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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09시 27분 등록

10년 세월 동안 잃어버렸던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의 자리

 

TROY03.jpg              dvd007049_1.jpg    

 

이야기 하나)

삼십년간 시어머니를 모시며 시집살이를 하던 K 언니가 있다. 오늘 언니는 딸과 쉬러 간다고 괌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평생을 고생만하다 살만하니 디스크에 고생하는 언니가 안쓰럽기도 하다.

지금은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지만 남편은 양수리에, 그리고 언니는 딸과 가까운 우리 아파트에 사는 중이다.

주말이면 형부가 잠실로 나오던지 아니면 언니가 반찬을 해서 양수리로 들어간다.

언니는 강아지 하나를 데리고 사는 중이다. 언니는 며칠전 우스개 소리로 한 이야기지만 난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 아, 글쎄 우리집 양반이 오면 말이야. 우리 뽀삐가 나랑 그이 사이에 폭 들어와서 나가질 않는다니까.

 애들 아빠가 자면 옆에서 계속 노려보면서 잠도 안자. 우리 집 양반이 강아지를 좋아하니 말이지, 다른 집 같으면 벌써 쫓겨났지. 그리고 남편이 내 몸에 손을 댈라치면 으르렁 거리며 운다니까....

난 그 소리를 들으며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동물도 참 감정이 있는 영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야기 둘)

신학 공부를 할 때 만난 청년이다.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작곡, 노래등 재주가 많은 아이였다.

한 학기를 마치고 여름 방학 중 우린 그룹 상담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 녀석은 그룹치료를 통해 자신의 가정에 대한 비밀, 역기능성, 가장 중요한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풀 수 있었다.

즉 가정에서 일어났던, 그 당시 일어나고 있었던 갈등의 실마리를 찾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철수(가명)의 아버지는 배우지 못한 한에, 아들이 번듯한 학교에 들어가 자신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10년만에 만난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나 바램과는 정 반대로 음악에 미쳐있었다.

그때부터 아들과 아버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중동에 근로자로 나가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철수의 아버지도 해외 건설 근로자였다. 지금이야 해외 나가서도 한국으로 자주 들어오지만, 그 당시엔 한번 외국에 나가면 고향에 자주 오지 못할 때였다. 아버지는 10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철수는 맏아들이었다. 신기하게도 가정에 아버지가 부재하게 되면 자녀들이 대리배우자 역할을 감당하곤 한다.

그건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 달라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철수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어머니를 위하여 충성스럽게 대신 했던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도 모르는 사이에......

 

10년만에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낸 구성원은 참으로 낯선 환경 일 것이다.

 10년 전엔 저 저리가 분명히 내 자리였는데, 자신이 부재 했던 시간만큼 자기가 돌아갈 자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이런 가족의 역동상황을 알아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줄리도 만무하다.

뭔가 말로 표현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불편한 시간들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 가 있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그 자리를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물론 이 상황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이 작동하는 부분이다.

아들은 내려와서 아들의 자리로 가야만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으련만 이상하게 아들은 저항을 하며, 아버지와 전쟁 아닌 전쟁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 무의식적인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슈는, 아버지가 아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더운 여름 그룹상담을 통해 소중한 가정의 역동을 배울 수 있었다.

 철수는 아버지와 대립되었던 이유가 단순히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음악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10년간 비어있던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던 역할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이제 드디어 한 집안의 맏아들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머니를 설득시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자리를 만들어 드렸다.

물론 아버지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자신을 번듯한 직업인으로 키우려는 아버지 마음도 헤아려 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이 철수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설득시켰다.

아버지와 철수는 드디어 눈물을 펑펑 쏟으며 화해를 경험한다.

 

왕은 왕비 헬레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성탑 드높은 왕궁으로 들어가 늙었지만 영리한 시녀장을 거느리고 내가 두고 온 시녀들을 점검하시오. 시녀장으로 하여금 풍성하게 모아놓은 보화들을 내 보이게 하시오. 그건 당신의 아버님이 물려 주신 것과, 나 자신, 전시든 평화시든 끊임없이 불려서 쌓아둔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오. 돌아 왔을 때 모든 게 전과 다름없고, 남기고 온 것 모두 제자리에 있음을 확인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왕의 특권이니까.” 하지만 돌아온 궁성은 남편의 말과 같지 않았다.

 

“ 우선 나는 황량한 복도의 적막감에 놀랐구나. 부지런히 오가는 발걸음 소리도 없었고,

바쁘게 일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며, 예전엔 어떤 나그네든 반갑게 맞아주던 시녀도, 시녀장도 나타나질 않는 거야. 하지만 부엌의 아궁이에 이르자 꺼져가는 잿더미의 어스름 속에 얼굴 가린 덩치 큰 여자가 앉아 있었어. 자는 건 아니고 아마도 생각에 골몰 하는 것 같았어.

 

마나님다운 말투로 나는, 일어나 일하라고 명했지. 신중한 남편이 고용해서 남겨둔 내 시녀장이라고 짐작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녀는 옷을 휘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어. 내가 위협을 하니 마침내 오른쪽 팔을 움직이는데, 마치 날 부엌과 방에서 쫒아내려는 것 같았어.

 

화가 나서 몸을 돌리곤 층계 쪽으로 달려왔는데, 그 위엔 보물창고가 있었어. 그런데 그 괴물이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 거만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거야.

 

이야기 셋)

괌에 간 K 언니는 딸과의 호칭이 서로 “여보, 당신”이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딸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녀들은 자신의 부모 중 하나가 없으면 대리배우자의 역할을 자처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부모 자녀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제대로 된 자리를 만들어 준 다는 것,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그것은 보이지 않는 우리 생활의 소중한 영역이다. 하지만 조직의 구도나 조직의 역동을 이해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어려운 문제들이 야기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가 아내 헬레나를 데리고 개선하여 10년간 잃어버렸던 왕비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더라면 헬레나가 그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옷을 휘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어. 내가 위협을 하니 마치 날 부엌과 방에서 쫒아내려는 것 같았어. 그 위엔 보물창고가 있었어. 그런데 그 괴물이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나 거만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거야. 여기선 남편인 왕이 돌아올 때까지 우리가 주인이다

.

가정에서의 자리, 직장에서 상대의 자리를 배려 할 수 있는 지혜가 살아가는데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IP *.107.146.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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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06:08:11 *.194.37.13

저도 멀리 출장을 갈때면, 큰 아이를 불러 놓고 말합니다.

"아빠가 없으면 네가 아빠처럼 엄마하고 둘째를 잘 돌봐야 한다"라구요.

불과 하루 이틀 비우는 거지만, 예전에 큰 교통사고 경험이 있어서 인지

항상 집을 나설 때, 그런 말을 습관처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은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겠죠?

이렇게 빈자리를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아이에게

함께 있을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채

늘 잔소리하는 내가 갑자기 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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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8:24:54 *.107.146.144

하하 그러면서 부모도 진정 어른이 되어가는거겠지?

낼 재용이랑 잘 만나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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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6:04:44 *.114.49.161

저 두 경우와 10년 만에 돌아와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던

헬레나를 보면서 대리배우자 노릇을 했던 자녀를 떠올리신 거로군요.

역시 코치 & 상담 선생님 이십니다.

기억에 남아,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샐리올리브 언니가 쓰실 책은 저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근데 저는 헬레나를 살려두었을까 정말로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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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8:26:08 *.107.146.144

아..맞어 그런 책을 쓰게 되겠지?

나도 헬레나 부분이 궁금했는데

쳇  파우스트랑 아기를 낳는 장면으로 넘어가지 뭐니?

ㅎㅎ 콩두 너라면 어찌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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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8:32:24 *.51.145.193

누님은 사람의 내면을 보는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 내어 치유할 수 있는 솔루션도 가지고 계시고요.^^

저는 파우스트를 읽고도 헬레나가 처한 상황적 디테일을 전혀 모르고 넘어 갔더랬습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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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5:03:53 *.120.78.130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도 있고..재용아~ 공부해서 보이는것도 있는 거 같다.

감사한 일이지 어려움을 딛고 이런 능력이 생긴것에 대해서...

하지만 넌 또 내가 못보는 것들이 있지않니?

그래서 팔팔이들이 중요한거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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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22:24:02 *.68.172.4

전 "내가 작가라면" 에서 헬레나 이야기가 잘 다뤄지지 않았다고 썼는데, 샐리 언니는 용케도 내용을 간파해 내셨군요!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얻는 바가 다르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성도 되고=_= 그렇습니다. 하하. 괴테가 헬레나를 파우스트에서 불러낸 것은 단지 그녀가 "세계 최고의 미인"이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불러내도 될만큼 그녀가 "순순히 모험을 즐기는" 여자여서였을까요? 화두를 잘 잡아내신 듯!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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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5:05:23 *.120.78.130

ㅋㅋ 고마웡~  다들 보는 눈이 다르니까 팔팔이 모두가 소중한거겠지? 이따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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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04:52:00 *.39.134.221

자기 자리를 찾는일. 스스로도 지켜야하고 곁에서도 만들어주어야하고

대리배우자...생각이 많아지는 단어이다.

사람은 배우자가 꼭 필요한가부터....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단어.

아....자유롭지 못해. 이부분

상담이 필요할까...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울증환자가 스스로 환자임을 차처하고 병원문을 열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만 뱅글거리는 생각들을 들여다본다.

이대로 살것인가. STOP하고 방향을 1도정도 틀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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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5:07:33 *.120.78.130

행님아... 때가 되면 틀어질꺼야...!!!  때!

변할 때, 준비되면 자연스럽게 환경이 조성된다지?

머 그렇게 불편하지 않으면 이대로 살아갈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길수야. 조금만 틀면  더 행복해지기도 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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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1:26:19 *.36.72.193

와, 정말 이거 대단하네요~!!!

 

어떻게 이렇게 연결이 되지?

나도 계속 헬레나를 등장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했었어요.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차지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님 뭐였을까. 좀 뜬금없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것이 벽돌 끼우기의 정수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감동받고 갑니다.

코치의 눈은 고전도 꿰뚫는다.

5년 후 꼭 간다. 공부 하고야 말리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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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5:00:12 *.120.78.130

ㅎㅎ 세린 고마워...자넨 나보다 더 예리하고 심오한 눈을 가졌으니 탁월한 코치가 될꺼야.

맘도 넘 아름다운 세린 !!!

5년 후 기대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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