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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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청춘, 아프니까 청춘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미 청춘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청춘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그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청춘들은 왜 아파야 하는가? 성장통일까? 누구나 겪어야 할 그런 아픔일까? 마치 대부분의 십대들이 ‘사춘기’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같은 이름의 ‘사춘기’라 할지라도 각자가 겪는 사춘기는 모두 다르다. 그 시기도, 아픔의 크기도,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요즘처럼 성장이 빨라진 시기에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사춘기가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내게 사춘기가 있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에게 찾아 온지도 모르게 지나가기도 할 것이다. 나의 사춘기를 돌아보면, ‘반항의 시기’였다. 엄마가 하라고 하면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시기였다. ‘왜 사람들은 내게 무엇을 하라’ 혹은 ‘어떻게 하라’고 명령식으로 얘기를 하거나, ‘사춘기는 다 그런거야’라고 그저 누구나 겪어야 하니까, 너도 겪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만 했는지 모르겠다.
사춘기의 시기가 오면, 대부분의 십대들이 또래 문화가 발달하고, 부모님과 멀어지는 시기를 겪게 된다고 한다. 십대들은 왜 부모와 멀어지게 되는 걸까? 내가 사춘기였던 시절에 부모님과 멀어지게 된 이유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였다. 엄마는 늘 내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니가 이렇게 해서 대학은 가겠냐?’ 라고 얘기했다. 내 얘기를 들으려고 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저 누구나 겪는 것인 것, ‘왜 너만 유별나게 그러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10대 때에는 10대 나름의 고민이 있고, 20대에는 20대 나름의 고민이 있고, 30대, 40대, 50대, 그리고 60대 이후까지도 각자의 나이에서 고민을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난 이들이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란 ‘나도 그랬으니 너도 잘 이겨낼 수 있다.’라는 식의 충고나 조언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10대들이 또래를 찾는 이유는, 그들의 친구에게서 그들에게 너무나 쉽게 충고하고 조언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그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그래,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공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20대 후반에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상황들을 내 또래의 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가 가고 있는 길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 각자와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은 그들 주변에 따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 삶을 까발려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어느 한 명이라도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나도 그런 적 있어.’라고 공감해 주고 따뜻한 손길을 내게 내밀어 주기를 바란다.
아프고 싶지 않다.
나는 왜 아파야 하는가? 왜 ‘누구나 겪는 아픔’이라고 정당화되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견뎌내어야 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삶의 과정들을 ‘아픔’이라는 단어로 명명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의 끝이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진정으로 ‘잘 살고 싶은 어떤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겪을 ‘시행 착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선택을 해야하고, 내게 다가오는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을 한다. 안철수 교수의 말처럼 고민을 하게 되고, 고민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결국 고민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나의 모습’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많은 고민들과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서 알아가고 있을 뿐이다.
고민을 하게 되는 기회도, 다양한 시행착오의 모습들도 청춘이라고 해서 다 같은 모습일수는 없다. 경제력이 받쳐주는 잘난 부모를 만나 남부러울 것이 없는 이들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그저 청춘이란 이름 하나로 묶이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신치’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그 수많은 스펙트럼 중의 하나일 뿐이다.
신치는 현재의 나이기도 하고, 과거의 나이기도 하고, 미래의 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되고 싶은 나이기도 하며, 버리고 싶은 나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양한 나의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상의 나와 현실 속의 나는 때론 굉장히 비슷하기도 하지만, 때론 너무나 이질적이기도 하다.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더라도, 그런 ‘나’라는 사람을 긍정하고 싶다. 크게 아파하지도, 크게 좌절하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하지만 분명 그곳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슬픔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마저 즐길 수 있는 나이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은 세대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춘 콘서트’라는 것을 하고 있는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원장이 ‘이 시대의 청춘들이 겪는 아픔이 일정 부분은 그들 기성세대들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생각해서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청춘 콘서트를 기획하고 시작했던 것처럼, 분명히 그들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 하는 대상인 청춘들이 지금의 이 시대를 기성세대인 그들만큼 쉽지 않게-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또한 누군가는 내 삶에서 자신의 삶을 대입해서 공감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위로와 지지라는 단어를 생각했으나, 이 단어들을 쓰기에는 많이 부족한 글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지지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지지하기에는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너무 작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저 나는 세상을 향해 ‘나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어.’라고 크게 외치고 싶을 뿐이다.
#9. 날개 점검하기
<꼭지1. 낮은데로 가세요. 길을 만드세요>
요즘 그녀는 근무 시간에 오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쓸데 없는 전화이기도 하고, 굳이 당장 받아야 할 필요가 없는 전화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오후, 예전에 그녀에게 일을 같이 하자고 하셨던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이 전화는 받아야 할 것 같아서, 화장실 앞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시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서로에 대한 안부와 근황을 묻는다. 가끔 카페에 들어 가 본다고, 잘 되시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씀을 전한다. 최근에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조금 안정적인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 드리니 왠지 사장님이 약간 아쉬워하는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렇게 느낀 건 그녀의 100% 느낌일 뿐이다. 만약 일을 하고 있지 않거나, 시원찮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다시 같이 일을 해 보자고 전화를 하신 것 같기도 하다. 그녀가 지금 일 하는 곳이 4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이긴 하나, 그걸 얘기하기는 싫었다. 그냥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을 갖고 싶지 않은 마음과, 이미 지나가 버린 기회가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것 같지는 않아서이다. 그렇게 몇 달만에 그 사장님과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사장님이 그녀에게 얘기한다.
“홍대에 안 와요? 우리 가게 놀러오면 술이나 안주 둘 중에 하나는 무조건 50% 해줄게요~!! 놀러와요~!!”
“아, 네. ㅋㅋㅋ.. 언제 한 번 놀러 갈게요~!!!”
전화를 끊고, 당장은 하던 일에 다시 정신을 쏟느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몇 일이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 해 보니, 전화를 끊으면서 할인해 줄 테니 놀러 오라고 하신 그 말씀이 참 고맙다. 단지 5개월 일했던 회사를 다니며 4-5번 정도 얼굴을 봤을 뿐인데, 그 사장님은 도대체 그녀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 그녀는 지금 일 하고 있는 곳이 안정적이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이긴 하지만, 그 동안 그녀가 이것저것 벌려 놓은 일들 덕분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그녀가 받는 월급은 들어오는 즉시 카드값과 학자금 대출 등으로 돈이 전부 나가 버린다. 그래서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전혀 없어서, 지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으로 회사를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 이들에게 그런 직장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왠지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주신 사장님이 그녀가 지금도 놀고 있으면 다시 와서 일을 해 보라고 연락을 하신 것 같아서 사부님께도 편지를 보내 조언을 구하고 며칠 후 출근 길에 그녀는 사장님에게 ‘지금 다른 곳으로 회사를 옮길까 생각 중이니 혹시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는 문자를 남겼다. 시간이 좀 지나 저녁 즈음 되어서야 사장님에게 문자가 하나 왔다.
“낮은 데로 가세요. 길을 만드세요.”
이 문자를 받자마자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녀의 해석은 이것이었다. “아직 고생을 덜 한 것 같으니, 더 고생하고, 니가 살고 싶은 삶을 찾아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해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그녀의 절친인 친구가 다른 해석을 해주었다. “취직은 부탁을 해서 하는 게 아니니 스스로 길을 만들라는 거야.”
아, 그렇구나. 그런 의미일수도 있겠구나.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탓하지 않고 열심히 일할 수 있어야 상황이 바뀌더라도 열심히 할 수 있으며, 상황이 좋아지면 훨씬 더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279” 라는 말을 보니, 그녀는 지금까지 그녀에게 어려운 상황이 올 때마다, 그 상황에서 계속 벗어나려고만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지금 서 있는 그 어려운 상황 안에서 해결방법을 고민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벗어나기만 하면 무언가 다른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미 속해 있는 그 공간에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부족한 경제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일을 하나 더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이 없어서 힘든 근무 시간에는 글을 쓰기로 했다. 어쩌면, 회사에서 일이 없는 상황 자체가 신이 그녀에게 그녀가 쓸 글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쓸 수 있는 시간을 선물로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힘든 상황을 잘 견디어 냄으로써 그녀에게 더 좋은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게 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이 오든 그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생기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꼭지 2. 청춘도 건강해야 >
토요일이다. 오늘도 여전히 아침 일찍 어머니는 나가셨고, 그녀 혼자 집에 있다. 일어나서 씻지도 않고,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오늘 기필코 이번 주 과제 중의 반을 끝내버리겠다는 각오로 책과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작업을 한다. 이상하게 몇 주 전부터 자주 속이 좋지 않다. 무언가 먹으면 바로 화장실에 가기 일쑤고, 체한 것 같은 증상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먹으면 바로 체기가 없어지는 약을 지난 한 달간 10개도 넘게 먹은 것 같다. 그러면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아 살짝 걱정이 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죽을 좀 사달라고 했더니, 집에 있는 찹쌀을 물에 불려 놓으라고 말씀하셔서, 그녀는 전화를 끊자마자 집에 있는 찹쌀을 물에 불려놓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가 와서는 그녀가 불려 놓은 찹쌀을 믹서기에 갈아서 죽을 만들어 주셨다. 밥 한 공기의 반 정도 되는 양을 불렸을 뿐인데 죽으로 만드니 다섯 그릇으로 양이 늘어났다. 한 그릇은 등산을 하러 가시기 전에 엄마가 드시고, 나머지 중에 두 그릇은 그녀가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오래간만에 흰 죽에 간장을 곁들여 먹으니 고소하고 맛있다. 배가 부르자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시 집중 모드. 그렇게 숙제를 하고, 중간에 잠깐 잠이 와서 낮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서 숙제를 하니 벌써 저녁 시간. 엄마가 친구분들과 등산을 하고 들어오셔서 한 마디 하신다.
“너는 꼭 내가 있을 때는 밖으로 나가고, 엄마 없으니까 집에 하루 종일 있더라?”
그렇다. 엄마와 함께 집에 있는 순간 무엇 하나에 집중 할 수가 없다. 가만 있질 못하는 엄마는 계속 무언가 일을 만들고, 그리고 그녀에게 심부름 할 거리들이 생긴다. 그러다보면, 집중력이 계속 흐트러지기 때문에, 그녀는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그때부터 씻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새벽 6시. 엄마가 그녀의 방문을 덜컥 열더니 ‘이제 그만 일어나라’며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날 때가 되기도 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기란 쉽지가 않다. 일찍 일어나서 여유있게 출근하라는 말씀과 함께 엄마는 ‘운동 좀 하지?’라고 그녀를 자극하신다.
마지막으로 운동한 게 언제였더라??? 요즘 안 그래도 숨쉬기도 힘들고, 몸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진다고 느끼고 있던 차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오래간만에 운동 하러 가야지!’라며 엄마의 운동복을 챙겨 입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집을 나선다. 새벽이라 하기엔 해가 너무 높이 떠 버렸고, 집 앞 중학교로 가는 길에 있는 버스정류장은 벌써 출근하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출근길에 있는 직장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길을 건너 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한다. 어떤 동네 주민 아저씨 한 분이 운동장을 걷고 계신다. 다행히 예상보다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오히려 한적한 운동장이라 운동하기에도 좋겠다 싶다. 일단 천천히 운동장을 한 바퀴 걸었다. 그리고 두 바퀴째는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숨이 차오른다. 한 바퀴만 달리고 걸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한 바퀴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다. 두 바퀴를 연달아 뛰었더니 숨이 막힐 정도로 호흡이 가쁘다. 마치 그녀의 폐가 진공 포장기로 한번 쭉 빨아들여서 최대한 쪼그라든 상태로 있다가, 어렵게 공기를 집어 넣어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금씩 펼쳐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작은 운동장을 두 바퀴, 전속력도 아닌 적당한 속도로 달렸을 뿐인데 이렇게 힘이 들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다니. 그 동안 그녀가 그녀의 몸을 너무 막 다루긴 했나 보다. 얼마 전부터 이유 없이-물론 이유가 없진 않겠지만 말이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가슴은 답답한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절실히 그 동안 운동 부족과 온갖 나쁜 것들의 섭취로 인해 신체 리듬이 제대로 깨졌음을 깨닫게 된다. 30분 정도의 시간동안 4바퀴를 뛰고, 10바퀴 정도를 걸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속은 안 좋고, 두통은 더 심해졌다. 몸이 갑자기 새벽 공기를 받아들여 놀랐나 보다.
우리의 몸은 참 신기하다. 어딘가 안 좋아질 기미가 보이면 곧 바로 신호를 보내온다. 지난 두 달간 백수로 지내면서 평소보다 담배를 더 많이 피긴 했으나, 그것이 그녀에게 이렇게 크게 다가올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담배 때문인지, 정말 몸의 다른 곳이 안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감기도 아닌데 유달리 두통이 잦았고, 숨 쉬기가 힘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특히 밤에 자면서 기침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지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워진 적도 여러 번 있고 말이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소화불량까지 더해져서, 말 그대로 종합병원의 상태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몸에서 이상한 신호들을 한꺼번에 보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 더 걱정이 된다. 어른들이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가겠다.’라는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정말 건강에도 신경을 좀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뭐니Money 해도 건강이 없으면 다 헛일 아닌가??
<꼭지3. 한 번만 더 생각 했더라면… >
출근 하기 전,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고 뒤돌아 서는데, 이태리에서 엄마 선물로 샀던 가방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들고 갈까? 잠깐 어깨에 둘러 메고 거울을 보지만, 그녀의 옷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제자리에 걸어두고는 원래 가지고 나온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회사로 향하는 버스 안, 선물로 사온 지 벌써 세 달이 다 되어 가는데 1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엄마의 선물이 계속 생각난다. 그리고 여행 당시 아르바이트 하고 있던 곳의 사장님들께 드렸던, 하지만 곧바로 주방의 어딘가에 쳐 박혀 버리고 말았던 특이한 모양의 파스타도 생각난다. 선물을 샀던 그 당시의 그녀 생각으로 되돌아가 보자면, 엄마가 평소에 즐겨 들고 다니는 가방이 있다. 무척 큰 악어 가죽으로 된 가방이다. 손잡이에는 까만 가죽으로 둘러 쌓여 있었는데, 그것이 왜 보기에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 그 가죽을 거기다 둘러놨는지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손잡이 부분을 주로 잡기 때문에 그곳만 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일본 애들이 머리가 참 좋다며 그 아이디어에 감탄하곤 했다. 워낙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 많아서 엄마는 늘 그 큰 가방을 터질듯이 꽉 채워 무겁게 들고 다니곤 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이태리에서 가죽으로 유명한 피렌체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 일찍 가방을 파는 시장으로 향했다. 어떤 가방을 살까 고민을 하다가, 엄마가 좋아하는 커다란 가방을 사기로 결정하고,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크기의 가방이 많지는 않았다. 그 많은 가방 집들 중에 단 한 곳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큰 가방이 있었는데, 시장을 몇 바퀴를 돌고 나서 결국에는 처음에 마음에 들었던 그 가방으로 결정을 했다. 왠지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서 뿌듯했는데. 막상 가방을 선물하고 나서 엄마가 가지고 다니지 않는 걸 보니 그녀가 생각을 잘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로 들고 다니는 큰 가방은 있는데, 가볍게 나갈 때 가지고 다닐 작은 가방이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함께 여행했던 분들이 샀던 작고 가벼운 가방을 선물을 했더라면, 엄마가 더 자주 가지고 다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그리고 그녀가 당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장님들께 드렸던 파스타를 살 때는, 사장님들이 요리를 하시는 분들이라서, 뭔가 요리 할 수 있는 특별한 재료를 사다 드리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업으로 요리를 하는 분들이고 그분들이 하는 요리는 정해져 있기에, 요리 재료는 그리 좋은 선물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여행 갔다가 오는 사람들이 흔히 선물하는 초콜릿이 더 좋은 선물이었을 것 같다. 요리를 하시는 분들인것까지만 생각했지,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요리 재료를 선물하는 것은 뭐랄까, 매일 일상에 지친 상태에서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넥타이를 선물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녀가 했던 모든 선물들은 선물을 받는 이들에게 그녀의 기대만큼의 감흥은 전혀 주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가끔 아니 자주 그녀의 생각은 1차원적인 생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 생각에서 한발만 더 나가면 더 나은 해결책이 있을 수 있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발을 더 나아가지 못해서, 좌절하고 주저 앉아 버리는 경우들이 있다.
<꼭지4. 가방은 늘 가볍게>
토요일 오전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다. 내일 있을 수업과제를 마무리하고 1년에 한번 열리는 대학 동아리 연주회를 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금요일 오전부터 계속 쌓이기만 하는 설거지거리들을 좀 처리 해 놓고 나가야지라고 마음 먹는 순간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그녀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은 임대아파트이다. 다음 주 화요일에 동사무소에서 실사를 나온다고 한다. 서류상으로 그녀와 어머니는 동거중이 아니므로 그녀가 살고 있는 흔적들을 싹 치워놓고 가라는 엄마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서 지난 번 이태리 여행을 다녀와서 베란다 구석에 쳐박아 둔 여행 가방을 방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방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행거에 결린 옷들을 이제 더 이상 입지 않는 여름 옷들부터 하나씩 정리해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그녀와 옷을 함께 입던 여동생이 미국으로 가면서 옷을 많이 가져갔고, 이후에 동생이 쓰던 방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옷 정리를 한번 해서인지 요즘 입고 다니는 옷들 전부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고도 공간이 조금 남는다.
여행 가방 하나에 모두 들어가 있는 그녀의 짐들을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이 짐을 가지고 떠나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처분해야 할 집도, 책임져야 할 가족도, 눈물 머금고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할 직장도 없다는 것은 이런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그저 내 몸 하나와 가벼운 가방 하나, 그리고 여권과 돈만 있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은 누구나 되고 싶어하지만, 아무나 될 수 있지는 않은 같다. 그녀의 주변에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중에 그녀처럼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큰 친구들이 있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각자 떠나지 못하는 이유들이 꼭 하나씩 있다.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은 언니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지만,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가 다행히 별탈 없이 치료를 받고 다시 건강해지신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다고 하고, 또 다른 후배 중 한 명은 집안의 장남이고,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자기가 졸업하면 집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본인밖에 없어서 가장 노릇도 하고 생활비를 보태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렇게 떠날 수 있는 누나가 부러워요.’라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녀의 집이 여느 집들처럼 무척 부유해서 부모님이 유학을 보내주고, 어학연수를 보내 줄 정도의 재력은 안되지만,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것, 동생들도 나름 각자 알아서 잘 살고 있다는 것, 아버지 형제분들이 많아서 할머니를 그녀의 가족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등이 그녀에게 주어진 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님, 가족, 핏줄 등으로 너무 끈끈한 관계가 저절로 맺어지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얽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유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꽤 우울한 일이다. 더구나 그런 이들이 주변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 비해 많은 자유를 가진 그녀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또한 그녀에게 주어진 지금까지의 상황들 역시 신이 그녀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직접 문을 두드렸던 회사들 중 어딘가에서 지금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아마 5년을 일했던 그녀의 첫 직장처럼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 곳을 떠나는 선택을 할 때 많은 고민을 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그녀가 일이나 직업에 목 매어 쉽사리 떠나지 못 할까봐 그녀가 두드렸던 곳들이 아닌 그녀의 마음이 전혀 가지 않는 곳들의 문만을 열어 준 것일까? 미련 없이 떠나라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그녀가 이렇게 숨도 못 쉴 정도로 꽉 막힌 자금만 해결되면 언제든 미련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편해졌다.
‘그래!!! 지금 내게 주어진 일과 시간을 제대로 한번 즐겨보자!!!’
<꼭지5. 아련한 소주의 추억>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학교 앞 카페에 도착해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세 시간 남짓, 집중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다행히 숙제는 거의 끝낼 수가 있었다.
오후 2시반. 연주회 시작 시간까지 30분이 남았다. 그녀는 숙제를 마무리하고 짐을 싸서 연주회를 하는 학교 건물로 향했다. 도착하니 두세명의 선배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고 재학생과 연주회 참가자들은 리허설이 한창이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음향과 조명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곳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올해는 일반 강의실을 빌려 연주회를 하게 된 모양이다. 리허설을 하는데 메인악기인 팬플룻 소리보다 뒤에서 반주를 하는 드럼과 기타 그리고 키보드 소리가 훨씬 크게 들린다.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가시지 않는 채 연주회 시작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오늘도 역시 선배들의 늦은 등장으로 원래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이 지난 4시가 되어서야 연주회가 시작된다. 거의 세 달에 가까운 시간, 시험도 거의 포기하고 오늘 이 연주회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 온 후배들. 신입생 1학년부터 졸업생 선배의 연주까지 9곡의 팬플룻 연주와 연주 중간에 있었던 이벤트까지 오래간만에 너무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음향시설 때문에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공연이 더욱 빛나지 못해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내주었다. 연주회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고 뒷풀이 장소로 향했다. 무척 다양한 주종 중에 그녀가 잘 못 마시고 좋아하지 않는 술이 바로 소주다. 생각보다 가격대가 좀 높은 고깃집에 가는 바람에 혼자서 맥주 마시겠다고 말하기가 그래서 그녀는 오늘은 소주로 달려보자고 결심을 했다.
‘소주’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기억이 하나 있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의 일이다. 방학을 맞아 그녀는 고향인 대구에 가 있었다. 대구가 슬슬 지겨워질 때쯤 마침 친하게 지내던 동아리 선배들이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강원도로 갈 짐을 챙겨 한창 여름휴가철이라 꽉 막힌 고속도로로 몸을 내던졌다. 평소보다 2배 이상 긴 시간이 걸려 겨우 도착한 강원도!!! 버스를 타고 가느라 지친 그녀와 ‘이제 곧 도착한다.’는 몹쓸 거짓말과 미친 도로상황 덕분에 그녀를 기다리다 지친 선배들이 드디어 만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일행은 바닷가로 가서 텐트를 쳤다. 시간은 이미 많이 늦어 멀리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밤의 해변가였지만, 왠지 바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텐트 바로 옆에 있는 슈퍼에서 돼지갈비와 고기를 구워먹을 구공탄 그리고 소주를 샀다. 그리고 그녀와 일행 6명은 살짝 얼어서 살얼음이 깔린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그 때 마신 그 소주가 그녀가 마셔 본 소주 중에 최고로 맛있는 소주였다. 구공탄에 열심히 돼지갈비를 굽고, 어두워서 제대로 익었는지도 알 수 없는 고기 안주에 마시는 소주. 안주가 떨어지자 근처에 있는 횟집에 가서 회까지 떠와서 그 날 밤은 소주로 정말 열심히 달렸다. 만취한 상태에서 일행들은 노래방까지 가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텐트로 돌아와서 완전 뻗어 버렸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쯤 속이 쓰려 자리에서 일어나 소주 냄새가 진동하는 텐트에서 나와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고는 텐트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그녀는 기절할 뻔 했다. 전날 밤 함께 밤을 보낸 사람은 6명, 하지만 그 중 2명은 술은 거의 마시지도 않고 일찍 들어가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텐트를 둘러쌓고 있던 소주 병은 28병에 달했다. 대충 계산해도 한 사람당 거의 7병의 소주를 마신 것이다. 그래서 그날 다른 선배들 일행과 만나서 횟집에 가서 맛있는 회는 한 점도 먹질 못하고, 쓰라린 속을 붙잡고 매운탕 국물만 열심히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여행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선배들과 만나면 빠짐없이 나오는 안주거리이다. 지금은 그 때처럼 마시라고 하면 절대 못 마시겠지만,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생겼다.
<꼭지6. 그녀는 얼마짜리 딱지인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으로 출근해서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하는 사람들. 같은 양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각자가 하는 일의 양도, 각자가 받는 돈의 양도 너무 다르다. 누군가는 사원이라는 딱지가, 계약직으로, 과장으로, 팀장으로, 그리고 부장으로 각자 다양한 딱지들을 하나씩 붙이고 있다. 학생 인턴은 40만원, 용역직원인 그녀는 130만원, 그리고 9월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230만원. 어떤 딱지를 붙이느냐에 따라 같은 시간 일 하더라도, 그들이 받는 월급이 다르고, 그로 인해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 중에 일이 가장 많은 사람은 단연코 신입사원이다. 사람의 능력을 그들이 받는 연봉으로 계산 된다는 것이 너무 말도 안되고 웃긴 일이긴 하지만,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바로 그런 사회이다. 연봉, 명함, 학벌, 따위로 그 사람의 능력이 평가된다. 실제로 연봉과 능력이 비례하는 경우도 물론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연봉이 적은 사람, 적은 돈을 벌 수 있는 그 기회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일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능력만큼 일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그녀가 받는 월급으로 1년 꼬박 일하면 서울 변두리 아파트 한평 남짓을 살 수 있는 돈이 된다. 반면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어떤 누군가는 그녀가 30년을 꼬박 일해서 겨우 한 채 마련할 수 있을까 말까한 집 그리고 땅, 건물 등을 이미 수 십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그녀와 같이 못 가진 이들은 대대손손 못 가지고 못 살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은 대대손손 계속해서 잘 먹고 잘 살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점점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녀가 이태리로 떠나고 싶은 진짜 이유?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살아도 희망을 찾아볼 수 없음.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생활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이곳에서도 바닥,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나라에 가서도 바닥. 어디서든 바닥인생을 살아야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넓은 세계로 가서 바닥 인생을 살겠다는 생각. 그녀가 대구에서 나고 자라다가 서울이라는 곳에 와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생각이 바뀌었듯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살다 보면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이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물론 그녀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에서 확실한 무언가가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매 순간 그녀가 가장 즐거울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바로 그녀가 꿈꾸고 있는 삶이다.

뭣이여, 한달치 숙제를 한꺼번에 다 한 것이여?
한달간 땡땡이 치겠다는...뭐시냐 강력한 도발 같은 것이여?
그런데 미나야, 서문에
칼융의 <꿈, 기억, 사상>이나 조셉캠벨의 <신화와 인생>에 있던
주옥같이 삶을 위로했던 적절한 문구 중에 한두가지를 들여넣어보는 것은 어떠니?
물론 신치작가님께서 당근알아서 하시겠지만..
(오지랖 넓게 이럴때가 아니다 휘리릭~~~~ 서문쓰러 떠난다. 머리 지끈!!)
추가.
꼭지의 글들이 추억의 Review로 끝나지만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 같은 것.
아련한 소주의 추억은
왜 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지...
그것은 청춘의 어떤 모습인지...너의 기억 속에서 어떤 위로를 주는지.
그 경험을 통해서 청춘들과 무엇을 공감하고 싶은지를 말해주면 좋겠다.
과거 혹은 현재의 청춘들의 일상을 통해서 너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사건의 구체성 만큼
느낌의 프펙트럼도 함께 보여지기를....

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네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고
내가 너의 책에 대한 내용을 사부님께 들었던 코멘트보다
네가 더 깊게 이해를 하고 있네. 그래서 더 할말이 없다.
단 한가지 표현에 대한 건데..
경제력있는 부모를 잘만난 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말이야
"남부러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로 수정하는 것이 어떨까?
네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살아날 듯 한데...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의 선택도 좋고
신치가 과거, 현재, 미래, 꿈같은 너라는 표현도 너무 멋지다.
짜식... 깊은 녀석이다.
며칠전 술자리 난 참 좋았다.
그리고...
서문만 쓰지..
사샤언니에 이어 너는 꼭지글까지냐?
이런 대단한 사람들...
멋지다

그래서, (저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객관적 독자 입장에서) 이야기 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글에서 살아있는 청춘이 보여서 좋아요. ^^ 살아있어요.
김난도샘와 박경철씨의 책을 읽으면서, 특히 박경철씨 책을 읽으면서 많이 아쉬웠거든요.
칭찬은 여기까지. ㅎㅎㅎ 댓글에는 고쳐야 할 부분을 더 많이 이야기 할께요.
숙제 해야 하니까. ㅋㅋㅋ
1.
아프니까, 청춘이다. 에 대한 또 다른 생각 하나.
저는, 쏟아지는 멘토들의 조언이 섭섭한 이유는... 지나고 보면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 하는것 같아서예요.
사춘기 때는 좋아하는 사람때문에 아프고 죽을 것 같은데... 어른들은 너무도 쉽게, 그거 크면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곤 하죠. 사실 우리도 커서 보니까 그거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 정도는 이제 우리도 다 알잖아요? 사춘기 아이들 보면 웃기고. 근데 그때는 다들 진짜 죽을 것 같잖아요.
아프고 싶지 않다! 라고 정면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것 보다는, 누구나 그 나이에 맞는 고민을 갖고 있다. 니들이 보기엔 내가 아파하는 것 같으냐? 나는 그것을 즐기고 있다. 누가 우리 아프데? 청춘들은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다고. 아프니 힘드니 맘대로 얘기들하지 마시죠! 이렇게 my way~ 로 가는건 어떨까 싶어요. 청춘의 시각으로 보는 청춘이라는 관점을 끝까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요.
2.
공감이 목표라면 저는 '그녀'라는 3인칭 보다는 '나는'이라는 1인칭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게 오히려 더 솔직해 보이기도 하구요. 3인칭은 아무래도 객관적인 느낌이 더해지니까요.
이건 선택의 문제니 한번 고민 해 보시면 될듯요.
그리고, '그녀'로 간다면 [‘소주’하면 떠오르는 아련한 기억이 하나 있다.] -> 이건 1인칭이예요.
[그녀는 '소주' 하면 아련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이런 문장들을 모두 수정해야 해요. ;;;
글을 보니 나는 이라는 주어가 글쓰기 더 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서 감히 제안해 봅니다.
3.
서문에서는 한가지 확신을 갖고 찔러 줬으면 좋겠어요.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딱 한 줄이 뭔지. 나타나야해요.
우리 솔직히 다같이 아프잖아. 그 얘기 한번 해보자니까! 까놓고 보면 너만 아픈거 아냐. 나도 아프고 쟤도 아파.
이거 아닌가요? 이게 맞다면, 뒷쪽에 있는 부분이 오히려 더 강조되어야 할 것 같아요. 아프고 싶지 않다. 이 뒷부분에 쓴 글이 더 중요한 것 같은데 앞부분에 묻히는듯 싶어요.
위로할 깜냥은 안 된다. 지지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말들 다 빼고. 이거 봐바. 잼있다니까. 너 이렇잖아. 나도 이래. 헤헤헤. 이렇게. 자신감 갖고! 확! ㅎㅎㅎ
4.
아! 그렇구나 라는 깨달음의 계기가 '다른 사람들 - 특히 어른들-의 한마디'가 아니면 더 좋겠어요.
첫번째 꼭지에서 사장님의 낮은데로 가세요.
두번째 꼭지에서 엄마의 운동해라.
아. ;;; 댓글 쓰다 지쳐요. ㅎㅎㅎ 다시 생각나는 건 담에 얘기 할께요. ㅎ
너무 많이 쓰면 숙제도 많아지니까요. ^^; 오늘은 여기까지!

이런.. 코멘트라니.. 감개무량.. 너무 감사합니다~!!! 뎀뵤님이.. 미영언니죠?? (아님 죄송요.;;;ㅋㅋ)
1. 마이웨이... 청춘의 시각과 관점을 잃지 않으려고 한번 애 써볼게요.. ^^
2. 훔.. 저도.. 3인칭으로 쓰고 있찌만, 뭔가.. 계속 1인칭이랑 헷갈려서 말이죠..;;; 말씀하신대로 1인칭으로 썼을 때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인칭으로 썼을 때 약간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는데요. 이건. 한번 더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3. 딱 한 줄. 이라............ 으... 가장 어려운 부분을..ㅋㅋㅋㅋㅋ.. 하지만 책을 쓰기위해 꼭 필요한 거겠죠??
사실 이 서문도 조금 더 바꿔볼까. 책을 전체적인 스토리 자체를 바꿔야하나.. 물론 큰틀은 그대로 가되 뭔가를 좀 추가해볼까. 고민중이거든요... ㅜㅜ.. 근데, 위로 지지에 대한 부분 빼고 , 자신감 갖고 확!!! 좋을 것 같아요.
조금 더 발랄하게?? 써 볼게요.. 재미있게요.ㅋㅋ.. 감사합니다.
4. 깨달음의 계기가 제가 스스로 깨닫게 되는 부분인게 더 좋긴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건 아니라서. (물론 이런 생각에서 쓴건 아니고 그냥 막 써내려가다보니 저런 제목과 내용이 나오긴한거지만요.;) 요것도 같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으아... 댓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감사드려요~~~~~~~~~~~~!!!!!!!!!!!^^ 또 다시 고민 시작이네요.ㅋㅋㅋㅋㅋ...
감사합니다~~~!!!!^^ 애정어린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ㅎㅎㅎ)
미나씨 글을 그동안 안 읽어서 잘 몰라요.
그리고 내용도 나는 몰라요. 저는 설명보다는 느낌으로 따라가는 인간이라 코멘트가 느낌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요.
그러니 그점을 이해하고 읽어주세요.
전 우선 미나씨가 쓰려고 하는 책에 대한 이전 글을 읽었고, 이 글의 '꼭지 3'까지 읽었습니다.
꼭지 3까지 읽었다고 밝히는 이유는 그 이후는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
왜 안 읽느냐? 저는 성격이 무척 급한 독자입니다. 미나씨 서문 읽으면서 충분히 천천히 읽었어요. 천천히 읽을만하고 좋아요. 어떤 내용인지도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꼭지글 읽으면서는 충분히 천천히 읽을 이유가 없어요. 이건 사건과 미나씨의 생각을 쓴 것인데, 글이 상황을 하나하나 연상될만치 자세하게 씌여있고 순차적이예요.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새로운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서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라서 한문장을 다 읽기전에 연상이 되는데, 그런데 문장이 길어요. 전 글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니랍니다.
제가 일반 독자의 범주에 속할지 않을지는 몰라도 제 읽는 속도는.... 변경연에서 필독서로 읽으라고 하는 책은 1시간에 40페이지 정도 읽구요. 만화책 바쿠만이나 데스노트는 그림이나 글을 읽느라 1시간에 1권을 읽고, 허접한 삼류만화는 1권을 30~40분에 읽어요. 무척 느린 편이죠. 소설은 1시간에 몇페이지나 읽을까요.) 20,30대 청춘들은 저보다 읽는 속도가 빠를지로 몰라요. 전 객관적인 수치는 모르지만, 읽는 속도, 말하는 속도는 그 사람의 생각속도와 관련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보다는 빠를 거라고 짐작해요.
독자의 읽는 속도(생각속도)를 자꾸 느리게 만드는 세밀한 묘사가 있어요. 꼭지글 앞부분이 소설같은 형식이라면 좀더 빨리 읽게 만들어주세요. 그 꼭지글에서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 전달하려는 상황이 아니라면 세부묘사는 앞으로 나가는 데 방해가 돼요. 마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는 데,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 화살이 지나가는 궤적의 배경으로 나오는 나무, 바위, 하늘의 구름을 다 일일이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예요. 화살은 빠르게 날아가 목표물에 꽂혀야 잖아요. 혹시 여러 꼭지글이 그런 상황을 설명하려고 일부러 선택해서 세부적으로 묘사한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를 살리겠지만,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닌 것이라면 한번 고려해 주세요. 그런데 이 건은 문체의 문제라 가능할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신치의 이야기는 미나씨와 혹은 가상의 20대 여자 청년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미나씨이면서 미래의 미나씨이기도 한데, '그녀'라고 쓰고 '나'라고 읽혀요.
혹시 자신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그녀'라고 쓰나요? 그녀가 보는 사람, 그녀가 듣는 말, 그녀가 보는 하늘이 '나'라는 인물이 느끼는 것보다는 강도가 약하고, 내면의 생각을 드러내기에 부적합한 것 같아요. 제가 '나'라는 인물을 드려내지 않고 '그녀'로 말하는 게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감정이나 상황의 묘사 '강도' 문제도 있지만, 생각의 속도 때문이기도 해요.
'나'의 생각을 그냥 내뱉으면 되는데, 그걸 '그녀'라는 타인의 말로 바꾸어서 설명하듯이 느낌을 표현하니 속도가 느려요. 그래서 꼭지글에서 보여주기를 주로 하는 것 같아요. 그녀가 살아서 움직이긴 하지만, 독자는 그녀를 보고 있지요, 독자는 그녀가 되지 않고, 그녀를 아는 사람이 되요. 그려면 공감하고는 조금 더 멀어져요.
그녀로 써야 할 것은 '그녀'로, '나'로 써야 할 것은 '나'로 쓰는 건 어떨까요? 소설과 에세이는 그녀와 나를 왔다갔다 할 수 있나 모르겠네요. 그녀이건 '나'이건 일상의 묘사와 함께 20대 청춘의 심정을 더 잘 표현하는 것으로요. 상황설명이 청춘의 심정보다 더 길게 느껴져요. 청춘들이라면 그런 상황에 되면 그게 뭔지 설명을 안 붙여도 알만한 상황일 겁니다. 그 시기에 겪는 일일 테니까요. 저는 20대 청춘은 아니지만 그 20대 청춘의 심정이 상황보다 더 궁금합니다. 그래서 청춘은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청춘은 어떻게 느끼는지, 만일 내가 20대, 24,25세 정도의 사람이라면 내가 하고 있는, 내가 겪고 있는 방황이 나만의 상황이 아니라, 이런 일은 다른 사람도 겪고 있고, 다른 사람은 어떤 심정으로 살았는지 엿보고 싶을 겁니다. 저는 그게 궁금해요. 상황은 주어지는 것이고, 그건 내가 어떻게 막아낼 수 없겠지만....그래도 그것을 어떻게 대체해야 할지 온통 나를 거스리고, 온통 모르는 상황들이 전개될 때, 그 혼란스러움을 타인은 어떻게 겪었는지 살짝 컨닝이라고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미칠 것 같고, 아프니까. 그걸 어떻게 겪어야 할지 , 어쭙짢은 답이라도, 그게 어떻게 하면 마음이라도 편한지 궁금하거든요.
지금이에서야 그때는 나보다 나이 많은 누군가 말해줘도 못 알아먹을 열받은 말이었을거라 여기며, 다 그러는 거야라고 늙은이 소리를 하겠지만, 그 속을 드려다 보고 싶다는 건 여전합니다.
안 읽은 밑에 꼭지글도 읽을께요. 미안해요.~
요즘 만화를 많이 봐서 만화의 빠른 전개와 치밀함에 익숙해져 버렸나 봐요.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인 덧글이라서 미안해요.

글 쓰면서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썼던 것들에 대한 아주 정확한 코멘트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말씀처럼 '저'라는 사람을 전혀 모르는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었을 때, 바로 언니가 느끼는 그런 느낌일 것 같아서 앞으로 글을 쓰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말씀하신것처럼, 너무 장황한 묘사들이 들어가 있지는 않나? 질질 끌고 있지는 않은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언니가 평소에 1시간에 40페이지를 읽는다면, 그렇게 빠른 것 같지는 않은데, 평균정도 ???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꼭지글에서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명확히 정한 다음에 글을 쓰도록 해봐야겠네요. 그러면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조금은 걸러질테니까요. 그쵸?? ^^
꼭지글들은 거의 99% 저의 글이라서 새롭게 수정한 글에 1인칭으로 바꿨어요. 그건 바꾸니까 확실히 편해지더라고요. 읽어주시는 분들도 편하다 해주시구요. 그래서 앞으로는 전부 1인칭으로 바꿀 생각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20대의 '심정'이 '상황'보다 더 궁금하다는 말. "아!!!!!!!!!!!!!!!!!!!!!!!!!!!!!!"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는군요.. 사실 이건 저희 동기들도 제게 늘 얘기해주셨던 건데, 이렇게 들으니, 어떤 포인트인지 확실히 알겠어요!!!
상황은 주어지는 것이고, 그 상황에서 혼란스러움 등을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컨닝하고 싶은' 심정..
상황보다는 그 때그때의 저의 감정들, 그리고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춰서 한번 써 볼게요^^ 우와.......정화언니.........진짜!!!!!!!!!!!!!!!!!!!!!!!!!!!!! 고마워요~~~~~~~~~~~!!!!!!!!!!!!!!!!!!!!!!!!!^^ 코멘트,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언젠가. 언니가 제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라고 읽어주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ㅎㅎㅎ..
주신 코멘트 잘 기억하면서 글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