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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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서 사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창조적 소수의 무리, 사례를 수유+공간너머로 추천한 것은 천개의 눈, 천개의 길을 읽고 있던 차에 지인을 따라가서 고병권씨의 강연을 인상 깊게 들었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인문학을 함께 공부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상을 나누는 공동체의 삶을 지향하는 그들이 시종 궁금했던 것이다.
위치를 찾기가 쉽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남산 수유+공간너머에 도착했다. 외국인학교와 같은 건물의 한 층, 전 층을 빌려 쓰는 수유+공간너머와 외국인 학교가 어쩐지 부조화 처럼 여겨졌다. 고병권씨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부러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나는 건물의 이곳저곳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모든 기부물품을 공개한다는 원칙대로 복도 게시판에는 크고 작은 기부물품내역과 지출내역들이 공개 게시되어 있었다.
서당 아이들의 글 솜씨. 강의 안내 등이 게시된 복도는 제법 길어 상당히 넓어 보였는데 후에 고병권씨와 인터뷰 중에 500평의 규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속장소인 카페를 물어 자리를 잡자 고병권씨가 오셨다. 그는 몇 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였고, 깊어진 것처럼 보였다. 카페는 여러 장의 LP판과 서적, 그리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실내는 앤틱가구로 편안한 분위기 였다. 그는 커피를 내 놓았고, 가지고 간 책 '천개의 눈, 천개의 길'에 사인을 받았다. 사인을 하는 중에 나눈 이야기로 미루어 니체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애정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작가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와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취재는 자꾸 핵심을 벗어나 곁가지로 흘렀고, 인터뷰는 세 시간이나 계속 되었다. 수유+너머의 역사가 고병권 개인의 역사와 맞물려 있기에 풀어낼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수유+너머는 고전 평론가 고미숙씨가 '수유 연구소'를 먼저 개설하고 있던 차에 '서사연(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이진경, 고병권 등이 합류하며 '수유+너머' 가 되었다.
고미숙씨와는 어떻게 만났나?
성이 같아 종종 가족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데 1997년에 처음 만났다. 당시 25세의 나는 니체에 빠져서 내가 아는 것이 다인 듯 강의에 힘을 주고 있을 때였다. 학부시절부터 동경해 왔던 서사연(서울사회과학연구소) 에서 애니메이션 강의를 하는 중에 고미숙 선생이 강의를 들으러 왔다. 주로 어린 청중 중에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이가 팔짱을 낀 채 진지하게 강의를 경청해 강의하면서도 긴장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업이 끝나고, 누군가의 소개로 왔다는 선생과 인사를 나누고 뒤풀이까지 함께 했다. 97년도에 석사 마칠 즈음, 서사연이 해체되었고, 강의 할 무대도 사라졌다. 마침 고미숙씨가 내가 만든 공간이 있는데 함께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해 주셨다. 이진경씨와 내가 함께 하고 있던 공간너머와 수유연구는 그렇게 해서 수유+너머로 재탄생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현재까지 12년이나 계속되고 있다. '코뮨주의 선언' 이라는 책을 낸 이진경, 고병권. 그들의 공동체는 이후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책을 쓰고 그 책을 실행지침으로 삼는 것, 누구나 책을 쓸 수는 있지만, 그 책대로 삶을 작동시키는 이는 소수다, 그것이 수유+공간너머의 힘일 것이다. 그 책을 미리 읽고, 인터뷰를 하면서 앞으로의 행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고병권씨를 인터뷰 하고 돌아오다 들었던 생각은 고미숙, 이진경씨를 모두 인터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견해를 들어봐야 그들이 지향하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나 과정에 대한 다른 기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되도록 빨리 정리해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