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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05시 27분 등록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성에 갔다가 책꽂이에 있는 <식객>이란 만화책을 보자 한 보따리 싸서 들고 왔다. 2주일을 만화책으로 보내야 했다.  그래 놓고서 만화책을 리뷰로 올려야 할지에 대해서 갑자기 격에 맞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흔 다섯 개의 이야기,  그 스토리 구성이나 전개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나 평소의 습성처럼 내용에 묻혀 버린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재미있게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뜨끔했다.

 

뱅쿠버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이젠 미련을 떨칠만도 하건만 난 아직도 시합을 하는 선수들을 보면 꿈을 꾼다. 초아선생님 말씀대로 철이 들어야 하는데 난 철이 들지 못한다. 무엇을 해도 펜싱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삶이 되어버렸다. 결국엔 만화책을 보면서도 떠올리는 것은 훈련과정이나 시합장의 경쟁상황이었다.

 

음식으로 세상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음식으로 펜싱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전술이나 전략이나 삶에 대한 가치나 시각들 말이다. 질적 연구에서 말하는 전이가능성 말이다.

 

무엇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한데 어떻게 써야 할 지가 아직도 명확하지가 않다. 아직도 많은 실험과 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료를 모으고 현장을 취재하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작가를 보면서 그리고 만화를 만화에 대한 종래의 관념에서 벗어나 창조적으로 그리고 책으로 구성할 수 있는 작가의 시도를 통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내가 쓰려는 책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그러자 머리 속이 복잡해져 버렸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겁없이 달려들었었다. 이리저리 쥐어 터지면서 부었던 간뎅이는 온데 간데 없고,.지금의 수준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슬며시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삐죽거린다

 초보자를 벗어난 선수가 겪는 것처럼 이렇게 해봐도 안 되고 저렇게 해봐도 안 되는 진퇴양난의 중간치기 수준같은 거다.  그 얼치기 수준은 배우긴 배웠는데 확신이 없는 어설픈 상태여서 쉬 주눅이 들려 버리는 그런 상태다.
 

이것 저것 바쁜 와중에 세희가 올려놓은 리뷰를 읽다가, 어쩐지 내 모습을 보는 듯한  그 정리해 놓은 문구들에 캥기는 지라 그 길에 달려가 책을 샀다. 내 모습에 세상에 들통나는 것 같아서... 마치 내가 모든 책을 떨이하는 기분으로... 

 

한 가지에만 매달려 살아온 오랜 시간 때문에 멀티 테스킹이 안 되는 나는 사는 일에 늘 혼란스럽다. 변경연의 생활이 그런 나에게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창조적 부적응자로 불리우는 또 다른 나를 바라보면서 나만 그런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 그 남의 불행으로부터 나의 행복을 느끼는...
아무튼 나는 카타르시스와 희망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렇게  스승의 그늘에서 구원(舊怨)에 찬 착각과 분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안전빵의 삶에서 눕고 싶어 했는데,

 

원하던 것을 손에 쥐고 나서야 그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결국은 그것을 얻고 나서야 내가 왜 그것을 갈망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안전하다는 이유로 생존이라는 이유로 나를 몰아 세우기는 했지만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생명을 안전하게 이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직업을 다시 갖고 잃었던 관계들을 정리하거나 회복하고, 이젠 배부르고 등 따뜻한데, 나는 또 먼 곳을 쳐다보고 있다. 나는 아직도 내 몸이 있는 곳에 존재하지 못하고 내 꿈, 사랑했던 것들이 숨쉬고 있는 거친 광야 같더라도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털이 솟구치며 섬뜩한 순간들이 심장을 방망이질 하게 하는 갈증과 몸서리치던 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온통 한 곳에 몸과 마음을 모으고 매진할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자유이며 마음의 평온이었던 것이다.

 

쉰 살이다. 자다가 몸에 쥐가 나서 깨어나 일어서서 방안으로 서성이며 긴 새벽을 지새우면서 자리에 앉으면 엉덩이에 자석이 붙어 있어서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엉거주춤하다가 일어섰다.
그럴거야...

도망치고 싶었던 그 몸서리치는 기억들로부터 내가 헤어날 수 있는 것은 그 기억과 정면으로 대면하고 화해하는 것이다. 눈을 감아도 등을 지고 외면해도 내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아직, 내 안의 누군가와의 화해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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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2.22 08:05:39 *.255.244.253
연세에 비해서, 사진으로 뵜을때는 훨씬 젊어보이시던데요.

항상 글에서,
듬직한 느낌이 듭니다.

듬직한 조언과 믿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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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2.22 20:53:28 *.131.127.100
저는 
맑은 님의 글쓰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내용뿐아니라 간결하고 명료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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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2.22 08:19:41 *.160.33.180

  쓸데없는 정념이 들때가 있다.  시달리기도 한다.  감정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보아라.  감정은 정신으로 명석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순간 더 이상 쓸데없는 감정으로 남지 않는다.  정신이 감정을 조절할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라.  늘 그 생각을 품고 살아라.  너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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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2.22 21:02:59 *.131.127.100
등대처럼 항상 거기 계신다는 거 알고 있어서 기쁨니다.
 
누군가에게 잘보이고 싶어하는 것이 어린애 같은 유치한 생각이라고
치부했었는데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
스승님께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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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0.02.22 09:55:56 *.98.147.108
오빠, 눈이 오는데도 시절인연이 닿아야 하는거래.
천지만물 그 때가 도래하지 않으면 인과 연을 이어갈 수 없다고.
無我
오빠가 여지껏 알던 방식이나 생각들을 내려놓고
오직 이야기 스스로 글이 되도록 그 길을 비켜줘봐봐..
오빠의 무의식 세계에 멤도는 이야기들이 자연히 세상에 흘러나오면
그 이야기를 책꼴로 만드는 건 편집자의 몫이라 생각해.
사실 이 말은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어.
우리 모두 결국 같은 고민을 안고 살고 있잖아.
세상 모든 일에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 말이야. ㅋㅋ

근데 오빠. 난 믿어.
"오빤 할 수 있어!" ^^
금욜날 보자. 통영 바닷가에서 졸업을 기념하며, 새 출발하는고야. 
오빠,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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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2.22 21:09:39 *.131.127.100
정현아!
내가 어린양을 부리고 있다,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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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13:08:36 *.246.146.82
성님은 통영, 거제에 가면 모르긴 몰라도 선배 칼잡이 이장군의 검술을 생각할 사람이니... 통영 가거든 세병관(洗兵館)에 꼭 들러서 살짝 씻어 내고 오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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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2.22 21:14:37 *.131.127.100
아우!
나가 이참에 가서 마빡 속을 업그레이드 해 와야 것제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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