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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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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4일 20시 34분 등록

개들이 자식을 잃으면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친정 동네에 가면 내가 늘 관심을 보이는 개가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특이하고 재미있는지 나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다. 그 개의 부모는 분명 금술 좋은 부부였을 것이다. 자로 얼굴을 반으로 정확히 그어 나누고 서로의 예쁜 점만을 반반 닮게 만들어 낳았나 보다. 까만 얼굴 반 하얀 얼굴 반, 어린 시절 만화 영화 주인공 아수라 백작의 가면을 쓴 것 같이도 보인다. 내가 갈 때마다 반쪽아~~’ 하고 부르면 꼭 나타나는 그 개를 보면서 나는 그 개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가끔 오는 나의 목소리를 알고 저렇게 달려올까하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반쪽이가 얼룩 무늬를 가진 귀여운 자기 새끼를 데리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에게 자식 자랑을 하고 싶었나 보다.  어찌나 귀여운지 하마터면 안아 올려 콱 물을 뻔 했다.  그 날 처음으로 견주를 만나게 되어 나는 개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 주인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반쪽이유. 우리 반쪽이가 새끼를 낳아 이렇게 잘 길러유.” ‘이제 나의 영빨이 개 이름에까지 미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제 이름을 정확히 부르니 나에게로 늘 달려온 것이었다. 반쪽이는 여느 개와는 틀리게 자기 새끼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햇볕에서 늘 뒹굴고 놀아주는 다정한 엄마였다. 대부분의 어미 개들은 자기새끼들이 놀자고 귀찮게 하면 자리를 뜨던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그런데 반쪽이는 먼저 코로 자기 새끼를 뒹굴뒹굴 굴리며 또 핥아주며 놀았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녀였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둘은 항상 같이 다녔고 담 아래 양지에서 둘은 꼭 붙어 잤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 저 둘만큼은 헤어지지 않게 새끼도 꼭 기르라고 그 견주에게 부탁을 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니 개들을 잘 돌보아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 견주는 여태 아무일 없었시유, 게다가 반쪽이가 얼매나 똑똑한지 걱정 없슈.” 그러고는 웃고 돌아섰다.

 

한달쯤 지나서 나는 반쪽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랐다. 그녀의 얼굴에는 전에 보지 못한 슬픔이 담겨 있었다. 알고보니 며칠 전 그녀가 그토록 아끼던 새끼가 차에 치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지 않아도 나는 반쪽이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의욕도 없고 불러도 오지 않았다. 집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부르면 코만 삐죽 내밀어 나라는 것만을 확인하는 듯 했다.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였다. 개들도 우을증을 앓곤 하는데 그럴 때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장 좋아하는 산책도 거부한다. 증세가 심해지면 거식증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개에게도 슬픔, 분노, 질투, 눈치 등을 느끼는 정서가 분명히 있다. 또 행복해하거나 아주 기분이 좋을 때는 활짝 웃기도 한다.  얼마 전 내가 보던 반쪽이는 행복해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랬던 반쪽이는 세상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보여졌다. 마음이 찡했다. 다가오기라도 한다면 위로라도 해 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반쪽이는 내게도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웅크리고 있는 그녀는 자식을 잃은 반쪽 인생이 되어 있었다. 너무나 허전해 보였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거나 보상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반쪽이를 보면서 내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주변에 나와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꽉 채워주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난 후의 삶은 겉으로는 별 다름이 없어 보여도 평생 마음의 반쪽은 비어 있을 것 같다.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할 일들을 잊지는 않았는가! 또 하루 일상이 매일 똑같다고 불평은 하지 않았는가!’ 반성의 시간이 이어졌다. 하루가 아무일 없이 매일 같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반쪽이 옆에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너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마치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에 나오는 민들레 같은 존재이고 싶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강아지 똥이라는 한낱 미물은 슬퍼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민들레 씨앗이 날아와 앉더니 소중한 꽃을 피워내는데 소중한 거름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배웠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경험을 할 때 자기를 사랑하게 되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처럼 반쪽이에게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살아보라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때로는 슬프면 슬프다고 이야기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문득 외로움이 뼈 속까지 파고 들을 때 앞뒤 생각 없이 전화를 할 친구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다 쏟아 내고도 후회없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또 세상이 갈라진다 해도 서로의 믿음과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는 의리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부자이다. 물질적인 부와 자기분야에서의 성공도 중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나의 주변이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늘 감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반쪽이는 나에게 삶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반쪽이.jpg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눈이 너무나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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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0.10.25 17:56:09 *.10.44.47
이번 칼럼, 완전 저를 위한 맞춤형 메시지예요.
고맙게 접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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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0.26 08:38:52 *.42.252.67
한 사람에게라도 마음에 와 닿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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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10.26 17:25:29 *.30.254.21
'스스로를 위무하지 못하는 음악은 필요없다.'
작곡노트에 적어놓은 글이지...

노래도 그렇지만
글쓰기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아.

이번 글은, 
위무하는 글 처럼 느껴진다..
치유의 힘을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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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0.30 11:22:12 *.42.252.67
그래~ 반성하고 감사하는 삶으로
치유하며 살아가야 또 다른 내일을 맞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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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10.29 23:41:02 *.129.207.200
난 전화 걸 사람이 누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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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10.30 11:23:16 *.42.252.67
^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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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
2010.11.01 05:41:31 *.105.125.156
"때로는 슬프면 슬프다고 이야기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문득 외로움이 뼈 속까지 파고 들을 때 앞뒤 생각 없이 전화를 할 친구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다 쏟아 내고도 후회없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또 세상이 갈라진다 해도 서로의 믿음과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는 의리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부자이다."
 
정호승님의 '처자를 맡기고 가도 좋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글을 매우 좋아합니다.
나도 그런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어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참 좋은 글을 쓰셨군요. 웨버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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