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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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강가에서
여송정 정자 아래로 솔숲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살갗을 타고 넘는 바람은 언제나 달았다. 난간으로 불거진 자리에 몸을 기대었다. 경사진 여울의 바위 틈을 비집고 흘러가는 강물이 소리를 내지만, 처녀의 치마도 펄럭이지 않고, 곱게 빚어 넘긴 머리칼은 요동도 없다. 여량골 아우라지 처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 있다. 싸리골로 동박꽃 구경을 가자던 이는 애타는 발걸음만 동동거리고, 야속한 강물은 더는 알은 채도 하지 않는다. 무심한 강물을 탓해서 무엇하랴만.. 뱃사공마저 보이질 않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히요~오 아리라앙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리랑 고개는 또 어디고.. 왜 나를 넘겨달라고 했을까.
아홉 마디마다 굽어진 구절리를 끼고 흘러온 것이 송천이다. 뼈마디 속 깊이 박힌 그리움을 누가 알랴.. 골지천은 또 그렇게 아우라지로 흘러든다. 다르게 흘러왔지만 골짜기 돌아가면 있을 것만 같은 그리움이 둘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 그래서 아우라지라고들 한다. 속절없는 강물은 제 몸을 섞어 요동을 친다지만, 불어난 물길에 애만 태우는 동동걸음 사연을 귀담아 들으려하지도 않는다. 여량리 처녀는 이제 울지도 못한다. 그저 마포나루까지 천리 물길을 따라 간 그리움만 기다리고 섰다. 계곡을 따라 솔숲 사이로 바람만 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정선의 아리랑은 꺾이고, 휘감아 도는 동강을 닮았다. 얼핏 푸념 같기도 하고, 체념 같기도 한 구슬픈 자락이 영락없는 태백준령들이다. 계곡을 따라 강물이 울고, 산자락을 끼고 떼꾼들의 아라리가 서럽다. 여울목에서 빠르고, 소에서 느려졌다, 늘어진 뗏목처럼 이어지는 곡조에 목숨을 띄워 싣고서... 오르락 내리락 어라연 계곡 황새여울 된꼬까리를 지난다.
우리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 가셨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다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
된꼬까리에 묻힌 이름들.. 성난 강물에 던져진 목숨들.. 아리랑 고개는 어디고.. 문경세제는 또 어디메쯤인가... 한치 뒷산 곤드레 딱주가 님의 맛만이야 하라먄... 들병장수 전산옥이 들려주던 아라리 소리에 술과 웃음이 곤드레.. 또 만드레... 목숨 값으로 주고 산 하루저녁 치마폭에서 동박꽃처럼 붉어진 눈물을 떨군다. 이 눔의 질긴 목숨.. 이 눔의 썩어 문드러질 떼꾼의 팔자.. 그렇게 조양강이 소리없이 흐느끼고, 만지나루의 짧은 밤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