다. 그러더니 아예 로알드 달 전집을 빌려 전작주의로 읽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틸다는 세 살 때 신문을 읽고, 다섯 살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까지 읽어 내는 독서광이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TV광에다 돈만 밝힐 뿐 마틸다에겐 관심도 없다. 초등학교도 마틸다가 귀찮아서 보냈다. 그런데 그 학교는 더 이상하다. 다 엽기 거인 트렌치불 교장 때문이다. 드디어 어른들에 대한 마틸다의 통쾌한 복수가 시작된다. 엄마 아빠를 골탕 먹이고 트렌치불 교장을 골려 준다.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 마틸다는 교장을 쫓아내기에 이른다. 마틸다가 엄마 아빠를 골려 주고, 트렌치플 교장 선생님을 골려 주는 장면은 봐도 봐도 통쾌하다.
ㅡ 마틸다에게 어떻게 초능력이 생긴 걸까?
ㅡ 책을 많이 읽어서
두 아이가 동시에 대답했다. 도대체 책을 얼마나 읽으면 초능력이 생기는 걸까? 정말 초능력이 생겨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들을 골탕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틸다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여행했고, 아주 흥미로운 삶을 살아가는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다. 마틸다는 요셉 콘래드와 함께 그 옛날 돛을 단 범선을 타고 항해를 떠났고, 헤밍웨이와는 아프리카로 떠났으며, 키플링과는 인도를 탐험했다. 영국의 작은 마을에 있는 자기의 작은 방에 앉아 있으면서 마틸다는 세계 곳곳을 여행했던 것이다.
마틸다는 책을 읽으면서 엄마 아빠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열었다. 만약 엄마 아빠가 디킨스나 키플링의 책을 조금이라도 읽는다면, 인생에는 사람을 속이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텐데.
ㅡ 로알드 달 <마틸다> ㅡ
로알드 달의 <마틸다>는 놀라운 작품이다. <학교 없는 사회>에서 이반 일리히는 “인간의 일부분을 아이들이라는 범주로 분류하는 것만으로써 우리들은 현재까지 그들을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에 복종시킬 수 있었다” 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학교는 아이들에게 그 단계에 맞는 사고만을 주입함으로써 나머지 다른 능력을 몽땅 회수해버린 것이다. 마틸다는 어른과 교사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연령별 단계에 맞는 사고의 주입을 거부함으로써 나머지 다른 능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독서광이었던 어린 아이 마틸다는 그렇게 초능력을 발휘했다. 초능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배움에 대한 열망이 아닐까. 배움에 대한 열망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마틸다>는 그것을 보여준다.
온 가족이 다 함께 ‘호모 쿵푸스!’
초능력을 믿고, 마틸다처럼 독서광이 되고 싶어 했던 아이들도 고학년이 되면, 책을 읽는 것에 멈칫하게 된다. 책의 힘을 믿고 매일 밤 책 읽어주기를 고수했던 엄마도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책 읽어주는 것에 멈칫하게 된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의 저자 고미숙에 따르면, 바로 ‘학교식 공부’가 짜 놓은 장막에 걸려든 것이다.
ㅡ 아직도 책 읽혀요? 이제 슬슬 공부 시켜야죠.
ㅡ 맞아요. 공부시키려면 학원가가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이사가야 할 것 같아요.
초등 4학년을 앞둔 엄마들의 대화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이미 ‘학교 공부’는 어려워진다.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려면 선행학습을 어느 정도 해 두어야 한다. 그 말은 공교육을 따라가기 위해 사교육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니, 내 아이만 학원에 안 보내도 될까 불안한 마음도 든다. 우린 왜 이토록 ‘학교식 공부’가 짜 놓은 장막 안에서 허우적대는 것일까. 그 장막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금지의 선’도 아닌데 말이다.
학교는 20세기 초 근대 국민국가의 도래와 함께 시작되었다. 중세의 신분제에서
해방된 사람들을 국민국가가 요구하는 근대적 주체로 재탄생시키는 가장 첨단의 제도적 장치가 바로 학교였던 것. 그
때 이후 학교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해져 지금은 누구도 ‘학교 없는 사회’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사실 학교는 어디까지나 20세기
근대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정말로 학교식 공부의 대안을 꿈꾼다면 근대적 제도 교육의 틀을 넘어서는
탈근대적 운동이 요구된다.
고전이란 시대의 통념과 억압을 뚫고 삶과 사유의 눈부신 비전을 탐색한 전위적 텍스트를 말한다. 고전이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의미만을 구성할 수 있는 건 바로 그 전위적 열정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전이야말로 진정, ‘미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은 늘 새로운 얼굴로 되돌아온다. 즉, 그것은 과거로부터 온 것이지만 늘 우리에게 도래할 시간에 대해 예고해준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고전! 고전의 전위성에서 머지않아 ‘지금, 여기’로 도래할 삶의 지혜와 비전을 길어 올릴 것. 이것이 학교식 공부, 근대적 교육을 넘어 새로운 ‘지도 그리기’에 나선 ‘호모 쿵푸스’의 전략이다.
ㅡ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ㅡ
왜 고전인가? 한 인간이 평생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은 길어야 백 년 남짓이다. 하지만, 고전은 협소한 시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궤적을 조망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을 탐구하는 데도, 동서고금의 지혜를 넘나드는 데도 고전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고전은 그 자체로 우주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고 싶지 않은 아이들, 성적과 입시의 중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청소년들은 새로운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 학교식 공부 너머 ‘새로운 지도 그리기’에 나서야 한다. 자신만의 맞춤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 마틸다처럼!
배움을 사랑했던 사나이에게서 배우다
공자나 맹자가 살던 고전의 시대에 좋은 부모란 자식에게 훌륭한 스승을 찾아주는 존재였다고 한다. 멘토의 붕괴, 바야흐로 멘붕의 시대, 훌륭한 스승을 찾는 일은 새로운 공부법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겐 훌륭한 스승이 남긴 훌륭한 텍스트, 고전이 있다. 고전을 통해 스승을 만날 수 있다.
공자는 <논어>의 공야편에서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오직 배움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고라고 말했다. 공자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목적으로 평생 동안 배우고 가르치는 데 전념한 최초의 인물이다.
<논어>의 학이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의 옹야편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논어>의 이인편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논어>의 명문장들은 배움은 기쁜 것이고, 좋은 것이고, 즐거운 것이라 말한다.
<논어>의 양화편에서 “인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지혜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방탕한 사람이 되고, 믿음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남에게 해가 되고, 정직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각박해지고, 용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난폭해지고, 굳센 것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과격해진다.”라고 말했다. 어짊, 지혜, 믿음, 정직, 용기, 굳셈은 모두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갖추고도 배움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결국 해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은 그만큼 중요하다.
공자가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배움의 기쁨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서양에서 학교를 말하는 ‘스쿨’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여가’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듯, 배움은 곧 기쁜 것, 학교는 곧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 즐겁지 않은 배움은 기쁨이 될 수 없으며, 즐거움을 잃은 배움은 진정한 배움이 아니다. ‘학교식 공부’가 짜 놓은 장막 너머 새로운 지도 그리기에 나선 부모라면, 부모가 먼저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갖고 책 속에서 스승을 찾으며, 배움이 곧 즐거움이라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환경을 만들어 자녀들도 배우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체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배움으로써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을 공자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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