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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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사랑
다이앤 애커먼 지음
송희경 옮김 | 살림
Ⅰ. 저자에 대하여
다이앤 애커먼 (Diane Ackerman)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코넬 대학에서 미술 석사학위와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 대학,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영문학과 인문사회학을 가르쳤으며, 자연과 인성에 관한 섬세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에세이를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요커」, 「뉴욕타임스」, 「스미소니언」 등에 기고했다. 존 버로즈 자연문학상, 미국시인협회에서 수여하는 라반 시문학 상, 오리온 북 어워드를 수상했다.
다이앤 애커먼은 자연주의적 감수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그녀의 책, ‘감각의 박물학’은 그런 그녀의 특징들을 잘 담아낸 작품이다. 생명체를 다룸에 있어서 시각, 후각, 촉각, 미각, 청각, 공감각 등 과학적이지만 자연과 맞 닿아있는 인간의 감성들로 세상을 인식하도록 돕고 있다. 그녀의 자연주의적 감수성은 그녀가 가진 해박한 과학 지식과 만나 더욱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한다.
또한 그녀의 문체는 시인의 감성과 깊은 사색을 바탕으로 한다. 다이앤 애커먼은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사례를 제시함에 있어 결코 단조롭거나 딱딱하지 않다. 그녀가 택한 언어는 시인과 같이 부드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여져서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섬세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또한 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표면적이나 이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깊은 철학적 사색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해박한 지식이 담긴 글을 과학적이지만 감성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녀는 국립예술기금, 록펠러재단 기금, 국립인문학기금을 받았으며 뉴욕 대학, 리치먼드 대학, 컬럼비아 대학 등을 거쳐 현재 코넬 대학에서 영문학과 인문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감각의 박물학』, 『미친 별 아래의 집』, 『뇌의 문화지도』,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 『내가 만난 희귀동물』 등이 있다.
Ⅱ.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사랑이라는 마
이처럼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랑이다. p.8
사랑은 감정은 백색광이다. 사랑에는 많은 감정들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게으르고 혼란스러운 나머지 그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간단한 단어 하나에 담아버린다. 예술은 사랑의 감정들을 풀어헤치고, 하나 또는 몇 가지 사랑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흐름을 쫓아가는 프리즘이다. p.9
우리가 만나는 동안 사랑은 온갖 불가사의한 묘기를 다 부렸다.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멋진 춤을 추게 만든다. p.9
사랑love. 그토록 굉장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이 단어는 얼마나 간단한가! 사랑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괴물을 진정시키고,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슬프고 외로운 이들에게 기운을 복 돋아주고, 터프 가이를 감상에 젖게 하고, 포로가 된 이들을 위안하고, 강한 여자를 미치게 만들고, 보잘것없는 이를 영예롭게 해주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스캔들을 일으키고, 벼락부자를 파산시키고, 왕을 꼼짝 못하게 했다. p.9
사랑은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황홀경이자 문명보다 더 오래된 욕망이며, 그 뿌리는 미개한 원시시대에까지 내리 뻗어 있다. p.10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지 고양시켜주는 긍정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p.10
큐피드가 화살통을 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도 사랑이 때로 가슴이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유익한 폭력이다. p.14
1부 오랜 욕망 |사랑의 역사|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전설은 사실 그녀에 대해서보다는 우리가 꿈꾸는 환상과 동경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알려준다. p.21
클레오파트라는 화려했고, 대담했으며, 세속적인가 하면 영성적이기도 했던 것 같다. p.25
클레오파트라는 빨려들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을까? 그녀는 유달리 재치가 뛰어났고, 교묘한 속임수에 탁월했으며, 남자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늪처럼 깊이를 알 수 없고, 수정처럼 마음을 사로잡는 관능적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p.27
한 민족의 내면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은 바로 예술이며, 고대 이집트는 예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p.28
오랜 욕망, 달콤한 재난 p.44
어쩌면 오르페우스의 비극은 에우리디케가 그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운명을 지녔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p.65
어떤 식으로 해석되든지 간에 이 이야기는 그리스인들의 가슴과 머리를 사로잡았으며, 이후 세세대대 후손들에게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 팔다리를 잘리는 것과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되었다. p.65
이 신화는 사랑이란 생명을 소생시키는 힘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한 감정이라는 것과 아울러, 믿음이 확고하다면 사랑의 힘으로 저승 깊숙이 들어갔던 사람도 다시 끌어내올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p.66
그러나 ‘영원’이란 아주 오랜 기간일 뿐이며, 아이네아스는 디도가 거의 잊고 있었던 ‘왕년의 불꽃’을 다시 불붙이도록 ‘하늘이 점지한’ 남자처럼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불은 세포 하나하나에 깃든 보이지 않는 원초적인 ‘불’이며, 그 불은 더욱 찬란하게 타오른다는 것을. 사랑은 육체라는 진지에 무수한 횃불을 지핀다. p.74
뾰족탑spire의 어원을 조사해보면 그 말이 꽃송이의 돌출 부분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편이 새순 모양의 작은 돌들로 빙 둘러져 있는 대성당의 석조첨탑은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리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p.93
마치 중력에 이끌려 지구 둘레를 도는 달처럼, 기사는 연인의 주위를 맴돌았고, 그 무엇도 천체역학처럼 어김없는 그 헌신의 궤도에서 기사를 이탈시킬 수 없었다. p.110
'섬기는 서비스‘가 핵심이었다. p.110
음유시인들을 매료시켰던 것은 사랑의 첫 단계,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정이 미묘하게 흔들리고, 두 사람이 서로 꼼짝없이 반해서 상대에게 깊이 빠져들지만 불확실함 때문에 초조해하는, 연애가 시작될 때의 떨리는 순간이었다. p.111
열정적인 헌신이 가능했던 이유는 연인이란 존재가 관념적인 욕망의 대상이었고, 연인들의 사랑은 금지된 타부이자 색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p.117
개개인에게는 운명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했으며, 남녀끼리 주고받은 애정을 촉진했고, 연인들이 다정하게 지내며 서로 존중하도록 유도했다. 연인들은 서로 상냥한 벗으로서 상대에 대한 친밀감과 존경심으로 뿌듯해했고, 자신들의 품성과 자질을 향상시키려고 애썼다. 덕분에 그들은 사랑에 걸 맞는 존재가 되었다. 사랑이 그처럼 강한 호소력을 지녔었다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p.119
엘로이즈에게 사랑은 더없는 위안으로서 평화와 행복과 자유를 얻게 해주는 것이다. 아벨라르에게는 사랑이 진리와 구원을 향한 길을 위태롭게 하는 장애요소이다. p.126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둘 다 사랑이란 자기희생을 통해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어설픈 경제학에서는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 p.126
그녀의 편지를 읽어보면, 사랑이 그녀의 마음을 정화의 불로 가득 채워서 그녀가 스스로 성스럽고 거룩하다고 느끼게 했으며, 그녀를 세속적이며 이교에 가까운 신앙에 입교시켰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엘로이즈는 연인에게 예속되고자 하는 소망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사랑의 순교자였던 셈이다. 사랑이야 말로 그녀가 충실히 지키기로 서약한 수도규범이었다. p.126
특히 내색하지 않고, 결혼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탐색과 시험으로 가득 찬 은밀한 교제인 궁정풍 연애를 믿었다. 그래서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아내보다는 정부로 여겨지길 더 좋아했다. 중세에는 정부가 훨씬 더 고상한 칭호이었다. p.127
그런 여자는 카사노바와 연애를 할 때 둘 사이가 장차 어떻게 되든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한 태도를 보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카사노바는 불확실함 때문에 계속 불구덩이에 집착했다. p.151
살면서 오랜 세월 동안 그는 삶 자체와 결혼했고, 불꽃처럼 현란하게 살기에 매진했으며, 방자하면서도 선량한 기질을 지닌 덕분에 여자들은 그를 위해 문을 활짝 열어주었고, 스커트를 걷어 올렸으며, 가슴을 불룩 내밀었다. p.152
그를 지탱했던 비장의 무기는 상처 입은 가슴에서 우러난 언어였고, 그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그 무기를 이용해 어떤 말과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그 모든 것은 부질없는 환영이고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였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한판 신나는 여정이었다. 말년에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p.152
자기 시대의 열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가장 뛰어났던 작곡가는 베토벤이었다. p.158
전통음악의 엄격한 틀 때문에 속박을 느꼈던 그는 자신의 분노와 번민과 치열한 몸부림을 음악에 담아냈다. 과거의 진부한 음악으로는 그토록 많은 감정을 표현하기가 불가능해 보였으므로, 그는 더 풍부하고 더 격하며, 순수한 정서에 더욱 밀착된 새로운 어휘를 창안해 냈다. p.158
그러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곡들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이다. 나는 그 곡들을 들을 때마다 그가 사랑과 맞붙어 얼마나 분투하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p.159
그녀는 성적 욕망의 화살들이 자기 몸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의 몸은 은밀한 화살통이 된 셈이다. 드디어 연인이 다가오고, 남자의 가슴은 욕망의 화살이 꽃힐 과녁이 된다. 남자는 나긋나긋하고 활처럼 유연한 그녀의 몸을 찬미하고 그녀에게 함께 날아가고자 청한다. p.163
관능은 깃털 이불처럼 따스하고 포근한데 왜 우리가 거기에다 누비커버를 씌워야 할까? 왜 우리는 관능을 교묘하게 감출까? 왜 관능을 정화하려 할까? 왜 그것을 의례의 춤으로 바꿔버릴까? 옛날부터 있었던 정당하고 흔해빠진 정욕이 뭐가 잘못이란 말일까? 왜 우리는 정욕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당혹스러워할까?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정욕은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랑은 두 사람이 벌이는 일종의 공모인데 이따금 배신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p.164
2부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사랑에 관한 견해들|
로맨틱한 사랑과 신비주의자들의 종교적 황홀경의 핵심 중 하나는 사랑하는 대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이다. p.175
플라톤에 의하면 연인은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를 찾고 있는 퍼즐 조각의 불완전한 반쪽이다. 연인이란 두 약체가 하나로 뭉쳐 이뤄진 강체인 것이다. p.176
즉 사랑이란 단지 상상력이 빚어낸 지고한 개념이 아니며, 일시적 변덕이나 광기도 아니고, 개개인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p.177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일곱 단계
첫째는 감탄이다. 다음으로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기를 소망한다. 소망과 감탄이 합해질 때 사랑이 탄생하여, 사랑하는 이를 만지고, 보고, 사랑하는 이와 이야기하는 기쁨에 눈뜨게 된다. 다음 단계가 그의 핵심 중 하나인데, 그가 ‘결정작용’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그 단계는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누구보다 더 훌륭하고 더 고귀하다고 상상하며 대상을 이상화하는 성향을 말한다. 결정작용 단계가 지나면 의혹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두려움에 찬 불안이 파고든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사랑의 증거를 몇 번이고 계속 요구하기 때문이다.의혹의 단계를 극복하게 되면 ‘두 번째 결정작용 단계’에 접어들어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의 증거라고 상상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사랑하는 상태의 정반대는 죽음이다. p.189
신화의 원전에 따르면 사랑의 묘약이 효능을 발휘하는 기간은 3년이었고, 그동안은 두 사람이 사랑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합되어 마음도, 영혼도, 육신도 결코 떨어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p.195
시인들은 행복하고 휘파람이 절로 나오는 아무 풍파도 없는 사랑에 대한 시는 거의 짓지 않는다. 역사는 늘 행복하기만한 한 연인들의 사연을 굳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 로맨스는 사랑이 치명적이고 위태롭고 불운할 때만 싹트며…… 사랑에 대한 만족감이나 안정된 커플의 흡족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사랑의 열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열정은 고통을 의미한다. “열정이란 꿈꾸는 것이며, 우리 아이들이 품기를 바라고,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면 환호하고, 눈부신 빛을 발하는 감정의 보석이라고 경탄하며, 은밀히 갈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p.197
뭔가 마법 같은 것이 발생해서 그들을 죄책감이라든가 죄악, 선과 악을 따지는 영역 밖으로, 즉 도덕률의 세계 너머로 이끌어내 독자적인 칙령과 자연법이 존재하는 둘만의 왕국에 내던졌다는 것이다. p.199
둘만의 왕국에서 그들은 격심한 고뇌에 휩싸인 채 서로 지배하고 섬긴다. 서로 사랑에 빠져서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드 루즈몽이 예리하게 논평했듯이 “그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불타오르기 위해서이며,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상대의 존재가 아니라 상대의 부재이다.” p.199
3년이 지난 후 두 주인공은 전과는 달리 좀 더 평온한 우정 같은 사랑을 키워간다. 애태우는 뜨거운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위험이 생겨나 사랑에 불을 붙여야 한다. p.200
열정에 이르는 최고의 길 중 하나는 불륜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불륜의 매력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관한 고대신화와 금지된 사랑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에서 빛을 발한다. p.204
트리스탄 신화를 들을 때 우리는 주인공들의 꿈을 꾸고, 그들의 정염을 열망한다. 우리는 스릴 넘치는 사냥에서 모든 역할-사냥개, 맹수, 그리고 사냥꾼까지-을 다 맡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사냥이 열정을 공중으로 내뿜게 하고 맥박을 토끼처럼 힘차고 빠르게 뛰게 하는 짜릿한 드라마를 연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p.204
큐피트의 화살이 아니라, 시간의 화살을 기다리는 셈이다. p.209
그들은 긴 입맞춤만큼이나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고, 그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활짝 열고 그녀를 체험한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그녀에게로 헤엄쳐 들어가서 그녀의 영혼과 융합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훗날 프로이트가 사랑의 대양감 oceanic feeling이라는 말로 표현한 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p.213
그녀는 미지의 태양계의 중심 행성이다. 그녀의 손에 닿는 모든 사물은 찬란한 신세계의 섬광을 보여준다. 그는 그녀의 자전거, 그녀의 ‘흰 민달팽이처럼 창백한 뺨’, 그녀가 움직일 때 일어나던 먼지에 집착하며, 독점욕으로 인한 질투와 슬픔에 사로잡힌다. 모든 얼굴들이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모든 사물이 폭발할 듯 고통스러운 기억을 터져 나오게 하는 뇌관이다. 그녀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사랑에 관한 프루스트의 요점이다. 즉 사랑이란, 사랑하는 실제 그때의 시간이 아니라 사랑을 기대하는 시간 또는 기억하는 시간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낙원은 잃어버린 낙원이다. p.215
사랑은 왜 소중할까?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음의 모든 양상들, 사람들과 사물들, 동물들과 도시들과 교감할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조화로움을 느끼기 위해, 우리 삶이 펼치는 풍요로운 풍경의 한 부분을 느끼기 위해 우리는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화자가 자연의 세계를 깊이 음미할 때,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도 갈망하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함으로써 그는 둘 다에 대한 열정을 고조시킬 수 있다. 열정은 그의 감각이 제 구실을 하도록 하며, 주의를 기울이도록 세차게 자극하고,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미묘한 차이들 하나하나에 대해 초강력 감수성을 발휘하게 만든다. p.216
엑스터시는 누구나 희구하는 것으로, 사랑도 섹스도 아니며, 피가 뜨거워지고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몰입의 경지이다. 그 상태에서는 살아 있다는 것이 곧 기쁨이요, 떨림이 된다. 그런 도취감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없다면 삶이 무의미하게 보인다. 이런 현상은 습관의 기만 때문에 빚어지는데, 습관은 열정을 질식시키고 사랑을 파묻어버리는 아주 음흉한 자객이다. p.217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삶의 모든 면으로 뻗어나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을 이루는 행위이며, 온전한 정신에 의한 매우 창조적인 행위이다. p.218
사랑은 합의된 고통을 전제로 벌이는 기분 짜릿한 한판 승부이기도 하다. 사랑이 쑥쑥 커가기 위해서는 시련이 꼭 필요하고, 고통이 사랑이 원동력이니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사랑은 서로의 고문이다.” p.219
사랑은 과거에 겪은 일들의 기억이고, 잃어버린 행복의 재발견이다. p.227
부모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아이는 사랑할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없다. p.227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귀한 가치를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 즉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로 간주하는 사람에게 이입시킨다. p.228
3부 사랑, 마음의 불길|사랑의 본질|
그런데 간통은 모든 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방정식에서 간통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p.279
4부 사랑, 꼭 필요한 열정|사랑의 에로틱한 속성들|
그 연인들이 그들의 열정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그들은 간단하게 대답할 것이다. 섹스는 쾌감을 주고, 격렬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흡족한 느낌과 아울러 감미로운 피로를 선사한다고. p.314
여자의 애인이 이상적인 남편감이든 혹은 일회용 데이트 상대이든 두 사람에게 섹스를 나눌 만큼 충분한 감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로맨스가 있어야 한다. 그들 몸에는 생명력이 붙어 다닌다. p.315
여자들이 남자를 유혹할 때 전형적으로 취하는 몸짓은 눈썹을 약간 치켜 올린 채 눈을 크게
뜨고 간절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남자의 관심을 끌었다 싶으면 여자는 수줍게 고개를 돌리고 눈을 내리 깔고서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짓는다. p.321
수줍음과 솔직한 성적 관심이 어우러진 이런 유혹의 행태는 보편적인 것으로, 여자들이 섹스를 할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남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먼 옛날부터 해온 행동이다. p.321
우리가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여성 얼굴의 물리적 특성은 어떤 것일까? 통상적으로 아이 같은, 심지어 유아 같은 ‘귀여운’ 얼굴이다. 여성이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여자다워야 하는데, 여자다움의 기본요소는 약간 어린아이 같은 외모이다. p.330
섹스는 공중에서 알몸으로 날아다니는 것과 흡사하다. 평범한 것들과의 접촉을 놓아버리고, 모든 구속을 놓아버리며 땅과 현실을 꼭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기 때문이다. p.350
섹스는 충동적이고, 자연 그대로이고, 진실하고, 순간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감각이 너무도 뜨겁게 달아올라 몸이 자기 나름대로 ‘유레카!’하고 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섹스 행위는 아무리 무심코 행한 것이라 해도 하나하나가 복잡하게 얽힌 드라마이다. 스톨러에 의하면 섹스는 한 편의 순수한 ‘연극’이며 “사람들이 제대로 행하기 위해-말하자면 근심, 우울, 죄의식이나 따분함이 아니라 짜릿한 흥분을 꼭 맛보기 위해-수년 동안 각본에 따라 애써 노력해온 결과물”이다. p.380
5부 이상하고 신기한 통과의례|사랑의 풍속들|
이 커플은 모든 것,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상대에게 가능한 한 잘 보이려고 서로 애쓰면서,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상처와 꿈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차츰 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서적 교감이 잘 이루어지자, 그들은 같은 리듬에 맞춰 움직이며, 서로 상대의 제스처를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한다. p.405
동공의 팽창은 정서적 관심 또는 성적 관심이 있음을 나타낸다. p.406
두 사람 다 말은 하지 않는다. 상대 입술의 촉감을 느껴보고 싶고, 상대의 애무를 받고 싶고, 상대의 체취를 맡아보고 싶고, 상대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p.406
음악이 최면효과와 유혹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순수한 정서의 언어인 음악은 구애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짝짓기 의식에 음악이 수반된다. p.411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를 거치는 동안 여성은 사랑 노래를 갈구했다. 사랑이 자신들을 구원해주고, 삶에 의미를 주며,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면 여성은 살 의미가 없었다. 남자의 사랑을 받는 대가라면 남자가 자신에게 어떻게 굴어도 상관없었다. p.412
사랑은 다시 종교와 같은 위상을 차지하게 되어 비틀즈를 위시한 여러 팝 그룹들이 선언했듯이 사랑이 세상을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여겨졌다. p.412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 노래를 듣는 걸까? 우리는 상상하고 부러워하면서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이상화한다. 무엇인가를 절실히 바라다보면 간절히 바라는 그 대상을 하찮은 금속에서 황금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어쨌든 성을 억누르다 보면 로맨스를 부추기게 된다. 사람들이 성에 대해 이런저런 환상에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다. p.413
절제, 억압, 금지, 이런 것들이 모두 로맨틱한 사랑을 키운다. 사람들은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집착하면서도 도덕률의 제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풍토에서 팝송은 뜨겁디뜨거운 환상에 불을 지피고, 로맨스라는 개념이 꺼지지 않고 살아남도록 지킨다. p.414
사랑만큼 많은 흥분과 희망으로 시작하는 것은 없으며, 사랑만큼 자주 실패하는 것도 없다. p.415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나이, 직업, 음악에 대한 취향, 삶에 대한 태도 등에서. 그런데 무엇보다도, 둘이 만난 타이밍이 딱 알맞다. 두 사람 모두 사랑을 감행할 태세가 결정적인 단계에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사랑할 준비와 의지와 능력을 갖추게 되면, 바로 그 다음에 만난 적당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p.415
육체와 욕망이라는 단순한 계산으로 시작된 것이 불현듯 강력한 감정이라는 고등수학이 될 수 있다. p.415
6부 사랑의 여러 갈래|사랑의 다채로운 양상|
‘엑스터시’라는 단어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알몸으로 서 있다’이다. 그래서 신비주의자들은 예로부터 교양이라는 가면, 유행이라는 구속, 이성이라는 껍데기를 내던지고, 자신을 참으로 정화시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겠다고 맹세하면서 알몸으로 기도하는 때가 많았다. 연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는 것도 알몸으로 성적인 엑스터시에 한창 빠져 있을 때인 경우가 많다. p.494
낙원을 이르는 페르시아 말 ‘pairidaeza'의 원뜻은 생명의 나무가 자라는 정원이고, 낙원을 이르는 히브리말 ’pardes'의 원뜻은 한 남자의 순결한 신부가 순결을 바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랑의 정원이다. p.496
"가슴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가슴 속 박물관의 전시실이 아무리 좁고 조명이 흐릿하다 해도,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순간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규조류처럼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p.525
Ⅲ. 내가 저자라면
사랑의 본질은 마음의 불길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사랑의 불길은 매우 강력한 힘이며 오랜 세월동안 문학과 예술도 이 사랑을 노래해 왔다. 다이앤 애커먼은 ‘천개의 사랑’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사랑의 신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사랑은 왜 진화한 것일까? 사랑할 때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에로틱한 사랑과 그렇지 않은 사랑의 본질은 같은 것일까? 남자와 여자는 성에 관한 의제가 서로 다를까? 사랑의 결핍과 범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랑의 화학작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의 개념은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달라져 왔을까? 사랑의 묘약이 정말로 있을까? 동물들도 사랑을 느낄까? 사랑의 풍속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사랑으로 인해 빚어지는 기상천외한 일들은 어떤 걸까?
다이앤 애커먼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역사, 문학, 생물학, 그리고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에 이어 트리스탄과 이졸데 커플의 삶을 들여다보고, 프로이트에 이어 「블레이드 러너」를 분석한다. 불륜에 끌리는 심정, 최음제에 혹하게 되는 마음, 키스에 심취하는 성향에 대해서도 파헤친다. 카사노바와 돈 후안 같은 만족을 모르는 호색한들의 감춰진 비밀을 드러내는 한편, 사랑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회 전체가 겪는 외상도 적나라하게 밝힌다. 또한 사랑과 연관되기만 하면 사소한 것이나 관념적인 것까지 파고든다. 얼굴이나 머리카락과 사랑 사이의 관계를 파헤치거나 유부녀의 간통이 엄격하게 금지된 시대에 죽음을 무릅쓰고 외도를 한 여자들의 심리를 풀어보기도 한다. 역사상 사례나 의학적 연구 결과뿐 아니라 저자 자신과 이웃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총동원해 여러 개념과 이론을 설명하기 도 한다. 특히, '뇌의 문화지도', '감각의 박물관' 등 신경 체계의 작동 원리를 탐구하는 책을 쓴 작가답게 신경생리학적으로 사랑을 분석하기도 한다. 저자는 마음은 심장이나 뇌에만 있는 게 아니고 각종 호르몬과 효소를 타고 끝없이 온몸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이렇듯 다양하게 사랑 그 찬란한 역사를 다루면서 저마다 사랑의 존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천개의 사랑은 '사랑은 진화 한다'는 주장을 기본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몸은 세상 만물이 발산하는 모든 자극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꿔 뇌로 전하고 반응하며, 사랑은 아주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유연한 두뇌를 가진 인간은 융통성 있게 환경에 적응하면서 정서를 운용해 나가며 사랑도 환경의 변화에 맞게 바뀌어 나간다는 것이다.
‘천개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일한 주제에 대해 거의 잡학사전 수준으로 다방면의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감성을 자극하거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앞서 말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 때로는 신화나 설화 속 연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가슴이 아련해지는 현실 속 에피소드들을 들려주기도 하면서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시종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사랑의 갖가지 모습을 여러모로 조명하면서,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의 순간을 기억하기에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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