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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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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3일 16시 18분 등록

I. 인상적인 역사적 장면 3가지 (묘사)

 

[1]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강을 건너는 카이사르)

BC 49 1 1일 로마 원로원은 갈리아의 총독으로 있는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귀국할 것을 명령하면서 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대권을 부여 받은 폼페이우스가 '원로원의 최종권고'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카이사르를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카이사르는 지친 병사들을 달래어 로마로 진격했다. 그리고는 어느 새벽녘 카이사르와 그의 동지들은 루비콘 강 앞에 도착했다. 굳게 결심하고 이곳까지 달려온 카이사르였지만, 막상 루비콘 강을 건너려 하니 마음 한구석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한동안 말없이 강가에 우뚝 서 있었다. 모두가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카이사르는 인생의 결정적인 고비 앞에 자신이 선택한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뒤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2] 죽음의 충동 너머 (사마천의 독백, 궁형을 선택하는 순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시련은 닥쳐있고, 원대한 포부는 헛된 꿈이 되어버려 나는 슬프고 불운한 선비가 되어있다. 이 몸이 걸어가야 하는 길을 없는 것인가?

죽음을 앞에 두고 무엇을 선택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대장부를 죽이는 데는 칼이 필요하지 않는 법, 약간의 경멸과 모욕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궁형을 선택하라니....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일백 번이라도 고쳐 죽는다 해도 오히려 짧은 고통이다. 그러나 살아서 욕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면 부끄러움이 뼈를 태운다.

 

잠시 기억이 가물한 끝으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아들아, 검의 칼끝이 너를 향했더라도 그것이 두려워 죽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너는 죽음을 맞이한 후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환영이 폐부를 찌르는 듯한 차가운 기운에 흩어졌다.

 

'죽음의 충동을 버려야 해, 후대에 전할 역사의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뼈가 썩는다 해도 어찌 슬퍼할 일이라고만 하겠는가. 죽음에는 태산보다 무거운 값진 죽음도 있고,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과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다. 가벼이 죽어서는 아니 된다.'

<사기>의 기록을 생각했다. 생각의 시위는 다시 팽팽하게 당겨져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잠시 피곤과 고통을 잊었다. 아직 살아있는 상상력이 현실의 궤도에서 나를 이탈하게 만들고,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3] 선택한 죽음 (이순신의 노량해전)

전투에서 공을 세워 신망이 높아진 장수는 권력의 질서를 흐트러뜨릴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공신들 간의 다툼과 외척의 권력 투쟁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국왕의 힘은 약할 대로 약해져서 권력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형편에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왕권의 후퇴와 귀족세력의 해게모니 장악의 틈바구니에서 전쟁의 공인들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었겠는가. 아마도 선조의 조선조정은 전선에서 승승장구한 카이사르를 두려워 하는 로마 원로원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인들은 남인인 류성룡이 천거한 이순신의 공이 두려웠고, 류성룡이 설계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전시체제의 파격적 정책도 달갑지 않았다. 양반도 전쟁에 동원하게 한 속오군 제도와 공에 따라 노비를 양민으로 해방시켜주는 면천법 등은 신분질서 자체를 위협하여 기득권층을 위태롭게 하는 필연의 제거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니 전쟁이 수습될 국면이 되어 갈 즈음 류성룡과 이순신의 생은 어느 정도 정해진 길을 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전란 속에 임금의 권위는 땅으로 추락했고, 반면에 이순신은 혁혁한 공을 세우며 백성의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되었으니 선조에게 이순신은 전란의 막바지에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토사구팽의 운명을 이순신은 간파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유교적 군신 관계에서 신하가 임금의 명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순신은 자신의 생을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철저한 자기완성에 이르는 길인지 알고 있지 않았을까.

 

II.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장면, 그것에 대한 이유(해석) - 주사위는 던져 졌다.

삶은 모든 선택의 합집합이다. 그 선택의 안을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내,외적 갈등과의 충돌이요, 전쟁인 것이다. 선택은 이기적이다. 해로운 것은 적게, 이로운 것은 많이 취하고자 하는 것이며, 선택은 안전지향적이다. 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멀리하고, 편하고 익숙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선택의 기본원리가 아니겠는가. 대부분의 범인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이런 익숙한 선택은 역사에 없다. 역사적인 선택은 거스름의 선택이다.

 

폼페이우스와 귀족계급은 왜 안방을 내어주고 쫓기어 결국은 죽음과 추방을 당하게 되었는가. 상대방을 그저 먹잇감으로 보고 피 흘리지 않고 쉽게 이기려다가 안일함을 파고드는 상대방의 집요함과 전력을 다한 일격에 무너진 것이다.

카이사르는 BC 49 1 1일 로마 원로원의 통지를 받고 1 10일 루비콘 강을 건넜다. 전쟁은 민족이나 조국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오로지 카이사르 개인적인 명예를 위한 전쟁이었다. 때는 혹독한 겨울이었고, 로마까지는 산을 넘는 수백 킬로미터의 긴 행군을 해야 했다. 병사들은 타국에서 수년간 전쟁으로 죽고 지쳤다. 그들을 데리고 안방에 있는 적들과 싸워야 했다.

나라면 무엇을 선택했을까. 투항했을까. 싸웠을까.

싸울 것은 택했다면 무엇으로 병사들을 일으키고 무엇으로 적들을 베어냈을까.

 

폼페이우스와 귀족들은 원로원의 카이사르 탄핵이 카이사르 측의 내부적인 분열을 일으켜 군사들은 흩어지고 카이사르는 투항할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악조건을 가진 자가 루비콘 강을 건너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일반적인 선택을 거슬러, 지친 병사들에게 '자신의 명예'를 지켜 줄 것을 요청했고, 루비콘 강을 건너 적들의 심장에 들어가 그곳에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때에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적을 지나치게 의식해서도 안되지만 무시해서는 더욱 안 된다. 무언가와 싸울 때는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전력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초반부터 흐름을 탈 수 있고, 흐름 위에 올라탔을 때 손쉽게 이길 수 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을 얕잡아 보고, 상황판단을 더디게 하면 그 끝은 패배요 죽음이다. 자만심을 갖는 것은 패배의 제 1조건인 것이다.

 

나는 늘 머뭇거림이 많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이것 저것 생각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확인해야 하고, 나를 상대하고 있을 누군가의 마음도 짚어보아야 한다. 아마도 내가 카이사르의 상황이었더라면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 저것 짚어본다는 핑계와 두려움으로 적들이 채비하는 빌미를 제공했을 것이고, 적의 위세를 다시 핑계 삼아 나는 투항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나의 선택의 기본 원리는 위대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던져진 주사위에 망설여서는 안 된다. 아마도 지금의 나의 형편과 사정이 온갖 악조건을 강물에 담그고 진군하는 카이사르의 그림자를 선망의 눈으로 쫓게 하는 것 같다.

 

 

III. 개인적인 역사로의 적용 (형상화)

 

나는 스스로 운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계속되는 외롭고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 스스로의 침륜(沈淪)을 면케 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의 컨텐츠를 들고 회사의 교육 담당자들을 만나러 다닌 지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모두들 내년 예산에 반영해 보도록 하겠다고 한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소개를 받아 찾아간 HR담당 임원도 모두들 나의 프로그램을 심도 있게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HR담당자로 있을 때 그랬을까.

나의 직업을 창조했다는 자부심과 첫 책을 낸 기쁨은 벗꽃의 만개처럼 쉬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것이 귀환의 거부이고 내가 건너야 할 또 하나의 강인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받아들여지지 않던 나의 프로그램이 짜잔하며 거짓말처럼 받아들여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앞이 깜깜해졌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도시는 다시 벗어나고 싶은 울타리가 되었다. 지친 영혼이 자연을 어머니의 자궁처럼 찾듯 나도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나는 차를 운전했다. 하늘을 마주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멀리 보이는 구름 뒤로 아내와 아들 경민이의 얼굴이 아른하다. 순간 느껴지는 가장으로서의 누추함에 나는 자동차의 가속페달을 더욱 깊게 밟았다. 연구원 동기들의 얼굴과 사부님의 얼굴이 열린 창의 바람과 함께 나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 어루만짐에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급히 그것을 지운다.

궁색함이 싫다. 그건 나의 마음 깊은 곳은 트라우마의 저항이다. 나는 스스로 내가 누추하다 생각하면 끝도 모를 깊은 곳으로 침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빠지지 않도록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지금이라도 아는 이들을 쫓아 사정을 이야기하고 직업을 구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 한자리 내가 일할 곳이 없을까 생각해본다. 그간의 회사 경험과 인맥과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학습하여 쌓아놓은 내공이 있으니 그것들을 잘 버무려 이력서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작성하면 지금의 궁색함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다독이고 변명해본다.

 

차를 멈췄다. 오대산이다. 월정사가 눈앞에 있다.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차를 몰아 왔다.

트렁크에 가지고 다니는 운동화로 신을 바꿔 신었다. 상원사까지는 약 10Km 남짓 될 것이다.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처럼 걸음이 조급하다. 마치 지금의 거부당하는 삶을 뒤로하고 어머니의 선한 가슴 같은 그런 위안의 품을 찾듯 나는 길을 재촉한다. 상처가 깊은 만큼 삶은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일까.

이곳은 내가 회사를 떠나기 전 2009년 초겨울 혼자 걸었던 길이다. 그때는 회사라는 문 안에 갇혀 있어서 내가 내 삶과 격리된 듯한 그런 슬픔이 있었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그런 슬픔을 머지않아 벗어나리라고 다짐했다. 다시 걸으니 그때의 눈물과 다짐이 땅으로부터 솟아나 나의 몸을 나무 등걸처럼 타고 올라 나의 심장을 옥죄는 듯하다. 지금은 회사를 벗어나 있으면서 내 삶을 부둥켜 안으니 이제는 그곳에는 추방된 아픔이 있다. 나의 선택은 고통의 대상만을 바꾼 것인가. 삶에서 격리된 아픔이 안위로부터 추방된 아픔으로 바뀐 것 뿐인가.

그 겨울의 간절함이 그리고 삶에 대한 배고픔이 여전하다. 하지만 아직도 아픔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다만 그 얼굴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주사위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나는 내가 만들고 있는 나의 직업의 길 위에서 외롭고 긴 터널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아마도 그 터널 속에서 끝의 밝음을 발견하지 못하여 방황할 때가 오리라고 확신한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역사에서 찾은 장면들은 모두 비장함의 일면을 담고 있다. 나의 오감을 잡아채는 것은 날것의 비릿한 죽음과 같은 숭고함이다. 아마도 확신하고 있는 미래의 나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런 비릿한 죽음과 같은 것을 각오할 것을 자신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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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19.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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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6.14 15:16:01 *.237.209.28
스스로 퇴로를 막고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겠다는 굳은 기개가 느껴집니다.
이제 남은 건,
가면서 만나는 풀한포기 바람한자락과도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겠지요?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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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6.14 17:46:17 *.237.209.28
숙제 걱정없는 나라에서 맘편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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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6.14 17:02:03 *.219.84.74
양평의 밤은 뭔가 서운한 듯한.
수업한다고 오는 것도 그냥 그렇게 (맘은 엄청 반가웠는디...)
밥 먹을때는 배고파서 먹느라고 그냥 그렇게
배부를때는 경수 바래다 줄 시간이 되어서 그냥 그렇게...
그런 시간도 흔치 않을텐데...서운!! 미안!!

묙선배, 다음에 한잔 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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