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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1일 21시 03분 등록

거처를 옮기는 일을 이사라고 한다. 거처라는 확장의 의미에는 단순한 집안의 물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몸을 담았던 사람, 살아왔던 공간, 시간의 추억, 연속선상의 대상과의 관계들이 포함된다. 그러기에 이사라는 매개체는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영역에로의 전환으로 주어진 삶의 변화를 초래한다. 이것은 삶과 같다.

 

“우리 이사 가자.”

2년의 주기를 때때마다 잊지 않고 돌아오는 전세라는 녀석은 자연스레 새로운 환경으로의 무장을 하게한다. 한곳에 정주하기 보다는 또 다른 시작으로 나아가게 하는 시스템. 조금은 성가시고 상대적 비교 감으로 다른 생각이 들게도 하지만 새로운 곳, 새로운 만남과 환경은 초등학교 소풍 전날마냥 때론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러기에 지도를 펴놓고 이번에는 어디로 가서 살아볼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물론 함께 사는 동반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적잖은 이견다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전세만기 기간이 남았지만 뜻하지 않게 옮기게 되는 경우이다. 이유인즉슨 도둑님이 행차 하였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집안에 들어서니 거실의 모습은 아침과는 다르게 사뭇 달라져 있다. 무질서하게 열려져 있는 각종 서랍들과 널브러진 옷가지. 나의 공간에 이방인이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무단 침입한 흔적은 결코 좋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거기다 신혼 패물이며 없어진 물건들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쓰라림을 느끼는 건 무소유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함이 아니다. 때늦은 후회지만 금을 팔아 미리 처분을 해둘걸 뒤늦게 가슴을 치는 앞일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선생의 나이키 신발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는 바닥에서 잠을 청하노라니 어수선한 마음에 밤을 애써 붙잡는다.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전셋집도 그러하지만 이번엔 아예 매매를 해보자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생각만을 고집하여서는 안 된다.

‘나는 아파트가 아니면 안돼.’

‘주차 공간이 편하고 넉넉해야지.’

‘전철역이 가까워야 돼.’

‘아파트에 사는 건 좋아. 그런데 너무 성냥갑같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는 싫어.’

‘회사와 너무 멀어지는 것 아니니.’

이것저것 합일된 공통점에 맞는 곳을 선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거기에 더욱 발품을 팔아야 했다. 사전 시세를 알아보고 여러 곳을 다녀본 결과 마음에 드는 한곳을 낙점했다. 그런데 중요한건 역시 돈이다. 경제적 형편에 맞추노라니 집이 노후하고, 마음에 드는 곳은 반대로 가격적인 갭이 크다. 선택의 순간. 은행대출을 이용 무리가 되더라도 계약하기로 했다.

 

실천적인 Goal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되듯 이사란 것도 동일하다. 목적지가 정해졌으면 순차적인 여러 단계의 Action Plan이 이루어진다.

1. 조건 협의

아귀가 맞아야 한다. 내가 옮기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만이 아니고 머물렀던 공간에 누군가 적절히 들어와야 하고 그 시점과 때가 맞아야 한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서로 간에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고 서로의 책임감을 확인해야 하듯이 기다림의 미덕이 요구된다.

조금이라도 깎는 것은 당연한 이치. 도전자와 방어자와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중재자인 부동산중개인은 서로 간에 팽팽한 접전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여기에는 그동안 조직생활을 통해 갈고닦은 협상의 스킬이 적재적소에 삽입된다.

 

2. 역할분담

여러 할 일이 많다. 전화와 인터넷 이전, 우편물 수취인 변경, 관리사무소 신고, 이삿짐 결정 등. 직장에서의 업무분장처럼 맞벌이를 하는 부부에게는 누가 무엇을 주관할 것인지가 사전 결정되어야 하고 체크가 이루어진다.

 

3. 비우기

평수를 늘려서 가는 입장이라면 괜찮다. 반대의 경우라면 필연적 언쟁이 일어난다.

‘들어갈 곳이 없으니 이건 버리고 가자.’

‘안돼. 가지고 가야돼.’

주인을 닮은 듯 세월이 흐르자 나사가 빠지고 삐거덕 거리는 책장, 여러 서적들, 철지난 옷가지. 나중에라도 쓰임새가 생길 거라고 여기는 나는 어떻게든지 짊어지고 갈려고 하는 반면, 그녀는 가감 없이 없애자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예정된 승부지만 꽉차있던 공간에 호흡의 틈새가 생기고 여유의 빈자리가 차지한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횟수만큼 넉넉함이 아닌, 손아귀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나의 치졸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안고 갈려고 했었던 것 들이 어쩌면 부질없는 것임에도 왜그리 애착을 가지고 집착을 하는 건지.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 법정 <무소유>

 

4. D-DAY

이른 아침부터 이삿짐 차량이 들이닥치고 작업 시작. 도시가스와 관리비, 전세비 정산 등의 금전적 문제 처리를 위해 나는 뛰어야 한다. 새로 이사 가는 곳에서 잘 살으라는 주인집의 덕담. 웃긴다. 욕실 천정에 물 샌다고 항의할 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놈이 자기가 살집이라고 보수 공사를 한단다. 염병할. 바쁘다. 전화가 쏟아진다. 잔금을 치루기 위해 달려간다. 거액의 돈이 순식간에 나의 손에서 상대방의 손으로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소유권 이전에 따른 법무사의 등기권리증. 집문서이다. 느낌이 묘하다. 이것 하나를 가지기 위해 그동안의 시간과 발품, 대출, 많은 서류들이 합해졌구나. 이어지는 전입 신고후 출력되어 나오는 주민등록등본의 새로운 거주지 주소명. 실제상황이다.

 

5. 입성

생애 첫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그 기분은 정말 째진다. 하늘을 날고 싶을 만큼 나의 이름으된 집문서가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만큼 들떠있다. 첫날밤 잠도 오질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대출금 상환에 머리부터 지끈하다. 나이를 먹어가니 현실적인 앞가림부터 떠올려지는 것은 어쩌면 소시민의 권리. 거기에다 이삿짐을 옮기는 직원이 한마디를 건넨다.

“이집 주인 너무 지저분하게 사용하셨네요.‘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욕조며 화장실의 살아온 때며 먼지 등이 손볼 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소를 했다고 하지만 밤새 유한락스를 풀어 화장실과 욕조를 수세미로 박박 민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남자의 원초적 본능인 페르몬의 방출로 대미를 장식하며.

 

나는 풍광을 중시 여긴다. 이것은 거처 선택에서도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여러곳을 둘러본 것 중에서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View가 뛰어나서이다. 한가로운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정자와, 곧고 길게 가지를 뻗은 아름드리 잘생긴 소나무들이 베란다 창문 앞으로 푸름을 늘어놓는다. 좋았다. 맘에 들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고 이사를 왔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듯이 모든 것들이 구미에 맞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사한 다음날 아침.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일찍 잠에 깨었다. 기분이 격상되어 일어난 게 아니고 적잖은 소음 때문이었다. 매미소리. 여름의 전령사이기도한 매미. 도시에서 쉽게 보기 힘들기에 정겹게 느껴질 만도한데 그렇질 못하였다. 운동회를 왔는지 본인 팀을 응원하는 중인지 뙤창으로 울어대는 그놈들의 소음은 대단 하다. 배도 고프지 않는지 줄기차게 울어대기에 덕분에 귀가 멍멍해진다. 연이어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 소음까지 길게도 이어진다.

이점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점이 있는 법. 살아있는 교훈을 몸으로써 체험한다. 피상적인 방문을 통해서 외부로 느꼈던 것들과, 직접 실제를 체험한 것과의 간극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다는 사실을. 삶의 또 다른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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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6 17:06:50 *.153.23.18

뷰 이거 매우 중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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