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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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6 - 항상 그곳에 있었으나
당신은 음식을 먹을 때 맛있는 걸 먼저 먹나요? 아니면 제일 맛있는 건 뒤로 남겨 아껴가며 먹나요? 우리의 속담에 " 아끼다가 똥이 되고만다 ” 는 말이 있지요? 혹시 나중에 먹겠다고 아끼다가 먹어보지도 못하고 헛되이 흘려버린 경험이 있나요? 두고두고 아까운 맘으로 되새김질만 하던 경험이 있나요?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다가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아진 사람들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자 하나, 여자 둘,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내일은 해가 뜬다...내일은 해가 뜬다..” 계속 되돌이표 악보로 불러대고 있더군요. 그렇지요. 진리는 되돌아옵니다. 내일 해가 다시 뜨는 것은 맞습니다. 맞고요. 게다가 그들은 서로 죽이 잘 맞아 같은 방향으로 팔을 휘저어대며 흥을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오그라드는 것 없이 오로지 지금 현재에 몰입해 있더군요. 부러웠습니다. 하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계속 책에서 읽어내린 이야기들만 하다보니 삶에 싫증이 나려고해요, 그래서 내 얘기를 좀 덜어내려고 하니 해묵은 상처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울기 싫어서 그냥 그대로 밀어냅니다. 울고 나면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갑자기 인생도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먹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밥 먹고 울래? 울고 나서 밥 먹을래? " 밥과 눈물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밥과 빵, 빵과 장미, 장미와 눈물, 눈물과 콧물.... 이런 놀이를 하며 좀 놀아보면 안될까요? 그렇지만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쫓기기도 합니다. 잘 놀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숙제를 미리 해야하기 때문에 언제나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밥과 눈물로 되돌아 옵니다. 그리고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노래합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묘비명을 남기지 않겠다고 김제동에게 대답하셨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책에 뭐라고 써 두셨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장자의 소요에 <참다운 지식>이란 제목을 붙여 쓰신 글을 찾아냈습니다.
『장자』에는 노자의 죽음과 장자 아내의 죽음 그리고 장자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물론 사실이라기보다는 장자 사상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지만 간단히 소개하지요.
노자가 죽었을 때 진일秦佚이 조상弔喪을 하는데 세 번 곡하고는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이를 본 진일의 제자가 물었습니다.
“그분은 선생님의 친구가 아니십니까?”
“그렇다네.”
“그렇다면 조상을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가 않네. 늙은이는 자식을 잃은 듯 곡을 하고, 젊은이는 어머니를 잃은 듯 곡을 하고 있구먼.
그가 사람의 정을 이렇듯 모은 까닭은 비록 그가 칭찬을 해달라고 요구는 아니하였을망정 그렇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며, 비록 곡을 해달라고 요구는 아니하였을망정 그렇게 하도록 작용했기 때문일세. 이것은 천도天道에 벗어나고 자연의 정을 배반하는 것이며 타고난 본분을 망각하는 것일세.
예부터 이러한 것을 둔천遁天(천을 피함)의 형벌이라고 한다네. 자연에 순응하면 슬픔이든 기쁨이든 스며들지 못하네. 옛날에는 이를 천제天帝의 현해縣解(속박으로부터 벗어남)라 하였네. 손으로 땔나무를 계속 밀어 넣으면 불길이 꺼질 줄을 모르는 법이라네.”
장자가 바야흐로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제자들이 장례를 후히 치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장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널(棺)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玉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세상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네. 이처럼 내 장례를 위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또 더한단 말이냐?”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파먹을까 봐 염려됩니다.”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될 것이고, 땅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 (장례를 후히 지내는 것은) 한쪽 것을 빼앗아 다른 쪽에다 주어 편을 드는 것일 뿐이다. 인지人知라는 불공평한 측도로 사물을 공평하게 하려고 한들 그것은 결코 진정한 공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으로 『노자』와 『장자』를 끝내자니 어쩐지 너무 소홀하게 대접했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계속 공부하기를 물론 바랍니다. 그리고 특히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는 태도를 갖기 바랍니다. 진秦나라와 한漢나라를 묶어서 하나의 사회 변동 과정으로 이해하듯이, 『노자』와 『장자』도 하나로 통합하여 서로가 서로를 도와서 완성하게끔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새삼스레 『노자』와 『장자』가 어떻게 서로 보완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과제로 남겨두겠습니다. (< 강의> 354-5 쪽에서 옮겨왔습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감옥에 계실 때 사서삼경을 한권으로 엮어 책 1권으로 만들어서 긴 수형생활동안 독서권 제한을 헤쳐 나가셨답니다. 교수가 되시고도 세월이 많이 지나간 다음에 선생님은 성공회대 사회교육원에서 신영복과 함께하는 고전 읽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때 대전에서 서울로 옮겨와 지하철역을 35 개나 지난 후에 닿을 수 있었던 성공회 대학까지 그 강의를 들으러 다녔습니다. 선생님은 논어를 시작으로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 가는 길을 하나하나 일러 주셨습니다. 오래된 미래를 보듯 노장老莊도 모두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시대를 읽어내는 선생님의 고전 독법은 그렇게 내게도 세상을 보는, 역사를 보는 안목을 한단계 높여 주셨습니다. <강의>가 책으로 나온 후, 나는 이 책을 수많은 사람에게 선물하였을 뿐 만아니라 스스로 여러번 읽어 잘 익혀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은 처음처럼 새롭게 들려옵니다.
그러면서 삶의 정수를 빨아드린다는 것과 카르페 디엠과 맛있는 음식을 먼저 골라먹는 것과 내일은 해가 뜬다는 이 모든 진리들이 굴비 두릅처럼 엮어져 내 밥상 위에 있었으나 나는 인색하게 쳐다보기만 했을 뿐 정말 맛있게 구워먹지를 못했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헛 살았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도<강의>처럼 내 책상에 펼쳐져 있지만 나는 또 여기저기 한눈을 팔며 돌아다니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얇은 귀는 남의 노래를 담았다가 다시 얇은 입술로 따라 불러보는 것이 아닌지..... 회한이 몰려옵니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는 것인지, 진정 그러한지...이제는 술에 취한 듯한 감각을 제자리로 돌려 놓아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밤, 또 한번 하얗게 밤을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통화도 갑갑하고 제가 집이 머니 호랑이 때 조금 일찍 만나는 것이 어떨지요?
그 전에 메일 주시면 생각할 시간이 생겨 좋을 것 같구요.^^
dschool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