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땟쑤나무
- 조회 수 2037
- 댓글 수 2
- 추천 수 0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 이 곳 저 곳을 둘러 보고 있었다.
"카톡"
스마트폰이 울렸다. '친구녀석이 또 스마트폰 게임으로 초대한건가. 아님 와이프인가' 싶어 스마트폰을 보았다.
'울아들 나왔다. 어제'
친구녀석의 스팸 카톡도 아니고, 와이프도 아니었다. 다름아닌 절친 구디카였다.
'오!'
얼마 전 나에게 둘째 임신소식을 전하며, 지루한 부부싸움을 이만 거둬야겠다고 했던 친구였다. 나는 깜짝 놀라 녀석에게 전화를 하였다.녀석, 오랜 시간 병원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수씨의 컨디션은 좀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아이는 누구를 닮았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농담과 진담을 섞어가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가 오간지 몇 분, 전화 말미에 녀석에게 말했다.
"궁금하다. 아들 사진 좀 보내봐봐.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다." "그냥 뭐 좀 이상하게 생겼어. 날 닮은거 같긴 한데...." "갓 태어난 아이가 그렇지, 외계인 같이 좀 이상하게 생겼지 뭐. 얼른 보내봐."
그렇게 전화를 끊은지 십여분, '카톡, 카톡, 카톡' 녀석으로부터 사진 몇 장이 보내졌다는 스마트폰의 알림이었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스마트폰을 보았다. 갓 태어난 사내아이의 사진 세 장. 인큐베이터실에서 간호사의 손을 빌려야만 가까이 얼굴을 볼 수 있는 갓난아기. 아이는 눈을 뜨고 있기도 하고 감고 있기도 했다. 머리는 거뭇거뭇한게 숱이 꽤 있어 보였다. 쌍꺼풀은 없었고, 눈두덩이에 살은 두터웠으며 유난히 머리가 큰 녀석이었다. 생긴건 친구를 쏙 빼닮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의 스승 '요다'를 닮았다고나 해야할까. 역시, 이 아기도 외계인을 닮았다
나의 가슴에서 무언가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코평수가 늘어났다 줄어났다를 반복하더니 가슴이 콩쾅거렸다.
'피, 내 아이도 아닌데 왜 이러는거야......'
녀석에게 답장을 보냈다.
'
ㅋㅋㅋㅋ 완존 구디카 주니어네. 부럽다 친구.'
그리고 한 문장을 더하여 보냈다.
'아...... 신비롭다...... 아이란 참......'
그렇다. 신비로울게 하나 없는 어른들이다. 흔히들 '여신'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이나 연예인들에 버금가는 미모와 아우라를 풍기는 몇몇 독보적인 여자(남자들의 시각이긴 하지만, 대체로 남자는 신비롭지 않다고 생각한다.)들을 제외하고는 어른들은 신비롭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도 신기함 그 자체이다. 어른들에게 그들은 '신비로운' 존재이다. 가끔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그 자그마한 손으로 무언가를 조물락 조물락 거리며 만지기도 한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그 작은 다리로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잘도 다닌다. 어른들의 눈은 인생의 상흔과 오랜 시간의 흔적을 담은 듯 충혈되어 이곳 저곳이 검붉은 작은 상처 자국이 있지만, 아이들은 눈은 한 겨울 새하얀 눈처럼, 때로는 맑은 물처럼 새하얗고 투명하다. 몽골 흡수골 호수의 물처럼 말이다. 그들의 눈은 순수하다. 그들의 마음도 순수하다. 그들은 그 때묻지 않은 눈으로 이 때묻은 세상을 때묻지 않게 바라본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본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있었어도 그들이 말하는 그 곳, 그 순간은 어른들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어른들의 예상을 초월한다.
지난 몽골여행에서도 이런 저런 풍경을 보고,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몇몇 모습들이 있다. 바로 그 곳에서 만난 아이들이었다. 난 그곳에서 현지 아이들을 보았고, 카메라에 그들의 모습을 담았다. 너무도 해맑게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는 아이들, 그들의 순수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을 보고 신기해하며 쑥스러워하면서도 해맑은 표정을 짓는 아이, 처음에는 어색함과 수줍음과 약간의 경계심에 시선을 피했지만 어느 순간 경계심을 풀고 살짝 살짝 나를 보며 웃는 아이. 아이들은 그렇다. 인종과 국경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이처럼 해맑고 순수하다.
지난 금요일, 일상에 찌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힘없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옆자리에 앉았다.
"은성이 밥먹었어?! 그래?! 그럼 그냥 아빠 옆에 앉아서 놀고 있어. 음... 그림그리면서 놀래?!"
녀석은 포스트 잇 한뭉치를 가져와 이리저리 쪼개고 또 쪼개더니, 볼펜으로 무언가를 그렸다. 정체 모를 동그라미 네 개 정도가 그려졌다.
"아빠, 이거는... 아빠. 이거는... 엄마. 이거는... 은성이. 그리고 이거는... 할머니."
"ㅋㅋㅋ 아, 그거였어?! 그랬구나. 우리 아들이 우리 가족을 그렸네."
"아빠, 이거는 아빠. 이거는 팔. 이거는 다리. 이거는 머리. !"
이렇게 말하며 녀석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나에게 보여준다. 넙대대한 계란(?!) 모양에 줄 몇 개 그리고 모든 신체를 가장 단순화에 표현한 그림 - 심지어 머리카락은 한두가닥 정도 있을려나.... - 이었다. 아이의 눈에 아빠의 모습은 단순했다. 두 팔과 두 다리 두 가닥의 머리카락을 가진 존재였다. 그 허술하고 단순한 그림에 내 코끝이 찡해졌다.
"우아~ 우리 아들이 처음으로 그려준 아빠 그림이네! 아빠가 고마워요. 이 그림 잘 간직하고 있을께 ^^ "
난 아들이 포스트잇에 그려준 그림을 나의 여섯번째 라이프 로그 노트에 풀로 붙여 고이 간직했다.
얼어붙은 어른의 마음을 이렇게도 사르르 녹이니........
하루의 피로를 포스트잇 한장으로 싹 가시게 해주니.......
그냥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니.......
역시, 아이는 신비롭다.
#1. 친구아들 '제익이'
#2,3. 무릉 공항에서 만난 4살짜리 귀여운 소녀, 아직은 경계심을 풀지 않은 새침한 상태였다.
#4. 울란바토르 행 비행기 안에서 나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 꼬마숙녀.
#5. 결국 같이 사진 찍는데 성공하다! (난 꼬마숙녀의 가족사진도 찍어주었다. 꼬마숙녀의 엄마는 나에게 e-mail 주소를 알려주며 사진들을 보내달라고 했고, 나 또한 그렇게 하겠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6. 흡수골 호숫가에서 놀고 있는 꼬맹이 숙녀들. 사진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들. 이 사진은 흡수골 가이드 '다우가'에게 e-mail로 보내줄 예정이다
#7. 내 아들 은성이의 첫 그림 '아빠' . 이 사진, 나의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붙여놓았다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652 | [날팸]#5 초단기 점심여행 - 일상들여다보기 그리고 기록 [1] | 땟쑤나무 | 2013.08.29 | 2040 |
3651 | [날팸] 복기, 남성조직 10년史 (2편) [1] | 거암 | 2013.08.29 | 2249 |
3650 | 부부의 10대 풍광 만들기 [2] | 콩두 | 2013.08.29 | 2765 |
3649 | 그 아가씨 참 예쁘다 [2] | 뎀뵤 | 2013.08.29 | 2114 |
3648 |
길 위에서5 ![]() | 효인 | 2013.08.29 | 2129 |
3647 | #2_다르게 생각하기 [4] | 서연 | 2013.08.27 | 2419 |
3646 | (No.번외2-2) 몽골 땅에서 고려왕의 비애를 들여다 보다 -9기 서은경 [1] | 서은경 | 2013.08.26 | 4705 |
3645 | 여행은 삶의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다 [2] | 오미경 | 2013.08.26 | 2560 |
3644 | 몽골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 [6] | 라비나비 | 2013.08.26 | 5120 |
3643 | 여행에서 일상으로 [2] | 유형선 | 2013.08.26 | 1925 |
3642 | #15. 일상을 여행처럼. [2] | 쭌영 | 2013.08.26 | 2072 |
3641 | 체험의 여행 [2] | 최재용 | 2013.08.25 | 2280 |
» |
#15. 신비로운 "아이" ![]() | 땟쑤나무 | 2013.08.25 | 2037 |
3639 | Climbing - 18. 아날로그에 취하다 두 번째 [1] | 書元 | 2013.08.25 | 1948 |
3638 | 노가리와 발바닥 [4] | 정산 최현 | 2013.08.23 | 2401 |
3637 | 한 달을 돌아보는 방법 [10] | 뎀뵤 | 2013.08.22 | 1983 |
3636 | #1 _ 나는 언제 뜨거워지는가 [2] | 서연 | 2013.08.22 | 1901 |
3635 |
나옹이의 봉선화 관찰 일지 ![]() | 정야 | 2013.08.22 | 8678 |
3634 | ** 님께 [3] | 서연 | 2013.08.22 | 2265 |
3633 | 길 위의 그녀들 - 잃어버린 남편을 찾아서 [7] | 콩두 | 2013.08.22 | 27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