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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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으로 가는 그의 차를 얻어 탔습니다. 왠지 친근한 인상, 털털한 말투와 장난기 가득한 행동들. 마치 대학 선배를 만난 듯 했습니다. 마음속으론 연구원 면접에 대한 긴장과 내적인 갈등들로 잔뜩 얼어있었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돌연 시작된 그의 사전 면접 질문은 날카로웠습니다. 사부님을 흉내내며 그가 했던 질문은 "경수야, 내년에 하자. 꼭 올해 해야 겠냐?" 이런 식이었죠. 난 우물쭈물 변명을 늘어놓았고, 당황해서 마음을 놓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불편했던 마음속에서 여행 도중 찾은 실마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지금 해야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나의 의지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과 면접 전에 읽었던 '강'에 대한 칼럼들 덕분에 조금 그를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비슷하구나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들을 읽다보니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정을 쏟아내는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는 "나는 목숨을 걸었다. 여러분은 무엇을 걸겠는가?"라고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권위에 맞짱 뜨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할 말이 넘쳐나는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가 쓴 칼럼들, 작년 청강생 기간동안 쓴 '살아가기'게시판의 <불편하게 살기>시리즈와 시들을 읽다보니 그가 쏟아내는 고백들에 가슴이 아려오기까지 합니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던 시기였던 1993년. 문민정부 시절이었던 그때까지도 그는 수배생활을 했습니다. 3년 동안 학교 밖을 두 번밖에 못나가 보고, 찬 스트로폼 위에서 잠을 자며 살았답니다.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주민등록까지 말소시키며 5년간 숨어살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질수밖에 없었다니요. 저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너무 무겁게만 보진 말아주세요. 그는 토속적이며 풍류를 즐길줄 알며 달빛을 사랑하는 시인입니다. 그것이 그를 그 상처속에서 견디게 했나봅니다. 그는 다시 시작된 삶을 '전주'에서 자연과 벗삼아 시민단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주천 복원 사업>을 통해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전주천'을 통해 사회가 말하는 성공은 아닐지언정 세상에 그의 이름을 조금씩 알리게 됩니다. 그러다 새로운 충전을 위해 6개월간 혼자 영국에 훌쩍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가족이 있었던 그에겐 무모한 짓처럼 보일수도 있었지만, 그만큼 그는 절실했습니다. 그는 목숨 걸고 참된 자신을 찾고 싶었으니까요. 그런 그가 마흔 세살에 또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합니다.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6기>였습니다. 청강생으로서 몇 개월의 마음고생까지 겪으며 그는 또 이곳에 열정을 들이 부었습니다. 그는 바닥까지 남김없이 사랑해야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동기들은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휴가마저 동기의 고통을 더는데 쓰는 사람이다. 풍류를 아는 사람이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길남파 행동대장이다. 그의 세계에 들어가기는 힘들지만 들어가 보면 참 아름다운 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라고요.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전 무엇보다도 사람 욕심이 많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사상과 정체성을 묻는다면, 나는 단언코 휴머니스트라고 말하겠습니다." 그의 삶은 거대한 사상과 가치로 방향지워졌지만 결국 그는 사람을 사랑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일 뿐 인걸 알겠습니다.
그는 이제 나의 멘토입니다. 한 칼럼에서 그는 스스로 위험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불을 붙인 사람에게 각오가 되었는지를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도 그들과 함께 변하겠다는 각오를 스스로 다집니다. 큰일났습니다. 결코 쉬운 멘토가 아닌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는 자기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보다는 자기와 함께 나쁜일을 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씌워진 '착한사람'이라는 껍데기를 찢어야 그를 만날 수 있을텐데요. 어떻하죠? 한 술더떠 그가 꿈꾸는 삶은 "신들도 질투하는 삶" 이랍니다. 참 힘든 멘토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춤추며 살아봐야겠습니다. 저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유언장을 쓰며 죽음 앞에 약속했으니까요.
"나는 신들과 더불어 춤을 추며 살아갈 것입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늘 지금처럼"
- 신진철, 이메일 인터뷰 중 - 그는 '강'에 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저자소개 : 신진철은... 블로그 : blog.naver.com/stephano1117 프레시안 키워드가이드 ‘강과하천’ http://www.keywordguide.co.kr/site/article/guide_home.asp?key_idx=1214 <이메일 인터뷰 중> 무엇보다도 사람욕심이 많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사상과 정체성을 묻는다면, 나는 단언코 휴머니스트라고 말하겠습니다. 비록 나의 유년시절과 황금같았던 청춘시절의 열정을 지배했던 사상들이 나를 만들어왔고, 지금의 나 역시도 과거의 유산 속에서 성장했음을 인정하지만.. 결국 나는 나일뿐입니다. 나는 나를 찾고 싶어서 헤매다가 구본형 선생님을 만났고, 변경연의 연구원이 되기를 마음 먹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를 늘 스스로에게 물었고, 그에 답하기 위해서 지난 1년을 살아왔습니다. 늘 바닥까지 남김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려고 할 뿐입니다. 나는 신을 믿느냐고 묻는 질문에, 신을 안다고 대답했던 캠벨의 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나는 신들도 질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신들과 더불어 춤을 추며 살아갈 것입니다. 결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늘 지금처럼 ※ 기타 칼럼에서 발췌했던 문장들과 인터뷰 전문은 삭제합니다. 늘어진 뱀꼬리 같이 느껴져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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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동안의 그 여정에 힘찬 응원 부탁합니다.
1969년 음력 섣달 열하루, 만경강의 끝자락 심포에서 탯줄을 묻었다.
1972년 제 아비를 따라 강을 거슬러 전주로 나왔다.
전주천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으며 좀 놀았다.
1999년 전주천 자연형하천복원사업에 휘말려 들어, 다시 잊었던 인연을 맺다.
2002년 일본에서 열린 제5회 강의날대회에서 전주천 복원사례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강과 하천을 사랑하는 풀뿌리단체 모임인 강살리기네트워크에서 운영위원도 맡고, 조직위원장도 맡았다. 그 후로 ‘쉬리가 사는 도심하천’을 찾는 이들에게 제법 일삼아 전주천을 팔았다.
2006년 전주에서 제5회 한국강의날대회를 개최하는데, 조직위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사진집 ‘장롱속 전주천 추억찾기’를 펴내고, 전북일보에 스물세차례 기획연재를 했다.
2007년 전주천을 지키기 위한 민관거버넌스 ‘전주생태하천협의회’를 결성했다.
2010년 ‘전주천 10년의 기록’을 통해 함께 해 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었다.
2011년 지금도 걷고 있다. 강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