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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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즉 직장인이 되기 이전에 내가 경험한 음식들은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내가 먹는 먹거리라는 것은 고작해야 집에서 만들거나 학교 앞 식당 혹은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 접하는 일상적인 밥과 반찬들이 대부분이고 가끔씩 주문이나 외식을 통해 먹는 피자나 치킨, 고기 정도가 특별했다.
지금은 도처에 깔린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장소들을 몇 년 전에 나는 알지 못했고 그곳의 주요 고객이라는 요즘의 대학생들만큼 먹거리에 대한 장소와 경험도 풍부하지 못한 완전히 시골스런 먹거리 패턴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 나 스스로 돈을 벌게 되고, 다양한 식사 자리가 생겨나기도 하고, 정식으로 데이트도 하게 되면서 내가 접할 수 있는 먹거리 경험 스펙트럼은 순식간에 넓어졌다.
물론 TV, 잡지등의 먹거리에 대한 집중적 소개에 따른 관심의 대중화는 물론 음식점의 전문화 및 독특성이 트렌드를 이루는 분위기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선보이는 다양한 레스토랑들의 등장 또한 한 몫 하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내가 비오는 날이나 속에서 느끼한 걸 원할 때 떠올리는 음식들의 수준이 김치전, 파전과 피자, 통닭의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먹거리 경험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서, 느끼한 게 먹고 싶은 날에는 모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파는 오지치즈 후라이즈와 샤워 쉬림프가 생각나고 비오는 날에는 고대 앞 XXX 국수집의 매콤한 비빔 국수와 빈대떡이 땡긴다. 또 김치찌개가 생각나면 반드시 압구정에 있는 그곳이 생각나 기를 쓰고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점차 다양한 음식과 장소의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음식의 종류와 수는 늘어나게 되었고, 게다가 그 음식을 잘하는 곳, 즉 장소에 대한 선호도까지 덧붙여 지면서 나의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점점 복합적이고 만족시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먹거리들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욕구가 증가하는 만큼 나의 신체적, 정신적인 자유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장소에서 파는 땡기는 음식들을 입에 집어 넣다가도, 3,4만원이 훌쩍 넘는 음식의 가격을 계산할 때 내가 돈을 벌지 못한다면 이런 먹거리 경험들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 생각들이 종종 들곤 하는 것이다.
즉, 먹거리에 대한 경험들을 충족시키는 것의 하나의 수단으로 내가 나의 직장 생활을 해나가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든 것이다. 아니 먹거리뿐 아닐 것이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갖거나 원하는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또 나는 현재의 직장에서 마약과 같은 월급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할부금이 남아서,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직장에 얽매이고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도 점차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내가 추구하는 바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위해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버티는 장소로서의 직장 말이다.
과도한 먹거리, 물건, 놀이등의 경험이 욕구를 넘어선 욕망을 부추기게 되면서 나의 정신적 여유와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은 더욱 작아지게 된 것은 아닌지.
과도한 욕망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자유도는 줄어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 할 수 없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 없이 밀어닥쳤다 – ‘칼의 노래’ 中 “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절절히 묘사한 ‘끼니’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 ‘끼니’는 삶을 위한 기본 욕구의 해결이 아닌 과도한 욕망의 상징이 되었다.
즉, 소비가 다양화, 고급화 됨으로써 그 속 서 있는 나 또한 그러한 욕망에 길들여 지고 그것들을계속 지향하고 추구하다 보니 똑똑해야 할 현대인의 삶인 내 인생이 되려 더욱 피곤해 지고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참고 벌어야 한다’ 가 된 것이다.
현재와 쾌락과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 그러한 과도한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정신적 자유도를 보류하고 스트레스를 감내해야만 하는 직장 생활.
나 스스로의 과욕 내지 이중성이 아닐까.
먹거리를 떠올리면서, 알고는 있지만 현재 수준의 생활을 버리기 힘든 나약한 모습의 나를 새삼 마주서게 된다.
안정적인 밥벌이가 만족시켜 주는 다양한 욕구 내지 욕망들을 과감히 털어 버리고 직장을 나선 사부님 및 내 옆 신랑의 순수함과 진실함, 고결함이 다시금 문득 존경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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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도처에 깔린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장소들을 몇 년 전에 나는 알지 못했고 그곳의 주요 고객이라는 요즘의 대학생들만큼 먹거리에 대한 장소와 경험도 풍부하지 못한 완전히 시골스런 먹거리 패턴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어 나 스스로 돈을 벌게 되고, 다양한 식사 자리가 생겨나기도 하고, 정식으로 데이트도 하게 되면서 내가 접할 수 있는 먹거리 경험 스펙트럼은 순식간에 넓어졌다.
물론 TV, 잡지등의 먹거리에 대한 집중적 소개에 따른 관심의 대중화는 물론 음식점의 전문화 및 독특성이 트렌드를 이루는 분위기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선보이는 다양한 레스토랑들의 등장 또한 한 몫 하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내가 비오는 날이나 속에서 느끼한 걸 원할 때 떠올리는 음식들의 수준이 김치전, 파전과 피자, 통닭의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먹거리 경험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서, 느끼한 게 먹고 싶은 날에는 모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파는 오지치즈 후라이즈와 샤워 쉬림프가 생각나고 비오는 날에는 고대 앞 XXX 국수집의 매콤한 비빔 국수와 빈대떡이 땡긴다. 또 김치찌개가 생각나면 반드시 압구정에 있는 그곳이 생각나 기를 쓰고 달려가기도 한다.
이처럼 점차 다양한 음식과 장소의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음식의 종류와 수는 늘어나게 되었고, 게다가 그 음식을 잘하는 곳, 즉 장소에 대한 선호도까지 덧붙여 지면서 나의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점점 복합적이고 만족시키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먹거리들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욕구가 증가하는 만큼 나의 신체적, 정신적인 자유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장소에서 파는 땡기는 음식들을 입에 집어 넣다가도, 3,4만원이 훌쩍 넘는 음식의 가격을 계산할 때 내가 돈을 벌지 못한다면 이런 먹거리 경험들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 생각들이 종종 들곤 하는 것이다.
즉, 먹거리에 대한 경험들을 충족시키는 것의 하나의 수단으로 내가 나의 직장 생활을 해나가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든 것이다. 아니 먹거리뿐 아닐 것이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갖거나 원하는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또 나는 현재의 직장에서 마약과 같은 월급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할부금이 남아서,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직장에 얽매이고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도 점차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내가 추구하는 바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을 위해 쉽게 발을 빼지 못하고 버티는 장소로서의 직장 말이다.
과도한 먹거리, 물건, 놀이등의 경험이 욕구를 넘어선 욕망을 부추기게 되면서 나의 정신적 여유와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은 더욱 작아지게 된 것은 아닌지.
과도한 욕망만큼 내가 누릴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자유도는 줄어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 할 수 없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 없이 밀어닥쳤다 – ‘칼의 노래’ 中 “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절절히 묘사한 ‘끼니’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 ‘끼니’는 삶을 위한 기본 욕구의 해결이 아닌 과도한 욕망의 상징이 되었다.
즉, 소비가 다양화, 고급화 됨으로써 그 속 서 있는 나 또한 그러한 욕망에 길들여 지고 그것들을계속 지향하고 추구하다 보니 똑똑해야 할 현대인의 삶인 내 인생이 되려 더욱 피곤해 지고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참고 벌어야 한다’ 가 된 것이다.
현재와 쾌락과 수준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 그러한 과도한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정신적 자유도를 보류하고 스트레스를 감내해야만 하는 직장 생활.
나 스스로의 과욕 내지 이중성이 아닐까.
먹거리를 떠올리면서, 알고는 있지만 현재 수준의 생활을 버리기 힘든 나약한 모습의 나를 새삼 마주서게 된다.
안정적인 밥벌이가 만족시켜 주는 다양한 욕구 내지 욕망들을 과감히 털어 버리고 직장을 나선 사부님 및 내 옆 신랑의 순수함과 진실함, 고결함이 다시금 문득 존경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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