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0년 8월 30일 01시 45분 등록
안철수 교수는 인터뷰를 꺼린다. 자기 말만 하면, '듣기'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귓구멍이 뚫려있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듣기'란 음향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파악하는 독해다. 사람은 듣기 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혹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내 관심사 외의 것들에 셔터를 닫아버리면 편하겠지만, 나의 채널도 닫힌다. 듣기 능력이 떨어지면, 정작 들어야하는 내용도 못 듣는다. '사오정'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오정의 심정은 어떨까? 남들 다 알아듣는데, 자신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가는 심정. 이런 일상이 계속되면 자괴감과 소외감에 죽고 싶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무심할 수가 없다. 관심을 꺼버리면, 정보를 얻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다. 나를 보호하는 촉수도 거세하는 셈이다. 

'듣기'능력을 조금 더 이야기하자. '듣기'에 전문가인 사람들이 있다. 상담가나 정신과 의사, 코치가 그들이다. 정형외과 의사는 의학적인 지식도 필요하지만, 수술을 성공케 만드는 것은 메스를 든 손놀림이다. 사람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들의 메스는 '듣기'다. 그들은 '듣기'의 대역폭이 보통 사람보다 넓고 강하다. 처음 만난 사람과 악수를 할때, 유독 손아귀 힘이 압도적인 사람이 있다. '듣기'의 전문가들은 들음으로써, 말한다. 귓구멍이 블랙홀 같다. 이야기를 나누면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잘 듣고, 잘 기억하고 있다가 의미와 의미 사이의 틈새를 발견한다. 미묘한 오류를 찾아내기도 한다. 상대에게 특별히 조언을 해주기 보다,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제대로 듣는다면, 사람은 10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긴시간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능력은 훈련된 결과다. 

듣는다는 것은 존재를 받아들이는 행위다. 사람은 자기 그릇만큼만 받아들일 수 있다. 법정 스님 살아계실때, 한 여인이 찾아왔다고 한다. 시인 류시화도 함께 있었다. 여인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었다. 류시화는 스님이, 위로의 말이라도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스님은 여인에게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저 식사를 하며, 찬을 먹으라며 여인쪽으로 옮겨놓거나, 많이 먹으라는 이야기뿐이었다. 여인은 하룻밤을 묵고 갔는데, 다음날 새로운 기운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위로와 충고는 정작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못한다. 오히려, 충고의 말을 한 사람이, 상처 받은 사람을 매개로 자기 에고를 방사한다.  더 깊은 상처를 얻는다. 사랑은 주의 깊게 주어야 하고, 잘 주어야 한다. 이것이 한순간에 될 일인가? 책 많이 읽었다고 될 일인가? 그릇을 키우는 훈련 꺼리는 일상에 널려 있다. 귀찮은 문제가 아니라, 훈련 대상이라고 받아들이는 인식이 사람들간의 차이를 만든다.  

듣기 능력은 작은 것에 불과하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작은 습관의 차이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행동이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업이 된다. 안철수 교수가 대단한 것은, 듣기 능력뿐만 아니라, 행동과 경험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힘들다고 포기하면, 고난과 역경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진다. 이런 삶이 쌓이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끝날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같다. 주먹을 쓰는 사람은 화가 나면, 주먹부터 나간다. 주먹질 한번이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한다. 나는 현장에서 매일 이 사실을 느낀다.

음식장사를 하면, 여러 사람을 본다. 사람의 느낌을 미리 감지하는 것이 내 직업에 필수다. 필요하다보니, 민감하게 작동하는 능력이 되었다. 내 인상이 험악하지 않기에, 험악한 사람도 안온다. 손님도 주인 닮은 손님만 오게 되어 있다.  가게에서 풍기는 아우라인 것이다. 간혹 주먹을 쓰는 사람이 오는데, 정정당당하게 매장의 한가운데 앉지 못한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좌석에 앉는다. 그들의 콤플렉스란, 험악하게 보이는 자신의 분위기다. 필요 이상 깍듯하거나 온화하게 나오면, 더 긴장된다. 안어울리기 때문이다. 험악한 분위기와 의도적인 행동이 매치가 안된다. 행동은 머리로는 잊을지언정, 자기 분위기에 각인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누구때문이었는가? 본인이 순간순간 선택한 행동이었다. 

범죄자는 출소하면, 또 다시 범죄를 범하기 쉽다. 그들이라고 갱생의 의지가  없겠는가? 일반시민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그들은 못 받아들인다. 알코올중독자의 뇌 회로처럼, 어렵거나 문제가 생기면 자동으로 쉽고 간단한 편법을 찾는다. 지극히 간단한 편법이란 범죄밖에 없다. 응당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들,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들을 찬찬히 뜯어보고 때로는 몸통으로 견딜 능력이 이들에게 없다. 훈련되지 않았다. 

흔히, 퇴사 이유는 상사와의 불화라든지, 약간 더 높은 연봉의 유혹때문이다. 이직자들 다수가 이직을 후회한다. 조직에 들어가서 일하지 않는 이상, 실상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겉보기에 좋아보여서, 이직을 했는데 막상 입사하면 계산치 못한 부분이 튀어나온다. 연봉이 높아도, 잔업이 많다거나, 더 많은 책임을 회사가 강요할 수 있다. 혹은, 근무여건이 좋아도 악마 같은 상사와 일할 수도 있다. 여기가 마음에 안들어서 옮기면, 반드시 거기도 마음에 안드는 무언가가 나온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 대응하는 나의 면역력 이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회사 생활에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는가? 회사는 돈버는 곳이 아니다. 트레이닝 장소다. 일개 회사원 중에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은 조직원이지만, 이미 회사와는 별개로 자신을 생각한다. 조직에는 소속되어 있지만, 자신을 자영업자로 받아들인다. 독자적으로 생각하며, 독자적으로 실행한다. 허허벌판에서 숟가락 하나로 우물을 파고, 결국 물을 발견한다. 이들이 회사를 나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잡는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잡으려 할 것이다.  

회사를 나올때, 주변 반응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하자. 사표를 냈는데, 인사치례로 붙잡다가 '정 너의 뜻이 그렇다면'이라고 반응한다면, 나오지 말아야 한다. 쪽팔린 것은 잠깐이지만, 경력은 평생을 간다. 상사는 무능력해 보여도, 바보는 아니다. 스스로를 답답하게 생각할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나보다는 꿰뚫고있다. '어서 나가라. 제발 나가줘라.' 라고 말한다면, 절대 나와서는 안된다. 온몸으로 책상을 붙잡고, 버텨라. 어떤 일이 있어도,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상사에게 보여야 한다.'누가 먼저 나가나 보자'라는 눈빛으로 상사를 노려보아도 좋다. 위험한 관념이 있는데, '이 곳 아니면 갈 곳이 없겠느냐'는 근거없는 추측이다. '설마 입에 풀칠 못하겠느냐'라는 낙관, 내지는 '안되면 대리라도 뛰지'라는 안이함이다. 실제로 대리를 뛰어보면, 구역질이 날정도로 자괴감이 들것이다. 대리운전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오만이 똥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돈 버는)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 꺼리는 생활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퇴근하기 싫어하는 상사가 될수도 있고, 쥐꼬리만한 월급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이다. 이런 문제를 어쩔수없이 돈받으니까, 받아들여야할 대가라고 생각하면, 미래는 없다. 클리어해야할 과제로 생각한다면 이미 자영업자 마인드다. 왜냐면, 자영업이라는 것이 허허벌판에서 돌파구 찾기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발버둥쳐야 한다. 자영업의 꽃은 손님이 없을 때 핀다. 손님이 알아서 온다면, 자영업이 아니다. 회사원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회사의 브랜드가 손님을 불러주고, 자신은 서비스에만 집중하면 된다. 손님이 없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를 것이다. 자영업자의 창조력과 내공은 손님이 없을 때 쌓인다. 물론, 손님 없다고 손놓고 있다면 아무것도 안된다. 손님을 부르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짜내고, 실행하는 것이 자영업이다. 회사원은 자유롭게 여기에서 저기로 갈 수 있지만, 자영업자는 자기 사업과 생사를 함께 해야한다. 회사원일때,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내 사업이 부진할때 쉽게 손을 털것이다.   

언젠가는 회사를 나와야 한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시스템, 와쿠가 필요하다.  돈은 못 모아도, '자기 기획을 성과가 나올때까지 실행하는 능력'은 가지고 나와야 한다. 나답게 하나 터뜨리지 못하면, 자영업자로서의 길은 험하다. 

회사에서 훈련해야 할 것은 참 많다. 일을 끝까지 마무리 하는 습관, 화가 나도 바로 표현하지 않는 절제력, 성과 중심의 사고방식, 미리미리 준비하는 태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무엇보다, '추진력'이라는 엔진의 크기가 중요하다. 나도 이 엔진이 작지만, 자영업을 해보니까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엔진의 크기가 성패를 가른다. 허영만 화백은 문화생들에게 능력의 120%를 발휘하라는 충고를 한다. 열심히 더 많은 일을 할려고 하는 태도가, 능력을 확장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은 반대다. 일이 맡겨지면, 일단 뺀다. 충분히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못한다고 말하고 본다. 전략적으로는 안전하다. 만일 못하더라도, 내 능력 이상의 일이었으므로, 크게 주변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해냈다면, 내 능력 이상의 일이므로 난 뛰어난 사람이다. 자기 능력의 70%만 쓰는 버릇을 가지면, 그 70%가 전체 능력이 되어버린다. 답답한 사람이 처음부터 답답했을까? 자기를 축소시킨 것은 본인의 태도다. 

자영업자가 되면, 아무도 모니터링해주지 않는다. 삶이 늘어질대로 늘어지면, 구원해줄 사람은 없다. 답답하고, 미래가 안보이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업무들, 이런 상황에 헐떡거리기 보다, 나를 키워주는 구성 요소라고 받아들인다면, 이미 몇십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은, 행동이 아니다.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기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사람들과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이다. 회사는 돈버는 곳이 아니다. 트레이닝 장소다. 누가 이렇게 생각하겠는가?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암담한 미래에 답답해하면서도, 같은 생각을 견지하는 것은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회사에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나와서 죽는다. 살아남지 못한다.  

IP *.129.207.200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10.08.30 08:34:06 *.131.127.50
인건!
그대의 이야기,,, 회사 사장님들이 들으면 감사패라도 줘야겠어...^^
그래도 회사원들에게는 희망이라는 것이 필요해,
현실을 잘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착각을 하고 있는 동안만은 즐거운 거거든...

나는 관리자였기때문에, 더욱이 인력관리였기에
인건의 말에 공감해,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 들리지 않거든
왜 그럴까?  인건은 그 답을 알고 있겠지... ^^
프로필 이미지
맑은
2010.08.31 06:58:45 *.146.69.208
저도 회사 다닐때는 잘 몰랐어요. 당시 윗분들에게 잘못했지요. 그분들에게 폐를 끼쳐서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다 저에게 돌아오더군요. 설렁설렁 대충대충, 대수롭지 않게 보는 시선들, 이런 습관에 어느새 물들었어요. 
프로필 이미지
상현
2010.08.30 23:10:52 *.212.98.176
요즘 글이 안정감을 주면서도 메시지가 더 강렬해진 것 같다.
주제가 모아지니 메시지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구나^^

느낌이 왔을 때 글과 그림을 한데 묶어 펼쳐보는 것도 괜찮겠다.
우리가 둘러봤던 중세 수도원을 글과 사진, 글과 프레스코화로 병행하여 
표현할 때 처럼  작가도, 독자도 신선한 맛이 있을 것 같다.
프로필 이미지
맑은
2010.08.31 07:00:11 *.146.69.208
그런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원고가 나온 다음에 그려야, 순서일것 같아요. 

지금은 손 푸는 정도, 또 사업하는데 마냥 그림 그리고 있을수만은 없더군요. 어른을 대상으로 그림과 자기경영을 접목한 그림책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52 라뽀(rapport) 22 - 자극(stimulus) 그이상을 넘어 書元 2010.09.05 2156
1851 하계연수 단상6 - 달려야 하니 file [1] 書元 2010.09.05 2623
1850 하계연수 단상5 - 정신적 향수(鄕愁) file [2] [2] 書元 2010.09.05 5087
1849 칼럼. 성실맨, 민수. [17] 낭만연주 2010.09.05 2356
1848 오리오의 명상 file [12] [2] 이은주 2010.09.05 2570
1847 [그림과 함께] 그림 함께 읽어볼까요? file [2] 한정화 2010.09.04 2607
1846 응애 30 - 불의 문 - 테르모필레 [6] [3] 범해 좌경숙 2010.09.03 4122
1845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4] 백산 2010.09.03 2407
1844 심스홈 이야기 12- 우리 집 거실 이야기 file [4] 불확 2010.09.03 2684
1843 물길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것...[고 이윤기 선생을 기리며] [4] 신진철 2010.09.01 2309
1842 [먼별2] <단군의 후예 11 - 로맨티스트 직장인: 김병진님 인터뷰> [2] [1] 수희향 2010.09.01 2552
1841 [그림과 함께] 나의 하루에 당신의 지문이 남았습니다 file [5] 한정화 2010.08.30 2621
1840 진태의 살아남기 [5] 낭만연주 2010.08.30 2478
1839 가을을 선언하다 [11] 박상현 2010.08.30 2589
1838 나의 무의식이 나의 눈을 찔렀다 [7] 이선형 2010.08.30 2433
1837 [컬럼] 미래의 창조 [6] 최우성 2010.08.30 2695
1836 깨어있으라! [6] 박경숙 2010.08.30 2306
1835 강에서 배우는 것들 [4] 신진철 2010.08.30 2382
» 자영업자로 살아남기 위해, 회사에서 준비해야 할 것 [4] 맑은 김인건 2010.08.30 2662
1833 라뽀(rapport) 21 - 취중(醉中)의 공간 [1] 書元 2010.08.29 2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