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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4일 22시 1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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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늘에 무언가 떠있다. UFO도 아니고 저게 무얼까. 가만히 보니 가로등의 모습이다. 가로등이라? 남들은 관심을 두지않을 터이지만 나는 색다른 풍경 그 사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사진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보아 왔던 형태와는 다른 모습. 당연히 가로등은 기둥을 걸쳐 일정한 자리를 차지한 공간이 있는 형태로 여겼었는데 세상에 공중에 떠있다니. 그러다보니 얽히고 설킨 전선 가닥이 우리네 인생의 꼬임처럼 그 물건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어떤 느낌일까. 고정되어 한부분을 밝혀 주는 내가 평상시 보아왔던 그 물건과, 하늘의 공간을 차지해 빛을 비춰주는 물건의 차이점은.

 

빛이라는 무형의 물질을 잊고 살았다. 아파트 전체가 소등이 된 어느날. 랜턴이 없어 집안을 뒤지다 양초를 발견 하였고 묵혀 놓았던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오랜만에 퍼지는 성냥의 화약 냄새와 불씨를 물려받은 자그마한 초는, 어두운 공간의 침묵을 밝음 이라는 분위기로 점점 변화를 시키고 있었다. 눈에 익은 물건들이 그제사 어슴프레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형광등 밝은 불빛 아래서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향수들이 불러 일으켜 나왔다.

 

어려운 시절 등화관제 훈련의 싸이렌이 울렸다. 소등을 하여야 한다. 에이참. 한참 TV에 재미있는 프로를 방영하고 있는차에 무슨 짓이람. 우리 가족은 전등불을 끄고 스티로폼으로 덕지덕지 붙인 방문의 닫힘을 다시 한번 확인 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두꺼운 담요로 새어 나오는 빛을 차단 하였다. 촛불 하나 밝힌 가운데 브라운관에선 <수사반장> 최불암씨의 대사와 액션이 폼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숨을 죽이며 바라 보았다. 어떻게 해결될까. 범인은 잡힐 것인가. 아니면 미궁으로 빠질 것인가. 그밤의 추억 다시 새롭다.

 

방안에선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노트에 쓰고 있다. 개인의 자서전. 살아온 과거를 시선을 고정한채 떠올리며 기억에 투영된 흔적의 모습을 애써 찾는다.

유년, 초등 학교, 중고등 학교 시절. 그랬었구나. 그랬었지.

문틈으로 세차게 들어오는 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 하던 촛불은 용케 살아남는다.

질기다.

우리네 인생처럼.

 

구석진 까페에선 촛불 하나 켜놓고 연인들의 로망이 시작 되었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수줍은 여인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지어댄다.

촛농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는 동안 그들의 농익은 사랑은 향기를 더해가며 장미빛 미래는 춤을 추며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시작된 사랑이 타오르는 동안 이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그네들은 기도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이 가을날 가녀린 코스모스처럼 왜그리 흔들 거리는지.

그들은 알까.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질때 두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초의 몸뚱이가 아닌 내면심지의 곧음인 것을.

 

 

2. 맞추어 놓았던 새벽 기상 벨이 울리어 일어나자 깜깜한 어둠의 부자연스러움이 나를 맞이한다. 평소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고 익숙하던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다가오니 어색한 마음이 든다. 그럴땐 애써 형광등의 스위치를 더듬어 찾기 보다는, 그 어둠의 밤바다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있는게 조금은 편안할 때가 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듯.

 

고요함, 침잠, 내적 침묵, 평화, 정적, 세상 가운데 나혼자 만의 존재감, 기다림, 고요, 무언가의 행복감이 밀물이 차올라 오듯 천천히 스며든다.

사람의 눈알의 구조는 흰자위와 검은자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운데 우리는 검은자위를 통해서 밝음을 볼수 있다.

왜 흰자위가 아니고 검은자위를 통해서일까?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해 밝은 곳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구나. 사려깊은 신의 안배하심이 여기에도 숨어 있었구나.

그래도 그렇지 그냥 밝음을 주시면 안되나. 얄팍한 생각이 든다.

 

동이 터온다. 점차 밝혀지는 눈에 익은 거실의 물건들.

책장, 손때 묻은 서적들, 노트북, 어제 저녁 마시다만 물잔, 자판기, 마우스, 노트, 신문, 탁자, 식탁, 냉장고, 시계, 의자, 가스렌지, 전자렌지, 밥솥, 그릇들, 수저, 티슈, 그림들, 과일들, 장식장, 핸드폰 그리고 어제 묵혀 놓았던 갖가지 상념의 찌꺼기들.

빛의 도움을 받아 하나 하나의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자 그제사 그것들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한다.

 

라디오의 전원을 켰다. 전날 세상 밖의 소식이 들려온다. 혼자만의 공간에 타인의 세계가 침범을 하는 순간이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흥얼거려 본다.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들어서니 한사람이 먼저 타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넬까 아니면 누구나 그러하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앞만 보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까. 주저하던 차에 금새 일층에 다다랐다. 찰나의 인생살이가 그러하듯.

 

3호선 고속 터미널 환승역. 언제나 그렇듯 지하철이 들어오자 사람들의 목표점은 한곳으로 몰린다. 문이 열리자마자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이 뒤엉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지만 익숙한 듯 모두들 개의치 않는다. 밀어 밀어. 그들 무리에 나도 합류했다. 어떡하든 나도 이번 챠량을 놓치면 안되기에. 역무원의 다음 열차를 이용하라는 안내 방송이 이어지지만 사람들은 고지를 사수하는 병사들처럼 GO GO를 외친다.

드디어 탔다. 야호~

그런데 가방이 문에 끼였다. 어쩌나. 힘을 주어 보지만 좀체 빠지질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아침부터 이게뭐야 쪽팔리게끔.

다행히 옆사람의 도움으로 가방을 힘겹게 끌어 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였다. 세상은 역시 도우며 살아가는 곳이구나.

오늘은 웬지 일이 잘풀릴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의 착각일뿐.


서로 밀치며 밀폐된 작은 공간에서 수컷이 자기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호흡을 가다듬으며 두발의 공간을 힘들게 차지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덜컹 거리는 전동차에선 균형을 잡는게 최고인데 갑자기 그 리듬이 깨졌다. 무엇에 놀란 듯 급정거를 하자 그 성냥갑 같은 공간속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전쟁의 참상인 피해자들로 이어진다. 어제 애써 닦아 놓았던 구두가 타인의 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우이씨. 어떤 놈이야. 넘어진 사람이 생겼다. 어쩌나. 다행히 나는 괜찮다. 그렇지 나만 괜찮으면 되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목적지 교대역이 되자 사람들은 해치의 문을 열고 어둠의 자식에서 빛의 세계로 나오는 것처럼 꾸역꾸역 비집고 나온다. 광명이다. 해방이다. 우와~ 엑소더스(Exodus)를 외치며 환호하는 시민들. 나도 그속의 대열에 낙오되지 않고 한사람으로 떳떳이 참여해 있었다.

 

빳빳이 다려놓은 와이셔츠는 구김이 이미 서있고, 단정하던 마음은 100미터를 뛴 육상선수처럼 흥분이 되어있다. 식은 땀을 훔치노라니 새로운 하루가 벌써 저만큼 내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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