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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반가운 벗들과 술 한잔을 걸치다 보니 막차 전철을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시. 내리자마자 나를 먼저 반기는 것은 차가운 아파트 마당에 가득히 모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 놓은 현장.
‘이크, 오늘 재활용을 버리는 날이구나. 어떡한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은 매주 화요일 재활용 수거의 날로 정해져 있다. 한주에 한번이기 때문에 나처럼 지방 출장으로 일자를 놓치는 경우에는 다음주로 미루어져 그 존재의 흔적이 더욱 산처럼 쌓인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하면 정해진 일자를 지켜야 하기에 잠시나마 고민을 해본다.
‘이 꼭두 새벽에 버려, 말아.’
그런데 웃기는 짓같다. 지금 시간 처리하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모양새가 아무래도...
아침에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밤중 취침에 들다보니 평소보다 늦은 기상.
후다닥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중 간밤의 기억이 떠올려 졌다.
‘어쩐다. 오늘 버리지 못하면...’
시계를 보았다. 할 수 없다. 서두를 수밖에.
한쪽 손에는 노트북 가방과 다른쪽 손에는 한보따리 버려질 짐들을 낑낑 대며 들고 해당 장소로 나아간다.
평소에 뵙지 못하던 여러 아주머니들을 만났지만 아는체를 하기도 무엇해 눈인사만 힐긋.
각기 형형색색의 꾸러미에서 여러 물건들을 끄집어 내었다.
굉장하다. 사람이 한주동안 소비했던 물품을 다시 토해내고 배설해 내는 과정. 양도 대단하지만 그 종류도 가지가지다.
헌 옷가지, 신발, 깡통, 플라스틱, 스티로폴, 비닐봉지, 신문, 종이, 유리병, 고철, 형광등, 건전지 등.
그것들을 한꺼번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종류대로 분류해 정해진 통에 넣는다.
태어날 때는 혼자였던 그들이 각자의 소임을 마치고 나자 다시 같은 종족으로 만났다.
그래서인지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야, 반갑다. 너는 어디서 왔니.’
‘나는 301동 201호에서 왔는데 우리 주인집 아주머니가 얼마나 깔끔한지 내 모양새를 봐. 우유 하나도 먹고 나서는 일일이 흐르는 물에 씻고 햇볕에 정성스럽게 말린 덕택으로 때깔이 훤하잖아.’
‘좋겠다. 나는 원래 말쑥했던 모습은 어딜가고 이렇게 허접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니.’
‘맞아 맞아.’
‘그런데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인간들이 떠난 자리에 그들은 세상에서의 소풍의 결과를 학예회 발표라도 하듯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윽고 그들을 싣고갈 커다란 덤프 트럭 차량이 도착했다.
제2의 소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또다른 여행지로 향해야 하는 시점.
떨어진 옷은 세탁 또는 새로운 옷감으로써 또다른 벗의 따뜻함으로 되어질 것이고 종이류와 깨진병들도 재가공 되어 콜라, 박카스, 음료수, 잡지, 마음을 감동시키는 책 등으로 변신할 것이다.
자신의 예전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세상에 다시 나서는 그들.
태어나서 몫을 다함에도 버려지는 아픔이 있지만 어찌보면 그것은 새로운 탄생을 맞기 위한 받아 들여져야 하는 과정.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그들이지만 척박한 어둠의 진흙을 헤치고 아름다운 연꽃이 되어 피어나는 것 처럼 어느순간 찬란한 또다른 무엇으로 태어날 것이다.
가이아(Gaia) 이론처럼 모든 사물은 생명체로써 스스로의 모습으로 순환되어 간다.
삶을 찬미하던 녹색 잎이 동장군의 겨울이 되면 한꺼풀 벗겨진 죽은 낙엽으로 떨어지지만 새로운 봄의 탄생으로 일어나듯이.
살아온 40년의 세월이 되면 솔개 스스로 자신의 살에서 일일이 깃털을 뽑아 내어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 되듯이.
나도 하루의 일과를 시작전 묵은 먼지를 털어 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