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에달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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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상경_구달칼럼#47
작년 이맘때 설에도 어머니가 부산서 일산으로 올라 오셨다. 매년 추석 명절은 우리가 부산 어머니께로 내려 가고 설에는 소위 역귀성이 우리집 전통이 되었다. 매번 자식 가족이 먼 길을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오고가는 고생에 대한 어머니의 배려이다. 작년에는 어머니가 오랜만에 오셔도 연구원 시험 중이라 책 읽고 글 쓰느라 정신 없던 그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렀다.
이번 설은 연구원 수료 말년이라고 어머니를 모시고 여한 없이 보냈다. 좋아하시는 화투놀이도 마음껏 함께 하시고, 주위의 공릉 산책도 하고, 교회에서 예배도 함께 드리고 전류리 포구에 들러 생선회도 먹으며 오붓한 가족 설 연휴를 보냈다. 80년 세월을 갖은 간난을 헤치며 오신 어머니는 등이 굽어 키가 많이 작아지셨다. 나는 아직도 19의 어머니 사진을 간직하며 그때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있다. 호리호리한 몸매의 꽃다운 나이로 화병을 옆에 두고 눈을 반짝이며 찍은 사진이다. 친구들과 구포장에 왔다가 사진관에 들러 찍은 것이라 했는데, 그 시절 소녀의 마음이 팔순의 어머니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는지 화장하시고 정갈하게 가꾸시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외할머니께서 산고로 돌아가시자 그 때부터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 2년생, 9살의 어린 나이로.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집안살림이라니! 바로 전 해에 손 위 이모님이 시집을 가셨으니 집안에 남은 여자라곤 어머니뿐이었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가 살림 살라며 다니던 학교에도 못가게 하셨는데 학교 공부가 하고 싶어 말씀을 거역하고 학교에 다니다가 매를 맞곤 했다고 하니 그 어린 마음이 어떠했을까 짐작도 할 수 없다. 의지할 곳이 없어 허구한 날 시집간 언니를 기다리며 삽작길에 눈을 두고 살았다고 하신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물긷고 불때어 밥하고 반찬 만들어 식구들 끼니를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찬거리가 없으면 둑 너머 낙동강에 나가 맛조개나 재첩을 잡아와서 찬거리를 대었다니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살림꾼이셨다. 내 기억에 어머니는 결혼 후 그저 주부로서 살림만 하지는 않았다. 화장품 외판원을 내가 대학을 갈 때가지도 십수 년을 계속하셨으니, 그 힘으로 우리 가족뿐만아니라 더부살이하는 친척들까지도 다 먹여 살렸다. 대처에 일찍 자리잡은 관계로 우리집에는 일가붙이 군식구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 강인한 생활력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살림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딸이 없어 가엾은 분이니 올라 오시면 딸이 되어 잘 모셔야 한다.” 친정어머니의 고정 멘트라며 아내가 어머니에게 전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이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닌 것 같다. 어머니는 슬하에 아들 삼형제를 두셨는데 모두들 그렇게 살갑게 어머니를 대하지 못한 것 같다. 아들들이 제 살기 바쁜 것도 있지만 그렇게 사근사근한 성품도 못되고, 어머니 또한 말수가 적은 분이라 전화를 하셔도 당신 하실 말씀, 가령 사촌 누구의 아들의 결혼일이 모일에 있다는 등의 말씀이 끝나면 바로 전화를 끊으셨다. 그러니 안부전화를 해도 길게 전화가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공통의 화제거리도 빈약하고, 원래 말이 없는 모자간들이라 어머니에게 아들 삼형제가 있어 봤자, 삶의 낙은 고사하고 위로조차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딸처럼 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본성을 넘어서는 일을 주문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아내말로는 그나마 부산과 서울 이렇게 떨어져 사니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것도 즐겁고, 이나마 고부간의 관계유지도 된다고 한 말이 솔직한 사실이다. 여태 함께 사는 고부간에 의좋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문열의 소설 영웅시대에 등장하는 주인공 고부관계를 제외하고는 나도 현실 속에서 사이 좋은 고부관계를 본 적이 없다. 하긴 살붙이고 사는 부부관계도 항구여일(恒久如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고부관계라니…
결혼 초기에 서울에 직장이 있어 우리 부부만 달랑 서울에 와서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어머니가 아내에게 전화해서 안부전화도 자주 않고 시부모 섬김에 소홀하다고 몇 번 나무랐던 모양이다. 아내가 내게 하소연을 했다. 이 건 엄연히 결혼하여 분가시킨 아들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장자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고 여전히 복종과 효도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효심 깊은 장남의 처신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나는 며칠 생각한 다음에 마음을 다지고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다시는 그런 강요 전화를 하지 마시도록 못을 박았다. 아들일지라도 결혼시킨 이상 품 안의 자식 생각은 잊어주시기를. 출가외인으로 생각하시고 우리의 삶에 간섭하지 마시라고. 어머니는 충격을 받으신 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더니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는 일체 당신이 먼저 우리에게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내 아들이 이 에미를 배신하다니…” 아마도 이런 심경으로 모든 걸 내려놓으신 듯 했다. 그때 내가 미숙하여 좀 강경하고 모진 어조로 모자간의 정리를 무우 자르듯 하지나 않았는지… 그래서 어머니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통한을 남기지나 않았는지... 이 사건은 내겐 가슴에 맺힌 멍울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어머니가 아내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바뀌었다. 자식이 당신을 떠나감을 인정해야 했고, 그와 더불어 아내는 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그 팔팔하던 어머니는 기력이 쇠하여 비록 다니러 오셔도 당신의 솜씨를 발휘하여 끼니를 챙기시던 바지런하신 성품도 다 접고, 이제 희긋희긋 흰 머리카락 느는 며느리의 대접을 그저 다소곳이 받으신다. 이 모습을 보며 좀 참견하시더라도 힘있을 때의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바깥 산책도 내가 앞장서 나서야 따라 나서신다. 평소 좋아하시던 화투놀이를 아들, 며느리와 원 없이 하시곤 그렇게 즐거워하실 수가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풀지 못할 앙금도 없는 것 같다. 손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서울역까지 돌아가시는 길이 마냥 즐거운 여행길이 되신 듯 하다. 인생유전이라, 부모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 부는 6살 먹은 손녀를 껴안고 부산행 열차에 오르시던 젊은 할머니가 이제 장성한 손녀의 손에 이끌리어 귀향 열차를 타게 되었다.
늙으신 어머니를 잘 모시는 게 무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함께하는 시간 보다 나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모두 약해가지마는 성경읽기와 새벽기도, 드라마 연속극, 화투놀이를 좋아하시니 당신이 즐거워하는 놀이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최고의 효도일 것이다. 우리 집에 계시면서도 함께 사는 막내 동생의 안부를 챙기시는 어머니를 보며, 누가 뭐래도 어머니께 최고의 효자는 함께 사는 막내다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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