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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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를 구스타프 융 (1875~1961)
융은 1875년 스위스의 케스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스위스 개혁교회의 목사였고, 아버지의 가르침은 칼뱅과 루터와 같은 16세기 종교개혁 지도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있다. 융은 자신에게 유년기의 아버지는 신뢰와 나약함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역동적이고 강한 사람이지만 예측할 수 없으며, 불가사의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의 어머니는 소박하고 외향적이며 수다스러운 반면, 아버지는 학구적이며 내향적이었다.
융이 부모로부터 받은 각기 다른 영향은 그가 후에 발견한 자기 내부의 이중성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융은 자신이 ‘제 1의 인격’과 ‘제 2의 인격’이라고 부른 두 가지 특징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느꼈다.
▶ 제 1의 인격은 외부적인 일상 세계와 관련된 것으로, 이 성격의 융은 야심적이고 분석적(analytical) 이며, 세계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 제 2의 인격은 말이 없고 불가사의하며, 사물을 직관(intuitive) 에 의지하여 보았다.
융은 키가 크고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어 여성들의 호감을 사곤 했다. 21세에 당시 16세이던 엠마 라우센바흐를 만나 1903년에 결혼했고, 세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가졌다. 안토니아 울프 또한 융과 함께 일했던 여성인데, 1911년부터 융의 애인이 되었다. 융과 그의 아내, 애인, 그들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한 삼각관계로 발전하여 두 여인 모두에게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자는 밥 해줄 여자와 지성을 자극할 여자, 이렇게 두 여자가 필요했다는 융의 변명이 재미(?)있다. 융은 두 여인보다 오래 살았고, 말년에 두 여인을 위해 중국어로 비문을 새긴 기념비를 만들었는데, 엠마의 것은 ‘그녀는 나의 집의 기초였다’라고 썼고, 안토니아의 것은 ‘그녀는 나의 집의 향기였다’라고 새겨넣었다.
융은 여러 학문 분야를 섭렵한 사람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개신교도로 정신의학과 심리학, 철학은 물론 다른 종교와 신비주의 사상, 동서양의 연금술 등으로 생각을 폭을 넓혀갔다. 자신의 학문 분야를 의학심리학이라고 했듯이 그는 정신의학과 심리학을 주 학문분야로 삼았지만 거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의 삶은 꿈과 신화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영적인 치유와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그의 삶은 무의식을 체험하고 탐구하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발달시킨 정신분석과 자신의 것을 구별하기 위해‘분석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내놓았다. 분석심리학이 가진 주요측면은 다음과 같다.
▶ 정신적인 장애나 신경 장애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도 보다 균형있게 자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법
▶ 사람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신의 지도를 제공하려는 시도
▶ 종교적인 믿음, 꿈, 신화, 상징과 초과학 등의 연구를 통한 인간 심리의 내면 탐구.
융은 그의 모든 저서에서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 작용을 포함하여 정신(phyche)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반면, 의식 작용에만 관련해서는 마음(mind) 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융은 영혼이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실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모두 뇌에 의해 인지되고 해석되는 것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는 결코 외부세게의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융은 페르소나를 정신의 ‘외면外面’이라고 불렀다. 페르소나가 세상을 향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페르소나(persona)는 ‘배우의 얼굴’이란 뜻의 라틴어로 자아가 사회로부터 자신의 진짜 본성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내는 가면이다. 이것은 우리의 공개적인 얼굴이며, 의도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가면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사용한다. 사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때로 필요하기도 하다. 가면은 상처받기 쉬운 자아를 어느 정도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가끔 병원의 의사들과 회식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사적인 얘기를 하게 되면 페르소나에 대한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의료인으로서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 인격과 개인의 인격의 차이가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느낄때가 많기 때문이다. 의료 뿐 아니라 모든 직업은 그 고유의 페르소나를 가진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들의 직업적 이미지에 자신을 완전히 동일시하고 그 뒤에 항상 숨어 지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융은 페르소나를 일종의 가짜 인격이라고까지 말했고, 우리들 각자는 언젠가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저술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켰고 지식인,예술가, 독자들에게 통찰의 원천이 되어왔다. 그는 정신과 삶의 신비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융의 아버지 파울 융이 종교를 ‘저쪽 밖(out-there)'에서, 즉 역사와 성스러운 땅, 성서와 의례와 전통 속에서 보았던 반면, 융은 ’여기 안(in-here)'에서, 즉 정신의 조화로운 힘, 대극 간의 상호 작용, 꿈, 환상, 예술과 상상, 신화, 문학과 상징주의 속에서 가시화되는 마음의 구조 안에서 종교를 보았다. 이거시 현대에 믿을 것을 제공하고 있는, 현대를 위한 융의 신화였다. 신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이름과 거주지를 바꾸었다.
‘거물이자, 괴물!’융을 읽으면서 생각난 단어였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리뷰하면서 마무리 하자. BBC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프리맨이 융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 유명한 대답을 했다.
“대답하기 어렵군요. 나는 압니다.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융은 신앙에 대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생각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믿는다’는 말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나는 믿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특정한 가설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어떤 것을 안다면 나는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서문
(p9)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와 같이 ‘자기’가 ‘자아’에게 보내주는 신호들을 포착해나가는 과정이 융 자서전의 중심 내용을 이루는 셈이다.
⇒ 융은, 자신의 삶과 역사를 명쾌하게 정의했다. 나는? 나는 어떤 역사를 만들고 싶은가?
‘최우성의 생애는 시트콤이었다(?)..아.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15년을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업에 대한 전문성 강화도 중요하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삶도 중요하다. 노래를 부르며 사는 삶도 좋겠지. 그냥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꿈을 꾸고 실현하는 삶에 대한 주제를 지닌‘꿈을 주제로 한 노래’그리고 가끔씩, 먼 미래를 전망하는 것을 즐겨하는 내 모습을 본다. 미래학자가 되고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자신의 역사를 정의할 것을 찾고 싶어서 연구원에 들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찾게 되면 전력질주하게 될 그것! 말이다.’
(p10) 그는 신을 가리켜 ‘위대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그렇게 위험스럽긴 하지만 신은 탐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위대한 위험’인 것이다.
프롤로그
(p11)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
(p11)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과학은 평균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개념들은 각 개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이다.
(p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p13)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p14)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
⇒ 나는 그것을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것 같다. 게다가 아직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적 체험의 중요성, 깊이 공감할 수 밖에 없다.
(p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 그래서 자서전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겪는 모든 상처와 아픔은 써야 할 글감이 될 것 아닌가! 살기 힘들 정도로 아플 때, 쓰면 살 것이다. 적자생존!
일생을 사로잡은 꿈 [유년시절]
(p23) 나의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목사관, 정원, 세탁장, 교회...이러한 것들은 모호한 바다에 떠다니는 기억의 섬들일 뿐이다.
⇒ 어린시절의 기억이 내게는 별로 없다. 놀이터에서 울던 일, 할머니와 가던 소풍에서 먹던 사이다와 계란의 맛, 안암동 골목길의 풍경, 부모님과 함께 했던 계곡놀이가, 흑백사진처럼 느껴진다.
(p25) 햇빛은 수면에 반짝이고, 기선이 일으키는 파도가 호숫가로 밀려와 땅 위의 모래에 잔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그 호수의 광활함은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고 비길 데 없는 장관이었다. 그때 호수 근처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 원양어선의 1등항해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인천에 가서 큰 배를 탓었다.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배였다. 그때 나는 물이 무서웠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p26)‘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 아버지는 20대까지는 무서웠지만, 30대에는 융처럼 무력함을 뜻했다. 지금은 웃음이 난다. 유쾌함을 잃으려 하지 않는 아버지가 고맙다.
(p30) 반복되는 이런 생각들은 내 의식의 첫 외상(Trauma) 으로 이어졌다.
⇒ 무더운 여름날, 새벽에 선잠이 깨었을 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얘기하셨다. “배 타는 것 정말 지겹다. 교도소 가는 기분이야..”
(p31)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초의 꿈을 우연히 꾸었다. 그 꿈은 이를테면 일생 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서너 살이었다.
(p33) 오랜 후에야 비로소 그 기이한 형상이 일종의 남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40) 한순간 내가 경이로운 형상들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완전히 압도된 나머지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치던 ‘로망스’기타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음악이 주는 감탄에 빠진 첫날이었고, 친구들 어깨너머로 기타를 배우며,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게 된 이유였다.
(p42) 이런 어린이답지 않은 행동은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받기 쉬운 성격과 연관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유년시절의 깊은 고독감과도 연관이 있었다.
⇒ 중학교 시절, TV에서‘로미오와 줄리엣’영화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그때 내가 굉장히 감수성이 강한 아이라는 것을 알았었다.
(p46) 나는 일곱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그 시기에 볼놀이를 즐겨 했던 것을 기억한다. 오직 나의 불만이 살아 있는 불이었고 확실히 신성한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나인가. 아니면 내가 돌이고 어떤 자가 내 위에 앉아 있단 말인가?
(p49)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p52) 그때 비로소 무의식이 그 작품에 이름을 부여해 주었다. 그것은 ‘아투마빅투’즉 ‘생명의 숨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학창시절]
(p55) 나는 놀라움과 은밀하고 지독한 부러움을 안은 채 그들이 방학동안에 알프스, 그러니까 취리히 근처 저 ‘불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에 다녀 온 이야기를 들었다.
⇒ 중학교 시절에는 농구를 잘하는 친구가 몹시 부러웠다. 대학교 시절엔 연애를 잘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난 그저 조용한 학생이었다.
(p56)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목사요 나는 그보다 더 가난한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구두 바닥은 구멍이 뚫려, 젖은 양말을 신은 채 여섯시간이나 수업을 받으며 앉아 있어야 했다.
⇒ 우리집은 서민층이었지만 아주 가난하지는 않았다. 대학 등록금을 내는 일이 늘 어려워서 휴학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지만, 난 그다지 가난함을 느끼지 못했다. 가난은 약간 불편할 것일 뿐이라는 약간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p61) 아무도 나에게 수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했고, 나는 그러한 의문을 조리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나의 어려움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p64) 얻어맞는 순간, 번개같이 한 생각이 떠올랐다.‘이제 너는 더 이상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 그는 스스로 자신의 무의식을 인식했던 것을 알겠다. 자신의 내면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자의 성찰이 느껴진다.
(p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Neurose) 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p67)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 그는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 소망을 가질 때가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성찰의 시간은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꼭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이 필요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p70) ‘나’는 단지 성장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물이며, 권위자요, 직위와 위엄을 갖춘 사람이며, 나이 든 남자요,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p73) 나는 무언가를 배우려고 학교에 간 것이지, 쓸모없고 의미없는 곡예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 사고의 후유증으로 나는 신체와 관련된 것에 대해 일종의 소심증이 생겼다. 이 세상은 나에게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으나 막연한 위험과 무의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p78) 하느님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러한 곤경으로 밀어넣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방치했다.
(p80)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총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내가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 하느님에 대해서, 종교에 대해서, 나는 매우 미지근한 사람이다. 행복감으로 감사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강렬했던 종교적 체험에 관한 기억은 하나 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개신교에 1년 정도 다녔었다. 성균관대 국문과 대학원에 다니던 선배였다. 윤 로이스! 누나..그 당시 주일 오전에는 혜화동에 있는 교회를 가고, 오후에는 성당에 다녔다. 그때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와 반겨줌에 기뻐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 서로 힘을 주고 받으며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여름 수련회를 다녀와서 나는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 성당을 가야 하는지 결정을 해야 했었다. 월곡동 성당의 수녀님과 상담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녀님께 아주 힘들게 애기를 꺼내고 고민을 털어놓자, 수녀님은 아주 심플하게 한마디로 말씀하셨다. ‘교회는 그만 다녀라.’”“헉!” 나는 착한 학생이 되어 그 한 마디에 힘을 얻어 그만 다니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뭐랄까? 그만 다니고 싶은 핑계를 찾았던 것 같다. 교회의 적극성을 요구하는 모습, 열정적인 간증을 보는 부담감, 신도들끼리 너무 과도한 반성과 삶의 개입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러나 1년 동안의 경험은 나에게는 소중했다. 가톨릭은 제도와 카리스마로 운영되는 종교다. 개신교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느꼈고, 실제로 성당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개신교의 운영방식을 도입하고자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의 근원적 체험이라 하기엔 부족하다.
(p81)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p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그러나 말로는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 융은 권위, 아버지라는 권위에 주눅들지 않았다. 게다가 매우 지혜롭지 않은가!
(p87)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누가 놀이까지도 경쟁적으로 하게 되면 나는 그 놀이를 그만두었다. 그후 나는 학급에서 2등에 머물렀는데 그것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했다.
⇒ 나도 경쟁을 몹시 싫어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학교생활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과의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경영대의 학생들은 경쟁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나는 술을 먹으로 가고 싶었는데, 과 친구들은 내기당구를 치러 갔다. 신입생 초기에는 조금 어울리다가, 곧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성당 친구들이 메꿔주었다.
(p89)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부모의 아들로서 학교를 다니고 다른 많은 아이보다 그렇게 썩 영리하거나 주의깊지도 않으며 근면하거나 단정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아이였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 정말 늙고 의심이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인간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었다.
(p95) 그 무렵 나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며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나에게 제기되었다.
⇒ 나는 요즈음, “내 운명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의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명석 님의 책 제목을 믿는다.‘늦지 않았다.’
(p96) 그 해답을 나 자신이 고유한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단독자이며 하느님만이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을 나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p97) 그녀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는데 그 말투는 활달하게 철썩거리는 물소리 같았다. / 그녀의 무의식적인 인격이 갑자기 돌출하곤 했다. 그 인격은 예상 외로 강력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어둡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융은 매우 문학적인 표현을 많이 써서 읽는 즐거움을 준다. 말투가 활달하게 철썩거리는 물소리 같다니...ㅎㅎ / 내안의 또 다른 인격의 돌출, 그것을 인정하고 알아가는 것이 자신을 알게 되는 길이 될 것이다.
(p100) 그녀는 낮에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으나 밤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 했다.
(p101) ‘진정한 인식’은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타인과의 신비로운 교제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개인적인 관조행위를 통해 보는 ‘배후의 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p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p104) 왜냐하면 아버지가 직무상 명예를 지키려는 동기로 대답할 것이 틀림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p107) 나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져서 슬그머니 남성사회에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걷잡을 수 없는 회의라든가 압도적인 감동, 나로서는 하느님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여겨지는 은총들을 보지 못했다.
(p108) 나는 아버지에 대해 짙은 연민에 사로잡혔다. 아버지의 직업과 그 인생의 비극을
(p109) 하느님은 자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존재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위대한 위험’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라는 한쪽 면에만 매달려 유혹자와 파괴자의 손아귀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p110)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 떨어졌다. 그것이 나를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p111) 종교란‘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맑스처럼,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는 ‘종교는 아편으로 만든 마취약’이라고 했다. 나에게 종교는 아직도 물음표다. 다만 나기브(초대 이집트 대통령) 가 말하는 종교의 정의에 고개를 끄덕거릴 때가 많다.“종교는 여러 가지 색종이로 만든 등 안에 있는 촛불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색깔로 등불을 보지만 그 촛불은 항상 안에 있다.”
(p117) 드디어 여기에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방해하는 힘을 가진 적대자와 피로 계약을 맺기까지 한 자가 있구나.
(p120)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p125) 그것은 주목을 받지 않으려는 나의 일반적인 성향과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p127) 나의 비탄과 분노는 위협적으로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때 내가 이미 이전에 나 자신 안에서 여러 번 관찰했던 어떤 일이 일어났다. 마치 시끄러운 공간에서 방음문을 닫아버린 것과도 같이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그것은 냉정한 호기심으로 다름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그럼, 여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너는 흥분하고 있구나.
(p128)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별들과 끝없는 우주의 장엄한 세계의 숨결이 나에게 닿은 것 같았으며, 또한 오래전에 죽었으나 아직도 영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게 몰래 방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툭하면 흥분하고 감정적으로 솟아올랐던 과거의 나를 살펴본다. 그렇다.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속 바다에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치지 않는다’는 명언이 생각난다.
(p131)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p133)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받아들이지도 않고 진정으로 알고 있지도 않는 것을 논리의 곡예로써 억지로 꾸미려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실은 체험이 문제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 나의 탐구가 가져다 준 큰 소득은 쇼펜하우어 였다. 그는 눈에 보이도록 여실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고통, 그리고 혼란과 고난과 악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었다. 이것들을 다른 모든 사람은 거의 주목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항상 조화와 이해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런데 여기에 비로소 세계가 어쩐지 가장 좋은 것만을 기초로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철학자가 나왔다.
(p135) 지성은 인간 마음의 기능으로, 마치 한 아이가 태양의 눈이 멀기를 기대하면서 태양을 향해 들고 있는 지극히 작은 거울 한 조각과도 같다.
(p136)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p137) [시학]에 따르면 가장 좋은 시는 그 창조의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라고 말하기는 해
(p139) 나로서 서운한 점은, 자연과학에서는 의미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고, 종교학에서는 경험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은 제1의 인격의 정신적 욕구에 아주 잘 부합하였고, 그에 반해서 인문학이나 역사과목은 제 2의 인격을 위한 일종의 유익한 시청각수업인 셈이었다.
⇒ 융의 다양한 관심사와 폭넓은 학문적 호기심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욕심이 없었다면, 분석 심리학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p147) 나는 다양한 작은 술잔에 너무나 고무되어 예기치 않았던, 전혀 새로운 의식상태로 옮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안과 밖이 따로 없고 나와 타인, 제 1의 인격과 제 2의 인격, 조심스러움과 소심함도 없었다.
(p149) 그래, 이것이야말로 세계다. 나의 세계, 고유한 세계요, 그 비밀이다. 이곳에는 선생도, 학교도,해답 없는 문제도 없다.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고도 있는 곳이다.
(p151) 나는 이런 생각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즉, 가족들은 한 집에 살고 나는 다른 곳, 집에서 약간 떨어진 막사에 사는 것 말이다.
(p155) 거기에는 알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찾아볼 수 있는 무척 매력적인 도서관이 있었다.
아름다운 시간들 [대학시절]
(p164) “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결정을 앞두고 갈등하고 있을 때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
⇒ 감탄하며 웃었다.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 아닌가! 요즘은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느정도 까지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진정한 역할일까? 스스로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스스로 삶의 물음표를 던지라고 말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p166) ‘결코 따라해서는 안 된다.’이것이 나의 신조였다.
(p170)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p173) 인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개성적인 기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며, 무엇보다 먼저 부모의 환경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개성 때문에 부모의 정신세계와는 제약된 범위 안에서만 일치할 뿐이다.
(p175)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무대에서 주로 대사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크다.
⇒ 그렇다. 대사없는 단역배우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나만의 극장을 만들고 싶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더 빛나는 주연배우의 공연이 곧 펼쳐질 것이다. 비록 단역으로 생을 마감할지라도, 주연배우의 꿈이 없다면 어찌 견딜 것인가!
(p179) 아버지는 누군가와 말다툼을 해야만 했으며 가족과 자기 자신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왜 그는 그런 싸움을 모든 피조물의 비밀스러운 창조자이며 세계의 고통에 대해 실제로 책임이 있는 단 한 분인 하느님과 하지 않았을까?
(p184) 그 여름저녁, 아버지가 포도주를 마시는 술자리에서 한 연설은 그가 존재했었고 무언가 되어야 했던 시절에 대한 마지막 생생한 추억을 되살린 것이었다.
(p186) 나는 궁핍한 시절을 굳이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언젠가 여송연 한 통을 선물로 받은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나는 지금 풍족하지 못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아끼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p192) 대학에서 첫해가 지나는 동안 나는 자연과학이 엄청난 분량의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지만 통찰은 아주 빈약한데, 그것도 주로 전문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철학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 마음이 언급된 곳에도 마음에 관한 진정한 지식은 없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릴 수 있는 철학적인 사색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기묘한 관찰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p198)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말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p199)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 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의 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p202) 나는 철학자들을 좋지 않게 여겼다.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 철학이 왜 필요한가? 라는 생각을 할 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이론과 실제, 탁상과 현장의 차이, 라는 개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철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철학이 없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이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p204) 그때 갑자기 권총이 발사된 듯 폭음이 들렸다. / 식탁판이 한가운데를 지나서까지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데는 완전 통나무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70년 동안 마를 대로 마른 통나무판이, 이 여름날에 어떻게 갈라진단 말인가? /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2의 인격의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그래. 뭔가 뜻이 있을거야”나는 내키지 않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화가 나기도 했다.
⇒ 스승님은 이 부분을 강의 때 많이 인용하셨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상을 전복하는, 혁명적인 변화...‘뭔가 뜻이 있을 거야’
(p207) 그 소녀는 ‘조기 완성된 자’였다. 그녀가 죽어가는 최후 몇 달 동안 그녀의 성격들이 하나하나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결국은 두 살짜리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서 마지막 잠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p209) 정신의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인간을 전체적으로 파아하고 병적인 이상현상도 함께 고찰하려는 심리학이 없었다. 병원 원장이 환자들과 함께 같은 건물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으며, 건물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격리되어 있었다. 정신병은 절망적이며 치명적인 일이었는데 그 그림자가 정신의학에도 드리워져 있었다.
(p210)“정신의학 교과서들이 다소 주관적인 특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그 분야의 특이성과 학문 형성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정신병을 '인격의 병‘이라 일컫고 있었다.
(p210)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p211)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나의 확신을
흩뜨려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 융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부럽다. 그리고 나 또한 그처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p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병든’인격과 치료자 인격 간의 대결이다.
⇒ 그것이 정신의학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병을 치료할 의사를 만나는 것이지만, 치유자로서 누구를 만나느냐? 의 문제도 되기 때문이다.
(p216) 정신의학적인 사고방식을 익히려고 [정신의학 잡지] 50권을 처음부터 통독했다. 정신의학은 정신병이 생겼을 때 이른바 건전한 정신을 엄습하는 생물학적 반응을 조리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여겨졌다.
⇒ 건전한 정신을 엄습하는 생물학적 반응의 조리있는 표현..감탄스럽다. 학자다운 냉정하고 정확한 정의다. 스승님의 표현대로 하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환자의 내적관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p221) 정신의학강의가 목표로 하는 것은 병든 인격에 관해 소위 추상화를 하고 진단과 증상의 기록, 통계로 만족하는 정도였다.
(p222) 프로이트의 견해는 나에게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와 이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의학자가 아니고 신경학자였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정신의학에 도입했다.
(p226)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p229) 영웅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그녀의 야심적인 갈망이 나에게 고착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테면 나를 양자로 삼아 자신의 기적적인 치유를 세상에 널리 선전했다.
(p230) 그녀는 총명했으며 내가 자기를 진지하게 대해주고 자신과 아들의 운명에 관심을 보여준 대해 무척 고마워했다. 이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
(p231)음주는 괴로운 상황을 잊기 위해 자신을 마취시키려는 절망적인 시도였다.
⇒ 이 구절을 읽으면서 흠칫 놀랐다. 요즘의 내 모습과 일치되는 부분이 있었다. 과음은 아니지만 상황을 잊기 위해, 스트레스를 탓하며, 자신을 마취시키려는 의도로 음주를 하는 경향이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줄여야겠다. 술은 즐기기 위한 것이지, 마취용이 아니니까.
(p238)그 구두수선공 같은 동작은 연인과의 동일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 것이었다.
(p240)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치유되기를 기대할 수 없는 가운데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행해 주어야 하는 환자들이 있었다.
(p241)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우리의 문제일 뿐이다.
(p242)“보시오, 융, 당신이 이 환자에게서 발견한 사실은 정말 흥미롭소. 하지만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이토록 추한 여성과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함께 지내는 일을 참아낼 수 있었단 말이오?”
(p243) 겉으로 보게 되면, 정신병 환자에게서는 비극적인 붕괴만이 보인다. 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환자 영혼의 다른 측면의 삶을 보는 일은 드물다. 우리는 자주 환자의 외관에 속는다.
(p247) 그후 나는 정신병 환자의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그들의 내적 체험의 의미있는 현상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p248) 정신치료와 분석은 인간 개체가 그러하듯 다양한 법이다.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있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수도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나로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해결책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 그는 의도적으로 체계적인 것을 멀리한다.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이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다른 한 인간과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개별성, 보편적인 원칙에 갇히지 않은 융의 유연함과 위대함이 느껴진다.
(p250) 마음은 정말 신체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접근하기 어렵다. 마음은 이를테면 세계의 절반으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할 때에만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히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며, 정신과 의사는 세계 전체에 관여해야 한다.
(p250) 오늘날에는 예전과는 달리 우리 모두를 위협하는 위험이 자연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즉 각 개인과 다수의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정신의 변이는 위험하다.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기능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만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어버리면 수소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p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상처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 융은, 환자의 치료는 의사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를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현장에서 참으로 필요하지만, 실제로는 보기 힘든 부분을 융은 지적하고 있다.
(p254) 당신은 분석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우선 당신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신자신이 치료의 도구입니다. 당신이 올바르지 않다면, 어떻게 환자를 확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이 진정한 재료가 되어야만 합니다.
(p257) 나는 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정신치료를 배워서 시행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편이다. 그러나 잠재성 정신병의 경우는 그들이 잘못 짚기가 쉽다. 그러므로 나는 비전문가가 분석가로 일하더라도 전문적인 의사의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재적 정신분열증을 알아차리고 치료한다는 것은 의사들에게도 대개의 경우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비전문가가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 아닌가.
(p259)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부인들이 질투심이 많아 남편의 교우관계를 깨뜨리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법이다.
(p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결혼,명성,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 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p266) 치유에 효과적인 것은 독毒 일 수도 있어 모든 사람이 다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는 하지 못하도록 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그런 수술이 치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p268) 3분의 1은 실제로 나았고 3분의 1은 상당히 호전되었으며 3분의 1은 근본적으로 변화가 없었다.
(p270) 우리 시대에 이와같이 마음의 분열로 희생된 자들은 단지 ‘스스로 택한 신경증 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표면적인 증상은 자아와 무의식 사이에 벌어져 있는 틈이 메워지는 순간 사라진다.
(p271)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p276) 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Trauma) 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의 치료과정에서는 신경증의 많은 사례에서 성욕의 문제는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다른 요인들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사회적응, 비극적인 삶의 정황으로 인한 억압, 체면 차리기 등의 문제들이었다.
(p278)“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연구를 제한하고 진리를 숨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나는 경력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 융은 프로이트를 계속 지지한다면 대학에서의 장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위와 같이 말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용기를 내면서도, 모든 신경증이 성적억압이나 성적 외상으로 생긴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에는 학자로서 의문을 갖는다.
(p279)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그는 무척 총명하고 예리하며 어느 면에서나 괄목할만한 사람이었다.
(p284) 그것은 신랄함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그의 신랄함이 두드러져 보였다. 내가 그 신랄함을 성욕에 대한 그의 태도와 연관시켜 바라볼 수 있기까지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있었다.
(p288) 모든 것은 지나간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은 허위가 되며, 그저께 잘못된 결론으로 간주되던 것이 내일은 하나의 계시가 될 수도 있다.
(p289) 나는 혀끝에서 튀어나오려는 날카로운 반론을 억제하느라 애를 먹었다. / 마치 나의 횡격막이 철판으로 되어 있고 그것이 벌겋게 뜨거워져 한껏 달아오른 둥근 천장처럼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 위의 표현을 보면서, 융의 문학적 재능에 놀랐다. 그의 학문의 업적에 눌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감각적인 표현은 의학의 전문성과 맞물려 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p294)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p295)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의 그말이 나의 기억에서 영 잊혀지지 않았다.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그 말 속에 이미 우리 관계의 종말이 예시된 셈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p300) 나는 꿈을 배후에 그 의미를 숨기고 있는 ‘가면’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의미는 이미 인식된 바 있으나 소위 악의적으로 의식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p310) 나는 고독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소위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미리 곰곰이 따져본 점이었다. 나는 여기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과 나의 확신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사람들에게 신비주의자로 간주되고, 책을 쓰레기라고 말해도 그는 당당하다. 마치 김훈의 인터뷰 내용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네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김훈 인터뷰 중에서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김경 지음)
(p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개별적인 환자의 심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말하자면 환자의 눈으로 관찰했으며, 그 결과 병에 대하여 그때까지 가능했던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이 점에서 그는 불편성과 용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많은 선입견을 극복해나갔다.
내 안의 여인 아니마
(p315)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꿈과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나는 단지 질문만을 던졌다. “당신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까?”“그것은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p316) 꿈은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사실이다.
⇒ 꿈은 아침이 지나고 나면 잊는 것이 기본인데, 어떤 꿈은 2~3일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꿈도 있었다. 아주 가끔은 혼자서 꿈을 해석할때가 있었고,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있었다. 마음속으로 동경했던 모습이 보일때도 있었고, 스쳐 지나간 여인의 향기가 꿈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꿈속의 나는 매우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거부할 수는 없는 나였다. 본질적인 나의 ‘자기’가 ‘자아’에게 보낸 상징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나도 융처럼 꿈을 기록해야 할까?
(p321) 이 순간이 내 운명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마침내 그 놀이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이의 놀이를 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 때 크나 큰 체념과 굴욕감이 고통이 따랐다.
(p326) 나는 최선을 다해 환상을 기록해나갔다. 그리고 환상이 생기게 된 정신적인 전제들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p331) 만일 네가 이 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너는 너 자신을 총으로 쏘아야 한다.
(p337)“그는 수백 년 전에 죽은 베다의 주석가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네, 그렇습니다. 그의 대답에 나는 크게 놀랐다.“그럼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까?”내가 물었다.“물론 그의 영혼이었습니다.”그가 시인했다. “영혼의 구루도 있습니다.”그가 이어서 말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구루로 삼지만, 늘 영혼을 구루로 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p339) 환상을 기록하는 동안 나는 한번 이렇게 자문해 보았다. “도데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확실히 과학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 이것은 무엇인가? 이때 내 안에 어떤 소리가 있었다.‘이것은 예술이에요.”나는 매우 놀랐다. 나의 환상이 예술과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 예술과 무의식은 깊은 연관을 지닐 수 밖에 없다. 흔히들 예술을 매뉴얼로 하기 어려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융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통찰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p342) 그가 좌절한 원인은? 그는 자신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의 평가에 의해 살았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 자신의 평가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융이 말한 황홀한 고독일지도 모른다.
(p345)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는 불확실한 길에 자신을 맡기는 일은 위험한 실험이나 수상한 모험으로까지 여겨진다. 그것은 오류와 불확실이 길, 그리고 오해의 길이라고 간주된다. 나는 괴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한다.“외람되게도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p346)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졌다. 그런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체험한 모든 것은 나의 실제적인 삶과 연결됨을 나는 항상 알고 있었고 삶의 의미를 폭넓게 채우고자 노력했다. 나의 좌우명은 ‘도전에 맞서 싸우라!’였다. 나의 가족과 직업은 다행스럽게도 늘 현실감을 잃지 않게 했으며, 내가 정상인으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증해 주었다.
⇒ 직업과 가족이 현실성을 굳건히 지켜주었다는 융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p357) 나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가 ‘자기’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p361) 젊은이로서 나의 목표는 학문에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그 용암의 흐름을 만났고, 그 불길의 열정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p368) 그것은 내게 속해 있으나 내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p372)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p375) 유형에 관한 책은 한 인간의 모든 판단은 그의 유형에 의해 제약되며 모든 관점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p382) 많은 곳에서 그리스도 재림의 가능성과 거기에 대한 희망이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환상을 보았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는데, 그것은 구원을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인 셈이다.
(p386) 물고기에 대한 연구가 꿈에서는 아버지의 몫으로 되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는 소위 기독교 영혼들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오래된 관념에 의하면 이 영혼들은 베드로의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이었다.
(p389) 나는 그 문제가 나에게 달려든 방식대로, 즉 감정을 억제하지 않은 채 체험한 그대로 써내려갔다.
(p397) 나의 저술들은 내 생애의 정류장이라 여겨질 만하다. 그것들은 나의 내적 발달의 표현이다. 무의식 내용을 탐구하는 일은 사람을 만들고 그에게 변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의 생애는 내가 행한 것, 내 정신의 작업이다. 나의 모든 저술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부과된 과제인 셈이다. 그것은 숙명적인 강요로 이루어졌다. 내가 쓴 것은 내부로부터 나에게 엄습해온 것들이다. 나는 나를 충돌질하는 영혼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허용했다.
⇒ 자신의 저술들을 생애의 정류장으로, 내적 발달의 표현으로 정리한 표현이 재치있다. 나의 경우에는 노래를 작곡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작곡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보다는, 무엇인가 충동질하는 내면의 두드림에 자연스럽게 응답하는 과정이었으며, 노래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과 메시지가 음표로 표현되어 에너지로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p401) 나는 가장 깊은 생각과 나 자신의 인식들을 이를테면 돌에 표현하거나 돌로써 고백해야 했다.
(p404) 탑은 나에게 성숙의 장소였다. 즉, 그 안에서 내가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로 다시 존재할 수 있는 자궁, 모성적 이미지의 장소였다.
(p405) 수도도 없어 나는 펌프로 직접 물을 긷는다. 장작을 패고 음식을 요리한다. 이런 단순한 일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p410) 물이 막 끓어오르자 주전자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현악기소리 같기도 했다. 수많은 소리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울리고 있었다.
(p418) 처음에는 인격의 이분화를 당연히 나 개인의 문제이며 책임으로 여겼다. 파우스트가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고 나에게 구원과도 같은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런 이분성의 원인을 규명해주지는 않았다.
⇒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게 되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슴속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p420) 둘로 나뉘어 있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가 합해져 나 자신 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사람이 되었고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p421)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된다. /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속에서 사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p422)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p422) 그래서 옛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여행
(p433) 이 사람들은 자신의 격정으로 살고 있다. 다시 말해 그 격정에 의해 그들의 생이 영위되고 있다.
(p437) 어린이나 원시인을 보게 되면 성숙한 문화인의 마음속에, 채우지 못한 욕구와 필요로 말미암은 갈망이 일어난다. 이것은 적응상태, 즉 페르소나 (Persona : 자아가 외부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세계가 바라는 대로 보여주는 모습)를 위하여 인간의 전체상에서 떨어져 나간 인격부분에 해당된다.
(p441) 비평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대상의 외부에 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를 밖에서 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나라의 특성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p441)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모든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p443) “우리는 그들이 넋이 나간 사람들이라고 확신하오” 나는 그에게 왜 백인이 모두 넋이 나간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그들은 머리로 생각한 것을 말하오”나는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그는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p444) 나는 어떤 미지의 것,그러면서 무척 친밀한 것이 내 안에서 형체없는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p455) 그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모습이었으나 동시에 강렬한 ‘기시감(旣視感)’을 주었다. 즉, 내가 마치 이런 순간을 이미 한번 경험했고, 시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 세계를 언제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 연구원 신입여행을 가서 노래‘출항’을 부를 때, 난 ‘강렬한 기시감’을 경험했다. 꽤 오랫동안 바라고 그리워했던 것이라 그랬을까? 기억에 남는 자랑스러운 경험이었다.
(p457)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p463) 나의 흑인들은 대부분 뛰어난 성격감정가임이 증명되었다. 그들의 직관적인 인식방법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의 말씨, 몸짓, 걸음걸이를 기가 막히게 흉내내면서, 이런 방식으로 상대방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의 특성을 꿰뚫고 있는 데 놀랐다.
⇒‘그의 신발을 직접 신어보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격언이 생각난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구하고 말씨와 몸짓 등 행동을 따라하면서 나중에는 치밀한 내면과 성격연기를 펼치는 것이 이해가 된다.
(p470) 나와 나의 여행 동반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깊은 고통을 동시에 지닌 아프리카 원시세계를 문이 닫히기 전에 체험하는 행운을 누렸다.
(p475) 우리도 또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밝힌다든지 부활절 달걀을 숨긴다든지 할 때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의식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다.
(p484) 싸움터의 병사들은 전쟁에 관한 꿈보다는 고향 꿈을 훨씬 더 많이 꾸었다. 정신과 군의관들은 어떤 병사가 전쟁장면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그를 전선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의 인상들에 대한 정신적 저항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p491) 나에게는 해방이란 것이 없다. 내가 소유하지 않고 내가 행하거나 체험하지 않은 그 어떤 것들로부터도 나를 해방시킬 수 없다. 진정한 해방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했을 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헌신하여 철저히 참여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법이다.
(p495) 그리스도 역시 부처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구현자다. 둘 다 세상을 극복한 자들이다. 부처는 이성적 통찰로써, 그리스도는 숙명적인 희생으로써 그 일을 이루었다. 기독교에서는 더 많이 고통을 겪는 데 주안점을 두고, 불교에서는 더 많이 깨닫고 행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p501) 꿈은 억센 손으로 그토록 강렬한 인도의 모든 낮의 인상을 지우고, 아주 오랫동안 내버려두었던 서양의 문제를 나를 옮겨 놓았다.
(p503) 인도는 어떤 자취도 없이 나를 스쳐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영원에서 다른 영원으로 옮겨가는 자취들을 나에게 남겨놓았다.
환상들
(p514) 나는 내가 지구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p516) 나에게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나’라고 말이다. ‘나’는 이를테면 남아있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나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참으로 나라는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다.
(p517) 내가 살아온 인생은 자꾸만 시작도 끝도 없는 역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단편, 앞서거나 뒤따르는 본문도 없이 책에서 잘려진 장(章)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의 인생은 긴 사슬에서 가위로 잘려진 것처럼 보였고, 많은 물음은 해답이 없는 채로 남았다.
(p518) 내가 지구를 떠나려고 하는 데 대해 항의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구를 떠나서는 안되고 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 통지를 받는 순간, 나의 환상은 끝나고 말았다.
(p516) 나는 기묘한 생체리듬 속에서 살았다. 낮에는 대부분 우울했다. 저녁무렵이 되면 나는 잠이 들었고 나의 잠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 한시간가량 깨어있었는데, 이때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었다. 나는 황홀경이나 엄창난 축복의 상태에 있는 듯했다. 나는 우주공간을 떠 다니며 우주의 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허공이지만 가능한 모든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원한 지복이었다.
(p523) 환상을 보는 동안 느끼게 되는 아름다움과 감동의 강도는 사람들이 결코 표현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일찍이 겪은 일들 중에서 가장 엄청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서 찾아오는 낮의 대비! 나는 낮에는 괴로웠고 신경이 완전히 지쳐 있었다.
사후의 삶에 관하여
(p533) 신화적인 인간은‘그 너머로 나가기’를 갈망하지만 학문적인 책임을 고려하는 인간은 그것을 허락할 수 없다.
(p536)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우세할수록 인생은 그만큼 빈약해진다. 그러나 무의식과 신화를 의식화할수록 우리의 인생은 그만큼 통합을 이루게 된다. 과대평가된 이성은 그것이 지배하면 개인이 궁핍해진다는 면에서 독재국가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뭔가를 알려주거나 영상으로 암시하면서 하나의 기회를 준다. 무의식은 어떤 논리로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에게 때때로 전해 줄 수 있다.
(p541) 죽은 자들은 모두 죽음 직후에 그들 인생의 종합적인 경험을 보고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죽은 자들은 죽은 사람이 가지고 오는 인생경험에 큰 관심을 보였다.
(p551) 신화는 피할 수도 면할 수도 없는, 의식적 인식과 무의식 사이의 중간단계다. 무의식이 의식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앎으로 영원 속의 앎, 대개‘지금 여기’와 관계가 없고 우리의 지적 언어도 고려하지 않는 앎이다. 오직 우리가 무의식으로 하여금 스스로 확충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때에만,그것이 우리 이해의 범위 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측면이 우리에게 지각된다.
(p558)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p560) 서양인은 외향적인 경향이 강하고 동양인은 내향적인 경향이 강한 듯하다. 서양인은 의미를 투사하여 객체에 의미가 있는 듯이 추정한다. 동양인은 그 의미를 자신 속에서 느낀다. 그런데 의미는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는 법이다.
⇒ 한사람 안에도 외향과 내향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동서양의 차이, 남녀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생각하면 할수록 신비롭다.
(p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 이 물음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고단한 일상과 바쁘게 돌아가는 현재에 밀려 잠재되어 있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질문! 그 질문의 답이 늘 궁금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묘비문이 생각난다.‘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어쩌면 이 묘비문은 그가 그 질문에 답을 못했다는 뜻은 아닐까?
(p565) 나는 우리가 죽은 후에 어여쁜 꽃으로 덮인 초원에 이르리라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저승이 모두 밝고 좋기만 하다면 우리와 순수하고 축복받은 영혼들 사이에 친밀한 소통이 있어야 할 것이며, 전생에서부터 아름답고 선한 결과가 우리에게로 흘러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다.
(p572) 인류에게 결정적인 물음은“당신이 무한한 것에 관련되어 있느냐,그렇지 않느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의 시금석이다. 무한한 것이 본질적이라는 사실을 내가 알 때에야 비로소 나는 결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찮은 일에 관심을 쏟지 않을 것이다.
(p572)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p574) 인간실존의 유일한 의미는 존재 그 자체의 어둠속에 빛을 밝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의식이 우리에게 작용하듯 우리 의식의 증가가 무의식에 작용한다는 사실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만년의 사상
(p579) 빛에는 창조주의 다른 측면인 그림자가 따른다.
(p581) 도덕적인 선이라고 알려진 것을 경우에 따라 피하고 악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선악의 대극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p583) 타고난 순진성으로 어느 정치가가 선언하기를, 자기는 ‘악의 상상’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정말 참다운 진실은 우리가 악의 상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 상상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p584) 잘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은 신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런 방면의 온갖 시도를 억압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p591) 과학적 인식은 ‘무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그럼으로써 과학은 그것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다. 과학은 정신의 실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정신을 수단으로 사용해야만 인식을 할 수 있을 뿐이다.
(p594) 인간은 성찰하는 정신 덕분에 동물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게 되며, 그는 인간본성이 특히 의식의 발달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그의 정신을 통하여 증명한다.
(p597) 어떤 학문도 신화를 대체하지 못하고 어떤 학문으로도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신’이 아니라 신화가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삶을 계시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고안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종의‘신의말씀’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영감’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착상’이 우리가 궁리해낸 결과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지‘다른 곳에서’우리에게로 스며들어왔다는 것을 안다.
(p600) 공동의 비밀은 결속을 위한 시멘트 역할을 해준다.
(p601) 자기 자신의 발로 서는 것이 개인의 고유한 과제임을 여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p601) 다리가 불편한 자를 위한 지팡이,실망하고 방황하는 자와 지친 순례자를 위한 열렬하고 찬란한 목표...
(p604) 동시에 두 가지를 다 하려는 사람, 즉 개인적인 목표를 따르면서도 집단성에 보조를 맞추려는 자는 누구나 신경증적인 사람이 된다.
⇒‘맞다..그렇지’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요즘 더욱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정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늘 자신을 보면서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p613) 정신은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다.
회고
(p624) 고독이란 주변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전할 수 없거나 자기는 가치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으로간주될 때 생기는 법이다.
(p625)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그는 고독해진다.
(p626) 나는 언제나 내적인 법칙을 따라야 했다. 나에게 부과된 그 법칙은 내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았다.
(p628) 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지나간 것에 만족한다. 내 인생은 풍성했으며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떻게 내가 그토록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동안 일어난 것들은 그야말로 기대 밖의 일들이었다. 나 자신이 달라졌더라면 많은 일이 다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생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p629) 나는 내 고집으로 말미암이 일어났던 어리석은 많은 일을 후회한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리석음을 갖지 않았다면 나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망하면서도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확신을 결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내가 태어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토대 위에 존재하고 있다. 온갖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존의 견고함과 내 존재양식의 연속성을 느끼고 있다.
⇒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좋은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후회를 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후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원한다.
(p630) 인생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다. 나는 의미가 우세하여 전투에서 이겼으면 하고 마음 졸이며 희망하고 있다. / 내가 나 자신에 관해 불확실해질수록 온갖 사물과의 친화성이 그만큼 더 높아진다. 그렇다. 마치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계로 옮겨와서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 않은 낯설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여겨진다.
3. 내가 저자라면
*** 심층읽기에 대하여
6기 연구원부터 시작한 심층읽기는 나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나는 내가 매우 느린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팀에 근무하므로 매우 명석하고 민첩하며 지능이 높을 것으로 선입견을 갖는 사람이 있지만, 친한 친구들은 다 안다. 내가 매우 느리고 말귀를 잘 못알아 들으며, 웃음도 남들 다 웃고 난 후에야 뒤늦게 터진다는 것을...ㅎㅎㅎ.. 책을 읽어도 한번 읽으면 잘 이해가 안된다. 문장이 주는 의미는 이해하지만, 저자의 메시지를 읽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천천히 되씹고 골똘히 생각해야, 나중에 간신히 그 의미를 이해한다.
연구원 2년차에는 특별히 선정한 심층읽기를 커리큘럼으로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자서전에 대하여
두 번을 봐도, 어려운 내용은 역시 어려웠지만, 훨씬 진지하고 깊이있게 접근할 수 있었다.
아마,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책을 읽으며 자서전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나도 자서전을 써봐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자서전을 쓰겠다는 출간욕심이 아니라,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인생의 콘텐츠가 있는 삶,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삶에 대한 욕심이 들었다.‘내가 저자라면’을 쓰기 전에, 먼저 저자가 될 생각을 세우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책의 구성은 내 삶의 구성을 따르지 않을까?
무의식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 자신의 삶의 선택과 이력에 대한 총체적인 기억이다. 우리가 온통 의식으로 사는 것 같지만 무의식이 없다면 의식의 세계도 있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만들어진 기억 하나하나는 우리의 무의식에 큰 영향을 끼친다. 1차 레이스 때 했던 리뷰와 컬럼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특히 무의식에 대한 컬럼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무의식에 대해, 미래와 현재를 한번 더 조망해 보고 싶었다. 두 번째로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무의식에 대한 심층읽기(?)를 시도했다. 몇 가지가 눈에 보였다.
첫째, 몸
직장일과 연구원생활을 병행하면서 무리를 한 탓인지, 몸이 탈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성 탈모도 생기고, 눈은 더 침침해져서, 노안 초기증세로 진단을 받고 안경도 바꾸었다. 운동을 못하면서 신체의 활력은 떨어지고, 의욕도 저하되기 시작했다. 몸의 이상징후에 대한 불편함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우울한 느낌을 갖게 된 것 같다.
둘째, 마음
융에 대한 참고도서를 찾다가, ‘마음’과 관련한 책들을 읽느라 시간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지만 집중해서 몰입해 있는 나를 보았다. 정신분석을 테마로 글을 쓰는 소설가 김형경은 말했다. “몸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픈 것은 죄가 아니다. 인간의 정신에 정상이라는 개념은 없다. 누구나 정신의 긴장과 갈등을 안고 그것을 끊임없이 조정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불안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힘겹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히스테리 전략을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강박증을 사용한다. 아마도 나는 ‘마음’이라는 키워드를 어떤 식으로든 평생 가져갈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셋째, 돈
몇 년전 통제할 수 없는 재무적 사건을 겪으면서 어려움을 심하게 겪었고, 그 여파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그 이후, 의식적으로 피했지만, 돈에 대한 두려움이 내 무의식에 묵중하게 깔려있는 것을 자각했다. 돈은 그 어떤 본능적인 선택과 결정도 필터링을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넷째, 꿈
과거에 작성했었던 Dream List를 다시 봤다. 산만했다. 아주 소박한 욕망의 전시였다. 목표는 없고,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계획도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몇 년 전 작성했던 내용이라 세월이 알려주는 것들이 있었다. 유사욕망도 있었고, 막연한 동경도 보였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된 진짜 Dream List를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맘, 꿈, 돈...인생의 중요한 것들은 모두 한 글자로 이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문제가 쉽게 잘 풀려나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길'찾기가 어디 쉬울까? 그러나 무의식이 전하는 것들을 알아채고 자신의 내면과 직면하는 것...나쁘지 않다고 본다. 내안의 무의식을 이해하고 도움을 받으면 왠지 잘 풀려 나갈 것 같다. 내 안의‘자기’가‘자아’에게 그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