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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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일을 시작할 때는 항상 이런 질문이 들곤 합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책을 쓰는 건 나에겐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며, 상상도 못해 본 일이지요. 어느 날은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라며 글에 대한 예찬에 빠져들다가 다음 날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 아느냐는 회의에 빠져들지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한 편의 글을 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한 권의 책은 다른 문제지요. 책을 쓰겠다 마음먹으며 이 질문을 떼어낼 수가 없었어요. 내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괜찮은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과연. 과연. 과연.
책은 매우 불확실한 일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어요. 물론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고 의기양양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요. 철저히 버려져 나 외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다른 이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지도.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꼭 해야 하는 일이야?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라며 적당한 선에서 나를 다독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꼭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도 괜찮지 않느냐는 생각도 들어요. 난 두려웠어요. 아무것도 약속된 것이 없는 길을 걷는 것이.
자꾸만 휘청거리는 나를 보며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마음속에서 쿨한 내가 대답합니다. “그럼 하지마.” 답은 이렇게 간단했어요. 두려워서 못할 거 같으면 안 하면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못합니다. 그에 대한 답도 간단하지요. 이 책의 주제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였으며, 이 책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책 한 권은 나의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도움까지 줄 수 있다는 상당히 멋진 방법이었던 거죠. 나에게는 포기할 수 없었던 하나입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만큼이죠. 성인군자 같은 이유는 다 던져버리고라도 난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 접을 수 없었어요. 이걸 넘어서야 난 변화할 수 있거든요.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설렘과 기대감도 있지만 하나의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이전과는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죠. 예측하지 못할 때 우리는 두렵고 불안해 집니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새로운 시작 앞에서 주저합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의 일은 우리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지만 한 걸음만 나아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라요. 그건 우리에게 불안함을 안겨주거든요. 알 수 없는 신세계보다 익숙함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 이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불안함과 두려움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럴 땐 자신에게 간단하게 말해주세요. “그럼 하지마.”
어때요? 이 말에 “그래.” 라며 고개가 끄덕여지시나요? 아니면 “아니.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이러쿵저러쿵. 주절주절.” 이런 말들이 계속 떠오르시나요? 바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면 포기해도 좋을 문제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후자처럼 이런저런 말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아마 당신은 해야 할 거예요. 이유의 길이만큼 후회의 꼬리가 길어질지도 모르니까요. 그건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죠.
어떤 일이건 시작이 있습니다. 이 시작 앞에서 설렘만 받고 두려움은 거부하고 싶지만 이들은 환상의 복식조입니다. 하나를 받으면 반드시 따라오는 하나를 받아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망설이게 됩니다.
망설이는 건 당연한 일이예요. 잘 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덤비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순조로울 거라는 기대만 된다면 누가 하지 않겠어요? 하나의 시작은 언제나 잘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순조로운 미래만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불확실하지요. 이것만큼 사람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없어요. 내가 걸어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어디를 걷고 있는지도 모를 수 있다는 것. 얼마나 가야하는지 가늠되지 않는 다는 것. 이건 공포 외엔 적절한 단어가 없어요. 그때 우린 시작의 두려움을 느낍니다. 가만히 있으면 앞날의 공포와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주저합니다. 이것저것 가늠합니다. 다른 이에게 묻습니다. 하지만 답은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말해주는 거예요. “그럼 하지마.” 자신에게 포기할 수 있는가를 묻는 거죠.
어떤 것 하나를 시작한 다는 것은 분명 도박입니다. 그것도 판돈이 꽤나 큰 도박입니다.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무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걸고 하는 도박이지요.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평온한 일입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를 오늘도 보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에겐 익숙한 일이며, 대처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쯤은 어제와 같아도 좋을지 모르지요. 내일도 어제, 모레도 어제. 5년 후도 어제. 죽는 그 날까지도 어제. 이것 역시 끔찍한 공포입니다. 시간이 정지하는 형벌 같은 거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를 시작해도 공포는 따라올거예요. 가만히 있을 때의 미래 역시 우리가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이래저래 우리는 불확실성에 놓여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그에 따른 공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시작과 결단의 수많은 명언을 외우기보다 많은 이들의 격려를 구하기보다 나 자신의 구차한 이유를 들어주세요. 포기하자 생각했을 때의 “그래도 말이야.....” 한 번 해보자 했을 때의 “하지만 말이야.....”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고 있고,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얼토당토않은 말이라도, 구질구질 구차한 변명과 이유들일 뿐이라도. 내 마음의 이유가 다른 이들의 말 보다 중요한 법이니까요.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면 한 번 포기해 보세요. 이유를 대고 있다면 다시 하기로 하세요.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당신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길 거예요.
귀신의 집에 어디서 뭐가 나올지 미리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로 들어가겠어요? 3걸음 앞 오른 쪽에서 처녀귀신이 출현 예정이고 10걸음 앞 거울을 보면 드라큘라 백작이 날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돈을 내고 들어가겠어요. 우리는 귀신의 집 입장료보다 더 큰 입장료를 내고 이 자리에 있답니다. 그 자리에 있으실 건가요? 아니면 앞으로 가실 건가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이미 당신이 무언가를 시작하려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미심쩍은 마음으로 엉덩이를 쭉 뺀 태도는 새로운 시작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온 마음을 다해도 변화란 놈은 쉽사리 잡아지지 않는 놈이니까요. 변화의 새 시작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물어봐 주세요. 포기할 수 있어?
나는 책을 씁니다. 격려의 말도 많이 듣고, 책을 썼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요. 하지만 그런 여러 말들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책을 씁니다. 책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그것이 기쁨일지 슬픔일지 나는 모르지만 포기할 수 없어서 이 길을 갑니다. 이것을 포기하면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을 테니까요. 단지 이 것 뿐입니다.
상황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주변의 사람들이 시작 앞에서 고민할 때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요. 난 그들에게도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럼 하지마.” 그러면 또 무언가를 말합니다. “그럼 해.” 이건 내가 성의가 없는 게 아니예요. 그의 걱정과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예요다. 그 걱정과 불안을 안고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걱정과 불안은 시작한 사람의 몫 이예요. 그에 따라오는 기대와 설렘도 시작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이지요. 걱정과 불안이 없으면 기대와 설렘도 없답니다. 우리는 시나리오를 꿰고 있는 유머에는 웃지 않는 법이지요. 시작 앞에는 단 두 가지의 보기만 있습니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 방법이 보이지 않다는 것은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그래 해보자.” 라고 외치는 것이 먼저. 방법과 상황은 그 다음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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