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낭만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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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 폭군 vs 영웅
석대는 아이들이 가진 것 중에 탐나는 물건이 있으면, “야, 그거 좋은데.”로 달라는 말을 대신했다. 아이들은 대개 그 말 한 마디에 손에 든 것을 석대에게 넘겼으나. 그래도 버티는 아이가 있으면 다음 번 석대의 말은 “그것 좀 빌려 줘.”였다. 그 말의 본뜻은 “내놔, 임마.”쯤 될까. 그리 되면 누구도 그걸 내놓지 않고는 못 배겼다. 이렇게 해서 석대는 언제나 아이들로부터 ‘뺏는’게 아니라. ‘얻을’뿐이었던 것이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이문열> 중
남자중학교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던 날. 급식당번을 하겠다고 제일 먼저 손을 든 아이. 그것이 유동호라는 아이를 만난 첫날의 기억이다. 학교 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식당이 없는 곳이 많아 교실에서 학생들 스스로가 배식을 해서 급식을 먹는다. 그래서 급식당번이라는 봉사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첫날 점심을 먹기전에 급식당번을 정하는데 5명을 뽑는데 6명이 손을 들었다. 손을 든 6명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어떤 아이가 자신은 포기하겠다고 손을 내린다. 그때는 영문을 몰랐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새학기가 시작되고 1주일이 채 지나기 전이었다. 처음엔 학급의 많은 아이들이 배식을 받은 양이 매우 적어 보이는데, 항상 마지막에 받는 급식당번 아이들의 식판엔 반찬이 넘쳐나서 ‘급식당번 아이들이 처음이라 서툴러 적절하게 배식을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3일쯤이 지났는데도 변함이 없는 서툴러 보이는 배식. 급식당번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 그랬구나~’ 바로 답이 나왔다. 급식당번 아이들은 배식이 서툰 것이 아니라, 잔머리의 천재들이었다. 자신들이 마지막에 급식을 받게 되니 앞에 나누어주는 배식의 양을 심하게 줄이고, 항상 자신들은 먹다가 버릴 정도의 양을 받도록 합의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급식당번 5명은 모두 학교에서 알아주는 일진(一陣: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은어로 싸움을 잘하는 아이. 또는 그런 아이들로 구성된 학교 내 집단), 소위 말해 짱먹는 아이들 이었다. 그 짱먹는 아이들 중에 1등이 바로 유동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새학기가 시작되고 1달쯤 지날 무렵이었다.
3월말쯤이 되어 환경미화 심사가 있었다. 1년동안 공부할 교실 환경을 아름답게 하자는 취지의 제도이다. 그것을 대비해 반전체가 대청소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청소구역을 정해주고 청소방법을 알려주고 지도를 해도 아이들은 하는 둥 마는 둥 호응이 없어 이 대청소가 언제 끝나나 싶었다. 목이 터져라 청소하자라는 말을 하는데, 유동호가 ‘언제 종례해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대청소 끝나면 바로 종례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유동호가 내가 들고 있던 대걸레는 자신이 들더니 반전체에 소리를 친다. ‘빨리 청소해!’ 그리고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너는 걸레를 빨아오고 너는 책상을 나르고 너는 바닥을 쓸고...’의 지시사항을 내리며 대걸레 질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녀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30분 내내 청소하자고 목이 아프도록 떠들어대던 것이 무색하게 30분만에 깔끔하게 대청소를 끝내고 종례를 받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허~ 참~’ 어이가 없다. 아이들에게 집에 가라고 말하면서 ‘이 녀석과 1년 동안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이 녀석과 친해져야 나의 1년 학급운영이 편해지겠다는건 본능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동호는 일진들이 대체로 그렇듯 좋고 싫음이 분명한 아이였다. 본인이 싫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고, 수가 틀리면 학교를 그냥 나가버리기도 했다. 반에서 그런 아이 1명이 생기면 전체의 분위기가 흔들린다. 그래서 동호가 학교에서 끝까지 잘 버틸 수 있도록 아이의 상태를 살피고, 작은 칭찬거리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듯 눈덩이처럼 칭찬을 했다. “거봐 역시 동호는 잘할 줄 알았어.”, “동호야 얼굴값 좀 해봐. 잘생긴 얼굴만큼은 공부해야 될 것 아니야~”, 외출하고 싶다는 녀석의 말에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왜 뭐가 필요해? 연필? 여기있어.” 음료수가 먹고싶어 나가겠다는 말에 “좀 있다 교무실로 와”라고 말하고, 녀석에게 줄 음료수에 ‘수업열심히 듣는 동호 멋쟁이~ 파이팅~!!’이라고 쓰인 포스트잇을 붙여 건내주기도 했다. 정말 남자친구한테도 안 부려본 애교를 부렸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것이 나에게만 효과를 본 것일까. 다른 선생님들은 선생님을 무시하는 듯한 아이의 눈빛이 무섭다고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을 듣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 하지만 이제 동호는 나에게 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을 따라주려고 노력하는 그래도 괜찮은 학생이었다. 수학여행을 가서 사회를 보고는 자신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나에게 제일 먼저 묻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사진찍는 것이라며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고 하고,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동호는 겉으로 보면 참으로 남자다운 아이이다. 남자다운 외모에 강한 인상, 강한 성격을 지닌 리더쉽있어 보이는 아이. 하지만 알고 보면 녀석은 사실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린 아이였다. 동호의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의 편차가 매우 크다. 머리는 좋은 데 공부를 하지 않는다. 동호에게는 형이 있다 1살 차이인 형은 항상 전교 1등이다. 모든 선생님들이 녀석의 형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형과 동호를 항상 비교한다. 아마도 동호는 공부를 잘 해도 형을 넘어설 수 없고, 공부로는 관심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부말고 관심받을 수 있는 행동을 계속해서 해왔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표현을 거친 말과 행동으로 해왔을 것이다.
동호를 떠올리면 폭군과 영웅의 갈림길에 서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중3이었던 아이가 올해 고3이 되었다. 아이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가고 있을까.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찾아오는데 그 뒤로 1년동안 소식이 없었다. 1년전의 동호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 군대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찾아보라고 분명히 있을 것이니 조급히 생각하지 말라는 말만 해줄 수 있었다. 영웅에 대한 단어를 떠올리며 우리반의 폭군이자 영웅이었던 동호가 궁금하던 차에 녀석이 싸이월드를 통해 안부를 전해왔다. 고3인데 힘들다고 찾아뵙겠다고 자신은 체대에 가려고 한다고. 체대를 가고 싶다는 녀석의 말에 뛸 듯이 기뻤다. 정말 동호랑 어울린다. 동호의 넘치는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동호에게 연락해주었다. " 군대가 아닌 체대를 가기로 결정했다니 기쁘구나. 너랑 체육인이랑 어울려. 샘은 개념있는 체육인 좋아한다. 멋진 체육인이 될길 바래. “ 녀석에게서 바로 연락이 왔다.
" Yes, Teacher! "
“영웅이, 조력자인 여성에게서 희망과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다.”라는 조셉캠벨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교사로서의 여정 속에서 나는 ‘학생 스스로가 영웅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영웅이 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모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