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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2일 01시 36분 등록

IMF 이후 양극화,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계속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이들은 취업을 앞둔 청년들이다. 해마다 취업 희망자가 50만명 이상 배출이 되지만 이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 취업 빙하기의 시대가 되었다. 그나마 국가에서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놓은 게 인턴제도인데 솔직히 말해서 효과는 회의적이다. 인턴제도는 임시 변통으로 급조된 일자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기업 육성 등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이 시급하다.

 

인턴생활은 희망으로 시작하지만 대부분 절망으로 끝이 난다. 그들은 첫 출근부터 좌절한다. 알 수 없는 조직의 무게가 짓누르면서 갑갑해진다. 일도 많은데 왜 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그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을 받거나 기껏해야 허드렛일을 하다 인턴을 마친다. 인턴은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루저(looser)이며, 쓸모 없는 잉여인간 취급을 받는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이런 대접 받으려고 그 동안 스펙 가꾸기에 몰두했었나 라는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은 입사와 동시에 탈출을 꿈꾸는 지도 모른다.

 

2년 전 내가 근무하는 팀에 인턴사원 6명이 들어왔다. 다른 팀에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안 받겠다고 해서 모두 우리 팀에 배치가 되었다. 사정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풋풋하고 약간 쫄아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미 나는 그들을 방치하거나 단순작업을 시키면 된다라는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루 이틀 지나고 시간을 허비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대로 놔두면 안되겠다는 죄책감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거리기 시작했다. 인생을 낭비한 죄, 유죄 라는 영화 빠삐용의 대사가 스쳐 지나갔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나오는 이병헌의 대사도 떠올랐다.

 

“이 지구상 어느 한 곳에, 요만한 바늘 하나를 꽂고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밀씨를 또 딱 하나 떨어뜨리는 거야. 그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바로 그 계산도 안되는 기가 막힌 확률로 나하고도 그렇게 만난 거다. 그걸 인연이라고 하는 거다. 인연이라는 게 참 징글징글하지?

 

그렇다. 어쩌면 내가 그들과 만나게 된 것은 기막힌 인연인지도 모른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경험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들에게 자기 발견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나는 그들에게 4개월 동안 트레이닝 할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고 정리하고,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칼럼을 쓰게 했다. 또 자신의 꿈과 재능 찾기의 과제를 부여했고 업무에 관련된 자료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인턴생활 마지막 날, 그들은 나에게 조그만 선물과 함께 마음이 담긴 카드를 써서 주었다. 나는 진한 보람을 느꼈다.

 

몇 달 전 국내 대기업의 인턴 선발을 위한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IT 대기업 인턴을 선발하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냥 인턴도 아니고 정식 인턴이 되기 위한 예비 인턴 선발이었다. 나는 교육 첫 시간에 그들에게 전공 분야도 아닌데 왜 IT 기업 인턴을 하려고 하는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목적은 대기업 취업이었다. 자신의 적성과 꿈은 별로 고려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설령 되지 않더라도 이력서 한 칸을 채울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지원 동기였다. 나는 씁쓸하면서 안타까웠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운 취업의 관문을 앞둔 청년들에게 불안은 늘 따라다닌다. 나는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더 따뜻하게 대해주길 희망한다. 인턴 교육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시하는 회사도 별로 없을뿐더러 그들에게 비중 있는 업무를 수행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인생의 방향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인턴을 하는 청년들도 회사 브랜드보다는 자신의 직무에 대한 적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장 눈앞의 취업에 전력투구하느라 인생을 긴 안목에서 설계할 여지가 없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상품가치를 올리는 것보다는 인생과 일에 대한 고민의 시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회사를 만들고 운영할 때 젊은이들의 패기와 창의를 도움 받고 싶다. 그때 나는 제대로 된 인턴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다. 벌써부터 그 생각에 가슴이 뜨겁다. 인생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고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청년들은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다. 과연 이들의 고단한 발걸음에 손을 내밀어 줄 어른은 누구인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인턴들에게, 청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로고.JPG

IP *.154.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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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10.08.02 22:43:37 *.180.75.152
제가 참 많이도 힘듭니다.
그래서 앞이 안보이고 저에게 요구되어지는 역할들을 감당할 역량에 한계가 있는데
계속 이 고단한 길을 가야하나 괴롭습니다.

병곤님 글로 힘을 얻고 다시 씩씩해지려고 애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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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헌
2010.08.02 23:11:08 *.180.75.152
비번이 틀려 수정이 안되는 관계로 다시 댓글 올립니다.
 
박노해님 시를 읽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세수하고 산뜻하게 감정정리하고 고마움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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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8.03 13:19:57 *.192.234.192
이헌님, 부족한 제 글 늘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살다보면 그렇게 시린 날들이 있지요.
아픔을 아픔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은 대단한 자기성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젠가는 잘 되겠지'라는 상투적인 문구에 숨지요.
하지만 그건 더 세게 다가옵니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하는 것처럼,
카잔차스키가 말한 것처럼 행복은 모든 불행을 살아내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또 쨍하고 해뜰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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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2010.08.03 10:56:42 *.110.57.16
병곤님을 만난 6명의 인턴들은 참으로 행운아네요. ^^
정부에서 청년취업지원한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붓고 있지만,
꼭 필요한 건 병곤님과 같은 인생의 선배님이 아닌가 싶어요. 뵌지 오래된 것 같네요. 무더위에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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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8.07 21:37:16 *.34.224.87
와우..사무엘님, 저도 방가방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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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2010.08.05 11:28:42 *.110.57.16
저도 방가방가 ^^ 그럼, 다음주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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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8.03 13:21:53 *.192.234.192
사무엘님, 방가방가~
저 컨설팅하러 여의도에 입성했습니다.
여의도에 아직 있으면 담주에 밥 한번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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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08.07 21:36:46 *.34.224.87
아주 좋아하는 박노해씨의 시..
저 시의 한귀절을, 노래의 가사로 썼는데..
회장님과 많은 부분 공감되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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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8.11 12:59:11 *.154.234.5
언제 하루 날 제대로 잡아서 빡세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봐야 할 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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