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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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학 칼럼 28>
아홉 글자로 나를 표현하다
얼마 전에 핸드폰이 바뀌게 되었다. 그간의 기술적 진보와 사용자 편의성에 감탄하면서 초기 배경화면에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나의 마음을 응축시킨다면 어떤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를 한참 고민했다. 문득 ‘자유연주자!’라는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서 들었더라? 분명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생각해보니 크로스오버(cross-over)의 선두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를 표현했던 말이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TV를 통해 바라본 그녀의 공연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무대위의 열정과 파격, 전자 바이올린의 생경함, 팝과 클래식의 넘나듦은 자유분방함 자체였다. 나는 이내 핸드폰 초기화면에 아홉 글자를 새겨 넣었다. “나는 삶의 자유연주자!”
닫힌 창문으로 뛰어드는 삶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유서가 깊어 오래된 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시내 한복판이지만 새들이 많았다. 그런데 새들 때문에 여름철 수업시간에는 한번씩 즐거운 소동이 벌어지곤 했었다. 새가 열린 창문을 통해 교실 안으로 날아 들어와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우루루 일어나서 손을 휘저었고 순식간에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바보같이 자꾸 닫힌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보고 웃는단 말인가! 난 얼마가지 않아 닫힌 유리창 밑에 수북하게 쌓인 내 깃털들과 핏자국을 볼 수 있었다. 관계와 현실 속에서 나를 비추어보지 못했던 지난 시절, 나는 속절없이 반복적인 자해(自害)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래! 닫힌 창문에 피 터지게 헤딩하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었다.
그대, 자유를 꿈꾸는가
우리는 반복적 일상이 전해주는 나른한 체념에 지쳐간다. 현실을 수동적으로 모사(模寫)하는 삶 속에서 기쁨이 증발되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덧 지금 이곳이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시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자신만의 빛깔을 내고 싶고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은 시공간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자유를 위한 도약대를 만들지 못하면 다른 세계로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코드가 몸에 배지 않고서는 자유의 변주(變奏)를 연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 창문은 아이러니하게 질서의 획득을 통해 조금씩 열려진다. ‘자유’라는 창공은 ‘질서’라는 열린 유리창을 통해서 나아갈 수 있다. ‘자유’란 ‘질서의 충만과 조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상업적 변형이 아닌 창조적 크로스오버를 위해서는 클래식의 기반이 있어야 하고, 창의적 추상을 위해서는 구상의 세계를 제대로 통과하여야 한다. 자기를 초월하려면 우선 자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변칙이 통하려면 정석이 쌓여야 하고 파격의 미(美)를 추구하려면 큰 바탕의 규격이 깔려야 가능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궤도의 탈주(脫走)가 아니라 더 높은 세상으로의 비상(飛上)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비상의 몸짓은 또 다른 일상으로 다가올 것이고 그때 우리는 또 다른 비상을 꿈꿀 것이다. 질서와 자유의 끝없는 긴장과 대립이야말로 삶의 정수이자 세상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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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주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 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상태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
“우리 속에 갇혀 있으나 그 곳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짓 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그것이 바로 재즈였다고 새삼 나는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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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의 자유연주자!
문 요한 (변화경영 연구소 연구원, 정신과 전문의)
아홉 글자로 나를 표현하다
얼마 전에 핸드폰이 바뀌게 되었다. 그간의 기술적 진보와 사용자 편의성에 감탄하면서 초기 배경화면에 나를 드러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나의 마음을 응축시킨다면 어떤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까?’를 한참 고민했다. 문득 ‘자유연주자!’라는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서 들었더라? 분명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생각해보니 크로스오버(cross-over)의 선두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를 표현했던 말이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TV를 통해 바라본 그녀의 공연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무대위의 열정과 파격, 전자 바이올린의 생경함, 팝과 클래식의 넘나듦은 자유분방함 자체였다. 나는 이내 핸드폰 초기화면에 아홉 글자를 새겨 넣었다. “나는 삶의 자유연주자!”
닫힌 창문으로 뛰어드는 삶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유서가 깊어 오래된 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시내 한복판이지만 새들이 많았다. 그런데 새들 때문에 여름철 수업시간에는 한번씩 즐거운 소동이 벌어지곤 했었다. 새가 열린 창문을 통해 교실 안으로 날아 들어와 수업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우루루 일어나서 손을 휘저었고 순식간에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새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바보같이 자꾸 닫힌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보고 웃는단 말인가! 난 얼마가지 않아 닫힌 유리창 밑에 수북하게 쌓인 내 깃털들과 핏자국을 볼 수 있었다. 관계와 현실 속에서 나를 비추어보지 못했던 지난 시절, 나는 속절없이 반복적인 자해(自害)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래! 닫힌 창문에 피 터지게 헤딩하는 것은 새들만이 아니었다.
그대, 자유를 꿈꾸는가
우리는 반복적 일상이 전해주는 나른한 체념에 지쳐간다. 현실을 수동적으로 모사(模寫)하는 삶 속에서 기쁨이 증발되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덧 지금 이곳이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시공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자신만의 빛깔을 내고 싶고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싶은 시공간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자유를 위한 도약대를 만들지 못하면 다른 세계로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코드가 몸에 배지 않고서는 자유의 변주(變奏)를 연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의 창문은 아이러니하게 질서의 획득을 통해 조금씩 열려진다. ‘자유’라는 창공은 ‘질서’라는 열린 유리창을 통해서 나아갈 수 있다. ‘자유’란 ‘질서의 충만과 조화’를 말하기 때문이다. 상업적 변형이 아닌 창조적 크로스오버를 위해서는 클래식의 기반이 있어야 하고, 창의적 추상을 위해서는 구상의 세계를 제대로 통과하여야 한다. 자기를 초월하려면 우선 자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변칙이 통하려면 정석이 쌓여야 하고 파격의 미(美)를 추구하려면 큰 바탕의 규격이 깔려야 가능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궤도의 탈주(脫走)가 아니라 더 높은 세상으로의 비상(飛上)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비상의 몸짓은 또 다른 일상으로 다가올 것이고 그때 우리는 또 다른 비상을 꿈꿀 것이다. 질서와 자유의 끝없는 긴장과 대립이야말로 삶의 정수이자 세상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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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주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원칙과 자유는 섬세하고 창조적으로 섞여야 하며 정말로 훌륭한 결과를 낳아야 한다. 난 모든 음악이 낭만적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적인 감상주의에 빠지면 낭만성은 방해받게 된다. 반면에 원칙에 의해 운용되는 낭만성은 가장 아름다운 미적 상태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
“우리 속에 갇혀 있으나 그 곳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개짓 소리가 귓전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그것이 바로 재즈였다고 새삼 나는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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