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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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주시지. 왜 힘들게 고생을 시키는걸까?'
첫째는 사십일 동안 바람 거센 사막을 걸었고, 낯선 풍경의 마을을 수없이 지나서, 마침내 고즈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저택에 이르렀다.
한 눈에 보기에 잘 정돈된 단아한 집이었다. 그 저택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벌어지던 중이었다. 장사꾼들이 들락거리고, 사람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식탁에는 산해진미가 그득했고, 집안 구석구석은 악단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음악이 넘실거렸다. 저택은 온통 현자를 만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군중사이로 현자로 보이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째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두 시간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화려한 볼거리와 넘치는 먹을거리에 혼이 빠졌지만 나중에는 점점 지루해졌다. 마침내 자기 차례가 되었다.
현자는 첫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의 비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우선 파티를 즐기고 두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그런데 그전에 지켜야 할 일이 있소. 이곳을 구경하는 동안 이 찻숟가락의 기름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되오.”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름 두 방울이 담긴 찻숟가락을 첫째에게 건네주었다.
첫째는 어차피 기다리게 된 마당에 첫눈에 반한 황홀한 집안을 꼼꼼히 살펴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동안 첫째는 이런 집을 꿈꿔왔다. 그런데 걸을 때는 물론이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는 더욱이 기름이 출렁거려 움직이기가 거북했다. 찻숟가락에 온 정신이 쏠리는 바람에 집안을 제대로 둘러볼 겨를조차 없었다. 두 시간 후 겨우 현자에게로 돌아왔다.
현자는 첫째에게 물었다.
“그대는 내 집 식당에 있는 정교한 페르시아 양탄자를 보았소? 정원사가 십 년 걸려 가꿔놓은 아름다운 정원은? 서재에 꽂혀있는 양피지로 된 훌륭한 책들도 좀 살펴보았소?”
첫째는 당황했다. 찻숟가락에 온 정신을 빼앗겨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것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현자는 당연한 듯 말을 했다.
“그렇다면 다시 가서 내 집의 아름다운 것들을 좀 살펴보고 오시오.” 그리고 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살고 있는 집에 대해 모르면서 사람을 신용하기는 어려운 법이잖소.”
이제 첫째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찻숟가락을 들고 다시 저택을 구경했다. 이번에는 저택의 천장과 벽에 걸린 모든 예술품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정원과 주변의 산들, 화려한 꽃들, 저마다 제자리에 꼭 맞게 놓인 예술품들의 고요한 조화까지 구석구석 감상하였다.
다시 현자를 찾은 첫째는 자기가 본 것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맡긴 기름 두 방울은 어디로 갔소?” 현자가 물었다.
그제야 숟가락을 살핀 첫째는 기름이 흘러 없어진 사실을 알아차렸다.
현자가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줄 가르침은 이것뿐이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소이다.”
‘미리 알려주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진짜 현자가 맞는 걸까?’ 첫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사이 현자가 덧붙였다. “내가 그대를 오래 기다리게 한 점이 너무 미안해서 사죄의 의미로 황금 두 덩어리를 주겠소. 돌아갈 때 여비에 보태어 쓰시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은 도적떼가 많아 매우 위험하니 조심하시기 바라오.”
첫째는 황공한 마음이 들었지만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속으로 자위하였다. 짐짓 황금에 욕심이 없는 체하면서 받아들고 집을 향해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