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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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생명살림운동에 바친 어느 선생님께서 ‘쌀 한 톨 論’을 펼친 바 있습니다. ‘논에 심겨진 벼는 병해충을 견뎌야 제대로 이삭을 단다. 마침내 이삭이 다 익고 고개를 숙이는데, 이때 새들이 취하는 벼는 우리 입에 들어올 수 없다. 벼 벨 때 논바닥에 떨어지면 그 나락 또한 우리 입에 들어오지 못한다. 쌀로 찧을 때 바닥에 떨어지는 볍씨도 우리 입에 들어오지 못하고, 쌀 일어 솥에 앉힐 때 흘리는 쌀 알 또한 입에 들어오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밥그릇에 남겨지거나 흘려 버려지는 밥풀 또한 우리 입에 들어오지 못한다.’ 선생의 말씀은 쌀 한 톨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우주적 작용과 관계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관한 역설(力說)입니다.
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커버린 풍산개(?) 산과 바다의 사냥 본능 때문에 요즘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산방 옆 밭에 깨를 심어놓으신 할머니가 당신 밭에 들어와 여기 저기 헤집어 놓는 산과 바다를 묶어달라는 청을 여러 번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청대로 녀석들을 묶어보았지만, 묶어 키우지 않은 탓인지 줄을 끊어버리거나 목이 다 쉴 만큼 짖고 낑낑대며 묶어두는 것에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잘 감시(?)하며 풀어두었는데, 할머니의 속앓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녀석들이 또 밭을 헤집어 놓았냐고 여쭤봅니다. 할머니 말씀이 “여기저기 파 놓았으나 깨는 다치지 않았네요.” 입니다.
개가 마음껏 밭을 파헤쳐도 다치는 깨는 몇 포기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해도 그리 많은 금액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의 말씀 중에 입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쌀 알을 돈으로 환산해 보았자, 몇 푼어치도 안될 것입니다. 두 분의 말씀을 통해 나는 농부가 작물을 심는 것이 그들을 잘 키워 단지 입에 넣거나 돈만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농부가 쌀 한 톨, 작물 한 포기에 그토록 깊은 애정을 두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우리의 입으로 들어갈 그 한 포기의 작물 속에 얼마나 많은 물질과 다른 생명의 노고와 희생이 관계해 있는지를 몸으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주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누군가를 취해야만 삶을 이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편지에 많은 분이 주신 대답처럼, 그것은 그저 진화의 산물이거나 본래 그렇게 형성된 자연의 법칙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여하튼 타자의 죽음으로 잇는 삶이 우리의 나날이니 하루하루가 헛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나날이 늘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 무수한 우주적 작용으로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 숙여야 하며 우리 또한 다른 생명들을 위한 되먹임 과정에 온전히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개밥을 줘보면 알게 됩니다. 그들은 밥 한 톨을 남기지 않습니다. 떨어진 밥 알 하나까지도 살뜰하게 핥아 먹습니다. 밥 한 톨 남기는 일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하여 결국 버려지는 것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생각 없이 기여하는 일이 사람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임을 우리가 절실히 알게 되면 하루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그것으로도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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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커버린 풍산개(?) 산과 바다의 사냥 본능 때문에 요즘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산방 옆 밭에 깨를 심어놓으신 할머니가 당신 밭에 들어와 여기 저기 헤집어 놓는 산과 바다를 묶어달라는 청을 여러 번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청대로 녀석들을 묶어보았지만, 묶어 키우지 않은 탓인지 줄을 끊어버리거나 목이 다 쉴 만큼 짖고 낑낑대며 묶어두는 것에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잘 감시(?)하며 풀어두었는데, 할머니의 속앓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녀석들이 또 밭을 헤집어 놓았냐고 여쭤봅니다. 할머니 말씀이 “여기저기 파 놓았으나 깨는 다치지 않았네요.” 입니다.
개가 마음껏 밭을 파헤쳐도 다치는 깨는 몇 포기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해도 그리 많은 금액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의 말씀 중에 입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쌀 알을 돈으로 환산해 보았자, 몇 푼어치도 안될 것입니다. 두 분의 말씀을 통해 나는 농부가 작물을 심는 것이 그들을 잘 키워 단지 입에 넣거나 돈만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농부가 쌀 한 톨, 작물 한 포기에 그토록 깊은 애정을 두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우리의 입으로 들어갈 그 한 포기의 작물 속에 얼마나 많은 물질과 다른 생명의 노고와 희생이 관계해 있는지를 몸으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주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는 누군가를 취해야만 삶을 이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 편지에 많은 분이 주신 대답처럼, 그것은 그저 진화의 산물이거나 본래 그렇게 형성된 자연의 법칙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여하튼 타자의 죽음으로 잇는 삶이 우리의 나날이니 하루하루가 헛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나날이 늘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 무수한 우주적 작용으로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고개 숙여야 하며 우리 또한 다른 생명들을 위한 되먹임 과정에 온전히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개밥을 줘보면 알게 됩니다. 그들은 밥 한 톨을 남기지 않습니다. 떨어진 밥 알 하나까지도 살뜰하게 핥아 먹습니다. 밥 한 톨 남기는 일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소유하여 결국 버려지는 것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생각 없이 기여하는 일이 사람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임을 우리가 절실히 알게 되면 하루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그것으로도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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