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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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 나름대로 지키는 원칙이 있다. 여행지의 새로운 것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입맛 또는 취향에 맞든 안 맞든 무조건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특히, 해외 여행은 살면서 다시 올 수 없는 단 한번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경우가 많아 생소한 것을 찾아 몸과 입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지난 8월초 일주일 여정으로 몽골의 흡수골 호수와 테를지를 다녀왔다. 몽골 여행 주요 테마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승마체험이다. 한국에서는 승마가 희소성 때문에 귀족 스포츠로 여겨지지만 광활한 초원이 많은 몽골에서는 삶의 한 부문이 될 정도로 승마가 일상화되어 있다. 살아 숨쉬는 생명체인 말을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제주도의 조그만 조랑말이 아니고 몸무게가 500kg 넘는 위용을 자랑하는 몽골 토종 말 이었다. 낙마로 인한 인명 사고를 간혹 들은 적이 있어 다소 긴장이 되었다. 원래 승마 바지, 모자, 부츠, 장갑 등 승마 복장을 갖춰야 했지만 처음 타보는 관광객을 위한 맛보기 수준이라 편한 등산바지와 반소매 티셔츠 복장을 했다. 말에 타기 전, 몽골인 여행 가이드가 기마 민족의 후예답게 말 등에 사뿐히 올라타더니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상기 시켰다.
“ 말은 예민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니 말이 놀라지 않도록 옆의 일행과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 것. 말은 시야 범위가 거의 350도 정도로 넓으니 뒷발질에 다칠 수 있으니 말 뒤 쪽으로 타거나 말 뒤에서 얼쩡거리지 않도록 할 것. 멋 부리기 위해 펄럭이는 머플러나 옷은 낙마할 경우, 몸이 휘감길 수가 있으니 착용하지 않도록 할 것. “
잠시 후, 마부들이 말을 한 마리씩 끌고 오더니 말과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들을 선택했다. 마부에게 간택되는 순간이었다. 얼굴이 넓적하고 몸이 다부진 한 마부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타라는 눈짓을 했다. 짙은 갈색의 말이었다. 말갈기를 다듬지 않아 치렁치렁 길게 늘어져 있었고 주변에 날 파리들이 쉴새 없이 날아 다녔다. 왼쪽 발걸이에 왼발로 딛고 말 안장에 올라탔다. 갑자기 눈 높이기가 2m를 훨씬 넘어가니 시야가 탁 트였다. 움직이는 말 위에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양쪽 다리에 힘을 주어 말 옆구리에 바싹 붙였다. 말의 들숨 날숨에 내 몸도 같이 따라 움직이는 듯 했다. 말 옆구리를 두 발로 치기도 전에 무리의 말들이 움직이니 내 말도 무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말은 자갈길, 비탈길, 질펀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걷는 도중 무리의 한 말이 “히히잉 “하고 울면 내 말도 같이 따라 소리를 냈다. 그래도 고삐를 당기면 서고 좌우로 당기면 그 방향대로 움직였다. 순한 말이었다. 처음 타는 사람인지 아는 것 같았다.
넓은 초원을 지나 시냇물을 건너 침엽수로 빼곡한 숲 속의 오솔길에 들어섰다. 나무들 사이로 석양의 빛이 들어왔다. 30여명 일행의 말들이 말발굽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이때쯤이면 숲 속에서 매복 중인 도적떼나 강도들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출몰하는 장면을 연상해보았다. 중간 중간에 배가 고픈지 풀을 '쓱쓱'소리를 내며 맛있게 뜯어 먹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내 말만 홀로 오솔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일행에 뒤쳐진 것 같아 발로 옆구리를 치니 말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네 발이 서로 교차하면서 말의 몸은 아래 위로 움직였다. 내 몸도 같이 움직였다. 엉덩이는 말 안장을 쉴새 없이 내리 찧었다. 몸의 오장육부도 같이 요동을 쳤다. 엉덩이를 들어 충격을 완화해 주어야 했는데 처음이라 잘 몰랐다. 엉덩이가 까지는 쓰라린 통증을 경험해서야 그 요령을 조금 터득할 수 있었다. 몽골 국립박물관에서 몽골 전사들의 기마 전술을 영상화한 장면이 떠오른다. 화면 속의 전사들은 돌격하는 순간 두 손으로 검을 빼고는 고삐도 잡지 않은 채 적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이었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그 어떤 적도 몽골전사를 대적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완동물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그 동물의 본성과 습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애완견이라도 사냥 견의 피가 흐르면 잠시도 가만있질 않는다. 집안에만 가두기만 한다면 그 동물한테는 고문일 것이다. 마찬 가지로 말을 탈 때도 그런 것 같다. 말의 특성을 알고 그 말을 다룰 때만이 말과의 교감이 이루어져 말과 한 몸이 되어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에서 내가 탄 말들은 많이 고생했을 것 같다. 질주 본능의 말을 겁을 먹어 고삐를 끌어당기기 일쑤였고
어떤 날은 좁은 길을 달릴 상황도 아닌데 계속 옆구리를 차며 달리자고 하니 짜증도 났을 것이다.
솔직히 승마를 즐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3일의 체험은 행동의 삶, 몸으로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려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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