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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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덴버호텔 프론트 벽에 걸린 가장 큰 현지 시계의 작은 바늘은 4를 넘어 5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요나와 숀 그리고 베루스는 로비 쇼파에 앉아 서로 멀둥멀둥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요나와 숀은 옵쇼어 공사에 대한 전반적인 엔지니어링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오션사의 직원이고, 베루스는 오션사가 서브 콘트렉터로 계약한 텐트사의 그라우팅 슈퍼바이져다.
“얘들 그거 옮기다 물속에 빠졌나보네.” 요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시 전화 해보겠습니다. 부장님” 숀은 이미 전화기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베루스는 알 아 들을 수 없는 한국말에 멋쩍은 미소만 연신 날리고 있었다. 숀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부장님. 잠시 밖으로 나가시죠. 베루스 담배 한 대 피자.”
“그래. 나가자. 오늘 자정을 넘기기야 하겠냐.” 요나가 먼저 자리에서 났다.
“숀. 자네 물놀이 강사 말고 또 뭐 해본 거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제임스 부사장님이 물놀이 강사만 하던 친구를 영어 좀 하는 것만으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네를 이 오지까지 보내지 않았을 꺼란 말이지. 더군다나 찰리 이사님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는 건 내가 모르는 자네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요나는 숀의 과거를 들추기 시작했다.
숀과 요나는 서로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숀은 오션의 해양안전훈련소 교관 자리로 뉴질랜드에서 스카우트되었고, 요나는 오션이 만들어지면서 엔지니어링 부서의 경력사원으로 들어왔다. 회사는 같았지만 그들이 서로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스쳐지나가는 몇 차례의 눈인사가 전부였다.
“부장님. 담배 좀 펴도 되겠습니까?” 숀이 먼저 담배를 꺼냈다.
“당근이지. 잊었나. 우린 한 담배를 태웠잖아. 예의바른 척 하지 말고 그냥 펴. 난 그런 거 상관안하니까.” 요나는 왼손으로 숀의 담배를 직접 꺼내면서 오른 손 주먹을 그에게 내밀었다. 숀은 본능처럼 요나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살짝 맞췄다. 그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나 숀은 잘 모르는 사람인데다 회사 상사인 요나 앞에서 먼저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은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듯 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 동기와 뉴질랜드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숀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부자셨나 봐.....” 요나가 숀의 반응을 보며 말문을 닫았다. 숀은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알았어. 알았어. 그냥 듣기만 할게. 계속해. 얘가 까칠한 구석이 있네.....” 요나는 웃으며 숀을 안정시켰다.
“처음엔 일주일정도 놀다 올 작정으로 갔는데, 삼일쯤 지나니까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기 싫어지더라구요. 그곳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했는데 그건 거짓말였어요.” 숀은 담배연기를 삼키고 있었다.
“더 놀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예. 처음엔 그랬어요. 저는 그때 영어라고는 알파벳 쓰는게 전부였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 부터 제 인생은 수영이 전부였어요. 그리고 애들하고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사고뭉치였죠..... 이대로 돌아가면 돌아버릴 것 같았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학비는 어머니가 마련해 주셨지만, 일을 해야 했어요. 오클랜드에 있는 모든 수영장의 클럽을 다니며 강사들이 어떻게 지도하는지 돌아보기 시작했죠. 뭐 별거 없더라구요. 이런 거라면 저도 가르칠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요. 문제는 수영이 아니라 대화였어요. 뭐. 말이 통해야 가르치든 말든 하니까요.” 숀이 피던 담배에 연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 수영 선생만 했나.” 요나는 그의 다른 경험도 듣고 싶어 했다.
“일 년 동안 영어공부를 마치고 수영코치를 하면서 대학에 들어가 요트 공부를 시작했어요.” 숀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요트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있었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수영코치로는 어림도 없었거든요.”
“와우. 요트를 공부했다고, 거 재밌네. 그러면 물놀이 선생과 요트 노가다를 같이 했다. 이거네.....” 요나의 숀에 대한 긍금증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 요트노가다 얼마나 했나.”
“들어가시죠. 부장님. 이러다 감기 드시겠어요.”
숀은 지금 것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이렇게 자세히 해본 적이 없었다. 잠시나마 오클랜드에서의 지난 7년을 회상했다.
“감기는 자네가 다 먹고. 알린가 야곱인가 아직 안 왔잖아. 걔들 클램프 옮기다 물에 빠뜨렸을 꺼야. 그거 건져내려면 좀 걸릴꺼야. 시간도 잘 가는데 자네 이야기나 계속 들어보자고.... ” 숀은 들어가려했지만 요나가 주머니에서 자기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부장님. 담배 있으시면서 그러셨던 겁니까? 끊으셨다면서요.” 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맞어. 비행기 타고 오는 동안 끊었지. 그리고 내가 담배 없다는 얘기는 안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요나는 숀의 어이없음을 즐겼다. 숀도 그런 요나가 밉지 않았다.
“자네도 이거 한 대 펴봐. 얇고 긴 것 보다 난 이게 더 좋더라.”
밤이 깊어갔지만 요나는 잠을 이룰 수 없는지 랩탑을 꺼내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2011년 2월 11일 금요일
호텔에서 종일 기다렸다. 12시까지 오기로 한 알디사 사람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곧바로 숙소를 옮겼다. 우리일행은 숀과 텐트사의 그라우팅 매니저 베루스 그리고 나 셋이다. 파사가드호텔에 기거했다. 여긴 덴버 호델 보다 인터넷 사정이 좋았다.
호텔에 있는 동안 숀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붙임성이 좋고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매우 뛰어났다. 회사 들어오기 전 오클랜드에서 수영 아카데미를 운영해 본 그의 경험은 프로젝트 관리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다면서 내 이야기를 반겼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느꼈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될 것 같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해 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