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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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월출산(月出山) 등정기
모처럼 1박2일 코스로 전남 영암과 해남을 찾기로 했다. 한달에 한번씩 산수 맑고 풍광 좋은 곳을 찾기로 했기에 가까스로 아내의 재가를 득해 실행에 옮긴 것이다. 먼저 그 유명한 월출산을 등정해보기로 했다. 지난번 다산초당을 찾을 때 옆에서 스쳐간 월출산은 주변의 산과 뚜렷이 구별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은 둥근 원을 형성하며 여성스러운 맛을 풍기건만 일부 산은 우람한 남성적 성격을 드러내는 산이 간혹 있는데 월출산이 그러했다.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월출산. 서해에 인접해 있어 달을 제일 먼저 맞는다하여 월출산이라 이름하였단다. 이 산은 소백산계(小白山系)의 광주에 있는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언젠가 한번은 올라 산세를 음미하고 등정기를 적어보리라 생각했던 이 산을 가장 뜨겁다는 7월 말에 정한 것은 호남의 소금강이요, 5대 명산의 하나이기에 내 가슴 깊이 각인코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빛고을 광주에서 약 60여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월출산은 산행코스가 다양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에 가장 높은 천황봉(天皇峯)을 타기에 적합한 천황사지로 향했다. 폭염이 주변을 제법 달군 오후 12시 30분쯤에 등정의 첫발을 내딛는 천황사지 주차장에 도착하자 벌써부터 땀방울이 일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기에 아마 등정이 시작되면 장맛비에 흠뻑 젖듯 내 몸은 땀으로 흥건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리한 등정이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으나 한 여름 사우나 한다는 각오로 독하게 마음먹고 등정길에 나섰다.
월출산은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렀다 한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는 전남의 명산 중에 명산으로 꼽힌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靈岩)이라 한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국립공원이 20개 있다고 한다. 그 중 월출산은 1988년 19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거의 막내나 다름없다. 이전인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자 입구에 이렇게 씌어놓았다. ‘국립공원은 국민의 것이니 입장료는 무료’라고. 공짜는 좋지만 주차비는 만만치 않았다.
첫걸음부터 땀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산 입구에 있는 조각공원에서 예술품을 감상하니 시작은 좋아보였다. 이곳을 지나 처음 산속에 첫발을 디디자 온 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어느덧 물방울로 변해 몸통을 따라 굴러 내렸다.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정상정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몇 백미터 오르니 천황봉으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어느 쪽으로 가는 길이 나을까 고민하다 조금 한적하다 싶은 좌측길을 택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코스가 더 멀고 험한 코스였다. 어쩐지 따라오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절대 오르지 않는 코스를 멋모르고 밟고 있었으니.
바람 한점 없는 외길을 몇 번의 숨고르기와 발걸음을 쉬면서 가까스로 다다른 사자봉. 그곳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정자와 조금 떨어진 곳에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해발 510m 이건만 수많은 땀방울을 월출산 등산로에 뿌리게 하였다. 하지만 고진감래라던가. 1시간 30여 분만에 도착한 사자봉의 정자는 오를 때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시원한 바람을 몰고 왔다. 바람의 고마움을 그때만큼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잠시 땀을 식히고 난 후 어깨에 이고 있던 배낭을 풀고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과 물을 입으로 옮겼다. 허기와 더위에 지친 몸을 다소 쓸어내리는 듯 맛은 제법이었다.
잠시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쳐진 다리를 달랜 후 옆에 있는 구름다리로 발길을 옮겼다. 구름다리는 환상 그 자체였다. 주변의 수많은 바위들. 마치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보듯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78년,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사자봉과 매봉을 연결한 구름다리(길이 51m, 너비 0.6m이고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됨)를 놓았는데 시설이 노후하자 지난 해 탐방객의 안전을 도모하고 이용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재시공하였다한다. 어쩐지 다리가 아주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이 다리를 지날 때 120m 아래 계곡에서 부는 바람은 한여름임에도 서늘하기 그지없었고 오금마저 저리게 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저수지의 풍경은 그만이었고 주변에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들의 행렬은 이 산이 명산임을 입증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억겁의 세월 속에 눈, 비바람마다 않고 바위로 거듭난 왕관바위, 전망암, 형제바위, 거북바위 등 곳곳에 터잡은 바위들의 자태가 새로운 세상을 드러내 보이는 듯하다. 멀리 천황봉이 시야에 들어올 쯤 구름다리를 벗어나려니 사나이의 마음에 허전함이 밀려온다. 고지가 여기가 아니기에 구름다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천황봉으로 향하는 철계단을 밟아야만 했다.
이 철계단은 돌산의 특징이 그러하듯 가파르기 그지없다. 90도 가까이 수직으로 서있는 철계단이 계속 이어진다. 여름이었기 망정이지 겨울이나 비오는 날이면 가슴이 철렁철렁 할 것 같다. 하지만 시원하기만 했던 바람도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가파른 산이기에 더욱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아니 얼마 안되는 거리인 듯 천황봉은 시야에 있건만 왜 이리 닿지를 못하는 지, 직선거리를 따라 오르는 코스가 아니어서 오르고 내리기를 몇 차례 하면서 정상을 향해야만 했다.
땀에 범벅이 된 채 천황봉으로부터 200m 남짓한 곳에 다다르자 바위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 이름하여 통천문(通天門)이라 한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한사람 남짓 지나갈 수밖에 없는 천연바위문. 이 사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천황봉을 오를 수 없다.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은 시원을 넘어 상쾌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갈증과 통증 그리고 고통을 아우르는 듯하다. 배낭을 메고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바위굴 속에 들어서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영암고을과 영산강 줄기가 시야를 감싼다. 기쁨도 잠시 이곳이 끝이 아니다. 아직도 정상을 오르려면 200m가량 남아있었다. 여기부터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러나 정상을 오르지 않고서야 어찌 내려갈 수 있겠는가 재다짐하면서 가까스로 처진 몸을 천황봉으로 돌렸다.
천황사지 출발점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지 무려 4시간. 천신만고끝에 정상인 천황봉에 올랐다.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지난 3월 광주 무등산을 오른 지 4개월만에 오른 월출산은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땀에 범벅이가 되고 호흡이 목끝까지 치밀었으며 온 몸에 통증을 가져오게 하였다. 다리 곳곳에 아픔이 외워 쌌다. 그토록 힘든 산행을 자초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정상은 늘 이 모든 고통을 씻어주었다.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바라본 주변의 모습은 그동안의 육체적 고통을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았다. 산은 인간에게 끝없는 도전정신을 길러준다. 조물주가 만들어낸 어떤 산도 어김없이 인간에게 정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지만 그래도 인간은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상에 깃발을 꽂았다. 월출산은 목숨을 강요하는 산은 아니지만 몸에 일격을 가하기에 족한 산이었다. 탁월한 등산가에게는 하찮은 산이지만 나에게는 버거웠고 힘들었다. 반면 그 정상에 깃발을 꽂는 감격은 남달랐다.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무엇인가 색다른 반응을 요한 질문인데 답변이 의외다.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말은 평범하지만 되새길수록 심오하다. 전남 영암에 월출산이 있기에 올랐다. 없었다면 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있다는 자체가 우리에게 호기심과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고혹적이고 매혹적인 자태에 끌려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찾은 산이 월출산이다.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과 주변의 풍광을 벗 삼아 사진 몇 장을 담았고 약 30분 동안 이런저런 사색을 즐긴 후 내려오기 시작했다. 통천문을 지나자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올라왔던 길을 뒤로하고 다른 길을 택해 내려갔다. 이 길은 조금 더 가까웠고 오를 때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다리 힘이 없어서인지 내리막길이 만만치가 않았다.
1km 쯤 내려오니 바람폭포라는 조그만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코스에는 물 한 방울을 볼 수 없었는데 실 줄기 같은 폭포임에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월출산에는 여러 개의 폭포가 있으나 이 등산로에는 폭포라고는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연중 물이 마르지 않아 오르는 등산객에게는 여기가 마지막 물 보충지란다. 나는 그 옆에 있는 약수터에서 시원하게 물한모금 마시고 폭포수로 달아오른 머리전체를 씻어 내렸다.
아직도 내려가는 길이 2km가까이 남았지만 여기서부터는 계곡길이기에 어렵지 않을 듯하다. 내려가면서 오르는 등산객과 마주치기도 하고 천천히 내려가는 사람들과도 조우하니 오르는 것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드디어 첫발을 내딛은 지 6시간 만에 무사히 원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월출산은 대단한 악산(嶽山)은 아니지만 산행코스가 상당히 험한 편이었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철계단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유난히도 바위와 돌이 많고 계단도 적지 않아 등산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절경을 품고 있었다. 기암괴석이 설악산, 금강산 못지않았고, 천황봉에서 쳐다본 강진만, 영산강 그리고 저 멀리 두륜산이 마치 반도처럼 그려져 있는 독특한 풍광을 갖고 있었다.
등정을 모두 마치고 천황사지 캠프에 다다르니 저마다 월출산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글귀들이 보였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구구절절 그럴듯한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정봉곤이라는 분이 써놓은 시 한 수가 내 시선을 잡는다.
깍아지른 사자봉 아래
웅장하고도 장엄하구나
신의 작품인가! 하늘의 선물인가!
월출산이 낳은 명물이로구나
이곳에 올라보니 신선이 따로없네
정녕 무릉도원이 예 아닌가 싶구나
천황봉아! 장군봉아! 너가 있어
나 또한 행복하구나
안개속에 가리운 구름다리
그대는 진정 월출산의 명물이로구나
월출산 등정은 그동안의 산행 중 가장 힘들고 벅찬 과정이었다. 어찌보면 무모하기까지도 했다. 그 더운 날 하필이면 산행이라니. 그러나 산이 좋아 오른 산이었고, 전남을 대표하는 명산이었기에 죽도록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월출산! 언젠가 달을 맞는 날 다시 오르리라 다짐하면서 또 다른 탐방지인 해남 두륜산과 대흥사로 발길을 돌렸다.
IP *.57.36.34
모처럼 1박2일 코스로 전남 영암과 해남을 찾기로 했다. 한달에 한번씩 산수 맑고 풍광 좋은 곳을 찾기로 했기에 가까스로 아내의 재가를 득해 실행에 옮긴 것이다. 먼저 그 유명한 월출산을 등정해보기로 했다. 지난번 다산초당을 찾을 때 옆에서 스쳐간 월출산은 주변의 산과 뚜렷이 구별됐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은 둥근 원을 형성하며 여성스러운 맛을 풍기건만 일부 산은 우람한 남성적 성격을 드러내는 산이 간혹 있는데 월출산이 그러했다.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월출산. 서해에 인접해 있어 달을 제일 먼저 맞는다하여 월출산이라 이름하였단다. 이 산은 소백산계(小白山系)의 광주에 있는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언젠가 한번은 올라 산세를 음미하고 등정기를 적어보리라 생각했던 이 산을 가장 뜨겁다는 7월 말에 정한 것은 호남의 소금강이요, 5대 명산의 하나이기에 내 가슴 깊이 각인코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었다.
빛고을 광주에서 약 60여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월출산은 산행코스가 다양했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기에 가장 높은 천황봉(天皇峯)을 타기에 적합한 천황사지로 향했다. 폭염이 주변을 제법 달군 오후 12시 30분쯤에 등정의 첫발을 내딛는 천황사지 주차장에 도착하자 벌써부터 땀방울이 일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기에 아마 등정이 시작되면 장맛비에 흠뻑 젖듯 내 몸은 땀으로 흥건할 것이라 생각했다. 무리한 등정이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으나 한 여름 사우나 한다는 각오로 독하게 마음먹고 등정길에 나섰다.
월출산은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九井峯), 사자봉(獅子峯), 도갑봉(道岬峯), 주지봉(朱芝峯)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靈山)이라 불렀다 한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는 전남의 명산 중에 명산으로 꼽힌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靈岩)이라 한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국립공원이 20개 있다고 한다. 그 중 월출산은 1988년 19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거의 막내나 다름없다. 이전인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道岬山: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자 입구에 이렇게 씌어놓았다. ‘국립공원은 국민의 것이니 입장료는 무료’라고. 공짜는 좋지만 주차비는 만만치 않았다.
첫걸음부터 땀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산 입구에 있는 조각공원에서 예술품을 감상하니 시작은 좋아보였다. 이곳을 지나 처음 산속에 첫발을 디디자 온 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어느덧 물방울로 변해 몸통을 따라 굴러 내렸다.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정상정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몇 백미터 오르니 천황봉으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어느 쪽으로 가는 길이 나을까 고민하다 조금 한적하다 싶은 좌측길을 택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코스가 더 멀고 험한 코스였다. 어쩐지 따라오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절대 오르지 않는 코스를 멋모르고 밟고 있었으니.
바람 한점 없는 외길을 몇 번의 숨고르기와 발걸음을 쉬면서 가까스로 다다른 사자봉. 그곳에는 잠시 쉴 수 있는 정자와 조금 떨어진 곳에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해발 510m 이건만 수많은 땀방울을 월출산 등산로에 뿌리게 하였다. 하지만 고진감래라던가. 1시간 30여 분만에 도착한 사자봉의 정자는 오를 때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시원한 바람을 몰고 왔다. 바람의 고마움을 그때만큼 절실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잠시 땀을 식히고 난 후 어깨에 이고 있던 배낭을 풀고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과 물을 입으로 옮겼다. 허기와 더위에 지친 몸을 다소 쓸어내리는 듯 맛은 제법이었다.
잠시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쳐진 다리를 달랜 후 옆에 있는 구름다리로 발길을 옮겼다. 구름다리는 환상 그 자체였다. 주변의 수많은 바위들. 마치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보듯 눈을 휘둥그레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78년,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사자봉과 매봉을 연결한 구름다리(길이 51m, 너비 0.6m이고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됨)를 놓았는데 시설이 노후하자 지난 해 탐방객의 안전을 도모하고 이용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재시공하였다한다. 어쩐지 다리가 아주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이 다리를 지날 때 120m 아래 계곡에서 부는 바람은 한여름임에도 서늘하기 그지없었고 오금마저 저리게 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저수지의 풍경은 그만이었고 주변에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들의 행렬은 이 산이 명산임을 입증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억겁의 세월 속에 눈, 비바람마다 않고 바위로 거듭난 왕관바위, 전망암, 형제바위, 거북바위 등 곳곳에 터잡은 바위들의 자태가 새로운 세상을 드러내 보이는 듯하다. 멀리 천황봉이 시야에 들어올 쯤 구름다리를 벗어나려니 사나이의 마음에 허전함이 밀려온다. 고지가 여기가 아니기에 구름다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천황봉으로 향하는 철계단을 밟아야만 했다.
이 철계단은 돌산의 특징이 그러하듯 가파르기 그지없다. 90도 가까이 수직으로 서있는 철계단이 계속 이어진다. 여름이었기 망정이지 겨울이나 비오는 날이면 가슴이 철렁철렁 할 것 같다. 하지만 시원하기만 했던 바람도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다. 가파른 산이기에 더욱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아니 얼마 안되는 거리인 듯 천황봉은 시야에 있건만 왜 이리 닿지를 못하는 지, 직선거리를 따라 오르는 코스가 아니어서 오르고 내리기를 몇 차례 하면서 정상을 향해야만 했다.
땀에 범벅이 된 채 천황봉으로부터 200m 남짓한 곳에 다다르자 바위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 이름하여 통천문(通天門)이라 한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한사람 남짓 지나갈 수밖에 없는 천연바위문. 이 사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천황봉을 오를 수 없다.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은 시원을 넘어 상쾌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갈증과 통증 그리고 고통을 아우르는 듯하다. 배낭을 메고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바위굴 속에 들어서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영암고을과 영산강 줄기가 시야를 감싼다. 기쁨도 잠시 이곳이 끝이 아니다. 아직도 정상을 오르려면 200m가량 남아있었다. 여기부터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러나 정상을 오르지 않고서야 어찌 내려갈 수 있겠는가 재다짐하면서 가까스로 처진 몸을 천황봉으로 돌렸다.
천황사지 출발점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지 무려 4시간. 천신만고끝에 정상인 천황봉에 올랐다.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지난 3월 광주 무등산을 오른 지 4개월만에 오른 월출산은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땀에 범벅이가 되고 호흡이 목끝까지 치밀었으며 온 몸에 통증을 가져오게 하였다. 다리 곳곳에 아픔이 외워 쌌다. 그토록 힘든 산행을 자초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정상은 늘 이 모든 고통을 씻어주었다.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바라본 주변의 모습은 그동안의 육체적 고통을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았다. 산은 인간에게 끝없는 도전정신을 길러준다. 조물주가 만들어낸 어떤 산도 어김없이 인간에게 정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지만 그래도 인간은 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상에 깃발을 꽂았다. 월출산은 목숨을 강요하는 산은 아니지만 몸에 일격을 가하기에 족한 산이었다. 탁월한 등산가에게는 하찮은 산이지만 나에게는 버거웠고 힘들었다. 반면 그 정상에 깃발을 꽂는 감격은 남달랐다.
‘인간은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무엇인가 색다른 반응을 요한 질문인데 답변이 의외다.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말은 평범하지만 되새길수록 심오하다. 전남 영암에 월출산이 있기에 올랐다. 없었다면 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있다는 자체가 우리에게 호기심과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고혹적이고 매혹적인 자태에 끌려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찾은 산이 월출산이다.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과 주변의 풍광을 벗 삼아 사진 몇 장을 담았고 약 30분 동안 이런저런 사색을 즐긴 후 내려오기 시작했다. 통천문을 지나자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올라왔던 길을 뒤로하고 다른 길을 택해 내려갔다. 이 길은 조금 더 가까웠고 오를 때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다리 힘이 없어서인지 내리막길이 만만치가 않았다.
1km 쯤 내려오니 바람폭포라는 조그만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코스에는 물 한 방울을 볼 수 없었는데 실 줄기 같은 폭포임에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월출산에는 여러 개의 폭포가 있으나 이 등산로에는 폭포라고는 이것이 전부다. 하지만 연중 물이 마르지 않아 오르는 등산객에게는 여기가 마지막 물 보충지란다. 나는 그 옆에 있는 약수터에서 시원하게 물한모금 마시고 폭포수로 달아오른 머리전체를 씻어 내렸다.
아직도 내려가는 길이 2km가까이 남았지만 여기서부터는 계곡길이기에 어렵지 않을 듯하다. 내려가면서 오르는 등산객과 마주치기도 하고 천천히 내려가는 사람들과도 조우하니 오르는 것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드디어 첫발을 내딛은 지 6시간 만에 무사히 원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월출산은 대단한 악산(嶽山)은 아니지만 산행코스가 상당히 험한 편이었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철계단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유난히도 바위와 돌이 많고 계단도 적지 않아 등산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절경을 품고 있었다. 기암괴석이 설악산, 금강산 못지않았고, 천황봉에서 쳐다본 강진만, 영산강 그리고 저 멀리 두륜산이 마치 반도처럼 그려져 있는 독특한 풍광을 갖고 있었다.
등정을 모두 마치고 천황사지 캠프에 다다르니 저마다 월출산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글귀들이 보였다. 하나하나 읽어보니 구구절절 그럴듯한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정봉곤이라는 분이 써놓은 시 한 수가 내 시선을 잡는다.
깍아지른 사자봉 아래
웅장하고도 장엄하구나
신의 작품인가! 하늘의 선물인가!
월출산이 낳은 명물이로구나
이곳에 올라보니 신선이 따로없네
정녕 무릉도원이 예 아닌가 싶구나
천황봉아! 장군봉아! 너가 있어
나 또한 행복하구나
안개속에 가리운 구름다리
그대는 진정 월출산의 명물이로구나
월출산 등정은 그동안의 산행 중 가장 힘들고 벅찬 과정이었다. 어찌보면 무모하기까지도 했다. 그 더운 날 하필이면 산행이라니. 그러나 산이 좋아 오른 산이었고, 전남을 대표하는 명산이었기에 죽도록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월출산! 언젠가 달을 맞는 날 다시 오르리라 다짐하면서 또 다른 탐방지인 해남 두륜산과 대흥사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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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곡원께서 도갑사의 강한 산의 향취를 맛보고 오셨군요.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산이지요. 동쪽으로 강진, 북으로 영암, 서로는 해남, 남으로는 도암 그런 강인 한 산의 기상이 호남의 만만치 않은 기상을 만들어 내었지요, 풍수 지리학상 서울의 삼각산을 보고 활을 겨누는 형상이라 하여 호남인을 이씨 조선에서는 중용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두륜산, 두륜산 밑에는 미향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미향사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십시요. 금강산의 일 맥 같습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습니다. 대흥사의 북암(北庵)등 좋은 곳은 많지요.
일생의 흐름이 그대를 쉬게 하거든 서둘지 말고 쉬어라, 쉴 때 쉬고 등천할 시기에 자신을 던저 일해야 한다. 쉬고 감을 아는 자를 현자라 한다. 좋은 글 잘 읽고 나감니다.
다음은 두륜산, 두륜산 밑에는 미향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미향사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르십시요. 금강산의 일 맥 같습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습니다. 대흥사의 북암(北庵)등 좋은 곳은 많지요.
일생의 흐름이 그대를 쉬게 하거든 서둘지 말고 쉬어라, 쉴 때 쉬고 등천할 시기에 자신을 던저 일해야 한다. 쉬고 감을 아는 자를 현자라 한다. 좋은 글 잘 읽고 나감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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