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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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어 냅다 던짐.=_=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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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은 모두 아버지와의 관계가 비정상적이었다는군요."
"그래요. 그럼 그렇지. 어릴 때 아버지와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으니 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겠죠. 니체가 그랬고, 러셀이 그러했죠."
"결국 무신론자들의 결핍된 조건들이 바로 신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어요?"
온통 사유가 부재하는 글들. 인터넷에 난무한다. 오늘은 러셀을 찾다가 우연히 책의 서평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들을 확인한다. 생각한다. 무신론자는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 자들이고 유신론자들은 "정상적인" 집안의 소생들이라면, 결국 신앙의 유무는 가정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 주장부터가 그럴듯한 "믿고 싶은" 가정일 뿐(신자들은 무턱대고 "믿는 것"을 참 잘한다),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역학일 뿐 아니라 아니 도대체 이것이 신의 실존과 무슨 상관이 있지?
유신론자들의 생각은 이러하다. 신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어서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니라, 이들은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무신론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무신론자들의 가정환경은 정상이 아니었다는 류의 주장은 무신론자들에 대한 경멸을 담은 것으로 유신론자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선민의식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어떠한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인들보다 무신론자의 비율이 더 높고, 특히 우수한 과학자일수록 더욱 높으며, 지식인층일수록 무신론자가 더욱 많다는 사실은? 이에 관해서는 과학자들의 지적 오만일 뿐이며 그들의 바벨탑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무너질 죄악의 씨앗이라고 말할 텐가?
세상의 수많은 십자가. 붉은 십자가! 이 세상을 온통 무덤으로 만들어버린, 생으로 환산되는 시간과 돈과 영혼의 무덤들. 인생은 곧 필연적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살아서도 죽은 자들의 공간. 생살을 채찍질하는 저 문양을 보아라. 그래, 상관없다. 갈릴레이가 뭐라고 하든 그래도 지구는 돌고, 신자와 신자 아닌 자가 뭐라고 하든 신은 존재하든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 믿음이라는 것이 필요하지? 오로지 사실만이 필요한 것 아닌가? 비합리적인 것을 "믿어야"했기 때문에 그것이 신앙이기 때문에. 즉, 신앙이란 사실이 아니어서 믿음이 필요한 것들에 대한 망상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다만 종교에 미쳐 비종교인을 경멸하는 놀이에 빠져든 자들이 유감일 뿐. 그들은 나를 경멸하고 나는 미친 그들을 경멸한다. 차라리 정신분열병으로 진단이라도 받으면 연민이라도 던져줬을테지. 종교가 포용을 가르친다는 말도 안 되는 위선들 제발 걷어치우라고 해라. 당신네들이 쥐어든 그 손에서 "수능 잘보게" "배우자 잘 만나게" "아무튼 잘되게" 해달라는, "그러나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는 그 겸손한 척 하는 기복 신앙. 남들을 불쌍히 여기라는 선민 사상에 침을 뱉으마. 영적인 구원은 기복 신앙의 승화된 표현이라는 것을, 그대들은 인정하지 않겠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우기고 거기서 힘을 얻는 것이 미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Relusion. That is the name of yours. 종교망상.
용사가 될 필요는 없었지. 그저 미친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양 살아갈 수도 있었다. 신자만이 판 치는 세상에 일요일에 교회 나가는 척, 야매 신자인 척, 그래도 신의 존재는 나름대로 믿고 있는 척 할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언제까지? 사람들은 신 없이도 살면서 종교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모양이고, 그저 나만의 특수한 변이라고 생각한 채 그저 아주 사소한 특이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면 안되었나? 그러나 나는 이제 너무 불편할 뿐이고. 나도 신자들이 신을 떠벌리고 강요하는 것처럼 내가 아는 바를 떳떳하게 공개하고 싶다. 갈릴레이의 입을 막지 말란 말이다. 그러나, 2012년에도 신자들은 비신자들을 구원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곧 지옥 갈거라고 걱정한다는 것. 그들은 자신들과 지위가 다른 자들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들은 경건하므로 더욱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이 더러운 기분으로 좀비 같은 신자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 않기로 하였다.
신으로부터 독립해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것들아. 신으로부터 독립해라. 인류여. 네 인생에 손을 얹은 "요람을 뒤흔드는 손" 따위는 없다. 네 발로 네 인생 위에 서라. 직립보행하라. 어정쩡하게 서거나 엎드려 기도하지 말 것. 차라리 황야를 떠도는 승냥이가 되어라. 운명 앞에 네 맨 가슴을 드러낼 수 있는 자가 진짜 용맹한 자이다. 소용없는 허상의 갑옷은 벗어버려라. 네 인생에 망상의 무게만을 더할 뿐이다.
그러면 일부 신도들은 마치 더러운 광경을 피하듯 발을 빼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네가 뭔데 나에게 이러느냐? 너에게 전도하지 않을 테니 너도 제발 입 좀 닥쳐라. 그러나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을 수는 없다. 그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신이 없다"는 내 말이 옳다면 너의 말은 필연적으로 틀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해라. 마취가스에 취한 상태로 죽든가 아니면 뜬 눈으로 살든가. 어쩌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한 삶이라 하더라도. 가장 고독하고 싶은 순간에도 결코 혼자가 되지 못하는 자들이여, 신의 환영 놀이는 걷어치워라!
시칠리아 미칠리아 8. 황야를 떠도는 승냥이
취아카는 내가 멜리사를 만난 곳이다. 더 덧붙이자면 빈첸또와 발렌티나를 만난 곳이다. 사실 그들과의 만남은 몇 십분에 불과했고 그들과 나 사이에 특이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 인사했고 빈첸또에게 과일을 조금 샀으며, 발렌티나와 멜리사는 그의 어린 딸들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취아카를 잊을 수 없는 것일까?
지중해 바다의 짠 물에 아이라인이 눈밑으로 번졌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선글라스를 감지덕지하게 끼고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의 풍광을 바라보며 여운의 꼬리를 계속 이어갔다. 해변에서나 어울릴법한 비치는 흰 민소매만 입은 채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방인의 특권이다. 시칠리아들은 내가 그저 유별난 동양인이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은 시크하고 울적하며 광적인 돌발성을 내재한 상태. 판도라의 상자를 뚫고 자유를 이긴 방종이 나오려고 한다. 지나치게 기대했던 상황들과 탐욕스러운 체험. 뜻하던 바들을 만족할 만큼 쟁취하고 나니 반작용 상흔처럼 우울함이 뇌의 밑바닥에 조금 깔렸다. 그냥 뭐가 됐든 어떻게든 되겠지. 석양을 향한 시선이 그저 멍한 것 같았다. 시간이 잘 갔다.
어둡다고 했다. 꽤나 재기발랄해 보이지만 간혹 어두움이 드리워진 이유가 무엇이냐 – 고 물었다. 어제나 엊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더 예전에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당황하였다. 그야 사람이 어떻게 항상 즐거울 수가 있나? 내리는 비에 이유가 없는 것처럼. 시칠리아는 이 맘때 비가 안온다더니 웬 비냐고 묻는다면, 그야 하늘이 제멋대로인 게 정상 아니겠냐고 반문하겠지. 삼면이 바다인데 섬 더러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시칠리아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마치 재수없는 모범생처럼.
“성공해야 하니까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만약 내가 어두운 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성공에 대한 강박 때문이겠죠. 신화를 공부하고 고전을 읽고 감명도 받고 순간에는 삶의 이치를 깨닫는 듯도 하지만, 현실은 지나치게 자극적입니다. 결코 살을 떠나서 생을 살아갈 수가 없어요. 책으로 읽고 선생에게 들어서 무엇이 옳은 줄은 알지만 진실로 깨닫기 위해서 나는 겪어봐야 해요.
네 몸을 불태우는 분노로 먹고 사는 놈아!
단테 신곡 [지옥 편]
왜 성공해야 하는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왜 보여줘야 하는가?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인정이 중요한가? 그렇다! 매우 중요하다!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겠지.
잡념이 쓸데없는 꿈처럼 머리를 돌다 빠져나간다. 병식은 있으니 해결도 되겠죠. 일단 마음은 편하네요. 그렇게 대답했다. 말이 입 밖으로 쏟아질 때는 진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정을 돌아나가는 갈릴레이처럼, “그래도 성공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공하지 않고서는 끊지 못할 강박의 고리. 가진 자만이 별 거 아니라는 듯 회고할 수 있다는 그 경지. 나는 결국 아등바등 어리석게 살 비운의 운명이다. 늘 배가 고팠다.
나는 N을 찾기 위해 취아카에 들러보기로 했다. 이 곳에 특별한 볼거리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 곳은 시칠리아섬의 남서쪽에 위치하는 해안 도시이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사실 이곳은 5세기에 발견된 온천이 유명하다. 도시의 이름은 아라비아어의 "물(Xacca)"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9세기에 사라센족이 정착하면서 도시를 구성하였고 이후 노르만족의 지배를 받았다. 아직도 이곳은 자연에 가까운 곳으로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 많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글라스를 접어 밋밋한 가슴골에 꽂고는 고개를 들어 낯선 도시를 바라보았다. 낮아진 태양 고도 때문에 그리 덥지 않았다. 흰 머리의 노인들은 광장의 벤치에 앉아 동양인 무리를 멀거머니 구경하였다. 페스티발을 준비하는지 광장 한구석에서는 밴드가 튜닝을 하며 소리를 튕겨내고 있었다. 공중에는 작고 하얀 루미나리에가 왕관처럼 걸려 있었다. 어둠이 깔림에 따라 곧 빛을 내보일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큰 개들이 가게에 고개를 들이밀거나 주인 손에 이끌리거나 하였다. 케밥 비슷한 먹거리들을 파는 행상들은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여기에서 먹을 것을 사서 광장에서 먹을까? 앉을 곳이 마땅치 않다. 레스토랑을 찾아볼까?
나무로 만들어진 사각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칠리아 지도 모양의 양각 위에 수공예로 작업한 듯한 가게 이름이 조각되어 있었다. IL DROGHIERE RUSTICO. 가게 밖의 우편에는 쇼핑카트에 원통형 수박들이 고개를 내밀 정도로 실려 있었고, 좌편에는 와인드럼통 위에 사각 나무판을 대어 노란 민무늬 멜론을 2층으로 쌓아두었다. 수박과 멜론의 밝은 색채가 미각을 자극하였다. 해수욕으로 정신은 충만하였으나 육체는 잔뜩 허기진 채라 더욱 싱그러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멜리사를 만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6살에서 7살 남짓한 소녀였다. 아이는 그저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더라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작았다. 다만 예쁜 얼굴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잿빛 금발을 곱게 넘겨 말총머리로 묶고 가는 머리띠를 한 채였다. 달빛처럼 밝은 얼굴에 둥그런 눈썹.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의례 입히는 핑크빛 캐릭터 티셔츠(후에 사진으로 보니 그녀의 몸집보다 많이 큰)를 입고 수박을 가득 실은 카트의 모퉁이를 작은 손으로 가만히 잡고 있었다. 내가 과일가게로 들어서며 그녀를 바라보자 소녀는 작게 말했다. “부오나 세라.”
통상적인 저녁 인사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그 인사는 내 영혼을 뒤흔들었다. 나를 반기는 미지와의 조우가 그처럼 아름답고 따뜻할 수 있을까? 그 때의 나는 바다소금으로 범벅이 된 검은 머리칼에 눈밑이 검은, 고스족 같은 거렁뱅이에 불과했다. 얄팍한 사상으로 일시적인 껄렁함을 다짐한 나 같은 자에게 아무런 의심 없는 인사라니? 나는 순간 터무니없을 만큼 기뻐졌다. 그리곤 웃으며 같은 말을 하였다. “부오나 세라.”
나는 때 아니게 수줍어져서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주인인 중년의 한 남자가 보였다. 그는 시칠리아인답게 붉게 태닝한 피부와 간간히 은빛이 도는 짙은 회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포도며 사과며 과일을 고르는 사이, 나는 계속 아까 인사를 나누었던 소녀를 생각했다. 마치 사랑 고백이라도 받은 듯이 마음이 들떴다. 이 가게 주인의 여식일까? 정말 예쁘다. 과일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해서 일행은 모처럼 기쁜 마음으로 부담 없이 과일들을 집어내었다. 가게의 분주한 소리를 들었는지 2층으로 이어진 작은 나무계단에서 한 소녀가 내려온다. 10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키가 겅중 크고 마른 소녀였다. 더운 지역에 어울리는 짧은 옷과 구리빛 피부, 그리고 발그레한 볼의 그녀는 주눅이 들 정도로 미인이다. 아마 손님들 소리에 아버지를 도와주려고 2층의 집에서 내려온 모양이다. 소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벨라, 벨라!" 소녀는 나의 환호에 쑥스러운 듯 활짝 웃었다. 볼이 확 붉어졌다. 그녀가 바로 발렌티나였다. 이런 우연한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최고의 미학적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그녀는 이제 막 봉우리를 올린 장미꽃 같았다. 꽃잎 끝에 맺힌 황홀한 색깔만 보고도 벌써 기대가 되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마치 이국의 불길한 예언자처럼 지나친 아름다움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움은 마치, 폭풍의 전야처럼 나를 엄습했다. 에덴의 동산에서 뱀을 기다리는 무화과 나무처럼. 뱀이 곧 올 것이다. 생의 충격을 비늘 사이에 숨기고. 비늘은 다윈의 진화론을 타고 느글느글 반짝반짝 빛을 내며 기어온다. 다가온다. 또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이다. 살아있는 날 것의 아름다움! 모든 생의 경험은 경이롭고 두려운 것.
수박을 좀 잘라줄 수 있냐는 부탁에 빈첸또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시원하게 끄덕 하고는 기꺼이 수박을 잘라준다. 그의 너그러움은 부탁을 기뻐하는 듯 보일 정도였다. 생선을 다듬을 것 같은 묵직한 칼을 들어서 손에 익은 솜씨로 날을 세워 삭삭 잘라낸다. 마치 무예 공연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빈첸또의 손에서 선반으로 수박이 옮겨지기가 무섭게 조각들을 집어갔다.
빈첸또는 가게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 부스럭거리더니 (어쩐지 그의 움직임은 부담스럽게 미안한 것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올리브를 그릇 가득 담아 가만히 듯 내어놓는다. 조명빛에 탱글탱글 약이 오른 올리브를 수박과 함께 먹었다. 내게 수박의 청량함과 올리브의 짭조름함은 최상의 궁합이었다. 하기야 빈첸또가 내어놓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맛있었을 것이다. 나는 빈첸또의 사심없는 미소와 배려에 흠뻑 빠져들었다.
진열형 냉장고 사이에 놓인 작은 선반은 분명 딸들의 작품 같았다. 유리판 아래로 직접 말린듯한 붉은 꽃잎이 가득하다. 좁은 가게 한 구석에서 아버지 빈첸또가 수박을 써는 동안, 큰 딸 발렌티나는 계산대를 보았다. 멜리사는 언니 옆에 똑 붙어있다. 아름다운 가족이었다. 빈첸또는 분명 착한 아버지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예쁜 미소를 지닌 딸들은 기를 수 없을 것이다. 선함과 순수함이 이처럼 투명하게 밖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분명 안에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와 원만한 관계였던 적이 거의 없다. 그런 관계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겪는 아들처럼 자랐다. 늘 아버지의 힘이 두려웠고 동시에 언젠가 능가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 아버지에게 어떤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위대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었다. 나를 아버지의 조건으로 아버지의 삶을 살라고 세상에 내던졌다면 그와 같이 해내지 못했으리라. 내가 지성의 끝에 채택한 무신론에 대해서 일부 유신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신론자인 이유는 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에게 아버지의 상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 라고.
가히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 거룩한 아버지여. 당신의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위해 희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그러니 당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은 선대의 빚처럼, 원죄를, 묵묵히 자랑스럽게 떠받들겠습니까? 그것이 진정 책임감있는, 최고선의 경지이니까요? 그렇다! 정말 그렇다! 이 세상의 모든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아버지를 죽여야 아들이 살 수 있다. 헌 것이 가고 새 것이 온다. 하나님 아버지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살인이 필연적이다. 독립하기 위해서 권위를 부정하는 패륜이 필연적이다. 그것만이 오로지 우리가 해내야 할 미래적 원죄이다. 우리는 죄를 짓기 전에는 독립할 수 없다!
아버지에게 구원을 바라지 말고 아버지를 구원하는 존재가 되십시오. 아버지의 작은 어깨를 깨닫지 못하면 요람에서 기어나올 수 없다. 결코!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출아되자 마자 두 발로 일어서서 걷고 뛰기 위해 발광하는 생명체여야 한다. 두려움을 안고, 강박증을 발판 삼아.
나는 가게의 접대에 대한 고마움과 가족들의 미소에 반해 함께 사진 찍기를 청했다. 다행히 나의 진심을 느낀 빈첸또의 가족은 순순히 사진에 응해주었다. 멜리사의 큼지막한 디즈니 핑크 티셔츠(분명 그녀의 언니 것을 물려 입었거나, 아니면 몸이 커질 것을 대비해서 큰 옷을 사 입힌 것일 테다)의 목구멍으로 가녀린 오른쪽 어깨 하나가 비죽 나왔다. 그리곤 예의 그 수박 카트 한 쪽을 불안한 듯 작은 손으로 꼭 붙잡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 모습이 마치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놀란 새끼 사슴 같았다. 그 때 나는 순간, 아이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정체를 확인하였다.
금빛 십자가.
[… … ]
나는 잠시 생각한 후, 이내 미소 지으며 그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천사를 그린다면 분명 그 순간의 멜리사를 그릴 것이다. 내 솜씨가 담아낼 수 있다면 말이다. 사진에 환영들이 담긴다. 에덴의 동산. 아버지와 그들의 자녀들과 선악과가 있었다. 그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행복해한다. 순간 속의 영원으로 하늘에 속한 것들. 모든 이들의 영원한 추억의 고향. 내가 태어났고 떠나온 기억도 없이 떠나온 곳. 이제는 내가 속한 영토가 아닌 곳. 사랑하는 것과의 이질성은 자괴감이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의 깨달음이다. 나는 황야의 떠도는 승냥이가 되었다. 짐승은 아름답다. 아르테미스의 승냥이.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 나는 저녁이면 같은 달 아래에 절벽에서 울부짖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의 미간은 좁고 볼은 경직된 채 삶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성공에 대한 강박은 삶에 대한 전투 의지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과일을 더 사주고 싶었다. 마침 가게의 중간 선반 정도에 오렌지가 있어서 6개 정도를 골랐다. 얼마냐고 묻자 빈첸또는 가만히 무게를 단 후 1유로라고 했다. 1유로! 나는 반사적으로 지갑을 매만지면서 오히려 미안해졌다. 오렌지 6개에 겨우 1유로라니! 우리 돈으로 오렌지 한 개가 300원 정도 한다는 소리다. 이걸 팔아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미안한 마음에 머리가 복잡해진 나머지 지갑에서 손을 느리게 굴렸다. 겨우 사리에 맞는 액수의 동전들을 꺼내자 빈첸또는 내가 외국돈의 셈에 약해서 굼뜬 것인 줄 알고 반갑게 “예스, 예스”를 외치곤 2유로를 받은 후 1유로를 거슬러주었다. 나는 감히 팁으로 돈을 더 주지도 못했다. 내가 줄 수 있는 팁이래봤자 분명 갑싼 몇 푼일테다. 게다가 그는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주인이었고 나는 그저 소비자인데 혹시 무례를 범하는 행위가 될 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빈첸또? 빈첸또!"
나는 빈첸또의 이름을 묻고 또 물었다. 그리곤 마침내 만족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한 방, 꿈 같은 순간이었다. 인연은 이처럼 아무런 복선도 없이 다가온다. 내내 행복한 기억에 취한 채로 나는 흰 봉지에 옹기종기 담긴 오렌지 6개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차가 곧 출발하고 한쪽 면은 또 다시 지중해가 되었다.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비늘 모양의 오렌지빛이 한가득 바다 위에 표류하였다. 배들은 검은 아지랑이처럼 바다의 선을 가르며 다녔다. 초점이 없던 내 눈에도 지중해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버스 안 여기저기서 와- 와- 하는 긴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름다워서 외로운 것이 섬의 숙명이라면 그 운명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리라. 내 눈에도 따뜻한 불빛이 서렸을 것이다. 아름다움이 온몸을 잠식했고 나 역시 일부가 되었다. 빈첸또 일가를 생각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소리로 눈빛으로 연신 많은 인사를 나누었다. 아마도 아리베데르치(Arrivederci, 또 만나요) 라고 인사했겠지. 그러나, 실은 다시 찾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완전한 행복이 담긴 항아리를 깨고 싶지 않다. 내가 다시 몇 년 뒤 그곳을 찾아갔을 때 그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를 반기지 않는다면? 차라리 가게가 사라진다면 나는 아쉬움과 함께 안도하리라. 부디 그저 여행이 주는 우연한 만남으로 그 행복함으로 사진처럼 남아주기를. 최고의 순간에 자살해버린 시간처럼 영원히 나의 추억이 되어주어. 나의 멜리사! 그래도 멜리사가 발렌티나처럼 크게 된다면 한 번쯤 멀리서 보고 싶지 않을까. 지독히도 회귀하고 싶은, 그러나 동시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었다. 나의 샤카는 그런 곳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이 곳을 잊지 못해서 다시 오게 된다면, 나는 길의 공기와 온도까지 복기해낼 수 있으리라.
[흐음… 취아카에서 갔던 과일 가게 앞이 주차장이었나?]
구글맵은 가히 혁명적이다. 무서우리만치 순식간에 추억의 장소를 들이밀었다. 나는 불필요할 정도로 취아카에 집착하고 있었다. 나는 취아카 지역의 광장들을 하나씩 제외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찍은 멜리사의 사진을 보았다. 가게의 간판 옆에 거리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Viale della vittoria. 승리의 가로수길 근처였다. 스트리트 뷰를 이용하여 하나 하나 길을 따라갔다. 다시 찾는 고향집처럼 마음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약간 분홍빛이 도는 옆건물, 테라스의 모양, 그리고 창의 장식… 드디어 찾아냈다! 2008년 구글의 지도에서는 빈첸또의 과일 가게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바였고 빈첸또 가게의 정겨운 나무 간판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 그 자리가 확실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예의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로 여기가 맞다. 이곳에 2012년 빈첸또 일가는 자리를 잡게 된다. 나는 반가움에 몸을 떨었다. 친구들이 올려준 사진을 보며 뒤늦게 간판의 이름을 번역해보았다.
IL DROGHIERE RUSTICO
소박한 과일가게
내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번진다. 나는 놀라우리만치 틀리지 않았다. 샤카는 천국이었다. 누군가는 신의 음성을 듣고 누군가는 신을 본다고 하였는데, 나에게 있어 영적 체험이라 한다면 바로 샤카가 아니었을까? 유신론자들의 언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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