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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한 번씩 느끼기 위해서든 아니면 기분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되어서이든 그럴 때면 한 번씩 명동에를 나가곤 한다.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고 주류인 젊은 층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해 오곤 하는 것이다. 해가 바뀌어 찾아간 그곳은 여전히 많은 인파들의 거리로 북적대고 있었다.
예쁘장한 도우미 언니들이 いらっしゃいませ(어서 오세요)를 외치며 일본인들을 부르는 호객행위.
봄 계절의 주인공인 여심들을 유혹하는 알록달록한 각종 액세서리와 화려한 쇼윈도의 의상들.
그 가운데 노점상들 분들은 지나다니는 쇼핑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아이디어를 동원한 먹을거리들을 내어 놓는다. 고추장과 카레의 양념으로 조화된 떡볶이, 달짝지근하게 넘어가는 부산 오뎅과 얼큰한 국물, 디자인도 독특한 회오리 감자,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야채 만두 등. 그중 오징어채를 선택하여 가격을 물어 보았다.
“5,000원 인데요.”
허걱~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면 2,000원대에 파는 품목이 어찌 이리 비싸단 말인가.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데 눈치 없는 마눌 님은 풍미를 자극하는 오징어의 숯불 향기에 취해 군침만 돋우고 있다. 어쩔 수 없지. 날마다 오는 명동도 아닌데 한번 사먹어 봐야지. 손으로 찢어 한입 넣어보니 이런 그 맛이 그 맛이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이왕 샀으니 낭만이려니 여겨야지. 우리도 이팔청춘들처럼 명동 대로를 활보 하던 중 지인(知人)과의 식사 만남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명동으로 날마다 출근을 한다. 서적과 여러 팬시들을 파는 근무처가 이곳에 위치해 있기에 매일 나오는 것인데 나는 그런 그녀가 솔직히 부러웠었다. 마음이 허하고 사람 냄새가 그리울 때 어쩌다가 한 번씩 오게 되는 나의 입장에서 보노라면, 이곳에서 근무하는 그녀의 직장이 편하고 좋은 환경으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듯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많은 않은 모양이다. 오랜만에 맛나게 식사를 하던 중 이런 속내를 드러내자 그녀는 다음과 같은 푸념을 한다.
“아이고, 승호씨.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 보기에는 편해 보여도 이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쓸 일이 많은지 아세요. 새로운 신상품이 들어오거나 재고정리를 할 때는 남자들 못지않게 박스도 번쩍 번쩍 날라야 되고요, 퇴근시간이 6시긴 한데 제때에 맞추어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했다. 나갈 때가 되니 젊은 남녀의 커플이 들이 닥쳤었다. 서적이며 반지를 구입 하면서 서로의 애정 행위를 확인하는 통에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그럼 집에서 쉬시지 그러세요.”
이 같은 말에 그녀는 바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나도 그러고 싶어요. 예전처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남편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에 근무 하고 있다. 그러기에 안정된 월급을 꼬박꼬박 갖다 주는 터에 뭣 하러 이곳까지 나와서 이런 일을 하는가 하는 의아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월급만으로 생활하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였다. 아내의 역할이 당연히 아이들 잘 키우고 시부모 잘 모시며 집안에서 살림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분이었다. 그런 그녀의 생활에 변화가 찾아오게 된 것은 두 아이가 대학교에 줄줄이 입학하고 나서부터였다. 어쩌다보니 일본으로 함께 유학을 보내게 되었는데 덕분에 돈 쓸 곳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대학교 학비는 남편의 회사에서 커버해 주기에 남들보다 부담은 훨씬 덜하였지만, 체류 생활비에다 기숙사비 등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50대인 남편도 이제 서서히 정년을 준비하여야할 처지였기에 마냥 예전처럼 자신이 가정만 경영하기에는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직접 나가서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고심 하던 중 아는 인맥을 통해서 이렇게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많은 않았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터에 모든 게 낯설었고 손님을 대하는 화법이나 스킬이 서툴고 생소하기만 하였다. 그동안 돈을 벌어다 주었던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솟아나긴 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고 육체적인 노동까지 이어지니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저녁이고 뭐고 모든 게 귀찮아졌다. 거기다 경기도 자택에서 일터인 명동까지는 이동 시간이 길었고 특히 퇴근 시에는 더욱 죽을 맛이었다. 어떤 날은 광역버스에 앉을자리가 없어 퉁퉁 부은 다리를 쉬지 못하고 마냥 서서오는 날도 생기곤 하였다. 이런 아내가 안 되어 보였는지 그만 두라는 남편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이들이 맘에 걸리기도 하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럼 다른 일도 많을 터인데 구해보지 그러셨어요?”
사십대 후반답지 않게 날씬한 몸매와 평소 꾸며온 미모를 자랑하기에 어느 곳이든 원하는 곳이면 쉽게 일을 구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 하였던 것이다.
“나도 그만두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집어 치우려고 하고 현실을 돌아보니 갈 데가 많지 않은 거 있죠. 집에서만 있었기에 마땅히 내세울 수 있는 경력도 없었고 거기다 내가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마트 캐셔를 하겠어요 식당 일을 하겠어요. 솔직히 마음으로는 집에 들어 앉아 살림만 사는 게 장땡이라고 여기는데 애들 생활비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150만원 월급이 나와 보니 적은 게 아니더라고요.”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고충을 경험하고 있는 지인의 수다에 맞장구를 치다보니, 오랜만에 봉을 잡은 듯 열심히(?) 고기를 뜯고 있는 마눌 님이 눈에 띄었다.
일을 늦게 시작한 후배들이 어쩌다 줄을 잘 타서 오히려 자신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현실에 울화통이 터질 때도 있지만
어떤 친구는 남편 잘 만나 직접 사업장을 차리며 돈을 쓸어 담고 있음에 동창회를 다녀오면 괜히 마음 상해할 때도 있지만
옆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한길만 파고 있던 자신이 옳게 인생을 살아왔는지 나이가 들수록 비교를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한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며 자신의 외길을 꾸준히 걷고 있는 그런 그녀가 새삼 대견해 보였다.
언젠가는 이룰 것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 그녀가 자랑스러워 보였다.
식사를 마칠 즈음 지인의 의미 있는 한마디가 어수룩한 나를 계산대 앞에 서게 한다.
“힘들지만 집구석에만 박혀 있다가 그래도 이곳에서 세상물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그나마 재미라면 재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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