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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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 or Continuous Change?]
지금 한창 유럽에서는 전쟁이 진행중이다. 유럽만의 전쟁. 총성은 없으나 그 패배의 흉터는 역사에 길이 새겨지는 전쟁. 유로 2008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축구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4년마다 전세계가 참여하는 월드컵이 열리긴 하지만 2년 주기 차이로 유럽에서는 월드컵의 인기에 버금가는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진다. 치열한 예선을 거친 4개조 4팀씩 16개팀이 참여하여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였고, 현재는 4강 진출국을 가리고 있다.
어제 새벽 네덜란드와 러시아의 8강전이 있었다. 네덜란드는 죽음의 조라고 불렸던 C조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루마니아를 모두 연파하였는데 무려 9득점의 가공할만한 화력에 겨우 1실점만 허용하는 철벽 수비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팀이었는데 반해, 러시아는 예선 1차전에서 스페인에게 4대 1로 대패한 후 그리스와 스웨덴을 잡고 어렵게 조2위로 8강에 진출한 팀으로, 객관적 전력상 네덜란드를 상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또한 러시아의 경우 20년만의 8강 진출로 이미 소기의 목표는 달성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정도만 해도 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러시아 감독은 우리도 잘 아는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 주역 거스 히딩크이다. 그는 2002년에 대한민국을 4강에 올려놓은 후 호주감독으로 자리를 옮겨 2006년 월드컵에 호주를 16강에 진출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축구협회 요청으로 모래알 같던 러시아 팀을 맡아 힘겹긴 했지만 결국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제치고 유로 2008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 본선에서 2승 1패의 성적으로 팀을 8강까지 올려 놓은 상태였다.
이제 히딩크에게 있어 상대는 자신의 조국 무적함대 '네덜란드'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아무리 러시아가 지금까지 잘해왔다 하더라도 네덜란드를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계란말이로 목조르기, 과일깍는 칼로 나무베기라 예상하였다. 왜냐하면 네덜란드의 경우 대부분의 선수들이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프리메가리그 그리고 스페인의 세리에A에서 뛰고 있는 최고의 선수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러시아 선수들의 경우 포워드 이반 사엔코를 제외하면 전원이 러시아 자국에서 뛰는 선수들로 구성될 정도로 국제 경험이 적은데다 선수들의 기량 역시 그리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평균연령 26세로 타국가 선수들에 비해 어려 경기조절 능력이나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의외로 나타났다. 1대0으로 러시아가 앞선 상태에서 네덜란드는 간신히 종료 몇분여를 남기고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장전에 들어가 맥없이 2골을 허용하며 3대1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다시 히딩크의 마법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히딩크의 어퍼컷이 네덜란드의 옆구리를 강타하여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지경까지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러시아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는가? 히딩크는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평균연령 26세로 가장 젊은 선수들을 어떤 논리와 이야기를 통해 변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갈수록 강해지고 진화하는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그 상황에 대처하는 마인드의 변화였다. 처음 히딩크가 러시아 선수들을 맡았을 때 그들은 패배의식, 자신감 결여, 의욕 상실, 매너리즘 등 많은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히딩크는 의도적인 충격요법을 사용하였다. 훈련에서 지각을 일삼던 세르게이 이그나비치에게 “지각생은 필요없다”며 집으로 보낸 것이나, 출중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나태한 정신력을 보인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를 끝내 대표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선수단이 불치병에서 깨어나 새로운 변화를 맞으라는 히딩크의 강한 주문이었다. 이를 통해 어린 러시아 선수들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인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였음은 물론 변화의 물결에 서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히딩크는 선수단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였다. 바로 유로 2008 8강이었다.
“어린 선수들이 최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줘야 한다”는 히딩크의 말처럼 그는 선수단에게 목표를 제시함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것이다. 이것은 모래알 같던 러시아를 끈끈한 정신력의 팀으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오직 팀을 위해서만 선수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최고의 조직력을 갖춘 팀이 곧 최고의 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러시아를 조직력의 팀으로 조련시켰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러시아는 예선에서 유로 2004 우승팀 그리스와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을 연파하며 이제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뽕맛’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이번에 맛본 네덜란드의 ‘뽕맛’은 그 여운이 오래도록 갈 것으로 보여지며, 새로운 스페인이란 색다른 ‘뽕맛’을 보기 위해 러시아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어다닐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그들의 최대 강점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었다.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앞만보고 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넘어져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으므로. 거기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실험을 가미한다. 네덜란드전이 그랬다. 그 누구도 러시아의 열세를 예상했기 때문에 러시아는 수비에 집중하다가 역습을 위주로 하는 전술을 택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보기좋게 그 예상을 훌러덩 뒤엎어 버렸다. 수동적 수비가 아닌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수비 전술인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미드필드 전선을 아군 쪽으로 내리는 것이 아닌 아예 네덜란드 영역까지 올려 그들이 제대로 공격을 해오지 못할 정도로 숨막힐 정도의 압박을 가해버린 것이다. 이 얼마나 통쾌한 전략인가! 이로 인해 네덜란드는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정확치 못한 중거리슛만 난사하다가 결국 스스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축구공은 둥글다. 둥글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축구다. 인생 또한 그렇다.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 결과 또한 자기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날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그 시간이 되지 않고서 아무도 그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있다. 끊임없는 변화와 실험 그리고 모색으로 구미에 딱 맞는 결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가고 또 가다보면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만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찰 때 마다 같은 곳으로 가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선수들은 수많은 시간과 땀을 쏟아가며 연습을 하는 것이다. 반복적 훈련만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동물적 본능을 일깨울 수 있다. 우리에게도 반복적 훈련이 필요하다. 변화를 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고 반복되어 정신과 근육에 뿌리내려 진다면 우리는 변화로 가는 길이 좀 더 수월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정신만 가지고는 어렵다. 반드시 몸에 각인되어져야만 한다. 정신과 몸이 같이 반응할 때 우리는 변화의 길로 성큼성큼 뛰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러시아 선수단처럼 뽕가는 ‘뽕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끝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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